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우게 되면 예민해지는건 당연하다.

특히 밤을 새우게 되는 이유가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실수를 수정하는것 때문이라면 더더욱 당연하지 않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몇시간동안 고생한 끝에 끝낸 문서의 검토를 위해 상사에게 보내고 잠시 숨 좀 돌리려던 찰나에 울리는 메신저 소리.

일이 또 떨어졌나? 싶어 메신저를 켜보니 청천벽력의 소식이 내 두 눈으로 읽혀들어왔다.

제이: [데니스, RL-SE-SW 문서에서 다수의 오류 발견. 다시 고치고 시말서 쓸것.]

오류.

오류라고.

한주 전에 이미 컨펌까지 받아낸 문서에서 다수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최소 두시간을 오류 잡는데 쓴 문서에서 "다수의 오류 발생"이라고.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집어 엎고 난동을 부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아 참고는, 메신저에 회답했다.

데니스: [오해가 있는것 같습니다만, 그 문서는 이미 컨펌을 받은겁니다. 일단 그 문서에는 오류가 없다고 확신할수 있습니다.]

제이: [다시 확인할것. 그쪽이 해놓은 실수 때문에 자칫하면 우리 둘 다 잘릴수 있음. 시간이 얼마든지 걸리던간에 오류란 오류는 수정해서 다시 보내주길 바람.]

뭐라고? 잘려? 내가 해놓은 실수 때문에? 이런 ㅆ-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난거야?

떠오르는 의구심들과 당혹스러움을 제쳐두곤, 난 해당 프로젝트의 파일을 열었다.

그리곤 빡쳤다.

어떤 개같은 놈이 이렇게 개판을 쳐도 아주 정성스럽게 쳐놨을까.

내가 심혈을 기울여 정리정돈 해놓은, 한때 아름다웠던 문서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이름이 밀린건 기본이요, 삭제 된 항목들에다가 듬성 듬성 보이는 잘못된 웹사이트 링크들까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회답했다.

데니스: [제이씨, 솔직히 답해주세요. 이거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이 건드린적이 있나요? 이 오류들, 당신이나 제가 한건 아닐텐데요.]

이 말대로다. 내가 끝내고 수정한 프로젝트를 제이씨에게 보내면, 그녀가 항상 확인을 하고, 흠이 없을때까지 수정을 한 다음 상사에게로 보낸다.

이 인간이 워낙 깐깐해야지.

아주 사소한 것도 귀신같이 발견해내고 로봇처럼 딱딱 수정해서 보낸다.

이렇게 오류를 수정하는데 혈안이 된 우리가 이렇게까지 문서를 망쳐놓을리가. 이건 분명 제 3자가 망쳐놓은걸꺼야.

추리회로를 최대 출력으로 돌리다가 받은 답신은,

제이: [중요하지 않음. 문서에서 발견되는 추가적인 오류들을 발견해서 수정하길 바람.]

뭣.

순간 욱해서 내 손가락들이 자판 위에서 정열적인 탭댄스를 추는걸 막을수 없었다.

데니스: [왜 이게 중요하지 않은데? 당신이랑 나랑 이딴식으로 일처리를 할 리가 없잖아. 우리가 애꿏은 비난을 받는거라고. 왜 당신이랑 내가 총대를 매는데.|

데니스: [왜 이게 중요하지 않은데? 당신이랑 나랑 이딴식으로 일처리를 할 리가 없잖아. 우리가 애꿏은 비난을 받는|

데니스: [왜 이게 중요하ㅈ|

데니스: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수정해서 보낼게요.]

...빌어먹다 못해 비벼먹을.

그래서 이 문서 때문에, 난 야근을 하고 있는거란다. 

하하하, 거지같군.

다른 직원들은 다 집에 가고 나, 제이씨, 그리고 상사만 남아 있는 사무실.

오늘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가, 사무실의 모든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째깍 째깍 거리며 1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계 바늘 소리부터, 내 손가락이 자판에 부딫히며 들리는 찰각 찰각 소리까지 거슬리기 시작한다. 끝내주는군.

속으로 온갖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문서를 수정하는 와중에 내 뒤에서 들려오는 무뚝뚝한, 괘씸한 목소리.

"데니스. 잠시 옥상으로 따라오세요."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나한테 뭔 지랄을 하려고 날 옥상 위로 부르는거지? 내가 오히려 역으로 지랄을 해버릴까? 윽박 질러버려? 그냥 얌전히 사표 쓸까?

에라 모르겠다.

난 기지개를 쭉 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을 내쉬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그리고 제이씨의 뒤를 따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밖으로 발을 내딛자 마자 느껴지는 싸늘한 공기.

제이씨는 나를 기다리는듯, 내가 걸어나오는걸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캔커피... 두개...?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나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오는 제이씨. 사과의 의미라는 듯, 캔커피 하나를 나에게 건내는듯 내밀었다.

"사실 그 문서의 실수들은 저희 상사가 저지른겁니다. 책임은 당신한테 돌린거구요."

폭로하듯이 나오는, 아까 내가 보낸 메시지의 답변.

"자기가 문서의 양식을 바꾼다면서 망쳐놓곤 우리보고 뒷처리하라고 하는거에요. 시말서는 제가 대신 써놓겠습니다. 당신은 한 잘못이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 못했다.

나한테 무뚝뚝한 표정과 톤으로 질책한 후에 '다음부턴 조심하십시오,' 라고 할것 같았던 그녀가 오히려 사과라니. 거기다가 자기가 시말서를 대신 써준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난 정신을 후딱 차리곤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이는듯이, 그녀가 내민 캔 커피를 받아들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래도 시말서는 제가 쓸게요. 완벽주의자 로봇 제이씨가 일개 부하직원 때문에 시말서 쓰는 꼴은 볼 수 없죠."

큭큭 웃으며 캔커피를 따자 마자 맡을수 있는 향기로운 커피 냄새는 개뿔. 차가운 공기 때문에 콧구멍이 시려서 아무 냄새도 못 맡겠다.

"잘 마실게요," 라고 감사인사를 표한후, 한모금을 삼켰다.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자마자, 심장에서 부터 퍼져나가는 파동-비슷한 것이 내 몸 안에서 느껴진다.

좋은 느낌이다.

...잠깐, 완벽주의자 로봇이라고?

세상에, 내가 뭔 말을 한거야. 나 잔소리 듣는거 아니겠지?

'정신이 나갔었나봐, 그때,' 하며 불안한 마음에 난 제이씨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녀는 싱긋 웃고있었다.

"완벽주의자 로봇, 그 별명 마음에 드네요."

십년감수.

"일을 완벽하게, 로봇처럼 빈틈없이 처리해주시니까요." 

혹시라도 뭣될까봐 덧붙혔다. 칭찬이에요, 칭찬. 비아냥거리는거 아니라구. 응, 믿어줘요.

"칭찬 고마워요. 그럼 전 먼저 내려가보겠습니다. 일은 끝내야죠."

싱긋, 또 다시 웃어보인 그녀는 날 뒤로하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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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쓸땐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어디로 갈때마다 아이피가 계속 바뀌더라.


삭힌나물이라는 닉네임으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