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9549098


------------------------------------------


"후, 이제 좀 시원하네."


비지땀을 흘리던 얀붕이 개운한 표정으로 땀을 훔친다.

그 앞에서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얀순이 쓰러져있다.

장장 수시간에 걸친 폭력.

그 시간동안 얀붕은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한채 그녀를 구타했다.

시끄럽게 꽥꽥거리던 것도 지쳤는지, 조용해진 얀순.

자신의 결과물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얀붕은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얀순은 오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여자였다.

얀붕의 주먹이 올라갈떄마다,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얀순은 그에게 끝까지 굽히지 않았었다.

자신은 언제나 내려다 보는 사람이기에.

장난감에 불과한 얀붕이, 자신의 위치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굴욕적이었다.

때문에 이리 저리 맞으면서도, 배로 갚아줄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이를 꽉물었다.

네깟 놈이 감히.

병신같은게 날 건드려?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되뇌이며 버텼다.

하지만, 끔찍하리만큼 반복되는 고통에는 면역이 없던 여자였다.

어릴때부터 불행하게 살아온 얀붕과는 달리, 언제나 제 잘난 맛에 살던 얀순은 처음 마주한 절망과 공포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대를 자신에게 꿇리는 그 정복감과 쾌락만 알지, 자신이 복종할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른채 떽떽거리며 괜히 심기만 긁을 뿐이었다.

꿇으라는 얀붕의 말에 침을 뱉자마자, 배를 걷어차였다.

숨이 넘어갈듯이 아팠다.

꺽꺽대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것을 얀붕이 조소하며 즐긴다.

한참을 부들대다 겨우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얀붕은 그녀에게 서있으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얀순의 반항으로 받아들여 다시 구둣발로 짓밟는다.

아프다.

아프다.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 비명을 즐기듯이 더 아프게 때리는 얀붕만이 있었다.

왜 그러는거야 도대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나도 심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만좀 때려.

나 아파.

너무 아파!

살려줘! 살려줘!

제발!

무시한다.

그녀의 절규를 무시한채 무덤히 주먹을 들어올린다.

이제와서 사과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조금이라도 일찍 그만뒀어야 했다.

하다못해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더 자신을 이해해줬다면 얀붕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상 그렇듯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드르륵.

얀붕은 쓰러져있는 얀순을 뒤로 한채,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자신이 이렇게나 잔인했나 싶을정도로 엉망인 얀순의 몸을 보며, 나른한듯이 입을 연다.


"야."


"...네."


얀붕의 말에 흠칫, 몸을 떨던 그녀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어느새 둘의 어투는 달라져있었다.

지속되는 고통과 공포에 절여진채 얀순은 얀붕에게 굴종하고 있었다.

더 맞기 싫어서.

아픈건 싫으니까.

그에게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차고 넘칠 정도로 맛본 얀순은 더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이제 좀 알겠어?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네, 저는 쓰레기예요. 저는 썅년이예요. 저는 걸레예요..."


참된 교육의 성과가 나오는지 얀붕 앞에 무릎꿇은 얀순의 입에서 자동응답기처럼 말이 흘러나온다.

진심어린 사과와는 거리가 멀었어도, 얀붕은 그럭저럭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더 완벽하게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다.

얀붕은 그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지만, 충동적으로 저질렀으면서 그런 요행마저 바라기에는 너무 욕심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늦은 새벽.

창문 너머로 새벽 특유의 어두우면서도 푸른 풍경이 얀붕의 눈에 들어온다.

해가 뜨면 모두 끝나겠지.

머지 않아, 경찰이 찾아올테고, 얼마 뒤 곧장 감방.

사람을 때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필 때린것이 돈만 많은 돼지같은 년이라,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끝장날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얀붕은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딱히 후회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운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생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모든것이 돌이킬 수 없는 지금, 그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린듯 어깨는 가볍다.


"나 간다. 고소하든 신고하든 알아서 해라."


히끅거리는, 얀순을 뒤로하고 얀붕은 회사를 나섰다.

