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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1만 4천자 실화냐....

1시간 30분 걸렸어...

철혈 전함 티르피츠

로얄 경순양함 벨파스트

로얄 경순양함 시리우스


"잠꾸러기는 싫다고, 지휘관" 


평소보다 방에 늦게 들어섰더니

요즘 못 보던 함선 하나가 소파에 앉으며

커피를 마신 채, 나를 흘겨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 함선은 바로 티르피츠


내가 다른 방에 잘못 들어왔나 하며, 문패를 확인했지만

이 곳은 나의 업무 공간인 지휘관실이 맞았다

나보다 이렇게 일찍이나 아침에 나와있다니, 놀라울 지경이였다


"오늘은 비번 아니였어?"


함선들도 휴가를 달라는 요구에

마침 전력도 어느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해서 도입한 휴일제

딱히 정해진 형태는 없었지만

각 진영의 리더들이 대강 일정에 맞춰 정하는 형태였다

그런 휴가날인데도, 이렇게 나와있다니...


나는 고개를 돌려, 티르피츠를 보았다

그녀는 종종 다른 함선들에게 북해의 고독한 여왕님이라 불리곤 했다

그 이유야, 다른 함선들이 뭐라 말을 걸어도, 접촉을 거절했기 때문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도 없어지고,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었을

그녀다운 밝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그녀 외에도 다른 함선들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보니

내가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음을 느꼈다


"지휘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일 좀 해줘"


"어? 아..알았어"


그녀의 재촉을 받은 채, 나는 탁자 앞에 섰다

그러자 이상한 변화를 깨달았다


"어?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었나?"


서류들은 항상 만쥬들이 내 책상위로 가져와주고 있었다

가지러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다지 복잡한 일을 할 수는 없는 건지

그져 내 책상에 내팽겨치고 가는 것이 한계였다.

덕분에 내 일과는 서류 더미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됬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기술의 결정체인

만쥬들에게 더 과한 일은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할 지경이였다


그런 만쥬들이 분명 오늘도 탁자 위에 서류를 던졌을 텐데

오늘은 서류들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 것에 놀랐다


"벨파스트인가?"


가장 해줄만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비서함으로 임하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찍부터 나와, 메이드로서 주인을 위해, 해주었다면 말이 되지만

이것은 곧 부정되었다


"나야, 너무 어지럽혀진거 같아서, 정리 좀 했어"


티르피츠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방의 더러움은 마음의 더러움

책상 위가 더럽혀졌다간, 지휘관 마음도 더러워질 수 있기에

제가 어서 정리 좀 해 두었지"


"그렇구나, 고마워"


"흥! 따..딱히 네가 불쌍해서 도와준건 아니야!"


티르피츠는 어딘가 차가움을 느낄 정도의 냉정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늘의 사무 일정을 시작했다

그 때, 비스마르크가 내게 오더니


"오자마자 일이라니, 정신적으로 좋지 않아

우선은 이것이나 마시고 한숨 돌리시지 그래?"


그렇게 말하고는, 대면에 놓여있던 컵을 집어, 내게 내밀었다


"고마워"


블랙커피는 미지근했다

미지근함을 느끼자니, 그녀가 얼마나 여기서 기다렸는지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나는 지그시 관찰하듯, 시선을 돌리던 티르피츠에게 물었다


"혹시, 많이 기다렸던거야? 급한 일인가?"


"아니, 그렇게 큰 볼일은 없어"


고개를 살며시 내젓는 그녀를 보니, 한시름 마음이 놓앗다

최근 함선들을 말려들게 하는 트러블은 없었지만

반대로, 나를 말려들게 하는 트러블이 많아서

마음이 우울해져 있던 참이였다


아마기가 힘을 빌려주겠다고는 하지만

역시 트러블이란 피할 때, 피하고 싶은 것

하기야, 원인을 찾아보면 나의 노력부족이 되겠지만...


"오늘은 그저 지휘관이 철혈에 온다고 하길래

내가 일을 도와주러 온거야"


"오늘은 휴가날인데도?"


이래서는 휴가의 의미가 없잖아


"난 괜찮으니까, 편히 쉬고 있어"


"지휘관이 쉬는 날에 일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

당신이 쉴 새 없이 일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쉬겠어?"


