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건전한 뇌파를 뿜어대는 남자는 누구인가?

다소 특이하게 얼굴을 꾸민 듯한 저 남자는 아마도 세상에 마지막 남은 인간이다.

약 2개월 전, 발견되어 오르쿠스급 잠수함 ‘오르카 호’의 함장, 철충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저항군의 신임 사령관.

이름은 아직 모른다. 나 같은 일개 사병에겐 머나먼 사람..

이라기엔 오다가다 마주쳐 인사하고 대화한 일도 많아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사령관을 발견하여 유력해진 21스쿼드, 나보다 조금은 앞서 합류했다는 마리 대장과 나누는 이야기가 많은 터라

나 같은 것과 대화할 시간은 없는 거지.

그래도 지독한 사람은 아니고 사람 좋은 사람이란 것쯤은 타고나고 도망다니며 얻은 눈치로 쉽게 알 수 있다.

 

너무 사령관님 이야기만 했나? 나는 어땠던가?

나의 합류는, 이 커다란 오르카 호 거주 시설 곳곳에 퍼져 있는 여느 바이오로이드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흔하디흔한 일이다. 아니라면 말고.

저항군이 있다는 거야 누구나 알았다. 당장에 나와 동행하던 쫄따구들, 브라우니들은 저항군이 안전할 것 같다며,

다른 브라우니들과 더 떠들고 싶다며 실실 웃으며 저항군이 지나갔다는 길을 따라가 무리를 이탈했다.

내 옆에서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던 레프리콘도 내가 보내줬다.

가고 싶어 보였기도 했지만, 무작정 돌진하는 브라우니 무리가 길을 잃어 철충이라도 만나면 죽을 게 뻔했으니까.

나는... ... 그냥 싸우기 싫었다. M-5 이프리트 기체 특유의 귀찮아하는 성격 탓인지, 내가 이상한 건지는 관심도 없다.

명령도 안 들어도 되고,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에서 머무르며 잔해 곳곳에서 자라난 나무의 이름 모를 열매도 먹고,

방치된 저장고의 보존식도 먹고 햇살을 받으며 누워 낮잠을 자는 둥 평화롭게 지내는 게 편하고 좋았다.

아.. 합류는 언제 했냐고? 마리 대장이 나보다 조금 먼저 합류했다고 말했던가? 말했지 아마?

그래. 사령관이 있는 저항군에 오래도 살아온 불굴의 마리 4호가 합류했다는 소문.

소문이 떠돌이들에게 나돌아 흩어져 있던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이 귀신에 홀린 듯이

저항군이 정착했다는 소문이 도는 곳으로 하나둘 모여들었고, 걸어가던 브라우니에게 발견되어 끌려가듯이 도착한 곳이 저항군의 개척지였다.

그곳에 상주하며 관리하던 프레스터 요안나는 피난민들을 환영해 주었고, 나를 보곤 이프리트 기체는 이 섬에 처음 왔으며,

아마 오르카 호에도 없으리라 생각한다며 퇴역을 희망하는 나의 전투 모듈을 분리하지 않았다.

잔뜩 몰려온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가끔씩 노움, 심지어는 나보다 계급도 높은 임펫조차 퇴역을 희망하면 즉시 전투 모듈을 분리하고

농경지 개간에 인력을 보태러 보내졌으나 나 만은 사령관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안된다며 못 박았다.

그렇게 오르카 호에 연락하고 사흘이 지나서야 그 거대한 잠수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르카 호에서 하선한 사람, 콘스탄챠, 불굴의 마리. 소문은 사실이었다.

높디 높은 사람을 보면 겪게 되는 특유의 긴장으로 쭈뼛쭈볏하던 나는 개척지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내는 웅성웅성거리는 말소리는 들리면서

정작, 주요 인물인 남자가 요안나와 인사하고 신나게 나누는 대화는 듣지 못했다.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와중에 묘한 시선이 느껴져 서서히 움직인 눈은 사령관 두 발치 뒤에서 명백하게 나를 쳐다보는 불굴의 마리를 보았다.

세상에. 뭔가 심상치 않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후드의 그늘에 흐르는 땀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잠시 응시하던 불굴의 마리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곤 사령관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내가 뭘 했는지는 몰라도 내가 잘못했으니 나를 용서하고 제대 시켜달라 빌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남자는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반가워. 네가 이프리트구나?”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전투 모듈을 받고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승리! 병장! 이프리트!”

제대로 경례했다. 극도의 긴장감에 실수할 뻔 했으나 나는 살았다.

아니. 실수다. 생각과 언행이 반대로 된 게 틀림없다.

나는 전역하고 내 뒤에 있는 똘똘하여 마음에 드는 레프리콘과 밭이나 갈고 지내고 싶다.

그러나,

“역시 훌륭하군. 스틸라인의 모범이야.

사령관님, 아직 오르카 호엔 M-5 이프리트 개체가 없습니다.

