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
달빛 아래 늑대로 변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
말이 괴물이지, 사실 소설에서나 나오는 캐릭터의 한 종류일 뿐인데.

"으, 으아아아아악!"
[크릉....크르릉...]

 그게 왜 지금 내 앞에 있는거지?



"흐아아아아... 아이고 허리야."

 석한준. 23세. 잘 안나가는 판타지 작가 겸 알바생. 
어제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을 끝마치고보니 어느덧 오늘의 새벽 2시가 다가와있다. 젠장.

"아으... 알바가, 6시부터니까, 밥 좀 먹고, 좀 자자...."

 그렇게 선반을 여는 순간.

"...없네?"

 라면이 없다.
일용할 양식이 없다.

"인터넷 주문을... 아 맞다 바로 안 오지?"

 내 배는 지금 바로 고픈데. 어제부터 굶었다. 갑자기 연참을 하고 싶어서 마구 글을 써내려갔더니 어느새 이런 시간이다.

"마트...다녀와야지."

 분명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자재 마트가 이 근처에 있을 터. 거기라면 지금 이 시간에도 운영할 것이다.

"편의점은...비싸."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는 고독한 작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을 나선다.


"살아서-는 갖지~이 못 하아는~! 그런 이름 하나 때문에~~"

 익숙한 뽕짝비트를 흥얼거리며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걷는다. 조금 서늘한 공기를 막으려 후드집업을 여맨다. 지하보도에 들어서자, 바람은 덜해졌지만 기온은 더 내려간 듯 소름이 돋아온다.

"아으, 추워어어어..."

 슬리퍼를 신는 게 아니었다.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손에 바람을 호호 불어넣는다.

 지하보도 밖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지 공기가 울리는 소리가 난다. 부우우- 마치 개의 하울링같은 묵직한 소리.

"...그냥 집에 갈까."

 하지만 배는 고프다. 얼어 죽느냐 굶어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지하보도가, 울리기 시작한다. 

"지진인...가?"

 서둘러 집 쪽으로 뛰려는 그 때, 내 시야에, 지하보도 입구에 무언가가 보인다. 달려오고있는 그것은,

[아후우우우우우~!]
"...시베리안 허스키?"

 개 치곤 너무 크다.
대형견 치곤... 침을 너무 많이 흘린다.
개라고 하기엔... 주인이 안 보인다.
...설마 저거?

"늑대?"
[크와아아아악!!!]
"으아아아아!"

 달린다. 지금은 저게 시베리안 허스키든 불독이든 중요하지않다. 저 녀석이 나를 아주 맛있는 개껌 보듯 보고있으니까! 슬리퍼를 신고 있는지라 달리기가 불편하다.아예 슬리퍼를 벗어 들고 뛰기 시작한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발바닥이 얼 것 같지만 죽는 것 보다야 낮다.

"아아악!"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증, 발바닥을 살펴보니 깨진 소주병이 박혀있다.

"으, 으윽,"

 발걸음을 떼면 더욱 더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가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녀석이 달려들고 있다.
그래. 지금도.

[크르르르르르릉...]
 바로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은빛 털이 형광등 빛을 받아 빛난다. 짐승이 나와 세 발짝 정도 되는 거리를 유지한 채 으르렁댄다.

"아...어....!"
[크아아아아!]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녀석이 나에게 달려든다.
 난 그 발이 땅을 박차는 걸 막 봤을 뿐인데 어느새 내 어깨가 앞발에 으스러진다. 폭탄이 박히는 듯 한 통증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흐윽, 아, 이거....놔!"

 녀석의 송곳니가 내 코앞으로 다가온다. 뚝뚝 떨어지는 침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으윽, 으아아아아악!"
콰직-

 미끈하고 뾰족한 짐승의 이빨이 목덜미를 물고 잡아끌자 나약할 뿐인 피부는 손쉽게 뜯겨나간다.

"허, 허억, 아, 아아아아 쿨럭, 우욱..."

 손을 허우적대며 저항해보지만 녀석은 코웃음치듯 내 살을 씹어먹는다. 피로 목을 축인다. 정신이 몽롱해져오며 눈이 감긴다.
 이건 현실일까? 그럴리가 없어, 꿈이야, 분명 꿈인데 왜 이렇게 아픈거지?

