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뭐가 되었든지 애매한 사람이었다.

 

 

 

비교적 잘 돌아가는 머리를 가졌지만, 명석하냐고 하면 애매했으며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훈남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데다

 

호리호리한 180 키에 넓은 어깨를 가졌지만, 각진 몸일 뿐 근육이 없어 말라보였다.

 

 

 

 

얀붕이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뭐든지 중간 정도였다.

 

 

남들 펑펑 놀면서도 받는 3점 초반대의 학점을 받았다.

 

친구가 없어 족보를 공유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학점이 낮은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얀붕이는 놀지 않았지만,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런 얀붕이가 유일하게 가진 취미는 뜨개질이었다.

 

 

 

게임, 독서, 공부

 

그 어떤 것을 해도 남는게 없었다.

 

 

그렇지만 뜨개질을 끝내고 나면, 얀붕이가 오밀조밀 만든 수공예품들은 형태를 가지고 얀붕이의 곁에 남았다.

 

 

누군가에게 줄 것도 아니었지만 남는 것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얀붕이는 뜨개질을 했다.

 

 

 

 

그렇게 모든게 애매했던 얀붕이는

얀순이를 만났다.

 

 

 

얀순이는 척 보기에도 굉장한 미인이었다.

 

 

 

많은 남자들이 아닌 척하며 얀순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고, 얀순이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얀순이가

여느 소설에서처럼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라는 허무맹랑한 이유로 얀붕이에게 빠진 것은 아니었다.

 

 

 

 

얀순이는 자신을 향한 남들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알맞은 복학생 선배를 찾아 다녔다.

 

 

 

배짱이 없어보이지만 너무 못생기지는 않은, 남들과의 교류가 적은 선배.

 

 

그러면서도 착하게 대해주면 넘어올 남자 복학생 선배.

 

 

얀붕이가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남자였을 뿐이다.

 

 

얀순이는 조원이 없어 혼자 남은 얀붕이에게 접근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울 뿐인 얀순이의 접근이었지만, 그럼에도 둘은 곧 친해졌다.

 

 

 

"와... 저런 놈도 챙겨주네, 딱 봐도 아싸인데."

 

"저런 애도 챙겨주는 거 보면 정말 착하긴 한가봐."

 

 

 

얀순이의 예상대로, 곧 자신을 향한 평판은 올라갔다.

 

 

그렇지만 한 가지, 얀붕이와의 관계는 얀순이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

 

 

 

 

 

"얀붕 선배, 그거 되게 귀엽다~~ 여친 분이 선물해주신 거에요?"

 

 

"여자친구 없는데? 내가 만들었어."

 

 

자신의 백팩에 달린 열쇠고리를 보고 묻는 얀순이의 물음에 얀붕이가 대답했다.

 

 

조금은 어설프게 만들어진 테디베어 모양의 열쇠고리는

오히려 직접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눈에 띄게 귀여웠다.

 

 

얀순이가 꾸밈없는 표정으로 얀붕이의 열쇠고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얀붕이는 가방을 열더니 색만 다른 새로 만든 테디베어 열쇠고리를 꺼내 얀순이에게 주었다.

 

 

 

"하나 가져. 똑같은 거라서 이상한 오해 받을 것 같으면 내 건 안 걸고 다닐게."

 

 

"만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아요? 정말 주셔도 되는 거에요?

 

 

"하나 만드는 데에 한 2주 걸리는데, 네가 귀엽다고 해줬으니까 네가 가져.

아, 색깔은 내 거랑 네 거랑 두 개 뿐이야."

 

 

 

 

 

 

자신의 손에 올려진 테디베어 열쇠고리를 보고, 얀순이는 갑자기 지난 날이 떠오르며 가슴 한 구석이 울컥해졌다.

 

 

 

 

어머니는 바람이 나고, 아버지는 얀순이를 대학에 보내자 마자 돌아가셨다.

 

 

노가다를 하며 혼자서 얀순이의 뒷바라지를 하던 아버지.

 

 

딸아이에게 선물을 사 줄 돈이 없어 옆 공장에서 천과 바늘을 받아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느질 책을 따라해가며

 

노가다 일로 힘든 와중에도 엉성하게 만들어준 빨간색 하트 모양의 열쇠고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얀순이의 방 한 구석에는 하트 모양의 열쇠고리가 소중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으면 지금쯤 이 정도는 만들 줄 알게 되셨을까?

 

 

 

얀순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른 남자들에게 수도 없이 비싼 장신구를 받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이 수제 테디베어만큼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얀순이는 열쇠고리를 두 손에 꼭 쥐고, 얀붕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혼자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네요..."

 

 

 

........

 

 

 

콩깍지에 씌었는지, 얀순이는 이 날 이후 얀붕이가 좋아졌다.

 

 

 

교양 강의에서나 몇 번 마주칠 뿐인데 얀붕이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고, 얀붕이의 행동거지들이 멋있어 보였다.

 

 

 

평판 관리차 몇 번 말상대 해줬을 뿐인데, 얀순이 본인이 이래서는 본말전도였다.

