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수능이 끝나고 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이 피부에 파고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래?"

"그냥 공원이나 걷자."



내 말을 들은 이길영이 미소지으며 제 주머니에 든 내 손을 어루만졌다.


"넌 수능 잘 봤어?"

"...서울권 대학은 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나는... 재수해야 할 것 같아."


이길영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길영의 손을 놓고 그의 주머니에서 내 손을 빼냈다.


"...유승아?"

"..."


내가 말 없이 그를 바라보자, 이길영이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야.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미안."

"뭐가, 뭐가 미안해. 네가 나한테 미안할게 뭐가..."

"우리 헤어지자."


털썩.


이길영이 힘없이 땅에 주저앉았다.


"...내가 재수해서? 그래서 그래?"

"...응."

"그걸 못 기다려?"


이길영이 상처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대체 왜..."

"미안."


재수. 어린 나이에는 그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아니까.


"우리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너 수능 평균이 7등급이잖아. 올라봐야 얼마나 오르겠어? 솔직히 이제 현실적으로 생각..."

"그만... 그만 해."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 줄 수밖에 없었다. 네가 집중하기를 바래서 헤어지자고 하는거야말로 너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거니까.


"그래... 네가 그렇지. 사랑받는게 얼마나 행복한건지 모르지? 평생 행복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왔으니까."

"그래, 난 유복하게 잘 자랐어. 반면에 너는 부모님 죽고 이모랑 이모부한테 사랑도 못 받고.."


순간 이길영이 나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더니, 일어나서 나를 밀쳤다.


"어떻게 그딴 소리를 해? 네가?"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는거야."

"하, 하하..."


이길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의 밑에 쌓인 눈들이, 위에서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에 녹아갔다.


"재수... 그래, 그거 다 맞아오면 되는거지? 그러면 되는거지?"

"미안한데 나는..."

"아니, 넌 내가 다 맞아왔으면 좋아했을걸? 이런 식으로 사람 급 나누는 사람이니까."

"그래. 난 그런 인간이야. 그니까 급 안 맞는 너랑 이제 못 사귀겠다고."


비수를 꽂는건 나인데, 어째서 내 가슴도 비수에 맞은듯 욱씬거리는지 모르겠다.


이길영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 머리를 제 손으로 잡고 입술을 포개었다.


"...가볼게."

"..."


이길영이 뒤돌아서 걸어가는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고개를 들어봐도, 목도리로 눈을 가려봐도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원래도 시렸던 겨울이지만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


그 해 겨울, 나의 첫 연애가 끝났다.


*  *  *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나는 현재 SA 그룹 생명과학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유승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 안내 좀 해줘! 기본적인거 몇 가지만...


그리고 그 말을 듣기 위해 신입 연구원을 만나러 정문으로 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익숙한 얼굴을 보며, 나는 걸음을 멈춰세웠다.


"...이길...영?"


나를 봤는지, 이길영이 내게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자격없는 웃음을 그에게 흘려보냈다.


"오랜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