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reader/37087857?p=3
누나?
왜 누나한테 못 가게 해요?
누나 저기 있잖아요.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한수영이 서 있었는데, 왜 이제는 누워 있지?
가엽게도 그 아이는,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랬기에 그 아이는, 닿지 못할 이를 향해 달리고 손을 뻗는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누나? 누나.. 누나.. 어딨어요? 나 무섭게 하지 마요."
아이의 울음소리는 인파에 묻혀 자신의 몸피를 지워갔다.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몸에 가지고, 아이는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얼핏 들은 말로는 냉동 인간이 되어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지만, 김독자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하여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
"독자 씨! 자네의 공이 크네. 드디어 우리가 완벽한 해동 기술을 개발했어! 대통령께서도 자네의 공을 치하하시며, 가장 먼저 해동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네!"
기존의 냉동인간은 세포가 얼어붙어 조직 점막이 파괴되어 일어나서 성형 수술을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번에 그들이 개발한 것은 '넥타르'라고 이름 붙인 약물을 이용해 조직 점막의 파괴를 막는 완벽한 해동 기술이었다.
그야말로 기적.
인간이 행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던 완전한 '부활'의 기적에, 전 국민은 대흥분 상태였다.
".. 그런가요.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소장님."
"내가 이끌긴 무슨. 독자 씨가 개발한 '넥타르'가 아니였다면, 모두 의미가 없었을 걸세. 정말 고맙고 축하하네."
연구소장 한명오가 파리한 낯빛으로 맑게 웃으며 독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동료 연구원인 유상아 또한 정말 축하한다며,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겠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 그녀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며 한명오는 팡파레를 울렸다.
"독자 씨, 그래서 가장 먼저 해동시킬 사람은 정했나? 들은 바로는 자네, 예전에 은인이 있었다며."
.. 은인.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독자야, 넌 뭘 좋아해?」
「밥 먹으러 가자.」
아냐.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아.
매 밤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김독자는 한수영이 차에 치여 죽는 꿈을 꾸었다.
공포에 질려 떨었던 것은 2년 째요,
결국 무덤덤해진 것은 5년 째요,
꿈에서라도 그녀를 구하려고 시도했던 건 7년 째요,
그럼에도 그녀를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매번 좌절하는 건.. 지금까지.
"괜찮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보면 되죠."
"그래? 하긴 그거야 그렇지. 독자 씨 마음이니까. 고민 좀 해 봐. 솔직히 맘같아선 지금 회식을 열고 싶지만, 밤도 너무 늦었고. 다들 퇴근합시다!"
한명오는 그렇게 말하고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으며 허겁지겁 연구소를 나갔다.
짐을 정리하던 유상아가 싱긋 웃으며 김독자에게 말했다.
"어때요, 독자 씨. 밤도 늦었고, 이럴 때 술 한 잔 하기 좋은 무드.. 아닌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어째서 그것을 허락했는지는,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김독자는 그것을 허락했다.
".. 그럴까요."
어쩌면 기댈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아니면 술을 퍼마시고 모든 걸 잊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그 결과가, 지금 자신 앞에 무방비로 취해 잠들어 있는 유상아라니.
김독자는 술값을 계산하고 유상아를 들쳐 업었다.
"유상아 씨, 집이 어딥니까."
"독자 씨 지금..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시려고요? 그래서.. 뭐.. 하시려고요?"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유상아 씨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저도 집 갈 겁니다. 잠은 좀 자야죠, 저도."
유상아는 대답이 없었다.
취중에 부른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녀를 침대에 뉘인 김독자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들이켰다.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하다니.
".. 슬슬 가볼까."
떠나려는 김독자의 소매를 잡아챈 건 유상아의 희고 고운 손이었다.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유상아는 반쯤 눈을 뜨고 배시시 웃었다.
왠만한 연예인보다 예쁜 유상아가 짓는,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도 혹했을 법한 그 미소에 김독자는 잠시 마음을 놓았다.
적어도.. 어떤 이유에서 자기를 이 곳에 데려왔는지 알 것 같으니까.
"유상아 씨. 분명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너무나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 의외네요, 독자 씨. 그런 질문도 다 하시고."
유상아의 침대 밑에 걸터앉은 김독자는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런 그를 보고 유상아는 걸치고 있던 양복 상의를 벗고, 스타킹을 벗었다.
어쩐지 고독하고 외로워보이는 김독자의 넓은 등을, 유상아는 그렇게 힘껏 껴안았다.
".. 유상아 씨.. 지금.. 뭐 하시는.."
"외로운 거잖아요, 독자 씨.."
뒤를 돌아본 김독자의 양 볼을 잡고, 유상아는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떼려는 그의 머리를 붙잡은 유상아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곧 유상아의 입술이 열렸고, 김독자의 입술도 열렸다.
두 개의 혀가 서로 얽히고,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아.. 독자 씨.."
"이러시면 안 됩.."
"한 달 동안 한 번도 안 푸셨죠? 때때로 풀어줘야 하는데.."
유상아의 말에 김독자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그녀에게 한 팔을 잡힌 후였다.
"잠깐.. 유상아 씨.."
- 담편은 야설 탭에 올려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