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미로 웹소설을 읽는 독자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전지적 독자 시점이었다.
고작 활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이야기들을 볼 때면 나는 언제나 행복했다.
스르륵.
밝기를 낮춘 화면이 내 엄지손가락을 따라 넘어간다. 잔뜩 부풀은 망상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범람했다.
'흙을 먹어라. 유중혁.'
나는 김독자였다.
'죽어라 김독자.'
유중혁이고,
'내 글을 읽어줄 독자는 이제 없거든.'
한수영이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는 황홀한 이야기의 전문을 완독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엔 끝이 있었다.
[이것은, 단 한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책갈피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표지와 제목을 눈에 담길 한 차례, 가슴을 덥힌 고양감을 삼키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쉽다. "
그럼에도 벅차오르는 아쉬움이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전독시의 에필로그는 오픈 엔딩으로 끝난다.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으라는 작가의 의도였다.
고로, 설득력은 충분했다. 전독시 다운 엔딩이고.
문제는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독자로서의 심정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해도 감정이 거부한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문득 납득과 체화의 차이점이 떠올랐다.
납득은 사실을 수용하는 과정이라면, 체화는 그것을 자기껏으로 만드는 단계다.
나에게 있어 전독시의 결말은 체화되지 않은 부정의 요소였다.
. . . 하지만 별수 있나. 나는 일개 독자에 불과한 걸.
아까도 말했듯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강요할 권리 따위.
애시당초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 세상을 쳐다 봤다.
밤이 늦었음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전등이 많았다.
바쁜 일상.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 소설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잠이나 자자."
그래서 이만 수면을 취하기로 했다. 어쩌면 기계적인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
.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전지적 독자 시점에 빙의한 상태였다.
[찢어 죽여주마! 아스모데우스!]
[저 미친년 잡아!]
망할
*
우스꽝스러운 도주극이 시작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나는 눈을 뜬 직후 내가 비현실적인 판타지 세계에 떨어졌음을 자각했다. 조망권을 침해하는 아파트도, 차도를 매운 자동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날개 달린 천사와 뿔 달린 악마들이 미친 금수처럼 서로를 할퀴고 있었으니. 애써 부정하며 볼을 꼬집어도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이쯤 되면 인정 해야한다.
양산형 라노벨에서 있을 법한 이세계 전이.
그것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비현실적인 사태에 침착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전장이 현실로 다가오자 감각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가장 먼저 청각이 돌아왔다. 죽어 가는 이들의 귀곡성이 들려왔다.
연달아 커진 콧구멍이 지릿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뽀얀 피부가 전장의 열기에 몸서리쳤다.
. . . 응? 뽀얀피부?
깨달음은 순차적으로 온다고.
나는 그제야 내 신체가 변화했음을 자각했다.
거울. 거울을 보자.
- 쿠웅.
때마침 하늘에서 떨어진 드래곤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었다. 줄어든 몸으로 쪼르르 걸어가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나를 응시했다.
[이게 나?]
고스 로리 차림의 유녀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제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음. 여자가 됐군. 아무래도 일반적인 이세계 전이가 아니라 빙의인 듯 싶다.
[오히려 좋아.]
미적으로 훌륭한 외모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크흑! 너 누구야 . . .]
드래곤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거체를 자랑하는 흑룡이 기어코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나는 도망치려 했으나, 머릿속에서 들려온 기계음에 발목을 붙잡혔다.
['심연의 흑염룡'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심연의 흑염룡.
내 최애 소설에서 나오는 등장인물.
그리고 익숙한 메시지 창.
낯익은 설정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성급한 추리의 결과를 입안에 머금었다가 긴 숨과 함께 뱉어냈다.
[설마 ■■■ ■■ ■■?]
[뭐?]
[아, 아니예요.]
확실하다. 필터링 기능까지 구현된 것으로 보아 의심의 여지 없이 전독시다.
