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작가 편의주의와 개연성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1. 개연성과 리메이크

 

 

 

아는 작가와 술 자리를 하는데 그 친구가 말합니다.

 

"형, 이번에 제가 잘 나가는 소설 분석하려고 읽어봤는데 아니 글쎄 주인공이 유니크 직업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한번 걸었다고 그냥 받아요. 이게 말이 돼요?"

 

이 친구가 개연성에서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최상위권 소설인데 개연성이 없다는 것이죠.

길가다 말 걸었다고 받으면 다른 수 많은 사람들도 받았어야 정상입니다.

유니크 직업을 준 그 사람이 특별하게 주인공 앞에만 나타났다던가 하는 떡밥이 있었다면 그 작가 친구가 그렇게 열 올리며 분노할 이유는 없었겠죠.

소설 내에 그런 최소한의 장치도 없이 그냥 유니크 직업을 줬답니다.

 

"주인공이 착한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행동을 해서 준 게 아니고?"

"아니요. 그냥 말 한번 걸었다고 줬어요. 근데 더 웃긴 건 독자들 중에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예요."

 

이 친구가 한번 더 놀란 이유는 댓글을 아무리 뒤져봐도 개연성을 지적하는 댓글이 없다는 겁니다.

댓글을 뒤져봐야 할 정도니 어느정도 인기가 많은 작품인지 아시겠지요.

 

사실 이 때는 '아, 그런 소설이 최상위권이라니 신기하네.'하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이 대화가 1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가끔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최근에 작가 커뮤니티를 보다가 어떤 분이 쓴 글을 보고 이 대화가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소설은 재밌으면 된다. 사실 독자들은 크게 개연성을 따지지 않는다."

 

이 말 때문에 개연성은 기본중에 기본인데 뭔 개소리냐라고 댓글을 단 사람과 배틀이 붙더군요.

근데 4년째 전업 작가로 웹소설을 쓰면서 느낀건데 두 분 말이 모두 맞다는 겁니다.

개연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긴하나 사실 독자는 크게 개연성을 따지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성장하고 주변에서 우러러 보고 갑질하고 이거 보고 싶어서 보는 거죠.

내 소설만 보는 게 아니라 최소 수십개의 소설을 동시에 보고 있을텐데 세계관이나 설정 빠삭하게 외우면서 읽는 독자는 몇 없습니다.

가끔가다가 그런 독자가 댓글로 설정과 개연성 부분에 있어서 날카로운 댓글을 달면 작가는 고민에 잠기게 됩니다.

 

"어라? 이거 설정 오류가 너무큰데. 리메이크 해야하나?"

 

여기서 리메이크 시도해서 무한 수정의 늪에 빠져 글을 접게 되는 사람이 있고

이제와 수정하기는 늦었으니 뚝심있게 완결까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후자가 되야 합니다.

 

작가가 완벽한 소설을 쓰고 싶은 건 당연합니다.

조금만 고치면 더 잘 나갈거 같고 날개를 달 거 같죠.

근데 제가 소설을 계속 써보면서 느낀건데

이번 소설이 잘 안 풀려서 이 소재와 구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메이크 시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텐데

사실 그것도 나중에 가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소재도 플롯도 캐릭터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글은 계속 쓰면 실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차기작에서 더 잘 팔리는 소설을 쓰게 되기 때문이죠.

 

100편을 리메이크하는 것 보다 200편을 새로 쓰는 게 더 쉽습니다.

리메이크하러 들어 간 사람 10명 중 9명은 다시 돌아오지 못 합니다.

어제 쓴 글도 다음 날 보면 유치해보이는 게 자신의 글인데

수십 수백 편 써 놓고 그걸 고치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눈 딱 감고 그냥 완결까지 가는 게 최선입니다.



2. 클리셰 사용은 나쁜 게 아니다.

 

 

웹소설 시장에서 잘 나가는 작품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공식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장, 보상, 주변인들의 치켜세움

나 혼자만 레벨업이 이걸 정말 잘했죠.

