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학교를 재학중인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녀는 수술 후 후유증이 남았다.

 

다리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걷는 것 뿐 아니라 서 있기도 힘들정도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고 한다.

 

"얀붕아..나 어떡해.“

 

"괜찮아, 금방 나을거야.“

 

"진짜.. 그럴까?“

 

"그럼.“


하지만 그녀의 다리는 낫질 않았다. 등 하교시에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학교나 건물 내에서는 목발을 사용했다.

그녀가 사고를 당한 이후 내 일과도 많이 달라졌다.

 

"얀붕이 왔니?“

 

"좋은아침이에요 아주머니.“

 

탁-탁

 

"오늘은 일찍왔네?"

 

멀리서 바닥을 치는 소리와 함께 목발을 짚으며 현관으로 나오는 그녀와 인사했다.

 

"얀붕아 오늘 바빠?“

 

"아니?“


"나 가고싶은데 있는데 같이 가줄 수 있어?“

 

"그래.“

 

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그녀와 대화했다.

주변에선 교복을 입은 남자가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으니 신기하다며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고를 당한 직후 몇 년간 이런 시선 때문에 그녀는 밖으로 나가기 싫다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시간이 지나 무덤덤해 진 것 같았다.

 

"야, 일어나.“

 

"...언제왔어?“

 

점심 시간이 되면 그녀의 반을 찾아간다. 식당이 1층에 있는 바람에 혹시라도 모를까 그녀와 함께 다녔으며 화장실 말고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다른 학생들 같으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식당으로 향했겠지만, 그녀는 수업시간에 졸다 종소리에 깨어도 내가 올때까지 다시 엎드린다.

 

"좀 깨어 있으라고.“

 

"졸린데 어떡해.“

 

시간이 지나 모든 수업이 끝났다. 청소당번이라 바닥을 닦고 있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놀랬잖아, 당번이라면 당번이라 말하지.“

 

"뭘 놀래?“

 

"기다려도 안오니까.“

 

친구들과 주변 애들은 이미 그녀와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으며, 목발을 짚으며 벽에 기댄 후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깨달았어야 했다.

 

"너..3교시 쉬는시간에 어디갔었어?“

 

"친구랑 매점 갔었지.“

 

"....“

 

나는 슬슬 깨달았다. 그녀가 나를 너무 의존한다고.

 

"얀붕아, 내일 시간 있어?“

 

"내일은 친구랑 약속 잡아놨는데 미안.“

 

그 말을 끝으로 스마트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잠시 멍때리다 플레이하던 게임을 계속 했다.

 

"야 너 팔에 그거 뭐야?“

 

"아, 어제 너랑 통화하다가 넘어졌는데 긁혔어.“

 

그녀의 팔에 붙어져 있는 밴드를 보며 나는 물었고, 아 그래서 어제 전화 통화 하던 도중 아무말 없이 끊긴건가?

아니 그렇기엔 너무 조용했는데?


굳이 생각할 필요 없다 느낀 나는 그녀의 머리를 툭 치며 조심하라고 충고해줬을 뿐이다.

 

3학년이 됐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디자인 관련 공부를 시작했으며 매일같이 나에게 보여주는게 일상.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시간은 참 빨리 흐르는 것 같다.

나의 대학 합격 기념으로 우리집에서 자그마한 파티가 열렸다. 옛날부터 일면식 있던 그녀와 나의 가족은 같이 모여 식사했다.

 

"얀붕아...좋아해, 나랑 결혼해줘.“

 

그날 그녀는 나에게 고백했다. 아니 저건 청혼인가? 아마 수줍음 많은 그녀가 단어 선택을 잘못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했다.

 

"이쁘네.“

 

휠체어를 탄 그녀와의 데이트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수족관에서 눈을 크게뜨고 구경하는 그녀는 너무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내일은 어디갈래?“

 

개강하기 전까지 그녀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만난 하루는 마치 달달한 와인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였다.