. . . 큰일 났네.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전독시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다. 일개 화신부터 성좌까지 픽픽 죽어 나가는 비극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란 말이다.
그래도 최애 소설 아니냐고?
진격거가 좋다고 조사병단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전독시에 막 빠져 있었을 땐, 유중혁 뺨치는 외모의 기준이 궁금해 그런 마음을 품었지만.
막상 빙의하니 마른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져라. 악마■끼들.]
천사가 쌍욕을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 . .
이제 보니 눈 앞에 펼쳐진 종말론의 재현은 에덴과 마계가 합작한 거대한 시나리오였다. 여타 성좌들은 보이지 않았으니, 아직 본편 시점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시나리오가 혹시 성마대전인가요?]
[그럼 뭐겠냐?!]
내 얼빠진 소리에 흑염룡이 기함을 토했다.
부상이 심한지 작은 움직임에도 설화 파편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곤란한 목소리로 흑염룡이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너 어디 편이야? 혹시 절대선 소속이면 가만 안 둔다!]
흑염룡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착하게 답변했다. 손에 든 클로와 유중혁 뺨을 칠까말까 하는 외모를 봤을 때, 내 정체는 아마도 . . .
[절대악이예요.]
"정말이냐?"
[심연의 흑염룡이 거짓간파를 사용합니다.]
[거짓간파가 해당 발언이 진실임을 확인했습니다.]
"좋아. 악의 편이군."
흑염룡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뱉으며 펑 소리와 함께 폴리모프 했다. 연기 속에서 비대한 몸뚱어리가 압축프레스기로 누른 듯 찌그러졌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조조서기를 한 잘생긴 소년이었다.
[크큭, 하등한 마왕이여. 이 몸의 변신을 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
영광은 지랄.
중2병 발언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전장을 살폈다.
조금 전 폭발로 어그로가 끌렸는지 마왕들이 벌레 떼 처럼 모여 들고 있었다.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흑염룡 성격상 진영 가리지 않고 깽판을 놓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누가 봐도 흑염룡과 한패로 보인다 . 게다가 본래 몸 주인. 아스모데우스의 평소 행실을 고려하면 . . .
[불화의 군주가 심연의 흑염룡과 당신에게 적의를 드러냅니다.]
[뱀지옥의 군주가 . . . ]
[거짓과 비밀의 사색가가 . . . ]
[헤아릴 수 없는 엄격이 . . . ]
[예제공이 . . . ]
.
.
.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 창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나는 황망한 마음에 말했다.
[같은 절대악 아닌가요?]
[크큭. 진정한 절대악은 니편 내 편 할 것 없이 전부 유린하는 법이지.]
그럴듯한 개소리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 빨리 이 상황이나 해결하시죠.]
흑염룡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 . . 지금은 좀 곤란한데. 개연성을 다 써버려서.]
[. . . ]
[큭. 내 왼팔의 봉인만 풀 수 있었어도!]
흑염룡이 허세를 부리는 사이. 마왕들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몰라도 흑염룡은 여기서 화신체를 잃으면 곤란하다. 최후의 성마대전이 시작되는 그날, 흑염룡은 김독자 컴퍼니와 함께 선악에 대항하는 존재니까.
가뜩이나 불리한 격전에서 세계 최강의 중2병이 빠지면 정말 큰 사달이 날 수도 있다. 자칫하다간 김독자의 이야기가 결에 닿지 못할 수도 . . .
[야! 내 말 무시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뭐야! 이거 안놔?!]
나는 흑염룡을 어깨에 들쳐 안고 마왕들이 드글드글한 전선의 반대편으로 도주했다.
[싸울 힘도 없는 도마뱀은 닥치고 계시죠.]
나는 아등바등대는 용 새끼를 한 대 쥐어박았다. 기절한 흑염룡이 축 늘어져 한결 편안 해졌다.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마왕들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잡아 죽여!]
아, 고달픈 신세여.
부디 언젠가 독자한태 내 공로가 인정받기를 바라며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