 

 

 

그래서 얀순이는 의도적으로 얀붕이를 멀리 했다.

 

그리고 얀붕이가 떠오를 때마다 다시금 얀붕이를 잊기 위해 테디베어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얀순이에게 이 테디베어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그렇게 얀붕이와 얀순이가 다시금 만나지 않은 지 두 달이 지났다.

 

 

 

 

얀순이가 휴대폰 스트랩에 걸린 테디베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밤길을 걷고 있었다.

 

 

 

방금까지 함께 카페에 있던 여자 동기들이 스트랩을 귀엽다고 해 주었다.

 

동기들이 어디서 산 거냐고 물었지만, 답해주지 않았다.

 

그야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인 걸.

 

 

 

 

 

 

헌데 혼자 흐뭇하게 테디베어를 바라보며 밤길을 걷던 얀순이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얼마 전부터 자신에게 과하게 집적대기에

 

생각 없다고 쳐낸 남자 선배였다.

 

 

 

"야, 얀순아. 나한테는 정말 너밖에 없다."

 

선배가 돌연 얀순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척 보기에도 술에 취한 듯했다.

 

 

밤 거리 사람들의 이목이 둘에게 집중되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얀순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를 지나쳐 갔다.

 

 

그러자 선배는 계속 얀순이를 따라와 치근덕댔다.

 

 

"왜? 내가 어디가 모자라? 너한테 준 선물 그거 돈으로 다 얼마인지 알아? 너 좋아서 사귀던 여친도 찼단 말이야."

 

 

 

얀순이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테디베어를 손에 꽉 쥐었다.

 

 

 

 

얀순이가 계속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가자,

선배는 얀순이의 두 어깨를 꽉 잡고 바로 세웠다.

 

 

그 덕에 얀순이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떨어졌다.

 

 

선배가 눈길에 구르는 테디베어 스크랩을 주워들었다.

 

 

"뭐냐 이거"

 

 

꼬인 발음으로 선배가 얀순이를 추궁했다.

 

 

"네가 만들었냐? 누가 만들어줬냐?"

 

 

 

다른 사람의 손에 더럽혀졌다.

 

 

얀순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빼액 소리쳤다.

 

 

"내놔요!!!!!!"

 

 

"딴 놈이 만들어 줬구만. 너 시발 만나는 놈 없다며 썅년아."

 

 

얀순이가 낚아채지 못하도록 선배가 스트랩을 쥔 손을 높이 올렸다.

 

 

테디베어를 빼앗긴 얀순이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이 개새끼야!! 내 놓으라고!!!"

 

 

자기한테는 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고작 이까짓 게 뭐라고.

 

 

약이 오른 선배는 스트랩을 차도로 던져버리며 말했다.

 

 

 

"이 씨발년아. 가서 줍고 뒈지든지."

 

 

 

얀순이의 눈이 차도로 버려진 테디베어를 향했다.

 

 

얀순이는 이내 홀린 듯 차도로 뛰어나가 테디베어를 주웠다.

 

다행히 차 바퀴에 밟히기 전에 주울 수 있었지만, 차도의 흙먼지와 눈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테디베어에 묻은 진흙을 털던 얀순이는,

애석하게도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차량을 보지 못했다.

 

 

 

빵빵!!!

 

 

"꺄아아아악!!"

 

 

차가 경적을 울려댔고, 사고를 당하기 직전인 얀순이를 보고 행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너무 자신과 가까워진 차를 보고 나서야,

얀순이는 뒤늦게 자신이 아직 차도에 있음을 깨달았다.

 

 

 

 

"아."

 

 

 

 

삶이 끝나기 직전에 주마등이 보인다고 했던가

 

얀순이는 떠나버린 엄마와,

책상 한 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열쇠고리가 생각났다.

 

몸을 버려가며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 주시던 아버지.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그 때였다. 멈춰있던 얀순이의 몸의 중심이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어지러이 이동했다.

 

 

 

어느 인영이 몸을 날려 얀순이를 인도로 잡아당기고,

 

자신은 그 추진력을 이기지 못해 차도로 넘어졌다.

 

 

 

그리고 얀순이를 구해준 사람은 차에 부딪혀 그대로 언 땅에 곤두박질쳤다.

 

 

 

 

......

 

 

 

 

"뭐야, 저거 얀순이 아닌가?"

 

 

주말 저녁,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평소와 달리 소란스런 길가에, 얀붕이는 소란의 원인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는 달리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가 어느 여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 정도의 남자가 무릎을 꿇으려면 상대는 얼마나 예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여자 쪽을 바라본 얀붕이는

이내 여자가 얀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얀순이는 남자에게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그렇지만 남자는 끈덕지게도 얀순이에게 치근덕대고 있었다.

 

 

끝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얀순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얀붕이는 고개를 돌렸다.

 

 

 

'하긴, 저 정도 얼굴이면 그럴 수 있지.

분명 저런 남자들이 줄을 섰을텐데, 최근에 나를 피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구나.'