입에 머금었을 때 강한 단맛, 넘기고 난 후 입에 남는 여운, 그 이후 코끝을 맴도는 강한 향기.

 

지금 침대에 누워 그녀와 함께했던 하루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개강하고 나서부터 돌변했다.

 

"너..너..너.. 왜 어제 연락 안받았어!“

 

"아니.. 술을 너무 많이마셔서.“

 

"나..버리고..?“

 

"대학 선배들이 사준다고 꼭 오라해서.“

 

"왜 난 안데려갔어?“

 

"그 과 선배가 친목 다지자고 후배들 부르는건데 여자친구를 데려오기는 그렇지, 그리고 술 마신다고 말했잖아.“

 

"연락을 안받는다고는 말 안했잖아!“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좀 그만해!“

 

"아...“

 

"미안 방금 말이 헛나왔어, 숙취 때문에 머리가 너무아파서.“

 

"흐으...윽.."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 진다. 나는 얼른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아 달래줬으며 그녀는 내 가슴에 파고들며 울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틈만나면 나에게 전화했으며 특히 내가 여자인 동기와 같이 조를맡아 ppt를 만든다고 했을때는 더 난리였다.

 

"바람피는거야..? 나버리고..? 너없으면..나는 어떡해... 그냥 죽는게 좋지 않을까 그럴꺼면? 지금 바로 죽으면 와 줄거야?“

 

"하아..“

 

같이 ppt 만들던 친구들은 한숨쉬는 나의 모습에 궁금한 것 마냥 쳐다보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와 통화를 이어갔다.

 

"얀붕아, 나 너없으면 안되는거 알잖아...근데...왜....왜..“

 

 

나는 그날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전했고, 그녀는 더 이상 말 없이 울음소리만 들려주다 전화가 끊겼다.

 

"뭔일이야?“

 

"아, 여자친구랑 잠깐 싸워서.“

 

솔직히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식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과도한 의존증을 이참에 한번 고쳐줘야 된다 생각했을 뿐.

 

 

그녀에게 이별을 전한지 사흘이 지났다. 집에 도착한 나는 살짝 밀려오는 피곤함에 씻고 잠시 누워있을까 했던 그때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이잉

 

진동이 울린다. 

 

"여보세요.“


".....“

 

"전화를 했으면 얘기해.“

 

"얀붕아...“

 

"왜?“

 

"나..아파..“

 

아프다고 말하는 그녀, 나는 꾀병부린다 생각하고 이번엔 강하게 나가야겠다 다짐했다.

 

"야, 너 이제 그...“


"가슴이 너무 아파..아파..“

 

"괜찮아..?"


"그 고통이..너무심해서..팔을 긋고 찍어서 고통을 돌려볼려 했는데도..아직도 숨을 못쉬겠어...어떡해야해?...."


"야..야, 너!"

 

뭔가 툭툭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상태로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으며 대문 비밀번호를 알고있는 나는 열고 들어가 바로 방문을 열었다.

 

"야..야..야!“


"얀붕아..“

 

바닥에 주저앉아 퀭한 눈으로 나를 돌려다 보는 그녀의 팔은 난도질 돼 있었으며,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미안..미안..미안..잘못했어..나..버리지..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기절했다.

나는 재빨리 수건을 들고와 그녀의 팔을 감쌌으며 119에 전화했고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나는 그녀의 병문안을 갔다. 


"얀붕아 화났어..?“

 

"내가 지금 얼마나 화났는지 몰라서 그래?“

 

그녀는 하루뒤에 깨어났으며 다행이 깊은 상처는 아니였다고 한다. 몸이 너무 허약해진 탓에 기절한 것.

 

"잘못했어...화내지 말아줘...“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좋게 끝나고 시간이 지나 괜찮아 졌다 싶더니, 다시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내가 퇴근하고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있으면 추궁하기 시작한 것.

피곤하지만, 뭐 어쩔수 없다 그래도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