그런 걱정과 상냥함을 느끼는 말과 표정에 또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나도 일이 끝나지 않아서

쉬는 날에 여기 와서 일을 하는 것은 자주 있었다


시리우스도 비서함으로서, 내가 쉬는 날에 쉬고 있는데

내가 일할 땐, 계속 함께 있어 주었다


자랑스러운 지휘관님이 일을 하고 계신데

시리우스는 괘씸하게 혼자 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 마음씨 좋을 말을 해줬기에, 난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물론 소파에 가만히 앉으며, 아무것도 안하고 미소짓는 거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녀답다고 하면, 그녀 다웠기에 나로소는 좋았다


"응? 하지만..."


일단 내가 쉬는 날에 일을 하는 것은 비밀로 하고 있었다

티르피츠나 비스마르크처럼 책임감이 강한 함선들이

내가 일하는 것을 알고, 같이 일해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휘관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거짓말 따윈 통하지 않아"


정말 뭐든지 알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의 의문을 던지기도 전에, 곧바로 응해준 그녀는

나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서 조금 쑥스러웠다


"그리고 아카시에게 들었는데

얼마 전부터 비서함이 공석이라고 들었어"


아카시로부터 들은 것은 어디까지일까

비서함이 벨파스트가 될 것이라는 얘기?

아니면 다음 훈련에서 MVP가 된 함선이 비서함이 될 거란 얘기?

이 소문들은 모두 아마기가 아카시에게 퍼뜨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한다

아카시는 함선 들 중에서도, 가장 발이 넓은 함선이였다


진영과 넘나들어, 다양한 함선들과 교류가 있었기에

그런 그녀의 협력 덕택에, 이 이야기는 사흘도 안 돼서

함대 곳곳에 알려지게 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서함이 되겠다는 함선들이

모두 열심히 훈련하고 잇다고 들었는데...


"하아"


"왜 그래, 한숨이나 쉬고"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한숨에

냉정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길을 주는 티르피츠였다


"아니, 그런게 있어"


뭔가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눈을 깊게 감고, 눈 앞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되돌아 보니, 그 감정을 만든 건, 다름아닌 나였다






"MVP가 비서함이요?"


사쿠라에서 일정을 보내고 다음날

집무실로 가기 전, 나는 로열의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시리우스에게 아마기와 정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더니, 대답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비서함으로 선택된 몸

그게 인정이나 자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가요

저는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한 분노가 묻어나 있었다


"왜 아마기 씨와 그런 큰 일을 결정하신거죠?

아직 비서함은 시리어스일 터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이 시리우스, 어느 때든 명하는 대로, 전과를 쟁취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마기 씨가 결정을 했다고 하니, 시리우스는 걱정이 되는 겁니다

지휘관님은 상냥하고, 아량이 넓으신 분

그렇기 때문에, 자칫 악용하여 지휘관님을 속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아마기 씨를 말하는건 아닙니다만...

시리우스는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일을 도와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 앞의 적을 경계하고 쓰러뜨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시리우스가 없는 곳에서

제발 이런 큰 일을 더 이상 결정하지 말아주세요"


숨 돌릴 틈도 없이 들려온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걱정이 많은 그녀답게

아무래도 내 멋대로의 행동을 좋게 생각치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하고 싶을 마치고, 왠지 시무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직 이 결정에 여유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전투함인 그녀도 이 함대에서는 MVP를 차지할 유력 휴보였으니 말이였다


그래도 화나게 한 일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나는 다시 사과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엿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나를 만류하며


"지휘관님, 메이드처럼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그래도 조금 반성하는 바가 있으시다면

이 천한 메이드와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시겠습니까?"


"약속? 좋아, 가능한 거라면 말이지"


"아, 고작 메이드인데도 잘 해주시는 그 상냥함은

지휘관님의 훌륭한 점 중 하나 입니다.

하지만, 시리우스 이외로 향해서는 안뵙니다

천한 메이드가 당신의 그 상냥함을 독점하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지휘관님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자

시리우스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그것은... 할 수 없어

다른 함선들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또 시리우스만 편애한다는 말이 나오게 될거야"


"...그렇군요, 그렇죠..."


그녀는 시선을 땅으로 옮겼다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적어도 좋아 보이진 않을 것이다


"아, 그것이 바로 시리우스만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함대의 함선들 모두를 배려하는 배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사육을 염원한 시리우스가

얼마나 천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 시리우스는 언제나 날 염려해 주잖아?

