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구릿빛 종이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어느 한 청년이 가게에 들어온다.


"어서옵쇼."


가게의 입구에는 유독성이란 의미를 지닌 'Toxicity'라는 목재 간판과 안에 인테리어는 서부시대에나 볼법한 복고풍의 장식으로 가득찼다. 블로그에 별점을 평균 4.8개나 받을 정도로 평판이 좋은 이 주점은 항상 손님이 북적이곤 했다. 가게에 들어온 청년은 어느 한 바텐더 앞자리에 있는 좌석에 외투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뭘 드리깝쇼?"


바텐더가 청년에게 수건을 가져다가 물었다. 외모는 중년처럼 보이지만 보디가드처럼 건장한 체격에다가 깔끔한 흰 머리에 전형적인 바텐더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의뢰를 하고 싶어서 왔는데."


'의뢰'라는 단어를 들은 바텐더는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청년에게 다시끔 물었다.


"코드는?"


"𝑽𝒆𝒏𝒈𝒆𝒂𝒏𝒄𝒆."


"...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음료는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애플 마티니, 사이드는 필요없어. 그거면 족해. "


"...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곧 허름하고 어두운 주방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다리를 떨면서 칵테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충혈되어 있고 근심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5분정도 지났을까, 바텐더가 라임이 꽃혀있는 초록색 사과빛을 띤 칵테일이 담겨져 있는 병을 청년에게 건넨다. 그리고는 청년 바로 앞에 의자를 끌고 앉았다.


"어디에서 소개받고 왔나? 단순히 얘길 흘려들어서 온건 아닌것 같은데."


"딥웹에서 어느 한 사이트에 의뢰를 했건만, 나 같은 케이스는 거기에서 받아주긴 너무 벅찬다고 하더라군. 그래서 한국 지부에 유능한 장소가 있다해서 여길 소개받았지."


"딥웹정도에 들어갈 수준이면 단순한 경범죄 수준따위로 의뢰하러 온건 아니군."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칵테일을 한잔 들이켜 마셨다.


"윽.." , "칵테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단 신데."


"하여간 그거 하나 못마시는 꼬맹이 수준 하고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 날 따라오게. 본격적으로 의뢰 내용이 뭔지 알아야겠어."


청년은 냅킨으로 입을 사뿐히 닦고 남은 칵테일이 담겨진 병을 사뿐히 내려놓고 외투를 챙기며 주방 안으로 바텐더를 향해 따라서 들어갔다.


바텐더는 주방 안의 인테리어하고 허뭇 다른 녹슬고 허름한 문 앞에 발길을 멈췄다. 그러고는 진지한 눈빛과 함께 청년에게 말을 꺼냈다.


"돈은 충분히 들고 왔겠지?"


청년은 말없이 주머니 속 안에 있던 수표와 뒤에있는 서명을 보여주었다. 총 23억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수표를 보자 갑자기 바텐더가 식은 땀을 흘리며


'이 서명은.....?'


"무슨 문제라도 있나?"


"크흠흠, 아니야. 이 돈이면 문제 없긴 하겠군."


문 앞에는 다이얼이 설치 되어 있었다. 이윽고 바텐더가 식은 땀을 닦으면서 다이얼의 버튼을 한개씩 차례차례 눌러나간다. 그러자 '열렸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 혈흔 자국이 묻어있는 칙칙한 복도와 계단이 이어진다. 마치 허름한 연구소 같았다.


4~5분쯤 걸었을까,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작전 지휘실과 고문실, 취조실, 의뢰실, 저장고의 모습이 펼쳐진다.


작전 지휘실에는 여러가지 스크린들과 쌓여있는 종이들과 함께 연구자들과 에이전트들이 깔려있었고 고문실과 취조실에는 온갖 갖가지의 비명이. 저장고에는 무기와 바이오하자드 문구가 붙여진 상자가 수백개는 널려있었다.


"이쪽이다."


바텐더는 의뢰실 2번이라는 마크가 붙여있는 작고 답답해 보이는 방에 들어간다. 청년도 이윽고 그를 따라 들어간다.


"앉아."


방 안에는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던 검찰이나 경찰서 앉에 있는 취조실과 흡사한 방이었다. 바텐더와 청년은 서로 의자를 뒤로 꺼내며 앉았다.


"어디보자, '코드:복수'이면 어지간히 다른 사람에게 몹쓸 짓을 당했나 보군?"


"그래, 그것도 여러차례나."


"상관 없어, 일단 먼저 서로의 신원을 확인해야겠군. 이름이 뭔가?"


"김얀붕. 2000년 2월 17일, 그쪽 이름도 알아둬야 겠어."


"뭐, 의뢰만 끝나면 서로 볼일 없는 사이이니 이렇게만 알아둬, S.잭이야."


잭은 일어나서 서랍에 있는 작은 노트북을 챙긴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얀붕이는 죽은눈을 하고선 가지고 있던 서류를 책상위에 놓았다.


