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인 걸 알아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사무실 책상의 무전기에서 스카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 밖에 리유니온의 설귀 소대가……"



"금방 갈 테니까,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지 마. 알겠지?"



스카디의 무전이 끊기고 나는 외투를 입으면서 스컬슈레더에게 말했다.



"프로스트노바에게, 잘 말해줄거지?"



"당연하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 따위, 할 생각도 없어."



그의 대답에, 나는 살며시 웃어보이고 스컬슈레더와 함께 에덴의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동료애라는 건가.




***




"오, 왔구나."



"지마, 엑시아에 스카디까지…… 전부 나올 필요는 없었는데."



이미 몸에 광석병이 퍼진 백발의 토끼소녀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인가……"



"그래. 지금은 해임당하고, 여기 에덴의 총책임자야."



"그런가, 스컬슈레더가 큰 신세를 졌어."



프로스트노바는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지듯이 휘청거렸다.



"누님!"



"……면목없지만, 여기의 치료시설을 이용해도 될까?"



"당연히. 스카디, 미안하지만 프로스트노바를 치료시설까지 옮겨줘."



"알겠어."



프로스트노바와 설귀 소대가 스카디를 따라 치료시설로 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컬슈레더의 무전기가 치직거리며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메피스토. 스컬슈레더, 아직 살아있지?"



"메피스토냐, 아직 살아있다고. 무슨 일이냐?"



"로도스 아일랜드가 미샤를 리유니온으로 돌려보냈어. 당장 치료할 시설을 확보해서 보고해."



다행히도, 제대로 풀린 모양이다.



"고마워, 박사!! 덕분에 미샤가……"



"다행이네."



스컬슈레더가 기뻐하고 있던 그때, 엑시아의 무전이 들어왔다.



"박사, 들려?"



"잘 들려. 무슨 일이야?"



"로도스 아일랜드의 미르라는 사람, 기억해?"



미르라면, 분명 안경을 쓴 불포족의 메딕이었던가.



"미르가 왜?"



"지금, 박사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의 메딕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아온 걸까?



"알았어, 금방 갈게."



***




조금 음침한 응접실에 놓여있는 약초화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이 약초, 허브의 일종인가……"



그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 구면이었나?"



박사님께서 들어오셨다.



"아, 그게…… 미르라고 해요."



"맞아, 미르였지? 일단 편하게 앉아."



"아, 네……"



박사님은 고급 허브 티백을 꺼내 뜨거운 물에 우리시더니, 거기에 각설탕 2개를 넣어 내게 건네셨다.



"허브 티야, 한잔 들고 이야기하자."



"네."



서로 차를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자, 박사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미르, 요즘 로도스 아일랜드는 어때?"



"아, 그게…… 그렇게 좋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아요. 아미야 씨는 날이면 날마다 감염자분들과 언쟁을 벌이시고, 용문과의 사이도 나빠져서……"



박사님께서 해임당하신 이유로, 내가 알고 있던 자비로운 이미지의 로도스 아일랜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가 아무도 믿지 않고, 등을 맡기지 않는 불신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피신이라는 핑계를 대고서 그 지옥을 도망쳐나왔다.



"그래서, 그런 지옥도를 피해서 우리에게 온 거구나."



"에? 아, 아뇨……"



"아냐, 숨길 필요없어. 우리들은 너희들을 내칠 생각은 없어. 오히려 너희들이 와 준다면 환영하고 싶을 정도야."



박사님의 태도에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원수와도 다름없는 조직의 일원이었던 나를 어째서 아무런 말도 없이 받아주시는 걸까?



그리고, 이렇게 상냥하신 분을 내쫒아낸 아미야 씨와 다른 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러고보니 미르, 혹시 광석병의 억제법을 알고 있나?"



"아, 네. 켈시 선생님께 배운 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혹시, 부탁할 수 있을까?"



그 지옥을 벗어난 이상, 더이상 불신으로 괴로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네. 언제든지요."



진정으로 감염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하고, 행동해 왔던 로도스 아일랜드는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나는 그 원인을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고마워. 다 준비하고 동쪽에 있는 중앙치료시설에 와 줘."



