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종교소재가 있긴 한데

지금까지 나온건 사실 하나밖에 없기도 하고

다들 눈치 채셨을런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있는 건 확실하니 경고는 올립니다

종교 싫으면 뒤로가세요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종교색이 진해집니다




***

시간을 잠시 거슬러, 마차에서 뛰어내리고 프리미티브와 산길을 걷는 도중.

프리미티브가 먼저 이야기를 걸어왔다.


- 기술이 필요합니다.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런 건 나중에 내려가서 검술소에서 배우기로 했잖아?"

- 배우게 될 것 외에도 저희만의 자체적인 비기가 있는 편이 나으니까요. -

"귀찮게... 그리고 그런건 보통 겉멋만 든 기술들 아냐?"

- 제가 말하는 건 신체강화와 불괴성을 지닌 무기가 있다는 전제하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술입니다만. -

"그런게 쉽게 만들어질리 없잖아..."

- 그럼 설명이나 듣고 쓸지말지 정하시죠. -

"...알았어, 얘기해봐."


프리미티브가 말하기를.

차원은 점의 0차원, 선의 1차원, 면의 2차원, 입방체의 3차원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인식 한계가 3차원이라 그 이상은 말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술은 0차원에서 1차원으로, 1차원에서 2차원으로 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찌르기는 점을 노려 관통상을 만들고, 베기는 선을 휘둘러 자상을 만든다.


- 여기서 질문입니다. 이런 공격방식을 막기 위해 태어난 것은 무엇이죠? -

"방패지. 몸을 가릴 면이 있어야 하니까."

- 그렇다면 검으로 방패를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프리미티브에게서 나온 이상한 질문.

검으로 방패를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까 들었던 차원론을 바탕으로 한다면, 검으로 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검을 마구 휘둘러서 참격의 막을 만든다?"

-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말한겁니까? -


초장에 부정당했다.

...소설에서 보면 자주 그러던데.


- 또 소설 얘기입니까. 그걸 구현하려면 셀 수 없는 수의 참격이 동시에 같은 자리에 존재해야 합니다만. 과거의 검성 기드 아카샤도 겨우 3연격을 동시에 휘두르는 것에서 그쳤습니다. 될 리가 없잖습니까. -


...검성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으로 방패를 이루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 모르시겠습니까? -

"어... 잘 모르겠어."

- 그렇다면 좋습니다. 허를 찌르기 위한 검법이니 상상하기 힘든 쪽이 낫죠. -

"대체 무슨 방법이길래..."

- 절 쥐어보십시오. -


철컥.

프리미티브의 말에 따라 손잡이를 쥐고 들어올리자, 은빛 검신이 태양빛을 받고 빛났다.


- 제대로 들어올렸군요. 그러면 이제 검신의 방향을 그대로 두면서 손을 아래로 내리세요. -


손을 아래쪽으로 내리자, 검신이 배꼽 부근부터 머리까지 선 상태로 손은 허리높이에 와 있었다.

그나저나, 이 상태는 검을 휘두르기 좋지 않은 상태인데. 뭘 어떻게 하려는 걸까.


- 그 상태 그대로 상체를 좌우로 휘두르세요. -


휘익, 휘익. 검을 휘두르자, 세로로 세운 검신이 가로로 휘둘러지면서...


"아니, 잠깐만. 이거 그다지 좋지 않은 거 같은데."

- 이유를 설명해보시겠습니까? -

"일단 첫째로, 손이랑 팔에 부담이 너무 심하고."

- 신체강화가 있다면 부담 수준도 아닙니다. -

"...둘째로, 검으로 공격을 쳐내는 동작이라서 검의 내구도 소모가 심하고."

- 넘버즈는 기본전제로 불괴입니다만. -

"셋째로... 그래, 검을 휘두르는 동작상 반동이 심해서 다음 동작을"

- 신체강화는 뒀다가 엿 바꿔 먹을겁니까? -


논파당했다. 프리미티브가 있고 내가 그걸 쓴다는 전제하에 이 동작은 딱히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앞에서 찔러들어온다? 이 동작을 정확한 타이밍에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공격을 옆으로 튕겨내버린다.

참격으로 베어온다? 세로로 세운 검은 어지간한 참격은 알아서 막고, 세로베기는 검면을 쳐버리면 그만.


여기서 혹자는 물으리라.

그냥 신체강화를 통한 반응속도를 이용해서 공격을 쳐내면 안되나?

그렇게 하면 더 정확한 타이밍의 방어가 되지 않는가?