 

 

 

얀붕이는 관심을 끄고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얀순이의 외침이 들려와 얀붕이는 다시금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다.

 

 

 

"이 개새끼야!! 내 놓으라고!!!"

 

 

 

대체 뭘 가져갔기에 저럴까 하고 바라본 남자의 손에, 익숙한 테디베어가 들려 있었다.

 

 

 

어, 저거 내가 만든 거다.

 

 

 

얀순이가 까치발을 서고 종종거리며 테디베어를 낚아채려 했다.

 

 

'저게 뭐라고 떨어진 핸드폰은 줍지도 않고 저렇게 화를 내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얀붕이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만든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렇게까지 소중하구나 싶었다.

 

 

 

헌데 남자는 테디베어를 차도에 던져버렸다.

 

 

 

'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얀붕이는 인파를 지나쳐서 앞으로 나갔다.

 

 

신호는 빨간 불이었고,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였기에

 

청신호가 들어오기 전까지 기다리면 테디베어가 바퀴에 깔릴 것은 자명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차에 밟히는 최후라니.

 

 

얀붕이는 청신호가 들어와도 얀순이가 테디베어를 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청신호가 들어오면 자신이 주우러 가 잔해라도 수습할 생각이었다.

 

 

 

헌데 그런 얀붕이의 예상을 정면으로 깨부수듯, 얀순이는 테디베어를 쫓아 멍하니 차도로 나갔다.

 

그것도 곧바로 적신호에

 

 

 

 

심지어 뭐가 그렇게 소중한지, 얀순이는 그 자리에서 인형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한 대의 SUV가 얀순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와 얀순이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내 운전자는 얀순이를 발견한 듯, 경적을 울려댔다.

 

 

좆같은 생각 하지 마.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얀붕이는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린 얀붕이는

차를 발견하고 주저앉아 있는 얀순이를 낚아채어 인도까지 밀어 넣고는, 차에 부딪히고 말았다.

 

 

생각보다 아프구나. 왜 그랬지?

 

 

자조의 목소리가 뇌리에 맴돌았다.

 

 

저 안심한 표정이 자기를 향한 것이 아니어도,

 

그저 얀순이 본인의 물건을 줍고 안심하는 표정이었다고 할지라도,

 

얀붕이는 자기가 만든 곰인형의 눈을 털던 얀순이의 표정이 참 좋았다.

 

 

애매한 나의 가치를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몸을 관통하는 격통에, 감겨오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죽을 수도 있다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을 두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런 얀붕이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 내리는 12월의 하늘과,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얀순이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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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는 병원에서 눈을 떴다.

 

 

병원에서는 신이 도왔다고 했다.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기에 망정이지,

빙판길에 미끄러져 조금만 더 속도가 난 상태에서 부딪혔다면 정말 크게 다쳤을 거라고 했다.

 

 

 

 

두어 달 정도의 입원 생활이 끝나고,

얀붕이의 인생은 전과 비교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헤헤~ 얀붕 선배~"

 

 

얀순이가 끝을 모르고 구애하며 달라붙게 된 것이다.

 

 

품에 쏙 들어와 얼굴을 부벼대는 얀순이.

 

 

머지 않아 얀붕이와 얀순이는 사귀게 되었다.

 

 

 

 

"선배선배선배~ 있지~ 오늘도 친구들이 선배가 만들어 준 곰인형 예쁘다고 했다?"

 

 

"어 그래? 그럼 집에 만들어 놓은 거 네가 걔네한테 하나씩 가져다 줄래?"

 

 

"아니아니? 미쳤어? 절대 안 돼. 절.대"

 

 

얀순이는 얀붕이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뭔가를 만들어주는 것을 기를 쓰고 막았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여자친구가 생긴 것도 모자라, 세간의 관심도 얀붕이를 향했다.

 

 

 

얀붕이가 얀순이를 구해주었던 교통사고 당시의 영상을 현장의 누군가가 SNS에 업로드한 것인지,

 

여기저기에서 얀붕이를 향한 관심의 표시가 끊이질 않았다.

 

 

 

 

얀붕 오빠, 영상에 그 여자랑 사귀어요?

 

나 진짜 이런 시국에 오빠처럼 젠틀한 사람 처음 봐

 

 

 

이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오빠라고 불러오며 관심을 표하는 일은 다반사요,

개중에는 자신의 알몸 사진을 보내오는 여자들까지 있었다.

 

 

 

심지어는 어떻게 안 것인지,

영상 속 얀순이의 열쇠고리가 조명되어 얀붕이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까지 넷상에 퍼졌다.

 

 

그러자,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는 반응부터 시작해서 얀튜브 및 공중파 출연 요청까지 쇄도했다.

 

 

 

그렇지만 얀붕이는 얀순이의 요구에 이러한 요청들을 모두 거절했다.

 

 

 

얀붕이도 얀붕이지만, 교통사고 영상으로 관심을 더욱 크게 받은 것은 얀순이였다.

