"아야야..."


해가 지고 있을 무렵. 힘겹게 이지한이 몸을 일으켰다. 배, 등, 목... 어디 하나 멀쩡한 데가 없었다. 아마 배를 맞고 그대로 기절해버린 모양이었다.


"..."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이 이지한은 일어나 저 멀리에 버려져 있는 자기 가방을 들었다. 가방에 들었던 물건 몇 개가 사라진 듯 했다. 이지한은 항상 그래오던 것처럼,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철컥.


이지한은 반지하에 있는 5평짜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널부러져있는 빨래들에, 설거지 거리 위에는 날파리 몇마리가 날라다녔다. 지한은 터벅터벅 걸어들어와 가방을 방 한구석에 던져 놓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손으로 얼굴을 싸맨 채, 그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좁은 화장실에서 울리는 웃음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곧 웃음을 멈추고, 지한은 화장실에서 나와 바닥에 앉았다. 그러고는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생각했다.


분명 중학교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천국과도 다름없던 때였다. 하지만, 지한이 중학교의 첫 학기를 마치고. 지한의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6개월 뒤, 둘은 이혼했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한의 양육권은 아빠가 갖게 되었는데, 그는 외박이 잦았다. 그리고 지한이 1월에 17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빠는 반지하 집 하나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한의 아빠는 전화로 지한의 상담이나 조사 따위를 해결했다. 당연히 세상은 지한의 사정을 알 리 없었고, 그렇게 지한은 홀로 남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는, 지한의 삶은 더 처참하게 망가졌다. 앞서 있던 일 때문에 내신도 망쳤고, 결석도 잦았다. 남들과 같은 생활을 보냈다면 적당히 골라서 진학할 수 있었겠지만,  결석일수와 내신성적이 지한의 발목을 잡았다. 하는 수 없이 지한은 똥통으로 유명한 모 기술고를 들어가게 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했어야 했다. 원채 조용한데다 그동안 있었던 일 때문에 풀이 죽어 있는 지한은 찐따로 낙인찍혔고, 주변 일진들에게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지한에게 다가와 돌발적으로 주먹을 날리거나 지갑을 털어갔다. 꾸준히 돈을 보내주던 엄마와도 연락이 끊겨서 지한은 매일 알바를 해야했는데, 그렇게 번 돈은 전부 일진들의 손에 들어갔다. 거기에, 지한의 성격을 곧장 파악한 일진 무리들이 지한을 매일 샌드백마냥 처 대기 시작했다. 오늘도 알바를 끝내고 집에 가던 중 일진 무리에게 붙잡혀 맞았던 것이다.


후우.


'그냥 죽을까.'


지한은 이렇게도 생각했지만 죽을 때의 고통이 지금 느끼는 고통보다 더 컸다. 죽는 것 보다는 맞는 게 낫다고, 지한은 그렇게 합리화했다.

=====


"크르르르르...."


한 늑대가 골목 끝에 몰린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서너명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동안, 그 늑대는 천천히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이때 기습적으로 한 사람이 주변에 있던 두꺼운 작대기를 들고 공격해 보았으나, 그 늑대의 신체 능력은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생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분명 온 힘을 다해 휘둘렀거늘, 늑대를 가소롭다는 듯이 그 공격을 피하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남자를 이미 녹대에게 목을 물렸다. 금새 물린 틈 사이로 피가 흘러 나왔다. 남자는 애써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뚜득!


그 직후 남자의 부들거림이 멈추었다. 목을 부러뜨린 것이었다. 뒤이어 늑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덤벼들었다. 남자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넋을 놓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자신이 골목으로 몰아넣은 모든 사람들을 죽인 늑대는 곧 시체 하나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원한이라도 있는 듯, 아주 게걸스럽게...

=====


다음 날 아침, 지한은 눈을 떴다. 지한에게는 익숙한, 조용하고 약간 컴컴한 아침이었다. 어제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을 먹고는 지한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대충 세수를 하고 지한은 바로 집을 나갔다. 어제보다 얼굴에 털이 더 많아 진 것 같았지만 지한은 수염이 자란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서 나온 지한. 오늘은 운이 좋게도 일진들에게 맞지는 않았다. 가방을 다른 일진에게 한 번 털리긴 했지만 어차피 그 가방 안에는 별 것 없었으니까.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알바까지 마친 저녁 9시 반. 지한은 약국에 잠깐 들렀다. 점심때부터 발가락이 따끔거리는 게, 아무래도 전날 맞은 걸 미처 확인을 못했나 싶었다. 작게 베인 상처라고 생각하면서, 지한은 간단하게 연고 하나만 사 가지고 나왔다. 반창고 정도는 집에 많았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지한은 양말을 벗으려 했다. 근데 뭔가 이상한 것이 양말을 뚫고 나와 있었다. 그것도 발가락이 있는 위치에. 지한은 문득 이상한 상상을 했지만 곧 머리를 내저었다. 말도 안된다며, 소설 속에나 있는 일이라며 지한은 대체 언제 저런게 박혔나 돌이켜보면서 양말을 벗었다. 하지만 힘겹게 양말을 벗은 지한은, 자신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회색빛이 도는 날카로운 발톱. 영화나 동물원에서나 보던, 늑대의 발톱이었다. 지한은 순간 아침에 별 것 아니란 생각에 넘겼던 얼굴을 떠올렸다. 곧바로 지한은 화장실에 달려 들어갔고, 자신의 얼굴에 난 늑대와 같은 갈색의 억센 털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한은 믿기지 않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화장실을 나왔다. 안절부절 못하던 지한은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다. 이런 꼴로 돌아다녀서 오늘 일진들이 당황해서 못 때리기라고 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방바닥에 누워 지한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에 들었다.