당연히 그 편이 낫다. 하지만 그건 반응속도가 몹시 뛰어나다는 전제하의 방법.

아직 동체시력과 반응속도가 부족한 에텔에게 있어서 이 방법은 몹시 유용한 꼼수가 된다.


그렇기에 프리미티브는 이 방식이 에텔에게 유용하다 판단하고 제의했다.

그리고, 이 방법이 지금의 대련에서 드러났고.



콰아앙!

카를로스의 검을 완벽히 튕겨낸 것으로 유용함을 증명했다.


"무슨!"

"저게 무슨 검술이냐! 어떤 수를 썼길래 저런 조잡한 검격에!"

"저렇게 검을 휘두르고도 하체가 흐트러지지 않다니...!"


주변에서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조잡하고 이상하게 휘두른 검.

하지만 그 검이 무려 교관의 검을 튕겨냈다.

여기에, 나름의 견식이 있는 사람들은 에텔의 하체가 흔들림이 없음을 눈치챘다.

이 시점에서 모두가 전율했다.

아카샤의 일족이 어떤 것인지 눈앞에서 볼 수 있었기에.

저런 조잡한 일격으로도 단련된 검법을 압도하는 재능이라는 것을 목도했기에.

...물론 실상은 신체강화를 통한 압도적 완력으로 쳐버린 거지만.


쩌적, 쨍, 땡강.

뒤이어, 더욱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

교관이 검이 에텔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린 것.

이 장면이 증명하는 것은, 에텔의 검을 받아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다는 것이다.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검이 버티지 못하기에 불가능한 것.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을 보았다.

물론 이 건의 실상은 넘버즈의 내구도가 너무 괴랄한 탓이다.

예를 들자면, 돌조각을 강철 모루에 내리친 격.


하지만, 이 실상들을 아는 건 에텔뿐.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장으로서는, 그저 에텔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감상만이 남았다.

생각해보라. 검 대결을 했는데, 한쪽의 검이 완전히 튕겨나가고 거기다 부러졌다. 어떻게 보이겠나?


"...검 파괴. 속행불가로 인한 판정패, 에텔 승!"


숙연.

결과판정이 나왔음에도 누구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였으니.


"...대련 끝났으니까, 나가도 되죠?"

"...그래, 나가도 좋다."


에텔은 그대로 정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연무장을 빼곡히 채운 인원들 중에서, 그 누구도 에텔을 붙잡지 못했다.



***

에텔은 호스텔로 돌아가서,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들어섰다.

옥상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 주저앉은 채 등에 멘 프리미티브를 끌러서 무릎 위에 얹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봐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에텔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 심했던 거 같지?"

- 네. 검이 부러질 것 까지는 예상을 못했기에. -

"빨리 블루혼을 떠야겠네... 무기허가랑 사냥꾼 등록증 받는대로 떠나야겠어."

- 동의합니다. -


풀썩.

첫 대련은 허무하고도 황당하게 끝났다.

검을 제대로 써본 경험도 없는 소년이 교관의 검을 튕겨내고 부러트리다니.

주변 사람들은 실상을 몰랐기에 에텔이라는 사람을 경외했으리라.

하지만, 실상을 잘 아는 에텔 본인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드러누운 채로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서부터 그걸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등을 대고서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에텔은 말했다.


"프리미티브. 나 너무 약하다."

- 동의합니다. -

"검을 튕겨낸 완력도, 검을 부수는 일격도, 모두 넘버즈라는 신검의 힘이야."

- 그렇지요. -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넘버즈라는 힘에 휘둘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누나에게 어울릴 정도로 강해질까?"


그 감상에서 비롯되는 고민은,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하지 못할 생각.

어릴 적을 함께 보낸 부모님의 가르침, 부정 너머의 긍정을 뒤집는 생각. 긍정의 뒷편에 서는 부정.

유년의 성장을 함께 지낸 히파이스를 동경하는 마음.

에텔은 이런 생각들로부터 갖가지 질문을 끌어냈다.

강해지는 방법, 넘버즈라는 거대한 힘을 휘두르는 방법, 누나를 찾아가는 방법.

무엇 하나 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 그에 대한 답은 드리기 어렵군요. 역시,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제작자의 아래에서 배우는 것입니다만... -

"정작 누나는 어딘가로 훌쩍 떠났지."

- 결국 원점이지요. -


끊임없이 고민만을 계속하게 되는 시간.

한 번의 대련이 가져온 파란은, 아직 어린 아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흔들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어도 소용은 없지. 프리미티브, 난 아직 미숙하지?"