 

 

보통 이런 사고 영상은 구해준 사람을 조명하기 마련이지만, 얀순이의 외모가 탑급 연예인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기에 얀순이는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바탕으로 연예계에 진출했다.

 

 

 

 

의문이 든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왜 나는 안되고 너는 되냐'고 물었으나, 얀순이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이래야 내가 선배를 지켜줄 수 있다'

 

라는 답변뿐이었다.

 

 

사실 얀붕이도 자기가 얀순이에 비해 평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돌려 말했지만 얀순이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이를 얀순이의 입으로 들었다는 사실에, 얀붕이는 조금 씁쓸했다.

 

 

 

연예계에 진출한 얀순이가 승승장구하는 것에 비해,

 

얀붕이는 기회를 놓쳐 다시금 애매한 사람이 되어갔다.

 

 

 

깨가 떨어지던 연애 초기와는 달리,

얀순이는 점점 얀붕이를 등한시했다.

 

 

 

얀순이 촬영 끝났니?

 

 

밥은 챙겨 먹고 있지?

 

 

다이어트 한다고 너무 안 먹으면 몸 상해요.

 

 

 

 

얀붕이가 보낸 얀톡에도 미적지근했고,

그나마도 반응하지 않는 때가 다반사였다.

 

 

 

비가오는 날이면 얀붕이에게 촬영 현장까지 우산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다가도,

연락도 없이 매니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촬영 스탭에게 길이 엇갈리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우산을 써도 젖을 정도의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돌아오면,

돈도 내가 벌어오는데 고작 그 정도 뒷바라지가 하기 싫어서 꾀병이냐며 욕을 먹었다.

 

 

 

그렇게 얀붕이가 감기에 걸려 앓아 누우면 간병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몽롱한 정신을 붙들고 얀순이의 식사를 챙겨주는 날이면

 

분명 밖에서 먹고 오겠다고 하다가도, 공복으로 들어와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얀붕이가 자존심을 버려가며 관계를 요구해도 피곤한 날에는 들어주지 않았고,

 

몰래 자위로 욕구를 푸는 것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얀붕이를 매도하기 일쑤였다.

 

 

 

"나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딸이나 잡고 있고, 선배는 나 같은 사람 만난 걸 다행으로 알아."

 

라며 얀붕이를 매도하다가도

 

 

막상 얀붕이와의 관계에는 맛이 들었는지, 관계를 할 때에는 얀순이 본인이 더욱 신이 나서 허리를 흔들어 댔다.

 

 

 

그렇지만 얀순이는 늘 얀붕이보다 빨리 절정을 맞았다.

 

그럴 때면 얀순이는 얀붕이의 갈 곳 잃은 욕구를 등한시하고

'상대해줬으니 나가라'

라는 식의 말로 얀붕이를 다그쳤다.

 

 

 

아직 꼿꼿하게 선 물건을 가릴 새도 없이 침구류를 정리하는 얀붕이의 모습은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애 초기에는 다른 여자가 채갈까봐 불안하다며 하지 말라던 운동도 언제부터인지 말리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처사에 얀붕이는 점점 지쳐갔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얀붕이는 얀순이가 아직까지도 들고 다니는 테디베어 인형을 보고

 

아직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리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모두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얀순이에게 지쳐가며 살던 어느 날,

 

일을 나간 얀순이가 먹을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준비하며

얀순이가 나오는 기사를 찾아보던 얀붕이는

 

한 매체가 얀순이와 진행한 인터뷰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교제하시던 얀붕씨와는 잘 지내시나요?"

 

"(웃음) 교제라니요.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얀붕 선배가 워낙에 헌신적이잖아요. 그 화제가 된 영상의...

 

... (중략)...

 

좋은 분은 맞지만, 교제하고 있지는 않아요."

 

 

얀붕이는 기사를 보고 깨달았다.

얀순이가 이미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대학생 시절 그녀를 거쳐간 수많은 물고기들과 같았던 것이었다.

 

 

왜 이제서야 깨달았는지 눈물이 났다.

 

 

 

목숨까지 버려가며 얀순이를 지켜주려 했는데,

얀순이는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구나.

 

 

 

 

얀붕이는 떠나기로 했다.

 

애시당초 결혼을 한 사이도 아니었다.

 

짐을 챙겨도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작은 캐리어 하나에 전부 들어가는 양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집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딱 이정도였구나.

라고 새삼 깨달았다.

 

 

 

얀붕이는 최대한 정갈하게 그녀가 먹을 음식들을 차려놓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대접하는 마지막 식사이니만큼,

닭가슴살이 아니라 얀순이가 좋아하던 음식들로만 호화로운 식사를 준비했다.

 

 

그간 얀순이의 뒷바라지를 해온 덕인지,

 

얀붕이는 이렇게나 호화로운 식사를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테디베어를 두는 자리에 편지를 한 장 놓아두었다.

 

 

 

얀순이를 향한 마지막 도의를 다 했다고 생각한 얀붕이는 이내 집을 나왔다.

 

 

얀붕이가 그녀의 집을 나와 향하는 방향은

 

 

더이상 그녀의 식재료를 사러 가는 마트의 방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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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른손으로 테디베어를 연신 만지작대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선배! 선배!!!"