 피가 하염없이 바닥을 적신다. 열린 수도꼭지처럼 쏟아져나온다. 몽롱해지던 와중에 의외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어?"

 가늘고, 순수한 여자아이가 이쪽을 놀란 듯 바라보고있다.

"도망, 도망...쳐, 으아악!"
우드득!

 송곳니가 깊게 박혀들자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고통이 의식을 지배하는데도 정신이 놓아지질 않는다. 그냥 콱 기절해버리면 좋겠는데.
눈 앞의 소녀는 어떻게 될까? 죽을까? 나처럼? 
어린 나이에 안 됬네.

나에게서 눈을 땐 늑대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나에게 했던것처럼 거리를 유지한다.

"까마귀의 눈은 은으로 된 탄환이요."
[크르르르르...]

 아이가 차려입은 흰색 원피스가 흩날린다. 늑대는 놀란 듯 자세를 낮추고 이빨을 드러낸다. 내 살점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날개는 칠흑으로 녹슬었노라."

 조그만 입이 읆조리는 것에 따르는 듯 원피스도 검게, 물든다. 이내 그녀의 손에는 못 보던 지팡이가 쥐여져있다. 녀석은 무언가를 막으려는 듯 그녀의 순백색 손에 달려든다.

"밤의 망령을 심판하는 것은 밤의 수호자."

 새머리의 형상을 한 손잡이를 꼭 쥐고, 지팡이의 끝을 앞으로 뻗으니 늑대의 이마에 닿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달려들던 녀석의 움직임이 마치 소녀에게 이끌렸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망령은 망령이 있을 곳으로, 꺼져."
펑-!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잠깐의 푸른 섬광이 비치고 내 눈 앞으로 머리가 하나 굴러다닌다. 사람의 것이 아닌 맹수의 머리가, 붉지도 않은 은색 피를 내뿜으며 바닥을 뒹군다.

"아이구, 오빠, 아직 살아있었어?"

 소녀는 태연히 지팡이를 치맛자락에 닦으며 내게 다가온다.

"음...많이 아팠겠다."
"허억...허억, 쿨럭, 하아..."

 아이답지 않은 애늙은이같은 눈빛으로, 상처를 훑는다. 누가봐도 살기 어려워보이는 상처이지만 신경쓰지 않는 듯, 방금 늑대에게 했던 것처럼 지팡이 끝을 가져다댄다.

나도 저렇게, 고통없이...끝내주려는건가?

"낮의 별을 거두는 것은 태양. 달의 실수를 용서하라."

 아, 진짜 죽는거구나...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심각한 중상으...

짝!
아. 뺨이 아픈 걸 보니 아닌 것 같다.

"자지 마!"
"으으음... 아, 할머니...젊어지셨..."
짝!

 음. 지옥도 아닌 것 같다. 하긴, 저런 새카만 원피스는 할머니 취향이 아니었다.
욱신거리는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몸을 일으킨다.

"누가 할머니란거야!"
"...아야야야야."
"목 뜯긴 것보단 안 아프잖아. 엄살은."

 팩트폭격에 문득 정신이 들어 목을 더듬는다.
내 상처는 어떻게 된거지? 목이 날아간 게 아니었나? 

"꿈이었나?"
"응. 꿈이야."

 피맛자락을 탁탁 털며 소녀가 말한다.

"저기...바닥에 굴러다니는 건..."
"응, 꿈이야."
"저기, 뭐가 바닥에 막 흐르는데? 쇠 냄새같은 게 나는..."
"응. 꿈이야."
"꿈 아니잖아!"

 꿈이어야 하는데, 꿈이 아니다. 이것을 확인받으려 소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이마에 무언가가 닿는다. 나무지팡이의 감촉. 그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빙그래 웃는 새카만 눈동자와 눈이 맞닿는다.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아닌 것 같은 눈. 무언가를 찌르고, 머금고, 삼켜 만들어진 듯 한 먹색.

"꿈이야. 그렇게 될거야."

푸른 불빛이 시야를 메운다.




[삐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익숙한 천장이다."

 몸을 일으켜보니, 7시다.
7시....
7시...?

"6시까지 알바 가야하는데?"

 망했음을 전신으로 느끼며 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