- 당연한 얘기를 하시는군요. -

"그렇다면, 역시 훈련 뿐이네. 적어도 검만을 믿지 않을 정도로는 강해져야 할테니까."


프리미티브는 뒤이어 말하려던 대답을 삼켰다.

에텔이라면 분명히 해내리라. 그럴 수 있기에 《구세주의 자격》이 그를 골랐을테니까.

하지만, 아직은 말해줄 수 없다. 완전하게 구세주로서 선택받고, 사명을 각성하는 그 순간까지는.

지금의 프리미티브가 해줄 수 있는 건, 신체강화를 조절하는 것. 그리고 약간의 조언 뿐.


- ...기드 아카샤의 연무서. -

"응? 뭐라고?"

- 근처에서 기드 아카샤의 훈련법이 담긴 책을 구해보는 게 좋을겁니다. 아무래도 훈련의 효율을 따지자면 검성의 비법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

"...검성의 훈련법이 그렇게 흔해?"

- 기드 아카샤는 말년에 자신의 모든 훈련법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서 서책으로 발간했습니다. 대륙 어딜 가도 있을테죠. -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는거래... 그래도, 조언은 고마워. 그쪽을 찾아보는게 맞겠네."


그렇기에 프리미티브는 편법을 선택했다. 조언의 범주를 이용하는 것. 

'2대 아카샤' 기드의 연무서. 그것의 안에 깃든 내용을 알려준다면... 급격히 강해진 몸을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이 경우에는 조언의 범위 안에 해당한다. 그저 괜찮은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해설해줄 뿐이니까.

프리미티브가 직접 자신의 지식에 있는 신체단련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책은 미리 사두는게 좋겠네. 지금 사서 안에서 읽는 게 좋겠어."

- 그러죠. 수련은 오래 할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


에텔은 다시 프리미티브를 어깨에 둘러메고, 일어나서 옥상에서 내려갔다.

다음 목표는, 너무나도 강한 넘버즈의 힘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

기드 아카샤의 연무서를 구해서, 그의 방법을 익히는 것.

다시금 되새기며, 조금은 씁쓸한 걸음걸이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

"그래. 블루 혼 담당. 하던 임무를 팽개치고 갑자기 복귀한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거라 믿고, 묻도록 하지. 왜 돌아왔나?"

"죄송합니다, 동쪽 새벽의 위대한 빛이시여. 긴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인사치레는 됐다. 용건을 말하라."

"천축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원래 이맘때쯤에 교역 등을 위해서 내려오지 않나?"

"정상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단독으로 몰래 내려온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그것 뿐인가? 뭔가 더 얘기할 것이 있기에 온 것 아닌가?"

"예. 그에게서 왕께서 말하신, 프리미티브라는 이름을 목격했습니다."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칼집에 희미하게 새겨진 형태를 보았습니다. 그러한데, 그것이 무엇이기에...?"

"새로이 명령을 내리겠다. 받들어라."

"존명."

"그 검을 들고 내려온 천축의 일족, 그를 항시 보호하라. 감시도, 추적도 아니다. 그를 향하는 모든 위협을 배제하고, 그를 염탐하지 말아라."

"명하시는 대로."


팍.

흑의를 입은 자가 열린 창문의 너머로 사라지고, 넓디넓은 방에 남은 건 한 명의 여인.

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의 옆 테이블에 놓은 편지를 집어들었고, 다시금 펼쳐 읽었다.


"그래... 히파이스. 받은 만큼 일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지."


구깃, 콱, 휘익.

틱, 타다닥, 타닥...

조그만 화로에 편지를 구겨 던져넣은 채, 그녀는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 아이의 성장을 바란다라... 좋아, 해주고말고. 받은 것도 많겠다, 어린애 하나 싸고 도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바스락, 말을 끊은 그녀가 품에서 꺼낸 쪽지에는, [ No.1 Primitive ] 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어떤 아이이길래 넘버즈를 쥐여줬는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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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보 - 기드 아카샤

대마법사의 뒤를 잇는 2대째의 아카샤.

검을 사용했으며, 그 누구도 검으로서 기드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기술과 힘을 기록으로 남겨 전승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검성식 튼튼체조, 기드 아카샤의 연무서, 검성식 검술 이론 탐구서 등이 있다.

가장 많이 퍼지고 알려진 것은 연무서. 전 대륙에 퍼진 신체강화술의 기초가 담겨 있다.

스스로 자칭하기를 전사, 사람들이 부르기를 검성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