 

 

평소라면 얀붕이가 반겨주는 공간이지만, 그 날따라 유난히 적막했다.

 

 

얀붕이가 집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런 일로 본인이 먼저 연락하지 않게 되었기에, 얀순이는 식탁에 앉아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식탁은 얀순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가득이었지만, 얀순이는 불만부터 토하고 봤다.

 

 

"하... 나 체중관리 중인거 알면서 나 엿 먹이는 거야 뭐야? 진짜 가면 갈수록 막 나가네?"

 

 

 

혼잣말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평소와 달리 불만을 받아줄 얀붕이가 없는 것을 깨닫고 이내 조용해졌다.

 

 

꼬르륵

 

 

불만을 토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막상 좋아하는 음식들이 식탁 위에 놓여있으니,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얀붕이가 정성을 다해 차린 반찬들은 약간 식었음에도 얀순이의 화를 눈 녹이듯 풀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느 정도 기분이 누그러진 얀순이는 특별히 설거지를 해주기로 했다.

 

 

자기가 먼저 이렇게 베풀어 본 적이 얼마만인지, 감회가 남달랐다.

 

 

"아, 그 전에..."

 

 

얀순이는 돌아올 때 화가 나서 식탁 옆에 놓아두었던 테디베어를

평소에 놓아두는 자신의 책상으로 가지고 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하트모양 열쇠고리를

얀붕이가 만들어준 테디베어가 꼭 안고 있는 모양으로 해 두면

 

 

언제든지 얀붕이를 처음 만난 그 날의 느낌으로 돌아간 듯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헌데 그렇게 얀순이가 테디베어를 놓아두러 간 곳에

평소와 다른 물건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의 하트모양 열쇠고리 밑에 한 장의 편지봉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돌연 얀순이에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저 편지봉투를 열 수가 없었다.

 

 

 

피가 부족해진 듯 손이 저려왔다.

 

 

 

 

얀순이는 손을 덜덜 떨며 현실을 부정하고자 얀붕이에게 얀톡을 보냈다.

 

짜증스런 평소와는 달리 많이 누그러진 말투였다.

 

 

 

어디야?

 

 

화 안 낼 테니까 빨리 들어와요 선배

 

 

10분이 넘게 지나도 얀붕이는 톡을 읽지 않았다.

 

 

평소라면 1분도 되지 않아 칼답하던 얀붕이였는데, 기다리는 10분이 마치 지옥 같았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얀붕이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었다.

 

 

테디베어는 마치 수명이 다한 듯, 더 이상 얀순이의 감정을 제어해주지 않았다.

 

 

얀순이는 떨리는 한 손으로 테디베어를 꼭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 얀붕이의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얀붕이가 남기고 간 편지에는,

 

사죄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얀순이에게

 

 

생각해보면, 손편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얀순이와 연애를 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부족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흔한 손편지 한 장 못 썼네요.

 

 

 

예상보다 더 고통스럽게 가슴을 후벼파는 편지의 내용에,

얀순이는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아니야... 아니야... 나도 안 썼어요..."

 

 

 

얀순이가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는 몰라요.

 

남자인데도 집에서 쉬기만 하는 나도 많이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얀순이가 출근하기 전에 오늘 밤 동침하겠다고 해주면, 나는 바보같이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들떴어요.

 

 

 

"나도... 나도 그래요... 제발..."

 

 

그게 얀순이를 더 힘들게 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요.

 

 

 

얀순이의 눈에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렀다.

 

주먹을 꽉 쥐자 테디베어의 솜이 터져 나왔다.

 

 

 

기사를 읽었어요. 얀순이가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지를 않는대요.

 

바보같이, 2년이라는 시간을 살면서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지 뭐에요.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얀순이의 주변에는 더 멋있고 자상한 남자들이 많을 게 뻔한데, 내 욕심으로 너무 오래 잡아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당신을 놓아주려 합니다.

 

 

 

"으아.... 안돼.... 하지마!!! 하지마아!!!!!!!!!"

 

 

 

얀순이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갈 곳 없는 외침이 넓은 집에 메아리쳤다.

 

 

얀순이가 터진 테디베어를 내팽개치고

편지를 찢어버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편지의 마지막 줄은

 

찢어졌음에도 얀순이가 볼 수 있게 온전히 바닥에 떨어졌다.

 

 

 

"얀순이를... 구한... 건 애매했던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에요..."

 

 

얀순이가 찢어진 편지의 마지막 줄을 읊조렸다.

 

 

열린 방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편지의 마지막 조각이 뒤집어졌다.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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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얀붕이의 휴대폰에는

 

매일 얀순이의 얀톡과 전화가 쏟아졌다.

 

 

한 통도 읽어보거나 받지 않았지만,

 

 

얀순이의 소속사가 돌연 얀순이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기에

 

얀붕이 역시 만일의 경우가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렇게 전화가 오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얀순이가 살아는 있다는 뜻이리라.