그럴 때마다,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몰라"


감사의 뜻이 조금이라도 전해졌는지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볼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 시리우스는 불안합니다

아마기 씨의 소원은 이루어졌음에 반해

시리우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나버렸습니다

설마 지휘관님은 또 저를 버리실 생각이신가요?"


"........."


그녀는 나를 올려다 보며, 불안한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나의 경솔한 판단은, 언제나 그녀를 상처입히고 있었다


쓸쓸해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한 나머지 견딜 수 없었다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내 반복된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다시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리우스와의 약속은

지휘관님이 무엇을 하셨고, 누구와 얘기했는가를

시리우스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아침 시리우스가 지휘관님 방으로 찾아갈 테니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리우스에게 얘기해 주세요"


"아침? 저녁이 아니여도 돼?"


"네, 지휘관님은 일이 많으니깐, 밤엔 쉬셔야죠

시리우스는 아침에 가도, 별 상관없으니까요"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무엇이든 말한다는 것은 약간 부담감을 느낄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자면, 언제나 시리우스에게 상담을 하던 나였기에

별로 새삼스럽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알았어, 그 정도면 괜찮아"


"아, 감사합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이 시리우스, 매일 아침 지휘관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그녀는 그녀의 큰 가슴을 강조하듯, 팔로 대면서 기뻐했다

나는 그 모습이 곧장 시선을 돌렸다

다이호든 시리우스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도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나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시리우스는 오늘도 벨파스트 씨에게 서빙을 배울 테니까요"


"그래, 힘내"


또 깊게 경례를 하고 떠나는 

그녀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댔다









그 약속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 폐해는 조금 씩 나타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내 방에 온 그녀를 마주보고 침대에 앉아

무슨 얘기든 진지하게 경청하는 그녀였다


딱히 귀찮거나 그런 건 아니였지만

침대 위에서 때때로 보여 주는 요염한 행동이

메이드복이 였기 때문에 노출이 많은 옷이라서

싫어도 시야에 들어오느 이질적인 광경에 익숙치 않아

어딘가에 시선을 두려고 해도, 둘 때가 없었다


이런 사실이, 어딘가에 소문으로 퍼졌다간, 난리가 나겟지

특히 티르피츠나 비스마르크 같은...


비스마르크는 특히 자신이 철혈을 이끌고 있다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 진영은 물론이고, 다른 진영에서 뭔가 눈에 띄는게 있으면

단단히 주의를 주는 모두의 언니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 위의 지휘관이 아침부터 시리우스에게

무의식적으로 유혹당해 곤란하다고 있음을 안다면...





다시 티르피츠와 한 방에 있는 시점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비서함이 없다고 들어서

내가 쉬는 오늘 정도는 지휘관 심부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음"


사실은 거절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오늘 쉬는 날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보내는 진지한 눈빛을 천천히 보니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마주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철혈의 함선들은 의지가 매우 강했고

그 중에서도 티르피츠와 그녀의 언니인 비스마르크가 가장 강했다


"알았어, 부탁할게"


그렇다면 차라리 도움을 받도록 하겠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낫겠지


적어도 반색하며, 살짝 입고리를 치켜든

그녀의 얼굴을 보니, 잘못된 선택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티르피츠라면 적어도 다이호 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내가 뭘 해야할까? 지시를 내려 주겠어? 지휘관?

당신의 지시에 모두 따르겠어

자, 뭐든지 명령해줘"


"그래, 그럼......"


서로 다 마신 컵을 테이블에 놓고

그녀도 쉽게 할 수 있는 서류 더미를 조금 꺼내서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는

나를 챙겨주는 그녀의 친절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어? 그러고보니 티르피츠는 내가 일하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항상 조심하며, 몰래 들어왔을 텐데


.........


뭐... 내 마무리가 느슨해서, 누군가에게 일을 하는 걸 들킨거겠지

안 되겠어, 항상 조심해야지

모두 친절한 함선들이니, 걱정을 끼쳐 버릴거야


나는 재차 내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지휘관님 차를......"


