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 씨! 오늘 점심은 뭘로 먹을까?"

"아, 과장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오~ 여자야?"

"아이 참, 과장님도"

과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알았어. 이따가 시간 맞춰서 와야돼"

"알겠습니다"



오늘은 지선 씨가 점심을 사기로 한 날이다.

둘 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인 수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민씨! 여기...!"

"아, 먼저 와 계셨네요!"

크윽.. 역시 귀엽게 생기셨네.

"제가 중식당 맛있는 곳으로 하나 봐뒀어요"

"오- 저 중국 음식 좋아하는데"

"흐흐. 그럼 빨리 가요"



식사를 마치고 나와 지선씨는 가게 앞에서 담배를 물었다.

"지선 씨 회사는 무슨 일 하는 곳이에요?"

"출판이요. 저는 책 표지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디자이너... 멋있네요"

"하민씨는요? 무슨 일 하시는데요?"

"저는 의료기기 회사 영업부에요"

"흐음.. 그렇구나"


띠리리- 띠리리-


"여보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하민 씨...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커피도 사드리려고 했는데..."

"아뇨 아뇨, 바쁘신데 먼저 가보세요"

"그럼 제가 다음에 커피 꼭 사드릴게요"

"네. 어서 들어가세요. 다음에 연락할게요"

그렇게 지선 씨는 회사로 뛰어갔다.


띠리리- 띠리리-


"여보세요?"

"야, 잘 지내고 있냐?"

강릉으로 이사갔던 외사촌인 중훈이 형이였다.

"아 형!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

"하하하, 그 동안 워낙에 바빠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왠일로 전화를 다 했어?"

"하던 일도 마무리 다 됐고, 한 번 놀러와야지. 언제 올거야?"

맞다. 형 이사가면서 내가 한 번 간다고 했었지.

"음... 이번 주 주말이 내가 시간이 비네"

"그래? 그럼 그 때 한 번 와. 여기 지금 날씨 겁나 좋다"

"알았어. 그럼 출발할 때 다시 연락할게"

"그래-"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강릉에 일찍 도착하였다.

강릉이라... 처음에 얘기 들었을 땐 충격이였지.

형이 갑자기 강릉으로 발령을 냈다니.

게다가 갑자기 또 결혼을 한데다 이미 애가 있었다니까.

뭐, 지금은 형수랑 조카랑 셋이서 잘 살고 있는 거 같으니까.



형이 이번에 이사 간 아파트는 거실 베란다에서 바다가 한 눈에 보였다.

와... 나도 걍 때려치우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사갈까...

"뭘 그리 멍하니 보고 있냐?"

"바다. 겁나 멋있네"

"흐흐. 여기 오션뷰 죽이지"

"다들 식사하세요!"

형수님이 거실 식탁에 음식들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입에 맞으세요?"

"아유, 형수님 요리는 항상 맛있죠"

"다행이네"

"그나저나, 나윤이가 이제 몇 살이죠?"

"올해 세 살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그러게... 시간 참 빠르다"

형은 무언가 추억에 잠긴듯 보였다.

"아 맞다, 도련님. 도련님이랑 사귀신다는 분이랑은 어떻게 되가요?"

"그래, 그... 진미 씨라고 했나? 둘이 오래 사귀었잖아"

"아... 그게 저... 헤어졌는데요"

"어?"

형과 형수는 못믿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왜? 둘이 잘 맞는거 같았는데..."

"그게... 진미가 다른 남자 좋아졌다고 해서... 차였어요"

"흐음..."

형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쓰레기네"

어우 씨 무서워라. 저런 표정도 지을 줄은 몰랐네.

"잘 헤어지셨어요. 그렇게 남자 마음에 상처주는 여자는 만날 필요 없어요"

"그런가요..."

"그래~ 그런식으로 자존심에 스크래치 내는 여자는 아주 혼나야지~"

형은 이렇게 말하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형수를 옆으로 흘겨보았다.

"뭐야 그 눈빛은?"

라고 말하며 형수는 형의 등짝을 세게 쳤다.

"끄악!"

"하하하..."



"야아... 기분 좋-다"

소화도 시킬 겸 해변을 걸으러 나왔다.

햇빛을 받은 모래알들은 반짝였고,

파도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잠시 근처에 벤치에 앉아 눈을 붙이고 바람을 쐤다.

"..."



띠리리- 띠리리-



"아이씨, 누구야. 한창 명상중이였는데..."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았다.


진미♡


아 맞다... 번호도 안 지워놨었네...

"여보세요"

"저기...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나 지금 서울 아니라서"

"그럼.. 어딘데? 내가 거기로 갈게"

"뭔 소리야. 여기 서울에서 한창 먼 곳이야"

"할 얘기가 있어서..."

"오늘은 안될거 같다. 다음에 다시 연락해. 끊는다"


띠리링-



... 너무 매몰차게 끊어버렸나...

... 아냐. 나 버리고 다른 남자 찾아간 애를 뭘 걱정해.



하아아- 분명 헤어졌는데... 왜 자꾸 날 괴롭히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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