 

 

 

얀순이를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다시 얀순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홀대 받던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얀순이는 숙식을 제공하고, 자신은 그녀의 뒷바라지를 하며 가끔 욕구를 풀어주는 도구였을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든 얀붕이는 어렵지 않게 얀순이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얀순이의 전화와 얀톡을 무시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얀붕이는 번화가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한 때 SNS에 올라왔었던 것만으로 꽤 얀붕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얼굴을 붉히고 번호를 건네고 가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소문이 퍼졌는지, 편의점 매출이 너 있을 때만 엄청 오른다며 사장님이 좋아라 하셨다.

 

 

남는 시간에는 운동과 뜨개질을 했다.

 

 

 

뜨개질은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잘 안 되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손이 기억하고 있어 예전의 실력을 낼 수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노트북을 샀다.

 

 

얀튜브 계정을 만들어서

서툰 편집으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뜨개질 영상을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다.

 

 

 

소소하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때면 큰 손 여성 구독자가 엄청난 금액을 후원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감사의 뜻을 담아 자그마하게 구독자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주곤 했다.

 

 

 

 

어떤 구독자는 거금을 후원하며 이런 채팅을 치기도 했다.

 

'테디베어는 안 만드시나요?'

 

 

이런 시청자는 대개 얀붕이가 옛날 SNS에 올라온 영상의 얀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 그거는 지금 실력이 좀 부족해서요, 다른 거 말씀 해주시면 해 드릴게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얀붕이는 테디베어가 아니라 시간만 들이면 드래곤도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얀순이의 만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떠올라 테디베어만은 만들지 않아왔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던 얀붕이가 우연히 얀순이와 연락이 닿은 것은 1년만이었다.

 

 

1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려오는 얀순이의 통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무시한데다,

 

곧 바꿀 전화기라 아직까지 귀찮아서 얀순이를 차단하지 않았는데, 휴대폰을 만지던 도중 실수로 얀순이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이미 눌러버린 이상, 할 말은 해야겠지.'

 

 

 

"야... 얀붕 선배....?"

 

 

 

얀순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침묵을 깨고 말했다.

 

 

"잘 지냈어요? 미안해요. 실수로 받았네요. 할 말 없으시면 지금이라도 끊을게요."

 

 

덤덤한 얀붕이의 말에, 얀순이가 숨가쁘게 대답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안돼요!!! 끊으면 안돼요!!!"

 

 

 

"..."

 

 

 

"안돼안돼... 얀붕 선배...? 끊었어요...?"

 

 

 

"아직 안 끊었어요."

 

 

 

얀붕이의 무미건조한 어투에도,

전화가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얀순이는 매우 안심한 모양이었다.

 

 

 

"저... 저... 얀붕 선배... 훔쳐봐서 미안해요... 나 선배 얀튜브 봤어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면 안돼요...?"

 

 

 

얀순이가 애절하게 부탁해왔다.

 

 

 

"내가 부탁할 때나 좀 들어주지, 염치 없다는 생각 안 들어요?"

 

 

참으려고 했지만,

 

얀붕이의 의지와는 달리 이미 얀붕이의 성대는 말을 뱉어 버린 후였다.

 

 

"아아아아아안돼... 끊, 끊으면 안돼요, 나 죽어버릴 거야...! 나진짜선배가끊으면지금죽을거에요끊지마요"

 

 

얀붕이의 모진 말에 전화가 끊길 거라고 생각했는지, 얀순이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하아...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요. 당신 팬들한테 맞아 죽기 싫으니까, 그래서 부탁이 뭔데요?"

 

 

얀붕이가 질린다는 듯 되물었다.

 

 

 

"우... 우리 얼굴 한 번만 봐요, 딱 한 번만... 내가 다 잘못 했어요. 용서해줘요... 흑! 흑!"

 

 

 

"... 또 왜요. 그 쪽한테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뭘 더 바래요? 왜 자꾸 나한테 이래요? 내가 오해했어요. 이제 그만 놔줘요. 연인 행세해서 미안해요. 가서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얀붕이가 감추어 왔던 감정을 내뱉었다.

 

 

이럴까봐 받지 않으려 했다.

 

 

다시금 기대하게 되는 자신이 너무 꼴사나워서, 혐오스러워서.

 

 

"흑... 흑...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얀순이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딱 한 번 얼굴 보고 마무리하고, 각자 인생 찾자.

 

이 여자는 방금 죽겠다고 했다.

 

곰인형 살리자고 차도에 뛰어들던 여자이기에, 못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 얀붕이가 말했다.

 

 

 

"그 쪽 집으로 지금 갈테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기다려요.

밖에서 그 쪽 팬이라도 만나면 얘기 안 되니까."

 

 

"흑-"

 

 

얀붕이는 더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 얀순이의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

 

1204얀붕이가 그녀를 구해준 날이었다.

 

 

이런 부분이 악질이었다.

 

자꾸 다시 기대하게 만드니까.

 

 

 

"와.... 왔다.... 선배...!"

 

 

얀순이가 빠르게 뛰어나왔다.