벨파스트가 문을 열고, 길게 경례를 하려다

일을 하는 티르피츠의 얼굴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티르피츠 덕에 예정보다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아

내심 기뻐하고 있던 차에

벨파스트의 얼굴은 지금 바로 트러블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 듯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었군요 실례했습니다

비서함으로서 제대로 파악을 했어야 했는데

이 벨파스트, 반성하겠습니다"


자신을 비서함이라고 강하게 강조하는

벨파스트는 경례를 재개하며, 손에 든 홍차를 꺼내

테이블에 다시 올려두었다


"시리우스가 만든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많이 나아졌으니

맛 보시고, 소감을 말해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벨파스트는 같은 메이드인 그녀의 성장이 기쁜지

표정에 기분 좋은 얼굴을 다 드러낸 채, 말했다

그녀의 보증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입에 넣어도 되겠지

아무리 마셔도 마시기 익숙하지 않았던

아주 쓴맛이나 아주 단맛의 홍차가 아닌 보통의 홍차였다


"맛있네, 고마워"


한 모금 머금고, 테이블에 다시 놓았다


시리우스도 힘든 일을 열심히 한 끝에, 성장하고 잇는 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꽤 인상적이였다


"지금은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더 그녀에게 힘이 될 것 같으니

나중에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벨파스트도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부하의 성장이 기쁜지

내 감상을 듣고는 더욱 미소를 강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단란한 분위기는 곧바로 망가졌다


"그런데, 티르피츠님은 무슨 일이십니까?"


벨파스트가 들어와도, 서류에만 집중하고 있던 

티르피츠는 이름을 불려지면 어쩔 수 없었는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선


"지휘관 심부름을 하고 있어"


"그래요? 그거 고맙군요

그럼 여기서부터는 제가 대신할테니

티르피츠 씨는 그만 가셔도 좋습니다"


"아니야, 오늘은 쉬는 날이라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그래요? 그럼 편히 휴식을 취하세요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져 버리니까요"


"그래, 망가져 버리지

소중한 내 지휘관이 휴식을 취할 새 없이

일한다고 해서, 도와주러 온 거야"


티르피츠는 도발적인 말과 함께, 벨파스트를 가볍게 쏘아봤다

전쟁터에서 볼 때처럼, 차가운 시선의 박력은

내 등을 매우 차갑게 할 정도였다


"지휘관, 로열 메이드가 우수할지는 몰라도

그건 집안일 전반일 뿐

다음 비서함은 반드시 철혈 함선을 넣고야 말겠어"


티르피츠는 더욱 더 부추키는 말을 태연히 하며

상냥하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얄을 바보 취급하다니, 그런 말은 그녀 앞에선 금구일텐데...


"어머, 철혈은 동료의식이 높다고 들었는데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 진영 함선들과는 손잡지 못하는 집단인가 보죠?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 언니 또한 안 봐도 비디오 겠내요?"


역린을 건드린 한마디를 되받아치는 것은, 역시 역린을 짓밟는 말

역시나 티르피츠도 방금의 말에 실눈을 가늘게 떴다

벨파스트는 미소를 더욱 강하게 지었다


"게다가 그 가족들이 쉬는 날도 없이 일한다고 해서

지휘관님의 일을 도와줄 도리가 있을가요?"


"있어

지휘관은, 우리 철혈의 소중한 가족

그런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면, 가족으로서 우리는 손을 내밀어 몸을 던질거야

설사 어떤 파도가 닥치더라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뛰어드는 것이 철혈의 법칙이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지휘관님을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지휘관님은 어디까지나 모두의 지휘관

철혈만 편애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정함을 말하시면서, 자기들만 특별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좋지만

밖에서는 그런 말은 좀 삼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지휘관은 우리 가족이고

우리 철혈은 지휘관의 가족이자, 도구이다

로열 메이드처럼 몸을 던져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저 내버려두기만 하는 함선은 없다"


"........."


벨파스트는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벨파스트는 로얄, 그것보다도 시리우스에 대해서

나쁘게 평가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렇게 보이는 일솜씨로 보여져서 죄송합니다"


벨파스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것은 자기 부하의 불출함에 대한 사과였다


이런 일을 척척 해내기 때문에

그녀는 메이드장으로서의 존경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부하 때문에, 일이 커지면 로열이라는 이름에 흠집이 가기 때문에

무관한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엿다


"나쁜 건 나야, 티르피츠

내가 시리우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야"


나도 아울러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내가 제일 먼저 고개를 숙였어야 했는데...

