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채널

한국이라는 곳은 진짜 세계와 유사하게 겹친 분열적이고 동떨어진곳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한국의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한국에서 한국의 세례를 받지 않은채 자기 영혼을 지키며 정서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해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강해야 되거나, 운이 매우 좋아야 하며 한정된 레일에서만 살아야된다


약할수록, 운이 없을수록 레일은 한정적이게 된다. 또 강한존재라 할지라도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층위속에서 입체적으로 깊이있게 살다보연 필연적으로 내상을 당하게된다.


시기의 정도와 그라데이션의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손상은 필수다. 근본적으로 한국에서 손상없이 살려면 한국인처럼 되어야만 한다



다양한 패턴 밖에서 한국인들과 같이 오랫동안 지내게 된다면 한두번 운으로 피할수는 있어도 필연적으로는 내상을 받게된다. 한국인들처럼 되면 두번 다시는 회복할수 없는 내면의 어떤 요소를 잃어버리고 오직 메뉴얼과 의식주의만 남는다. 즉 영혼을 잃는것이다



영혼있는 존재가 한국에서 한국인들이랑 사는것은 마치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터에서 걸어가는것과 같다. 처음 몇발은 운좋게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장터 속에서 계속 걷다보면 언젠가는 상처를 받는다. 정적으로 패턴 속에서 살지 않고 동적으로 다양한 모양 속에서 선형적으로 살다보면 무조건 내상을 받게된다.


자신을 숨기면서 정적으로 메뉴얼적 의식에 의해 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며 동적으로 살게 된다면 무조건 내상을 입고 손해를 보게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비선형적인 영감과 창의를 일으키려면 정서적으로 이완되어야 하고 마음문을 열어야만되고 시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가치를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비를 풀어버리면 쥐새끼같은 한국인들은 즉시 인지하고 남을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 '침투한다'


남이 무형의 정신적 가치를 만든것에 끼어들어 기생충처럼 착취하거나 도둑질하고, 정서적 이완상태를 보고 지배하려 하는것이다


피해자는 상처를 겪으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의 사고를 딱딱한 패턴에 구속시킨다. 착취의 상처로부터 피하기위해 스스로를 거세시키는것이다


또 마음문이 열려있던만큼 데미지도 크기에 폭력이 그 루트와 연관-각인되어서 다시는 정서적 이완 및 영감적 사고를 할수 없게 된다. 문이 크게 열릴수록 폭력에 의한 상처는 크고, 폭력이 클수록 문이 더 강하게 닫히게되는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의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시간속에서 눈에 안보이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것만 추구하게 되고 요식적이게 되고 일용주의적이게 된다. 영감이나 사고가 선으로 이어지며 구조가 만들어지기보다는, 언제나 점으로만 존재할뿐이고 메뉴얼적이고 삶이 요식주의적, 기회주의적으로 된다. 왜냐하면 선으로 잇는 도중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느니 그냥 아예 안하는것을 택하는것이다






한국과 엮이면, 엮이는 그 자체만으로 정서적, 정신적, 어떤 식으로든지간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는다. 컨택트 자체가 딜레마가 되는 악마적 존재들이다


한국이라는 존재를 겪으면 방어, 승패, 이득에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격, 교양, 수준까지 전부 떨어뜨리게 된다. 즉 한국을 겪으면 결과랑 상관없이 한국인처럼 된다.


한국이라는 존재와 논쟁 등에서 이기려면 인간으로서 가진 소중한 가치를 포기해야되고 상대방에 맞는 저질 수준까지 내려가야되고 엄청나게 소모적인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패배하면 치명적으로 손해보지만 기어코 승리해봤자 한국에게는 별 타격이 없이 그냥 흘러 지나간다.


이겨봤자 결국 남는것은 한번 떨어져 다시는 못올라가는 인간의 격과, 흙탕물 속에서 천박하게 싸웠던 부끄러움과, 상처와 자괴감, 그리고 끝없는 소모전을 통한 공허함뿐이다.


엄청난 치킨 게임에서 이겨봤자 애초에 구도 자체가 사이비 종교인들의 소모전처럼 형성되기 때문에 한국은 아무 손해도 없다.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 데미지조차 없다.


한국과의 게임은 패자가 잃는게 아니라 가진자가 잃는 성격을 가졌다



한국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면 패턴과 메뉴얼과 의식주의가 있어야하며, 행위의 행간에서 작동하는 정치로부터의 익명을 위한 형식이 있어야만 한다


영혼이 있는 존재는 먹잇감이 될 뿐이며, 쉽게 드러내거나 시간속에서 가치를 위해 마음문을 여는 존재도 착취만 당할뿐이다


한국인의 사악함은 동전 아랫면과 같다. 되받아치기 힘든 형식을 근거해 정치적으로 상대를 요리한다. 목적은 수단이고 사실 수단이야말로 목적이다


그래서 그것을 방어하려면 형식들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영혼과 자유를 자연스레 잃는것이다



한국이라는 비닐하우스에 살려면 한국의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면 인간 영혼의 절대적인 가치들을 영영 잃게된다


그리고 관계속에서의 상대적인 가치들을 얻게 되는것이다.


상처 안받고, 돈많고, 안전하고, 친구 많이 사귀고, 인싸가 되고, 직장생활 잘하고, 자격증이나 학력을 잘 취득하는것 모두 관계속에서만 유지되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가치들이다. 이런것들은 언제든지 만들어낼수 있다


반면 개성이나 영혼이나 자유나 사랑, 명예, 긍지, 따뜻한 마음 등은 절대적인 가치들이다. 한번 거세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한국이라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려면 비닐하우스 밖에서는 안개처럼 사라지는 일회적인 가치들을 위해 영혼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도덕 교조만 남아있는 고장난 불구로봇이 되는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해외로 가도, 자유가 주어져도 회복이 몹시 힘들다


불구가 된 존재는 아무리 울부짖으며 이전의 행위들을 해도 공격받지 않는다. 왜냐면 영혼이 없으니 착취할 꺼리로 안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