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채널
과거에는 어떤 물건이 필요하면 그 사람이 일일히 좋은 물건을 찾아다니면서 그 사람의 물건의 가치를 직접 알아보고 그 물건을 구매하였다.
공급자가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물건의 가치를 아는 시야도 그만큼 중요한것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보았자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못하고 팔리지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진 물건만이 팔리고 만들어질것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가치를 알아볼수있는 눈이 높아지지않는다면 즉, 그에 필요한 능동적임, 통찰력, 판단수준이 발달해야 그 사회의 물건과 재화의 질도 올라간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제작에 쏟아부어 물건의 질과 가치를 향상시키는데 집중 할 수있었던것도 이 때문이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물건의 그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여 알아보아주고, 필요한것이 있다면 능동적으로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려고 했었으며, 장인들은 그 물건을 알아보아주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그 물건을 팔면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더이상 스스로 물건을 찾아나서려고 하지않는다. 스스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다. 단순히 겉보기 식의 마케팅처럼 판매자가 알아서 소비자들에게 접근되어서야 그 정보를 수동적으로 주입받고 물건을 구매하려 한다.
아무리 구매의 선택과 구매의 동기가 이들에게 있다 한들, 눈과 움직임은 이들에게 달려있지 않으니 능동적이라 할 수 없으며 수동적인 것이다.


단순히 마케팅이 요란하고, 화려해보이고 자극적이여야 즉, 쉽게 눈에 띄는 것이어야 소비자들에게 수용되고 판매되어진다. 물건의 질과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니 본질적인 면보다는 오로지 브랜드와 같은 겉껍데기 부분일 뿐인 이미지들에 휘둘리고 이끌려진다.



비단 시장과 마케팅뿐만이 아니다.


문화는 마치 한 사람의 취미와 같이 그 사회의 사람들이 스스로 즐기고 원하여 스스로 창출해낸것들이 축적되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대시대에 와서는 이 문화라는 것이 자신들이 아닌 보여지는 자들에 의한 선전물이 되고 외부의 것, 남을 위한 생산품이 되어버렸다.
그 스스로 즐기는 것들이 문화가 된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보여지는 것을 위해 연출하고 포장하여 만들고, 단지 '문화'라는 이름딱지만 붙여서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로 우열을 따지는 자의식의 기구로 사용되니 현대의 문화라는 것이 PC라는 것에서 보이듯 결국엔 심히 뒤틀리고도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퇴폐적인 대중문화라던지 정치적올바름이라던지 이래저래 그 분석과 원인에 대한 말이 오가지만 사실 대개 피상적인 분석일 뿐 개인적으로는 진짜 원인은 이것이 아닌가 한다.


결과적으로 접근되어지는것만이 수용되고 움직여지니 정상인류들조차도 점점 계집처럼 수동적으로 되고 유아적으로 퇴행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