"네, 알겠습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몰락의 원인은,



박사님을 버린 그 사람들의 어리석은 판단이다.



***




오늘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컬슈레더와 프로스트노바의 치료, 적대했던 리유니온의 대장 탈룰라와 그 간부들과의 회담.



그리고,



'우리는, 에덴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리유니온과의 동맹까지.



한바탕 혼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려고 와인을 마시기 위해 잔에 보랏빛의 포도주를 따르는 순간,



"뭐야, 박사.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고기냄새를 맡고 달려온 강아지처럼, 지마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지마, 너야말로 늦게 자면 키 안 큰다?"



"뭐야, 나한테 시비거는 거야?"



지마가 내 등짝을 후려치자, 강한 격통이 몰려왔다. 곰에게 맞는다는 고통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뭐, 너도 오늘 고생했으니까 같이 마실래?"



"그래도 돼?"



기다렸다는 듯이 지마는 와인을 기세좋게 들이켰다가, 우스꽝스럽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으엑, 더럽게 시네……"



"와인은 조금씩 마셔야되는 술이야."



"차라리 쓴 거라면 모를까, 이건 나한테 안 맞아."



나는 조용히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지마는 휴대용 술통에 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지마가 내 옆자리로 오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박사."



"응?"



"우리는, 박사의 곁에 끝까지 있어줬어."



"그렇지."



나는 무심코, 지마의 다음 말을 예상하는 눈치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박사는, 끝까지 곁에 있어줄 거지?"



아무것도 없는 벽을 바라보는 지마의 눈은, 불안감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푸른 빛이었다.



"응. 너희들이 원한다면, 나는 너희를 곁에 두고 계속 있을거야."



내 말에 지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눈치없기는."



지마의 푸른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하고,



"읍……!?"



지마가 내 턱을 끌어당긴 순간, 그녀의 쓴 숨결이 내 입 안에 퍼졌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너희들'이 아니라, '너만'이라고 말해야 하잖아?"



그녀의 조숙한 웃음이, 유리창 너머로 흩어지는 달빛 사이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듯 했다.



"오늘 있었던 일, 말했다가는 패 죽일거니까."



***




리유니온과의 동맹을 맺은 지 어느새 반년, 리유니온은 에덴이라는 뒷배를 등에 지고 점점 그 세력을 넓혀나갔다.



프로스트노바를 치료했다는 우리들의 소문은 빠르게 확산됐고, 리유니온에게 습격당할 걱정따위 없는 우리들의 이동도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아무도 우리를 험담하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샌가, 그런 경지에까지 올라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할수록, 로도스 아일랜드는 우리의 그림자처럼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진짜 몰락을 보고야 말았다.



"중대한 사안이다, 맹우여."



3개월 간 쉐라그에 파견을 다녀온 실버애쉬가 내게 넘겨준 피투성이의 편지.



차라리 이때, 이 편지를 찢어버렸다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했을까.



"아, 미야……?"



"에덴에 돌아오기 전에, 내게로 발송된 편지가 하나 있었더군. 이름은 그대도 잘 아는……"



실버애쉬는 말을 마저 잇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자, 먼저 보이는 것은 핏방울자국이었다.



그리고 편지지를 편 순간,



'죄●합니다죄송합니●●●●니다●송●●다죄●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니다죄송합니●죄송●●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합니다죄송합니●죄송●●다죄송●니다죄송합●다죄송합니●죄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니다죄송합니●죄송●니다죄송●니다죄송●●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죄●합●●●●●니다'



그녀의 편지를 본 이 순간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핏방울 탓에 알아볼 수 없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된 채로 편지지에 쓰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박사, 로도스 아일랜드로 추정되는 오퍼레이터 단체가 여기로 접근하고 있어!!"



그녀들의 후회, 그리고 참회를 가장한 피투성이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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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 다 끝났고 이제 유열을 즐길 차례다

근데 너무 힘드니까 오늘 여기까지만 쓸게

하루에 소설 3편 쓰니까 죽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