 

 

 

 

얀붕이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얀순이가 얇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알몸이 된 그녀는 이내 바로 무릎을 꿇고 얀붕이에게 도게자했다.

 

 

 

"뭐해."

 

 

얀붕이가 어느새 반말로 말투를 바꿔 그녀에게 말했다.

 

 

 

쿵.

쿵.

쿵.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

 

 

얀순이가 사과하며 연신 바닥에 이마를 부딪혀 대었다.

 

 

그녀가 네 번째로 머리를 받기 직전에, 얀붕이가 손으로 이를 저지했다.

 

 

 

"옷 입고 들어가."

 

 

 

얀붕이는 신발을 벗고 먼저 식탁에 앉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이 사는 집 답지 않게 적막했다.

 

 

예전과는 바뀐 집을 구경하고 있자니,

얀순이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쭈뼛쭈뼛 따라 들어왔다.

 

 

 

"그래서, 왜 자꾸 다시 찾아요. 나 그 쪽 애인도 아니라며, "

 

 

얀붕이의 말투가 다시 반존대로 바뀌었다.

 

반말일 때보다 더 중압감을 느낀 얀순이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세요."

 

 

 

"뭐라고?"

 

 

 

"우리... 테디베어좀.... 고쳐주세요.... 흑... 흑... 선배랑... 추억이... 히끅.... 여기 다 있는데... 선배가 쓴 편지... 읽다가... 흑..."

 

 

 

그녀가 내민 손 위에 올라간 두 동강이 난 테디베어를 보자,

얀붕이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한테 왜이래..."

 

 

"나 당신 감정 쓰레기통 아니에요... 고작 그거 망가졌다고? 그거 고쳐달라고 하려고 그렇게 찾은 거에요?"

 

 

얀붕이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댔다.

 

 

얀순이는 내민 손을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대체 왜!!!!!! 씨발 망가졌으면 좀 버려!!!!! 왜 아직도 들고 있어!!!!! 나 당신 남친도 뭣도 아니라며!!!!!!! 다 찢어졌잖아!!!!!"

 

 

얀붕이가 얀순이에게서 테디베어를 가져가 힘껏 집어 던졌다.

 

 

 

얀순이는 처량하게 내팽개쳐진 테디베어가 혹시 더 망가질까

애지중지 다시 주워서 얀붕이에게 가져왔다.

 

 

 

얀붕이는 얀순이가 주워 온 테디베어를 몇 번이고 집어 던졌다.

 

 

 

그럴 때마다 얀순이는 흐느끼면서도 부리나케 달려가 조각난 테디베어를 수습해서 몇 번이고 얀붕이에게 가져갔다.

 

 

 

"미안해요.... 선배....흑...."

 

 

 

"왜 또 나 오해하게 만들어..."

 

 

얀붕이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댔다.

 

 

 

"나 네 연인 아니라며..."

 

 

조각난 테디베어를 내민 얀순이의 팔이 떨려왔다.

 

 

 

"우리 정말로...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얀붕이가 걸레짝이 된 테디베어를 받아 들고 물었다.

 

 

 

 

얀순이는 얀붕이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 있잖아... 선배 사랑해요... 선배가 나한테 처음으로 이거 만들어 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선배 알다시피 나 선배 말고는 어리광 부릴 곳이 없어서 그랬어요…

 

선배가 본 기사는 기자가 일부러 자극적으로 바꿔 쓴거야…”

 

 

 

얀순이가 터덜터덜 자신의 방에서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해당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한다는 판결문이었다.

 

 

 

 

"그 년 내가 감옥 보냈어...

 

나 그 년 죽일려면 죽이고도 남았다?

 

근데 분풀이는 내가 아니라 선배가 나한테 해야지,

그래서 그 년 죽이고 감옥은 못가겠는 거야.

 

내가 감옥 가면 선배가 어디다가 분을 풀어...

 

내가 잘못 했어... 앞으로 절대 안 그럴게..."

 

 

 

 

얀순이가 얀붕이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얀붕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럼에도 얀붕이를 놓치기 싫어 필사적으로 얀붕이의 다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 있잖아요 선배.

나 다작했어. 돈도 많아.

 

우리 둘이 평생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어.

 

나 선배가 가지 말라면 아무 데도 안 갈게.

 

선배가 때려도 얌전히 다 맞을게.

제발 나, 나랑 같이만 있어줘..."

 

 

 

"하악, 흐윽! 나 지금도 선배, 흐으윽! 사라질까 봐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얀순이는 정말로 호흡도 가빠져오는 모양이었다.

 

 

 

 

 

 

위태롭게 다리에 매달린 얀순이를 보고, 얀붕이는 그녀가 차도로 뛰어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어리광 부릴 곳이 자기밖에 없었기에, 선을 지키는 방법을 몰랐다.

 

얀순이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있었어도

얀순이가 주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은 얀붕이가 유일했기에 그런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서툴렀던 것이다.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일으킨 뒤, 그녀를 껴안았다.

