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아버지가 죽었다. 원인은 암이었다. 아버지는 8년동안 암과 싸워오셨다. 처음엔 대장암, 두 번째론 위암, 마지막으로 후두암.


 항암치료로 머리가 싹 밀린 아버지를 보았을땐 굉장히 무서웠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 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단순히 내가 어려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괜찮을거라는 한 마디 못한 내 나이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돈이 없어 아버지는 집에 매일 누워계셨다. 편부모가정이었던 나는 아버지가 직장을 잃자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것을 겪었다. 단순히 금전적인 가난뿐만 아니었다. 그 흔한 농담도, 인사도 적어졌다. 항상 TV가 켜져있어 적막만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담배는 결국 아버지를 배신했다. 후두암으로 인해 아버지의 목에선 쇳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가끔 말씀하지는 '물', 과 '진통제' 라는 말을 겨우 알아들었다. 이 상태를 5년동안 이어갔다.


 아버지는 점점 숨쉬기가 어려워지셨다. 호흡이 곤란해 사리분별이 안되기도 하셨다. 가끔은 스스로 119에 전화해 응급실로 실려갔다. 남들은 겪지못한 이 환경에 5년동안 노출된 나는 이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돌연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는 영원히 저렇게 앓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다녀오면 언제나 TV 앞에 누워계셨으니까. 내가 일을 끝마치고 오면 언제나 저렇게 계셨으니까. 내가 직장을 잃었을때도 매일 아침 저렇게 계셨으니까. 죽마저 삼키지 못했을 때도 누워계셨으니까. 그러니까 돌연, 언제나 아픈 채로 계실줄 알았으니까.


 병상에 점점 친척들이 모여갔다. 초첨을 잃은 아버지의 눈엔 무엇이 비췄을까? 아버지가 점점 지쳐갔다. 사는것이 지쳤는지, 아픈게 지쳤는지... 심박수가 점점 줄어들다 기계가 굉음을 토했다. 친척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말했다. 사람은 죽어도 얼마동안은 소리를 듣는다고.


 "잘가."


 5년은 너무 길었다. 지친건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은연중에 지쳐있던 거야. 눈물을 흘리기엔,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5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누구 탓을 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