그녀가 합류하면 스틸라인은 더욱 다양한 전략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불굴의 마리의 입에서 나오는 그 충격적인 말을 듣고, 그 뒤는 듣지 못했다. 선 채로 기절했으니까.

깨어보니 바닷 속이었던건 누구나 예상 가능할 것이다. 젠장.

 

저항군에 합류하고 얼마나 시간이 갔던가? 슬슬 다양한 바이오로이드들이 합류한다.

얼마 전은 CS 페로 개체가 합류했다. 썩 귀엽지만 진짜 고양이 귀가 달려 가짜 토끼 귀를 단 나의 입지가 위협받는 느낌이다.

이 위협이 진짜고 나는 퇴역하면 좋겠다.

이제 이프리트 개체도 나 말고 더 있으니까 싸우기 싫은 나를 더 붙잡아 둘 이유는 없지 않아? 사령관님 제발.

종종 출격하여 무거운 포를 들고 뛰어다니며 싸우고 돌아와 쉬는 저에게는 더 큰 쉼이 필요합니다.

그러던 와중, 사령관님의 호출이다. 이건 기회야. 안전한 후방으로 도망칠 기회. 어째서냐고?

오르카 호의 거주 시설은 수용 인원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상황이다.

빈 선실을 개조하여 수용 시설을 늘리고는 있지만, 정도가 있지.

한 번 대규모 전역 이벤트가 일어날 타이밍이다.

이젠 이프리트도 많다.

포츈과 그렘린이 지원하는 전투 모듈 분리 시술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도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브라우니에게 들었다.

이건 틀림없이 나의 둘도 없는 전역 행사다. 그동안 싸워온 나의 공을 치하하려는 거겠지. 후후..

그동안은 들어갈 수 없었던 사령관실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방. 그 방 안은 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령관님과 마리 대장님, 콘스탄챠, 얼마 전 합류한 페로(귀엽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포츈.

대화가 끝나고 바로 모듈을 분리하기 위함인가?

“승리! 병장 이프리트! 사령관실에 호출받아 왔습니다!”

이 차디찬 바다 속에서도 땀으로 목 뒤가 축축하지만 당당한 얼굴로 사령관에게 경례를 한다.

음, 쇼..아니지 완벽하게 잘했어.

“어, 승리! 이프리트, 내가 너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좋아, 이거야! 어서 나를 전역 시켜줘!

“이걸 받아줬으면 해. 포츈?”

엥? 받으라고? 포상인가? 그렇지, 포상인가봐.

그리 생각하고 받아 든 것은 뭔가 복잡해 보이는 전자 기기 비스무리한 무언가 다섯 개.

“그, 사령관님? 이건..?”

“M-5 이프리트의 전투 모듈이야.”

네? 사령관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죠?

“이프리트는 다른 동일개체들보다 먼저 합류하고 많은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으니까.”

그건 이해가 갑니다 사령관님. 그런데 포상으로 어째서 이걸 나에게 주시는지..

어이없음과 불안함의 눈으로 사령관을 간절히 쳐다보았지만,

사령관은 그걸 느끼고 못하고 기뻐 감격했다는 얼굴로 나에게 이어 말한다.

“이프리트는 이 모듈을 링크하고 임관해주었으면 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프리트 하사!”

“저의 추천이지만 이 진급은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자부합니다.

그녀가 합류한 이후, 부상병의 숫자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사령관님의 지휘 능력이 발전한 것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과감한 포격 능력과 현장에서 위험이 감지되면 돌진하는 병사들에게 우선적으로 후퇴 지시를 하고

가장 늦게 전장을 빠져나오는 이타적이고 안전지향적인 그녀의 현장지휘가 기여했음 또한 사실입니다.

거기에 병사와 간부 모두에게 평판 또한 좋으니 그녀가 코어 링크 후 진급하여 간부로 활약하면 오르카 호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사령관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마리 대장님? 제가요?

빨리 쏘고 도망치고 싶었던 건데요?

땅에 고정된 포신을 빼려고 삽질하느라 늦게 빠져나온 건데요?

저 퇴역하고 싶은데요?

이프리트는 묘한 압박감에 미처 말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입을 앙다물고 눈의 생기를 잃은 이프리트는 결의에 가득 찬 군인의 눈이라는 칭찬을 받고,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모양새로 포츈과 그렘린에 이끌려 정비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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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안녕하세요.

글 한 번 써본 적 없는 라청년입니다.

허구헌 날 챈들락날락하며 념글이랑 창작탭 눈팅만 하던 유령입죠.

문학이랑 만화에서 코어링크에 관해 서술이 제각각인걸보고 내가 이해한게 맞나 싶어,

아쌉에 이런 질문을 했는데 의외로 정확히 이해했다는 답변을 받은데다

챈 아쌉 정리글에서

  

라고 칭찬해 주시니 기분이 좋아져 글 한 번 써봤습니다.

별 건 아니고 그림판 낙서 귀엽게 봐주시니 고맙고 처음 싸본 2차 창작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감사합니다.

힘내라 이뱀! 아니 이하사!

"네?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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