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의 파티는 따분하다. 

그것은 주연이 아이들이라 한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속내를 감추고 하하하 호호호. 

기껏해야 10살배기 어린 놈들이 뭐 그리 속이 검은지 원... 


산소 부족으로 죽는 것은 공교롭게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나는 슬쩍 회장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서재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어느 세상이든 애들은 책을 싫어하는 법이지." 

뭐. 환생자인 나에겐 예외인 이야기다. 


"이야... 문 한번 크네." 

파티의 주최지. 로즈윌 가문은 제국 내에서 지식의 비고라 불리는 가문이다. 

어떤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기대하며 문을 여는데, 갑자기 나무 줄기 하나가 머리를 노려왔다. 


"큭!" 

매일 후두려 맞으며 배운 검술이 아니었다면 제법 흉한 꼴을 보이지 않았을까. 


"뭐야. 남자잖아?"

빌딩처럼 드높은 책장 사이로 얄망궂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커지며 흉한 모습의 여성체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귀여운 여자애의 비명이 듣고 싶었는데." 

'왜 저게 여기있는거야...' 


로즈윌 가문의 치부이자 비밀. 레비아 로즈윌. 

이 세상의 흑막이 각성 전의 모습이지만, 나의 인생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설에선 알헤리아 산맥에 버려져, 3년 간을 헤메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아직 버려지기 전이라는 건가.


나의 침묵을 두려움으로 받아드렸는지. 

레비아는 군데군데 장미가 뻗어나온 얼굴을 기괴하게 꺾어댔다. 


"어머. 이름 높은 흑룡가의 도련님께서도 두려움은 있나 보네?" 

그녀의 시선이 나의 용포를 훑었다. 


"그것 참. 꼴사납네 그래." 

거 성격 더러운건 소설 대로네. 


알헤리아 산맥에서 힘을 각성한 그녀는 가문에 돌아와 자신의 가족들을 학살한다. 

저주 받은 자라며 멸시받았던 기억의 보복이었다. 


이에 대한 제국의 제재는 전무. 

그녀가 가주보다 우위의 존재임이 참작되었기 때문이다. 

저주인줄 알았던 흉한 얼굴은 알고보니 선령으로의 각성 전조였고, 로즈윌 가문에서 선령은 그 어떤 존재보다 우선시 되는 권리를 지닌다.


가문의 일은 가문에게 일임한다는 것이 제국 귀족가의 불문율.

가문을 장악한 삐뚤어진 소녀는 이윽고 힘을 키우며 흑막으로 성장한다는 설정이다. 


"못생긴 얼굴." 

얇고 구부러진 손이 나의 가슴팍을 꾹 찔렀다. 


"재미없으니까 이제 꺼져줄래? 나라는 괴물이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휙하고 몸을 돌려 책장 사이로 사라졌다. 


"흠" 

날아왔던 나무줄기에 시선이 향했다. 

요란해보이지만 줄기의 속은 비어있다.

요컨대 사람을 해하는 것보단 놀래키는 쪽에 가까운 장치였다. 


"어쩌면..." 

소설 속의 그녀는 처녀들의 얼굴을 찢으며 광소를 짓곤 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지금의 레비아에겐 갱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나의 레비아 갱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로즈윌 가문에선 격주에 한번 씩 파티가 개최된다. 그때마다 나는 서고를 향해 레비아를 찾았다. 


"뭐야 또 너야? 저번의 보복이라도 하러 온셈?" 

"이래서 남자애는 유치해서 싫어. 꺼져. 목을 비틀어버리기 전에." 

처음에는 반발이 거센 레비아였지만.


"매번 매번 질리지도 않네. 기왕 올거면 여자 아이나 데려오지. "

"험한 말을 듣는게 즐거운거니?"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더니


"정말 별난 도련님이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거야?" 

슬슬 나를 자연스레 대하기 시작했다. 

전생의 소설과 동화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녀는 그중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불의 잔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만남엔 불사조 기사단 이야기가 남은 차례인데. 


서고에서 그녀의 기척이 사라졌다. 

용의 피를 이은 후각은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알헤이라 산맥을 가리켰다. 


"아오 씨... "

이후의 과정은 기억이 흐릿하다. 당시 내가 느낀 초조의 격랑은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운 것이었으니. 


그녀를 찾은 것은 알헤이라 산맥의 중턱이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상처 투성이의 몸은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신도 가혹하시지. 우리를 가로막은 것은 베히모스라는 전설 속의 괴물이었다. 


"너?!" 

등의 날개를 크게 뻗은채, 그녀를 지키듯 끌어안았다. 


"괜찮아. 다 괜찮을거야." 

오래된 심리학 서적에서 사랑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은 무언가를 받을 때보다, 줄때 사랑을 크게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레비아를 갱생시키려는 심산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나는 처음 안은 그녀의 몸을 보다 세게 끌어안았다. 


"크롸아아!" 

베히모스의 손톱은 나의 날개를 찢고 등에 커다란 상처를 새겼다. 나와 그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절벽 밑으로 떨어졌고.


이후 눈을 떴을때. 나는 선령으로 각성한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 우연히 떨어진 곳이 마침 각성의 화원이었던 덕분이다. 

나를 소중한듯 쓰다듬으면서 레비아는 독설을 퍼부었다. 


"흑룡은 무슨... 지렁이 지능보다 못한게... 바보야? 바보냐고..." 

장미가 떨어져나간 피부는 백옥처럼 새하얗다. 머리와 색이 같은 붉은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선녀와 같은 얼굴이라고 나는 가슴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레비아는 독특하지만 악역과는 거리가 있는 영애로 성장했다. 가문의 장악 과정도 살생보다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 그녀와 나의 관계는 약혼자. 그것이 달갑잖은 것은 그녀의 마음이 진실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약혼자라는 상투를 올렸지만, 나의 짝사랑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혼담 바리케이드를 해달라니.. 소꿉친구 한 번 험하게 다룬다니까." 

어릴적 함께 찍은 사진이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다. 나홀로 있는 그녀의 방은 홀로 있기에 보다 그녀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졌다. 


선령의 체취에는 매혹의 성분이 있는걸까..? 나는 홀린듯 그녀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최악이네 나..." 

그녀의 베게를 끌어안았다. 어릴적 품에 안았던 그대로의 체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랑해..." 

시작은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댐에 뚫린 구멍은 감정이 터져나오며 견고한 벽을 무너뜨렸고


"레비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 

작았던 목소리는 어느덧 누구도 들을 수 있을만큼 커져있었다. 

가주로서의 일을 처리하고 소꿉친구를 만나러 문을 연 그녀에게도. 


"레, 레비아?" 

"......" 

그녀의 얼굴에는 감정이란게 사라진 채였다. 레비아는 들고 있던 과일 접시를 시종에게 넘기고 한꺼풀 한꺼풀 옷을 벗었다. 


"한 번만 말할거니까 잘들어 앤." 

시종은 그 이상 없을 예를 다해 고개 숙였다. 


"오늘부터 한 달간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황제든 재상이든 창자를 가르고 얼굴을 114조각으로 썰어놓을거야." 

"예. 레비아님."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으나. 눈동자 속에는 심연보다 짙은 하트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사랑해줘야할지 모르겠어. 아마 거칠거야. 정말 많이 많이 거칠거야... 그래도 이해해줘. 알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