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를 타고, 마차를 타고,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간다.

도망쳐 나왔을 땐 긴장되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그다지 긴장되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마을은 이상했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마치 모두 도망간 것처럼.

아니면 모두 죽었을까?




마을에서 좀 떨어진, 내 옛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엔 긴장되지 않았는데, 다시 식은 땀이 난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발로 찼다.




"좀 늦었네?"




"사람들 어떻게 했어."




"오랜만에 만났으면 내 얘기부터 해야 하는거 아니야?"




"죽였어?"




"오빠. 오빠가 생명은 소중하다고 했잖아."




"어."




"나는 오빠 말을 잘 듣는 동생이야."




"그럼 다들...어디에 있어?"




"잠깐 재워놨어."




"...어떻게 믿어?"




"보여줄게."




나탈리아는 마을 사람들 앞에선 여태 인간의 모습을 했었다.

지금은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대놓고 본모습으로 마을을 나섰다.




"자, 다들 잘 자고 있지?


모두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거야."




나탈리아는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잠에 빠뜨린 것 같다.

모두 웃으면서 자고 있다.

몽마는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것도, 일종의 최면도 가능하다곤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재우는 것까지 가능하다니.




"오빠, 이제 알겠어? 나는 괴물이 아니야."




"그런데 왜 나를 가뒀어?"




"오빠가 사고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거지."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건데?"




"오빠. 오빠가 나를 무서워하는건 이해해.


하지만 난 오빠의 가족을 죽인 괴물이 아니야.


나는 사람을 한 번도 죽여본 적 없고, 정기를 뺏어본 적도 없어."




"하지만 네가 정말 가족이라면, 나를 그렇게 가둬서는 안 되는 거잖아.


그리고 또 가둘 거잖아. 그렇지 않아?"




"그것 때문에 갔다 온거야. 여기에서 살다간 오빠가 다른 여자랑 놀아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가두는 건 오빠나 나나 원하지 않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집'에서 살자. 거기선 오빠를 묶지도 않을거고, 해주는 밥을 먹고, 편하게..."




"싫어."




나탈리아가 말하는 집은 아마도 마족의...영역이겠지.




"오빠.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사람들을 재웠을까.


나는 여태까지 오빠 속 썩인 적도 없었잖아.


말도 잘 들었고, 사람도 죽인 적 없어. 죽이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야.


오빠가 안 따라오면 나는 진짜 괴물이 되버릴거야.


그건 서로가 슬퍼질 일이 아닐까?"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미 괴물인 것 같은데?"




"오빠는 나를 사람으로 키우려던게 실패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고,


오빠가 따라오면, 앞으로도 사람에게 피해를 줄 일이 없을 거야."




"...그럼, 사람들을 풀어줘."




"응."




나탈리아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자신들이 왜 여기 있는지를 몰라 소란스러워졌지만 그것도 잠시,

몸에 상처도 없었고 시간이 늦었기에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나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러고 보니, 기억해?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고 했던 말."




"...응."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아. 가족이 아니어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잖아?"




"뭐라고?"




"내가 정기를 한 번도 흡수해본 적이 없다고 했지? 


다른 사람의 정기는 역겨웠어. 물론 안 역겹더라도 하기 싫었겠지만, 나는 다른 마족들이 모아온 정기를 썼지.


좀 고생했고, 그래서 오래 걸렸지만, 걱정하지 마.


정기를 흡수하려면 관계를 해야하고, 오빠는 그건 부부끼리만 해야하는 거라고 알려줬잖아."




"그게...무슨 소리야?"




"곧 알게 될 테니까, 좀 자고 이야기하자."




-




눈을 뜨자마자 나를 껴안고 자고 있는 나탈리아가 보인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을 생각해보면, 나탈리아는 나랑 결혼하려는 것 같다.

나를 가두거나, 감금하려는 걸 보면 비록 그게 정상은 아닐지라도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름다운 얼굴, 성숙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여태까지 나탈리아에게 그런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탈리아는 괴물이다. 사람을 짐승처럼 가둬놓고 키우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다.

사람을 미물로 여기는 마족이니, 나에게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지금은 나를 말 잘듣는 애완동물취급하지만, 내가 나탈리아를 화나게 한다면?

혹은 나탈리아가 기분이 좀 나쁘다면?

아마 벌레를 죽이듯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여기까지 끌려왔으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에 나탈리아를 죽이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다른 마족들이 죽이려 들 것이다.

이젠 나탈리아가 무엇을 하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걸까.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나탈리아가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다.




"일어났어?"




"응."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집이야. 소개해줄게. 따라와."




나탈리아는 나를 데리고 '집'을 소개했다.

여긴 어떤 곳이고, 저긴 어떻고, 이쪽은 경치가 좋고...

이렇게 넓은 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릴 때 멀리서 보았던 성의 안쪽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기사가 있고, 정원사가 있고, 요리사가 있고....




'집'을 대충 둘러보고, 식사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하고...어느새 다시 밤이 되었다.

고위 마족은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구나.

오늘 하루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지 몸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같이 씻자."




"응."




언젠가 여자랑 같이 씻을 날이 올거라곤 생각했지만, 그게 나탈리아가 될 줄이야.

같이 씻는다는 건, 아마도 오늘....




