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지구, 외계인 없음. 그녀는 다리에 묻은 초록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녀의 발밑에는 170cm 정도의 도마뱀이 쓰러져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검은 양복을 입고서, 손에는 화약식 권총을 쥐던 도마뱀이. 도마뱀은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할당량 끝. 오늘은 여기까지. 진짜 여기까지."

그녀는 비늘로 뒤덮인 시체를 발로 찼다. 그러다 벽에 주저앉았다. 처리부서는 50분 이후에야 온다고 연락이 왔기에. 그때 문이 열렸다.

"어?"

열린 문은 더러운 바람, 적당한 먼지, 구겨진 광고지 따위의 것을 방안으로 인도한다. 5센트 정도의 싸구려 신문 또한 그 안으로 인도된다. 복슬복슬한 손에 잡혀 구겨진 상태로써.

"아 씨발. 좆됐네."

165cm 정도의 생쥐, 얀붕이는 경직되어 떤다. 그의 눈앞은 피범벅. 그리고 머리에만 털이 집중된 누군가가 자신을 조준한다.

"우와. 거대 생쥐다. 거대 쥐새끼."

얀붕이의 시선이 움직인다. 총구. 여자. 그리고 도마뱀 저 악어 새끼가 왜 저기 있지? 값비싼 정장을 초록색으로 엉망으로 만들고서는. 저 멍청한 악어가 왜 누워있는 거야..

대가리가 멍청하면 몸이라도 멀쩡해야지, 관리가 힘든 비늘이라면 튼튼하기라도 해야지, 총알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생쥐야, 너도 눕고 싶어서 왔니?"

"씨발 아가씨. 댁이 앉아있는 그 놈은 댁 의자가 아니야!"

"알고 있어. 하지만 50달러 양복에 내 엉덩이를 비비고 싶었어. 공장제 대량생산 의자는 15달러의 싸구려잖아. 그런 거에는 이 바지가 아까워서."

"뭐...? 그 등신 같은 걸 이유라고 드는 거야? 우리를 버러지로 생각하고 있구나! 잘 들어. 너는 지옥에 갈거야. 너 같은 년이야 말로 악마니까!"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러다 토하듯 말한다. 약간의 미소를 버무리면서.

"외계인 귀신도, 있냐?"

"뭔 소리야?"

"말 그대로야. 외계인 귀신이 있냐고. 너는 죽으면 귀신이 될거라고 생각해? 외계인도 사후세계의 권리가 있다고 믿어?"

"왜,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나? 있으면 어떡할 건데?"

"보내주려고. 그 사후세계."

생쥐의 털이 빳빳하게 세워졌다. 잊고 있었다.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해도, 총이 있었다. 그녀는.

"죽, 죽이기라도 하게? 그래. 차라리 죽여라! 이 지옥 같은 행성에서 죽음으로써 도망 치리라! 나 얀붕이는.."

총성이 귓가를 가격한다. 단지 그뿐. 총을 다시 집어넣는다. 오직 그뿐.

"오늘 할당량은 끝났어. 내일 다시 와줘. 진짜 가버리고 싶다면."

"할당량?.."

얀순이는 자신의 왼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오른손으로 성냥을 꺼내고서는.

"씨발... 내가 지옥에 가지 않을 정도의 할당량.."

얀순이는 불 붙은 종이뭉치의 연기를 깊게 마셨다. 그러다 괴로운듯 뱉었다.

"나는 천국에 갈 거야. 적어도 연옥. 그런데 자격이 좀 빡세. 중세 일신론적 종교관에서는 그저 이교도를 개종시키기만 해도 충분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지."

"너 같은 살생자가? 천국?"

"생쥐씨. 천국의 조건은 살생이야."

얀순이는 발랄하게 미소 지었다. 얀붕이는 생각했다. 15분 전에 내 친구의 목을 조르고, 가슴을 뭉개버린 여자.

8시간 뒤면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내 골통을 쏘고, 내 가죽을 벗기고, 내 심장을 뜯어먹을 여자.

그런 부류의 여자가 지금은 웃으며 앉아있다니.

"으, 음."

얀붕이는 코를 긁었다. 친구의 죽음. 나의 죽음. 좆까.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아. 그의 눈에는 얀순이의 입술만이 들어올 뿐이다.

그녀의 붉은 입술 안의 종이뭉치. 간접흡연이 이리도 고통스럽다. 니코틴이 생존 본능을 이겼다. 얀붕이는 어떻게 하면 그녀의 담배를 쟁취할 수 있을지 생각할 뿐이다.

'총은 지금 홀스터 안에 있다. 뽑고, 조준하고, 쏘기까지 적어도 15초쯤. 그녀와 나의 거리는 15m쯤. 뛰어가서 팔을 꺾고 주머니를 뒤진다. 반항하면 죽인다.'

"생쥐씨. 뭐해?"

얀순이는 짙은 니코틴 구름을 뱉으며 말한다. 진한 연기가 뿜어 나와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때 생쥐가 움직였다. 민첩하고도 신속하게.

얀순이의 오른손은 어느새 뒤로 틀어지듯 돌아갔다. 그녀는 진한 고통을 느끼며 정면을 응시했다. 회색빛의 생쥐가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을.

"으힉! 힉! 흑!"

그녀의 안구에서 눈물이 옅게 흘러나온다.

"죽이려고?"

"아직은 아니야."

얀붕이는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다 쥐의 주둥이가 그녀의 입술을 감싼다. 갈망하며 깨물듯 빤다. 집어삼킬 듯 씹는다. 먹어치울 듯 핥는다.

침으로 적셔진 담배라도 씹어서 삼킬 듯 질겅거린다. 멋들어진 담뱃갑과 '내일을 만드는 것은 당신!'이라는 홍보 문구로 범벅된 궐련은 얀붕이와 얀순이의 타액으로 포장된다.

혀를 꿈틀거리며 휘감다가 결국 뱉고야 말았다. 얀순이가 입을 열었다.

"헤. 이런 건 처음인데."

"난 오랜만이야."

얀붕이는 그녀의 코트를 벗긴다. 하얀 셔츠의 단추가 끊어지며 털 없는 동물의 흉부가 드러난다. 반원의 물체가 2개나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담배는 가져갈께."

얀순이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오른팔을 붙잡으면서. 숨을 가파르게 고르면서. 옅게 붉어진 정신을 다잡으면서. 문으로 다가가는 털뭉치를 향해 말하면서.

"난 외계 대책부 1팀 부팀장 얀순이야. 이름이 뭐야. 생쥐씨?"

"얀붕이."

"좋은 이름이네. 내가 꼭 잡아줄게. 얀붕씨."

키 160cm의 쥐는 걸어가듯 문을 나갔다.


+) 오랜만에 썼는데 좋은 거 이상한 거 고칠 거 충고할 거 댓글로 ㄱㄱ, 반응 좋음 계속 쓸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