너무나도 늦게 얻은 해방감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쌀쌀한 공기가 몸을 에듯 달라붙는다.

북적대는 차가 없어, 한층 깨끗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마시며, 얀붕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거리를 걷는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새벽을 즐기며, 얀붕은 문득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동생들 한끼라도 더 먹인다고 끊었던 담배가, 너무나도 피고 싶었다.

그런 충동에 휩싸여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산다.


칙. 칙.


담배에 불을 붙이자, 매캐하면서도 묵직한 연기가 그의 폐를 찌른다.

오랜만이었다.

얀붕은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웠다.

평소의 얀붕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지만, 뭐 어떠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굳이 도덕심에 얽매이려 하지 않았다.

그냥 따먹을 걸 그랬나.

음탕한 생각을 주저없이 쏟아낸다.

외모는 그럭저럭 자신의 취향이었던 얀순을 생각하던 얀붕은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멀리서 해가 뜨는 참이라, 지금 다시 돌아가봤자 너무 늦다.

아쉬운 걸.

얀붕은 내심 그녀를 강간하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아쉽게 생각했다.

그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걷던 사이에, 얀붕의 집이 멀리서 보인다.

혹시라도 깨어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문을 열은 얀붕은, 누가 채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웃었다.

미안하다.

얼굴을 보고나서야, 슬며시 후회가 밀려온다.

아직 고등학생이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에게 쓴 현실의 맛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벗어버린줄만 알았던 짐은 아직 있었나 보다.

얀붕은 씁쓸한 얼굴로 천천히 동생들의 옆에 누웠다.


스륵.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몸을 뒤척이던 동생이 차가운 얀붕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따뜻하다.

그 온기를 느끼며, 얀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얼마나 잔걸까.

얀붕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슬쩍 휴대폰을 들어보니, 눈에 보이는 숫자는 팔.

거의 열 두시간을 넘게 자버린 것을 깨달은 얀붕은, 부재중 전화를 살핀다.

다만 생각했던거와는 다르게, 통화는 한 건 밖에 오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

경찰이 아니었다.

이 시간이면 아직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회사에 전화를 해보려던 얀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끝났다.

얀순의 성격상 조용히 끝날 일이 아님을 직감한다.

아마 내 생각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얀붕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연다.

한끼도 안먹은 탓에 배가 주리다 못해 아픈 참이었다.


♬~


냉장고에서 먹을만한 것을 찾던 얀붕은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휴대폰을 본다.

짜게 식는 눈.

화면에 보이는 이름을 보며, 망설임없이 통화를 끊는다.


♬~


끊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그 이름이다.

얀붕은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끊고 번호를 차단했다.

전화기 너머로 기세가 등등해진채로 자신을 협박할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진다.

잠깐의 소동이 끝난뒤, 얀붕은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도저히 먹을 것이 안 보이자 근처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일에 치여살았다지만, 스팸 하나 없을 줄이야.

워낙 바쁜터라 동생들에게 음식하나 변변히 만들어줄수 없던 자신에게 자조하며, 걸음을 옮기던 얀붕은 이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눈 앞의 여자는 어제처럼 만신창이였다.

병원에서 치료라도 한듯, 양 볼에 커다란 거즈를 붙힌채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옷에 가려져 있지만 드문드문 몸 곳곳에 붕대가 보인다.

전치 몇주는 나올줄 알았는데, 부러진곳은 없는지 위태롭기는 하지만 서있기는 서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용기인걸까?

아니 그녀니까 가능한 만용인걸까?

얀붕은, 그녀답다라고 생각하며 팔짱을 낀채 얀순을 노려보았다.

얼마나 분했으면 그렇게 쳐맞았는데도 가해자에게 '직접' 찾아와 인생이 끝났음을 통보하는 건지.

그 노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따름이다.


"...얀붕...님"


"뭐."


자신을 부르는 말이 좀 이상했음에도 얀붕은 눈치채지 못했다.

차갑게 대꾸하자, 얀순의 몸이 흠칫 떨린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에, 얀붕이 휘두루던 폭력의 힘을 다시 마주한 얀순의 눈이 절로 일그러진다.