"오빠, 그 때 얘기했지? 나는 서큐버스지만 처음이라서 서투를거야.


오빠도 처음이라서 걱정되긴 하지만, 앞으로 노력해보자?"




"나탈리아."




"응?"




"나는 인간이잖아. 이래도 괜찮겠어?


너는 정말로 날 사랑하는거야?


정과 사랑을 착각한 건 아니야?


나는 무서워.


네가 조금만 기분이 나빠서, 아니면 잠깐 힘조절을 못해서 나를 죽일수도 있잖아.


너랑 내가....정말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다른데?"




"오빠는 아직도 나를 못 믿는구나...


나는 달라진 적이 없어.


키가 커지고, 얼굴이나 몸이 달라졌어도...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빠를 사랑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야."




"너는 그렇다쳐도, 다른 마족들은?


저 마족들이 너의 말을 따른다고 해도, 나는 마족들한테 있어 장난감 같은거잖아.


나를 죽이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걱정 마. 오빠. 항상 내 옆에 있으면 돼.


그리고, 만약에 잠깐 떨어지더라도 오빠는 죽지 않을거야.


이걸 봐."




나탈리아가 내 팔을 잡고, 손가락으로 찌른다.

잠깐 아파오려나 싶더니,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졌다.

나탈리아의 힘을 받고도 내 팔은 멀쩡하다.

잠깐 멍을 때리고 있자 이번엔 나탈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친다.




"으윽....."




이 익숙한 통증.

깜빡하고 있었지만....나탈리아가 내게 건 저주다.




"오빠랑 나는 계약을 했어.


우린 서로 주고 받는 관계잖아.


아픔도, 기쁨도...."




왜 성당에서 저주를 풀 수 없었고, 왜 저주가 아니라고 한 건지 이제야 알았다.

저주라는건 사람에게 피해밖에 끼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건 저주가 아니라, 나탈리아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맺은 계약이다.




"나한테 다른 여자가 닿을 때마다, 네가 자해를 한 거야?"




"아니. 이건 조건을 만족하면 발동하게 되어있는 거야.


계약이니만큼, 오빠도, 나도."




내가 다른 여자와 접촉할 수 없으면, 나탈리아도 다른 남자와 접촉할 수 없다.

나한테 그런 무거운 족쇄를 매달고, 자신한테도 똑같이 매달아 놓는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놓이기 시작했다.




"오빠 몸에 다른 것들이 닿는 게 싫어.


내가 이상한거야?


나는 다른 것들 쳐다도 안 본단 말이야."




나탈리아가 어렸을 때, 너를 사람처럼 키워보겠다고 옆구리에 끼고 열심히 가르쳤었지.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남도 기분이 나쁘다.

내가 싫어하면 남도 싫어한다.

나탈리아는, 사실은 정말로...변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오빠, 이제 우리는 정말로 가족이 되는 거야, 그렇지?"




지금까지 나탈리아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공포였다.

언제라도 나를 죽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죽일.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건 괴물이 아니었다.

내가 여태까지 정말로 아끼고 사랑했던,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녀로 보였다.

내가 너무 좋아서, 조금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과 조금 다르만, 정말로 아름다운...




-




나탈리아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처음으로 안았다.

서툴렀지만 본능에 몸을 맡기고, 서로를 탐했다.

거사가 끝난 후 서로를 다정하게 씻겨주었고, 나탈리아는 잠에 들었다.

황홀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성이 돌아오자 다시 심경이 복잡해졌다.

아까는, 모두 괜찮을 것만 같았는데.

나는 자고 있는 나탈리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은 밥을 먹었네. 난 라울이야. 라울."




"라...울...."




"넌...나탈리아라고 하자. 괜찮아?"




"나탈...리아...응."




"이제부터 우린 가족이야. 내가 오빠, 너는 여동생.


앞으로...."




-




왜 지금 옛날 생각이 난 걸까. 우리가 나중에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짐작했을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자고, 나는 너를 지켜주겠다 약속했는데.

난 너를 죽이려 했었고, 너는 나를 지켜주려고 했구나.

내가 너를 살린 건 옳은 판단이었을까.




"오빠는 나만 믿고 있으면 돼."




잠에 들기 전 나탈리아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왔고, 어머니는 집에서 요리와 빨래를 하고...

가끔은 그게 반대인 가족도 있다고 들었지만, 한쪽이 모든것을 다 해주는 가족은 들은 적이 없다.

나탈리아는 내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고 의존하며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삶을 바랐던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건, 마족을 키운 나한테 내려진 벌이 아닐까?

나는 죽을 때까지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살며, 다른 사람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가족이 살아있어, 혹시 연락이 닿았더라도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오직 너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너에게 의존해야 한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마치 주인만을 기다리는 가축처럼.




------------------------------------




나도 몰랐는데 저번에 올릴때 로그아웃 되어있더라 왜지

그래서 윾동으로 올려버린걸 나중에 알았는데 재업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냅둠

회로 돌았다고 하나? 떠오른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게 진짜 어렵다

필요 없어서 지우고, 필요할 거 같아서 쓰고, 다시 보니까 아닌 거 같아서 또 지우고 쓰고...

계속 수정했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게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음

어쨌든 부족한 글 마지막까지 읽어준 사람들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