 

 

 

"내가 널 어떻게 때려 바보야... 차라리 그때처럼 내가 힘들고 말지..."

 

 

 

얀순이를 껴안은 얀붕이의 눈물이 얀순이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그제서야 얀순이도 묵은 응어리가 풀린 듯 목놓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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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얀순이의 방.

 

얀붕이와 얀순이가 같이 자는 킹 사이즈 침대에서

 

얀붕이는 잠든 얀순이를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덥썩

 

 

 

분명 자고 있었을 터인 얀순이가 얀붕이의 손목을 쥐었다.

 

 

"어디가…?"

 

 

얀순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얀붕이를 응시하며 물었다.

 

 

"화장실."

 

 

 

얀순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얀붕이가 나간 방향을 응시했다.

 

 

 

그간 떨어져 지낸 기간이 얀순이에게는 길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또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얀순이는 얀붕이와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샤워하는 동안에도 떨어져 있지를 못해서 매일 함께 해야만 할 정도였다.

 

 

그나마 얀붕이가

적어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는 따라오지 말라고 해 놓은 터라,

 

얀붕이가 화장실에 갈 때면

얀순이는 뜬 눈으로 얀붕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곤 했다.

 

 

 

 

얀붕이는 변기에 앉아 잠시 졸다가 10분여가 지나 돌아왔다.

 

 

"오빠 혹시... 자위한 거 아니지? 그런 거면 꼭 나한테 말해야 돼요?"

 

 

얀순이는 혹시라도 얀붕이가 화장실에서 자기 대신 다른 여자를 보고 성욕을 풀었을까 얀붕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뭔 소리야... 잠깐 졸았어... 이제 자자."

 

 

 

"안돼 선배... 나 또 불안해... 우리 한 번만 하자..."

 

 

 

얀순이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몸을 배배 꼬며 얀붕이의 귀에 젖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얀순이는 다시금 얀붕이와 재회한 이후 수시로 발정했다.

 

의존증이 심해져 이렇게 한 번 얀붕이를 찾아대기 시작하면 정을 통하기 전까지는 진정되지 않고,

내버려두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아... 이리 와."

 

 

한숨을 쉬며 얀붕이가 얀순이를 끌어당겼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며 얀붕이에게 올라탄 얀순이는 자신의 혀로 얀붕이의 혀를 휘감았다.

 

 

곧 얀붕이의 단단해진 물건이 얀순이의 배를 툭툭 건드리는 것이 느껴지자,

 

얀순이는 입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얀붕이의 물건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겹쳤다.

 

 

전희도 하지 않은 얀순이의 고간에서는 이미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 얀붕이의 물건을 감싸고 있었다.

 

 

 

하아… 선배, 선배 내 거 맞죠…?”

 

 

 

그래, 네 거야. 너는 내 거고.”

 

 

점차 페이스를 올려가며 둘 사이의 관계를 확인 받고 싶어하는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할 답을 해주었다.

 

 

 

아하하!! 선배! 선배♥♥♥♥♥♥♥ 선배 때문에 나 또 빨리 싸면 어떡해?”

 

 

얀붕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얀순이의 질내가 좁아졌다.

 

얀순이가 곧 허리를 활시위처럼 튕기며 아래로 조수를 뿜었다.

 

 

자극이 강해지자, 얀붕이도 더욱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선배 잠깐! 잠깐잠깐잠깐!!! 나 너무 힘들어어어어어- 하아아아아아아~~”

 

 

기승위로 올라탄 얀순이의 기력이 다하자, 얀붕이가 얀순이를 눕히고 허리를 움직였다.

 

 

멈춰 달라는 얀순이의 말은 잔뜩 흥분한 얀붕이에게 있어 곧 멈추지 말아 달라는 말과 같았다.

 

 

얀붕이가 점점 더 거세게 움직이며 스퍼트를 올리자,

얀순이는 얀붕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다리로 얀붕이의 하반신을 휘감았다.

 

 

하으으. 아 으. 하응, 아아아아아아아……. 응아아아앗……………..!”

 

 

얀순이는 혀를 쭉 뺀 채로 눈을 까 뒤집었다.

 

 

얀붕이가 얀순이의 갈 곳 없는 혀를 입으로 머금고는 그대로 얀순이의 질내에 백탁액을 주입했다.

 

 

 

 

 

…….

 

 

 

 

 

얀붕이의 사랑을 확인한 얀순이는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다가 그대로 잠에 들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얀순이를 보며, 한 편으로는 안심했지만, 동시에 내일이 걱정되었다.

 

 

 

얀붕이가 마른 세수를 하며 조용히 내일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적어도 아침에는 하자고 안 하겠지…?”

 

 

 

 

5시간 후 얀붕이의 주니어가 지금의 기대를 배신하고 텐트를 친 채로 얀순이에게 발각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얀붕이도 뒤따라 잠에 들었다.

 

 

 

 

블라인드 틈으로 달빛이 들어와 얀순이의 책상을 비추었다.

여기저기 누덕누덕 기워진 테디베어가 색이 다른 테디베어에게 기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