뭔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멈추자, 얀붕은 답답한듯 품의 담배를 꺼내 피며, 얀순의 대답을 기다린다.

어디 마음껏 지껼여봐라.

나 또한 한껏 비웃어주마.

얀붕은 그런 마음으로 얀순의 말을 기다렸다.


"...부...부탁...드릴게...있어요."


"뭐?"


잘못 들었나 싶어, 얀붕이 되물었다.

부탁이라고 한건가?

근래 들은 농담중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다.

다만, 얀순은 그 말을 오해했는지, 얼굴이 파래지며 말을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똑바로 말하겠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더 똑바로 말했어야 했는데..."


이상하다.

얀붕은 그제서야 그녀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얀붕의 복수는 이미 끝났다.

이제 남은 결말은 분노한 얀순에 의해 암울한 미래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얀붕은 자신의 바지춤을 붙잡은채 울먹거리는 얀순을 쳐다보았다.

마치 정말 잘못했다는 듯, 무릎까지 꿇은채 자비를 바라는 얀순의 눈은 어딘가 기이하다.


"왜, 왜 그러시나요...또 때리시려는 건 아니죠? 죄송해요. 제가 나쁜 아이라...벌을 주시려는 거죠?"


뭔가 비틀려있다.

그 날.

얀붕이 이성을 잃어 손을 휘두른 그 순간.

처음 맞았을때는 당황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런 그릇된 감정을 품어서일까? 그가 화가 났다.

두번 맞았을때는 겁이났다.

겁?

겁?

겁이 뭐지?

살면서 '겁난다'라는 것을 딱히 표현하지 못했다.

세번 맞았을때는 무서웠다.

무서워?

무서운게 뭐지?

친구들이 공포영화를 보며 주접떠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이해한 척.

비슷하게 흉내나 내며, 거짓된 감정을 애써 표현한다.

반면 그는 달랐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무렵이었다.

새로웠다.

그제서야 그가 가르침을 주는 것임을 알았다.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가르쳐줬다.

그 경험은 강렬하고 또 강렬해서 마음깊이 남아버렸다.

진짜 증오가 뭔지 가르쳐줬다.

너무 화가 나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로 없어져야 하는 것처럼 몽창 도려내는 것이 증오다.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그는 표정, 언어, 손으로 가르친다.

그의 가르침은 아프고 아프지만,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가르침 대신 혹독한 벌을 내린다.

이게 분노야.

이게 모멸이야.

이게 혐오야.

이게 가증이야.

이게 증오야.

참된 감정을 가르친다.

아아, 내가 착각한 거였어.

나는 바보야.

괜히 화를 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아.

그 자애로움에 눈물이 흐른다.



무언가 잘못됬음을 직감하고, 얀붕이 얀순의 손을 떨친다.


"앗...얀붕님..."


놓친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얀순의 표정은 비정상적이었다.

가열차고, 흥분되어있다.

얀붕은 모른다.

얀순이 가지고 있던 감정의 결여를 자신이 본의 아니게 채운것을 모른다.

하지만, 얀붕은 더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벌?"


"네, 얀붕님...벌입니다. 이 나쁜 년은 벌을 받아야 되요..."


얀순의 말에 얀붕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진즉에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좋아."


담담한 한마디지만 그것만으로도 얀순은 행복했다.

장난감이 바뀌었다.







--------------------------------------------------------





내가 뭘 쓴거지.

의식의 흐름대로 썼는데 가독성이 어떨지는 모르겠음.

아직 대충 소재는 남았으니 3편 생각중.

얀순의 집착이 심해지는 것이 중점인데, 그걸 얀붕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스토리가 바뀔듯.

이미 망가져있는건 알았는데 그걸 재밌어서 놀아주는 수준에 그치느냐, 아니면 이대로 완전히 부셔버리느냐의 차이인데.

그 정도에 따라 얀붕 또한 생사가 갈릴듯함.

얀붕(개복치)

댓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