본의아니게 벨파스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


"아니, 지휘관은 나쁘지 않아

메이드인데도, 자기들 역할을 떠넘기는 애들이 나쁜거야"


"그렇지 않아

시리우스도 벨파스트도, 다른 메이드들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


내가 부정하든 말든, 티르피츠는 귀에 담지 않는 것 같았다


"지휘관, 그렇게 자책하지마

훈련이 끝나면, 우리 가족이 곁에서 돕게 될 거야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다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당신을 지켜줄테니 말이야"


불길한 일을 매우 상냥하게 말하는 그녀

방해물이란 소리를 듣고는, 조심스럽게 벨파스트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조금 전과 다른 진지한 얼굴을 띠고 있었다


"티르피츠님, 그런 거친 발언은 좋지 않습니다

이 함대에서는 진영과 관계없이 모두가 동료입니다.

그것은 지휘관님 또한 인지하고 계시는 사실이구요

철혈 분들은 지휘관님의 뜻을 모르시는 걸까요?

진영 대 진영으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들의 그런 그릇된 생각으로 만들어진

철혈의 개발함 때문에, 모두가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을 알고는 계실까요?"


이번엔 벨파스트가 요란하게 반격을 날렸다

처음에 발끈하던 티르피츠도

개발함 론 이야기를 꺼내니, 눈을 돌려 도망치듯 시선을 돌렸다


"그래, 티르피츠

다 같은 친구들인데 왜 그러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원래 실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말로 부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예시가 나빴나 봅니다"


티르피츠도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쓰고 있던 모자로 눈을 가리면서

잘못했어요, 라는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자 그럼, 나머지는...


"벨파스트, 오늘 티르피츠가 좋아서 도외주고 있는 거야

그녀의 호의를 폄하하고는 싶지 않으니

오늘은 둘이서 일할테니까, 걱정하지마"


"...괜찮겠습니까?"


"같은 동료잖아?

누가 도와주든 난 기쁜 걸"


그녀는 미심쩍은 듯 티르피츠를 지켜보다가


"알겠습니다

그럼 티르피츠 님 몫의 홍차도 급히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벨파스트는 나와 티르피츠에게 경례를 하고, 퇴실했다


그렇게 큰 싸움이 끝나고

내 앞에서는 서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티르피츠가 남았다


"뭐.... 그...."


하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전달할 수 있을까


시계 바늘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걱정해줘서"


그녀의 시선이 올라갔다

그녀의 언니도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은 적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뺨이 느슨해져 버렸다


"고마워, 아직도 가족이라고 불러줘서"


"...가족의 유대는 영원해, 지휘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도, 망가지지도 않는 법이야"


"그렇구나"


아까와는 다른 가느다란 목소리


티르피츠는 내게 천천히 다가서다니

그녀의 예쁜 손가락으로 나의 한 쪽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장갑 너머로 아련하게 전해지는 차가운 체온이

정에 굶주렸던 옛 그녀의 손임을 실감케 했다


"내가 왔을 때부터 지휘관은 우리 가족이였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 부드러움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얼음이 차츰 녹아가는 것을 느꼈어

잊었던 환희의 마음을 지휘관이 되찾게 해줬어

고마워, 지휘관"


그녀는 손톱을 내 뺨에 대며, 목덜미로 가져갔다

물론 장갑을 쓰긴 했으니, 아무 문제는 없었지만 말이다


"지휘관, 나는...

아니,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맞춰준 보답

새로운 가족을 맞게 해준 감사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휘관을 따르기로 했던거야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휘관이 알 수 있는 우리의 가치니까...

지휘관이 말하는 대로, 우리는 이루어주고 싶어

방해되는 적이 있다면, 누구든 배척하겠어

상처를 입었다면, 아물때까지 우리가 감싸줄께

우리... 아니, 나는 당신만의 도구야

지휘관, 난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어

아니, 떠나겠다는 생각 조차 담아두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녀는 눈망울에서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녀에게도 과거는 있을 것이다

무겁고도 무거운 과거...


나 또한 과거에 묶여 실의에 빠진 날이 있었다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것이였다


그래도 여기서 잘 지내고 있었다


웃으면서, 그리고 기쁨에 공감하면서


나는 그녀의 손을 만지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도구가 아닌 티르피츠라는 가족을 향해서...


그러자,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니

정말 지휘관으로서 여기에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