=====

늑대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천천이 뜯어 먹고 있었다. 그때, 밝은 빛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근처에 CCTV라도 설치되있던 모양이었다.


"으윽, 피 냄새... 대체 저건 뭐야...?"


제복을 입은 남자가 늑대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경찰인 모양이었다. 남자가 테이저건을 꺼내 들고 조심히 다가가던 그때,


"크롸아아!"


늑대가 울부짖었다. 남자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테이저건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남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늑대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직후, 골목 바깥으로 피가 튀었다. 이번에도 늑대는 남자의 목을 노리면서 달려들었고, 얼어붙은 남자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을 내주어야 했다. 바닥은 피로 흥건해졌고, 남자의 미동도 곧 멈추었다.

늑대는 전과 같이 남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남자의 살을 뜯어내 잘근거리는 늑대는 왠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다시 아침이 밝았고, 지한은 눈을 떴다. 지한은 어제 있었던 일을 상기하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지한은 이불에 손발이 걸리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의 손 한 쪽을 이불 밑에서 꺼냈다. 어제는 발에만 자라있던 발톱이, 이젠 손가락에도 자라나있었다.

지한은 지금 이 상황을 애써 부정하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지만, 오히려 어제보다 심각해져 있었다. 뾰족하게 솟은 귀에, 털은 이미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다.


"크러어어... 대체...."


게다가 목소리는 마치 괴물의 것 마냥 변조되어 있었다. 아직 완전히 변조된 건 아닌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30분 정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에야 지한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였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강한 불안감이 지한을 덮쳐왔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잡혀 들어가는 게 아닐까.  일진 녀석들이 본인을 더 괴롭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드는 통에 지한은 뜬금없이 배가 고파졌다. 그냥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닌 사람이라도 잡아먹고 싶은 강렬한 허기였다. 하지만, 지한은 어제 먹은 도시락이 전에 사 놓은 것중 마지막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제 알바를 할 때까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약국에 들렸다가 편의점에 가는 걸 그만 깜박했던 것이었다. 평소대로라면 학교가 끝난 후에 사 오겠지만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허기에 지한은 지금 편의점이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방에 널부러진 옷들 중에 후드티를 찾아 입은 지한은 문을 열어 집 밖으로 나왔다.

=====

지한은 빠르게 편의점만 다녀오고 곧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오던 지한은 옷 뒷덜미를 잡혔다. 어제는 왠일인지 나에게 오지 않았던 일진들이었다.


"야, 어디가냐? ㅋㅋㅋ 이 새끼 학교 쨌나본데?"


"기분 잡쳤었는데 마침 잘 됐네 ㅋㅋㅋ 야, 가자!"


"ㅇㅇ ㅋㅋㅋㅋ"


목덜미를 잡힌 지한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분명 낮인데도 햇빛이 안 들지 않아 어두고 좁은 골목 끝자락. 일진들이 지한을 팰 때 항상 찾는 곳이었다. 내 집에서 가까운 데다가, 주변 CCTV가 절묘하게 이곳만을 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퍼억! 퍽!


일진들은 곧장 지한을 두들겨 팼다. 한 두번 때려본 솜씨가 아니었다. 복부나 옆구리같이 말랑한 부위만 골라 때릴 뿐만 아니라, 주먹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깊숙히 박혔다. 일진 중 한 명이 지한의 배를 가격했고, 그 반동으로 지한이 푹 눌러썼던 후드가 벗겨졌다.


"이 새끼, 얼굴 꼴이 왜 이러냐 ㅋㅋ"


그 일진은 조금은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지한을 계속 두들겨 팼다. 얼마 가지 않아 기력이 다한 지한은 바닥에 엎어졌고, 곧 흥미를 잃은 일진들은 뒤돌아 섰다.

