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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하멜이 본 조선왕국기의 노비 1


종은 인구의 반이나 더 된다.

중요한 사람들은 토지 재산과 노예(slaven)에 의해서 수입을 얻는다. 개중에는 2,3천명의 노비를 소유한 자도 더럿 있었다.


자유민이 여종(slavin)과 아이를 낳거나 남종이 자유민과 아이를 낳으면 그 자식은 어느경우에도 종이 되기 때문이다. 종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여종(slaven)의 소유가 된다.


조선왕국기의 노비 2


주인을 죽인 종은 고문해서 죽이는데 이에 반해 주인은 사소한 이유로도 자기 종을 쉽사리 죽여도 된다. 


종들은 자기 자식들을 거의 돌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식이 일할 만한 나이가 되면 주인이 데려가버린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비 가격 : 저화 4천장, 쌀 20섬, 논 20두락(1헥타르)의 소출


17세기 경상도 산음, 단성, 울산, 대구 호적의 노비 인구 비중은 42-49%, 1663년 한성부 북부 호적에서는 무려 73%


1478년 " 지금 백성 가운데 노비가 8, 9할이고 양민은 겨우 1, 2 할에 불과하다.


노비의 인구 비중

• 17세기 경상도 산음, 단성, 울산, 대구 호적의 노 비 인구 비중은 42-49%

• 1663년 한성부 북부 호적에서는 73%

• 1478년 "지금 백성 간운데 노비가 8,9할이고 양민은 겨우 1, 2할에 불과하다."

• 15세기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노비가 거의 절반

이다"


• 1680년대 이후 급속히 감소


조선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국민 노비화는 국가가 전 산업을 관장하고 자원과 산물을 분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이익을 죄악시하고, 초과이윤이란 요상한 개념을 만들고, 자본은 범죄시한다 


'평민, 노비가 돈을 벌면, 아니 돈을 벌 자유로운 기회를 주면 신분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술자, 상인을 천시하고 육성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기술을 천시하게 되고, 공무원 시험에만 목을 맨다 


'자유와 경쟁의 가치'를 부정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경쟁과 노력을 막으니 머스킷에서 막혀 버린 것이다 


21세기인 지금도 꽉 막힌 사고를 하는 조선인들이 아득히 많은 걸 보면 DNA와 유전자는 질겨도 너무 질기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상기 시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