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저벅, 저벅.


한 밤중의 고요한 거리.

새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검은 옷을 입은 한 명의 남자가 걷고 있었다.


"미친놈들 진짜... 왜 이딴 새벽에 불러내고 지랄인거야..."


저벅, 저벅, 딱.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 골목 샛길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벽.

문도 창문도 틈새도 보이지 않는 그 벽을 향해 서서, 남자는 손을 들어 벽을 두드렸다.


탁, 탁, 타탁, 탁.

남자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벽돌과 부딪히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몇번 벽을 두드리자, 벽 너머에서 미세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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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소리. 소리를 듣던 남자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어느 지점을 훑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욕설이 나왔다.


"이 또라이 새끼들이 뭔 이딴걸 적어뒀어?"


종이를 태울 듯이 노려보던 그는, 한숨을 쉬고서 종이를 다시 챙겨 넣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조용히 한 단어를 읊었다.


"Pseudoantidisesteblishmentarianism."

삐비.

"...이런 시발."

삐비.

"...Pseudoantidisestablishmentarianism."

띠딧.

끄르르르르릉.

기묘한 알림과 맷돌을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벽돌담이 열렸다.

그 너머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타박, 타박, 타박, 타박.

길을 걷고 걸어 내려온 곳에선, 이미 9명 정도의 인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미친 놈들아! 밤늦게 불러놓고 한다는 짓이 어몽어스냐!?"

"아, 우리 기사님 왔다."

"와~ 킹 아서~ 그레이트 나이트 아서~"

"시끄럽고! 왜 놀자판 모임에서 이딴 병신같은 암호를 써야 하는건데! 여기가 비밀결사냐!?"


그 소리에, 장발에 고깔모자를 쓴 소년이 대답했다.


"우훗, 재밌잖아?"

"재밌긴! 19세기 영국에서 다 끝난 종교운동 가지고 별 지랄을 하네!"

"쿠후후후... 그렇기에, 재밌는 법이랍니ㄷ 아야야야ㅑㅑ야야ㅇ야야야ㅑ야!!!"

"이 머리냐? 지랄과 헛소리를 생각하고 내뱉는 게 이 머리더냐?"


흑의의 남자는 굉장히 짜증난다는 얼굴과 함께, 소년의 길다란 구레나룻을 잡고 마구 들어올렸다.

어느정도 잡아당겨서 머리카락이 몇가닥 빠지고 나서야, 남자는 손을 떼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원탁의 게이머들... 시발, 이 이름도 짜증나네. 그래서 왜 모인거냐? 시답잖은 이유면 전원 한대씩 패주마."


그러자, 게임을 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일어서서는, 폴더를 하나 챙겨서 원탁으로 다가왔다.

폴더에는, [TOP SECRET]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대장, 읽어봐. 그게 긴급호출을 한 이유야."

"...뭐야, 진짜 뭔 일이 있는거냐? 웬 탑 시크릿이... 이이익!!!"


빠각!

내용을 읽던 남자는 폴더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의 머리로 내리쳤다.


"용건을 말하랬더니 드립을 치고 앉았어! 전두엽 절제수술!? 이거 음모론이잖아! 뭔 탑 시크릿 지랄이야!"

"악! 대장! 그만! 그거 생각보다 아ㅍ 아악!"

"아프라고 하는거다! 미친 놈아! 제발 사람이 되어라! 곰탱이 호랭이 말고!"


폴더를 내던지고 씩씩대던 남자는, 어느새 주변을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자, 느그들이 이제 함 말해바라. 먼 용건으로 부른긴지, 제대로 말 안하믄 느그들 모가지 다 따뿐다."


그 말에, 아까까지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던 고깔모자 소년이 다시 일어났다.


"아으으, 그래, 장난이 심했네, 사과할게."

"사과는 댔고, 용건이나 대라 안카나."

"그래, 윽, 아직도 아프네. 그래서, 일단 용건은..."


소년은 자신의 핸드폰을 조작해서 어떤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고용계약서가 적혀 있었다.


"이기 머꼬, 왠 고용계약서? 이런게 왜 여기로 오냐?"

"그러게. 일단 대충 정리하자면, 프로젝트 나이트봇을 위해 특수노동직 인원이 필요하다나봐."

"아니, 우리 그냥 게임 서클이잖아. 가끔가다 게임 만들고, 아닐때는 이렇게 놀기만 하고. 거기다..."


고용계약서에 표시된 장소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야. 여기 서울이지?"

"응."

"그런데 왜 땅끝으로 우릴 부르는걸까? 애초에 우리를 고용한다고 쳐도 그냥 컴퓨터 작업일텐데."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남자는 그대로 쓰러지듯 빈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자, 모여있던 다른 멤버들이 움찔대는 것이 보였다.


"그래... 가자, 가. 니들 사인 다 되어있던데. 느그들도 다 여행 함 가고파다~ 이런 거 아니었냐."


마지막으로, 남자는 본인의 핸드폰에 울린 알람을 확인하며 말했다.


"에휴. ㅈ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