"우선 의뢰 대상을 알아야겠어. 이름이 뭔진 알고 있나?"


얀붕이는 잭에게 준비했던 서류를 건낸다. 잭은 금빛 테두리가 있는 안경을 가져다가 써서 서류에 있는 글씨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김얀순.. 21세, 11월 17일생.. 친부는 돌아가셨고 친척은 따로 없고, 거주지도 불명에 신원지도 불명이군.


"사진을 조금 보여줬으면 하는데. 사진까지 없으면 의뢰에 조금 곤란이 생기거든."


얀붕이는 주머니속에 작은 사진을 꺼내서 보내준다. 사진속에 있는 얀순이는 탈 아이돌급 외모에 여신이라 불릴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큰 가슴에 예쁜 피부와 긴 생머리. 어떤 형용사도 수식할 수 없는 정도였다.


"뭐야, 외모는 이렇게나 예쁜데. 조금 아깝다고 생각안하나?"


그러자 얀붕이가 책상을 치고 벅차게 일어난다. 종이들이 흩뿌려져 바닥에 널부러진다.


"닥쳐, 아무것도 모르면. 씨발새끼야....."


깜짝놀란 잭은 허리춤에 숨겨져 있는 권총을 반쯤 잡으면서, "워우, 워우 진정해. 이러면 너만 곤란해 진다고."


얀붕이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다시 앉는다. 잭도 권총에서 손을 때면서 흘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자리에 앉는다.


"그래, 살인을 원하나, 아니면 협박? 고문? 추방?"


"어떤 방법이든 괜찮아. 그냥 내 옆에서 사라져주기만 하면 돼. 영원히."


"후...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수 있나? 우리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 세탁이 살짝 곤란하단 말이야."


"돈만 주면 뭐든지 다 해주는거 아니었나?"


"얘기해서 문제 될건 없잖아? 그리고 의뢰인 맘이야, 불만이 있으면 나가도 좋아. 작은 친구."


"....."




‹ 수년 전


나에겐 유치원 부터 같이 뛰어놀던 소꿉친구가 있었다. 바로 얀순이었다.


얀순이의 부모님은 일을 핑계로 얀순이를 방치해 두곤 했다. 그덕에 얀순이는 밥과 식사를 전부다 혼자서 해결해야했다.


띵동-


"누구세요오..?"


"나야! 얀붕이!"


"앗! 얀붕아! 어서와, 헤헤."


나는 시간이 남으면 얀순이의 곤란한 문제인 저녁문제를 해결해주려 매일 밤마다 찾아오곤 했다. 그런 나를 얀순이는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늘도 밥 아직 못먹은거야?"


"응, 부모님이 바쁘시다고 카드만 주고 가버렸어.."


"그럼 같이 식재료 사러 나가자! 이번에 마트에서 세일타임이 연장됬다 하니깐 제시간에 가면 싸게 구할수 있을꺼야!"


"응! 좋아! 헤헤"


얀순이는 내가 가는곳은 어디든지 다 좋아했다. 일을 핑계로 자신에게 무관심한 부모님보다 자신을 더 잘 챙겨주는 내가 그녀에겐 더 부모님 같았다.


"오늘은 뭐해 먹을래? 어제는 비프 스튜 해먹었으니깐 이번엔 밥 종류로 해보고 싶은데.."


"난 장어 덮밥! 장어 덮밥 먹고싶어!"


"그래! 이번에 해산물이 고기에 비해서 10% 추가세일 하니깐, 장어가 싸고 맛있을꺼야!"


이윽고 여러 식재료와 장어를 쇼핑카트에 담고 계산대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도중 얀순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디저트 코너였다.


얀순이는 디저트 코너에서 여러가지 초콜릿과 과자중 마카롱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얀순이가 마카롱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재빠르게 눈치챘다. 하지만 달콤한 마카롱과는 다르게 얀순이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거 먹고 싶은거야..?"


"...응.."


"근데 왜이리 표정이 어두워,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있어?"'


그러자 얀순이는 마카롱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안순이에게 말을 건냈다.


"이거 먹고 싶어서 그런거야? 내가 안사주기라도 할까봐?"


"그치만.. 저번에 내가 머핀 먹고싶다 했을때.. 단호하게 말하면서 안사줬잖아.."


"그떄는 학교에서 가정실습때 단걸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거야. 이번엔 마카롱 사줄께!"


"진짜? 얀붕아 사랑해♡"


나는 얀순이가 가르키던 마카롱을 담고 손을 잡으면서 계산대로 발걸음을 향했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계산을 하려 카드를 마트 직원에게 건내 주었다.


"어머, 오늘도 저 꼬마 숙녀랑 장 보러 왔니?"


"넵! 얀순이 저녁 만들어 주려고요!"


"아이고 친절해라, 맛있는 저녁시간 되라."


마트 직원은 내가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포근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돌려받았다.


"얀순아, 이제가ㅈ..."


"....................................."


얀순이는 죽은 눈을 하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