=====

두들겨 맞던 지한은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지한은 어렴풋이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둥이가 쏫아오르고, 꼬리뼈 끝 부분이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지한의 머리 속은 곧 저 일진들을 물어뜯어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지한은 두 손을 땅에 붙여 마치 늑대가 먹잇감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는 듯한 포즈 취했고, 곧 망설임 없이 가장 뒤에 있던 일진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야, 뒤에 무슨 소리냐 ㅋㅋ 저 놈은 이제 깬거야? ㅋㅋ"


"근데 제 왜 너한데 달려드는 것 같... 으아악!!!"


일진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지한을 자신의 목표를 공격했다.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공격 당한 일진이 골목 바깥으로 자빠졌다.


"너 이 시... 끄아아악!!"


일진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한은 곧바로 목을 물어뜯었다. 피가 분수같이 쏟아져 나왔다.


"크르르르르..."


지한은 다른 일진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흡사 늑대와 같은 분위기에 다른 일진들은 얼어붙은 표정으로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지한은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뜯어먹은 살을 질껑질껑 씹으면서 음미했다.

씹던 살점을 삼킨 지한은 쓰러진 일진을 골목 안쪽으로 끌고 갔다.


"으으으....."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일진이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지한이 목 안쪽을 깊숙히 파먹자, 얕게 이어지던 신음소리도 멈추었다. 


우적우적.


지한은 숨이 끊어진 일진의 목에 있는 안 쪽의 살부터 먹어치웠다.  어느정도 먹을만한 살이 줄자 지한은 배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골목 밖에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

"나 참, 이거 원. 저 얘들이 뻥까는 거 아닙니까. 괴물이 나타났다고? 그 피는 그냥 패싸움 하다가 묻은 거 같은데."


"뭐, 이게 우리 일이니까. 마침 바람도 쐬고 좋지 않나."


"아니, 그러면 저 얘들 말을 믿는 겁니까? 쌈박질 해대면서 여러번 경찰서 들락거리던 놈들인데."


"거짓말을 하는 눈빛은 아니었는데."


"무슨 얼굴에 써 있기라도 합니까? 나 원.... 어? 저거.... 피 아녜요?"


"이거 왠지 불안하구만. 얼른 내리자고."


순찰차에서 두 경찰이 내렸다. 순간 강한 핏비린내가 그들을 덮쳐 왔다.


"으윽, 피 냄새. 바닥에 피가 흥건한 게 벌써 죽었을 거 같은데요?"


"조용히 하게. 모양을 보니 안 쪽으로 끌고 들어간 거 같으니까."


그의 말대로 바닥의 피는 안 쪽으로 끌고 들어간 듯한 모양새 였다. 벽에 붙어 천천히 접근할 수록 들려오는 소리가 그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짐승의 울음소리 비슷한 날카로운 소리와 뭔갈 게걸스럽게 먹는 듯한 소리였다. 그들 중 한 명은 테이저건을 꺼내들었고, 다른 한 명은 손전등을 꺼내고 벌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지금!"


그들은 골목 안 쪽에 손전등을 비춤과 동시에 테이저건을 조준했다. 그리고,


"흡...! 저게 대체..."


그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경찰서에.... 무전 넣어라. 이거,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으니까...." 

=====

이서진은 새로 맡게 된 환자의 차트를 보고 있었다. 


'이름 이지한 나이 17세...'


천천히 차트를 읽어내려가던 이서진은 곧 얼마전 있었던 살인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또래의 목을 물어 뜯었다는, 그 잔혹성에 각종 언론들이 주목한 그 사건. 보호감호 5년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데... 아무래도 오늘 자신이 보게 될 환자가 바로 그 아이라고 이서진은 생각했다.


차트를 덮고, 이서진은 근처 CCTV에 찍혔다던 사건 영상을 봤다.  영상이 흐릿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경찰들이 끌고 나오는 사람의 입에 침이 줄줄 흐르는 걸 보니, 인터넷에서 나돌던 '마약 복용설'이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마약 검사는 음성이 나왔더랬지.


"선생님, 이제 들어오시면 돼요."


아, 이제 준비가 끝났나 보다. 이서진은 개인 사무실에서 나와 다른 병동으로 향했다. 이런 환자를 본 적이 몇 번 있어서 이서진은 안심하다가도,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미쳐서 칼을 휘두르거나, 주먹질을 해대는 사례는 본 적이 있어도, 미쳐서 누군가를 잔인하게 물어뜯은 사례는 적어도 국내에는 없었다. 철저히 준비를 해 놓았다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신중하게 행동하자고 다짐하며 이서진은 간호사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

.

.

.

.

.

.

.

지한은 의자에 앉은 채로 구속구에 묶여 있었다. 

충열된 멍한 눈에,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왔다.

진정제를 한 차례 맞은 탓에,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한은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

내가 현실에서 느낀 감정과 상황이, 만약 극단까지 치솟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씀. 소설은 처음 써봐서 문체나 대사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쓰다보니까 재미있어서 앞으로도 시간 날 때 마다 쓰려고. 아무튼, 읽어줘서 고맙다.


오타 지적이나 피드백은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