끝 없이 성장하고 무언가를 해결하면 보상을 받고 주변에서 우러러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웹소설을 너무 획일화 시킨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공식을 무시하면서 잘 팔리는 소설들도 있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신 분들이죠.

클리셰를 사용하는 걸 싫어하는 분들이 있는데

클리셰란 이미 수 많은 독자들이 좋아한 부분이라고 검증된 공식이라는 겁니다.

이걸 억지로 피해가려고 하면 당연히 재미가 없어집니다.

가장 좋은 건 클리셰를 비트는 거죠.

그리고 클리셰를 비틀려면 클리셰를 많이 사용해봐야 합니다.



3. 작가 편의주의

 

 

작가 편의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F급 헌터인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고블린 킬러라는 검을 얻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고블린 킬러라는 검을 들으면 고블린들이 겁을 집어 먹고 꼼짝 못하는 무기입니다.

최하위급 몬스터가 고블린이기에 상위급 랭커인 헌터들에게는 그닥 쓸모있는 무기가 아닙니다만, 어느 날 주인공이 우연하게 이걸 줍는거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이 사는 도시에 고블린 수천마리가 게이트를 타고 쏟아져 나옵니다.

 

이걸 본 다른 작가들은 비난하겠죠.

그건 너무 작가 편의적으로 쓴 거 아니냐.

길가다 그냥 얻은 무기가 하필 고블린 킬러라는 무기라니.

아까 말했듯 독자들은 그런 거 신경 안씁니다.

 

어라 주인공이 고블린 킬러를 얻었는데 고블린이 나타났네?

다음 편에서 고블린들 다 죽었다 ㅋㅋㅋㅋ 라고 댓글을 달며 다음 편을 기대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활약과 보상 그리고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걸 보고 싶어서 기꺼이 100원을 투자하고 다음 편을 따라오겠죠.

 

이렇게 작가편의주의로 쓴 글이

내 소설 세계관이 이렇게 대단해! 라고 자랑하듯 세계관 설명하는 소설보다 조회수가 높아집니다.

그럼 그 작가는 이렇게 생각하겠죠.

저렇게 편하게 쓰는 클리셰 덩어리 헌터물이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 소설보다 위로 올라가다니 말도 안돼! 열받아!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요리로 치면 내 식당 음식은 좋은 재료 다 때려박았는데 옆 가게는 MSG팍팍 뿌린 인스턴트 음식 팔아서 나보다 장사가 더 잘되는 기분이랄까요.

손님이 원하는 건 맛있는 음식(재미)인데 작가들 중에는 재료(탄탄한 설정, 탄탄한 세계관)가 좋으면 맛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죠.

이 부분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지망생이거나 신입 작가일 수록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내 소설은 세상 재밌는데 왜 조회수가 안 늘어날까 고민합니다.

저 위 소설들은 저렇게 유치한데 왜 인기가 많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그 소설이 유치한 게 아니라 가볍게 읽히도록 작가가 설계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독자는 웹소설을 볼때 머리를 비우고 봅니다.

외워야 될 거 가득한 참신한 세계관의 소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주인공이 강해지네? 뒷 내용이 기대된다

주인공이 적과 싸우네? 보상을 받겠다 그리고 그걸 요긴하게 쓰겠네

주인공이 적에게 이겼네?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겠지 그 부분이 기대된다

이렇게 말초를 자극하는 부분.

카타르시스를 받고 싶은 겁니다.

정식적인 쾌감을 얻고 싶은거죠.

 

저도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세계관에 집착해서 설정만 한 달을 짜고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쓰다가 잘 안됐습니다.

잔뜩 준비하고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 세계관 자랑을 막 하고 싶고

참신한 세계관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설명만 한 가득이 되고

그러니까 재미가 다른 경쟁 소설보다 떨어져서 조회수가 낮아집니다.

그래서 말아먹고 차기작은 머리 비우고 설정 대충 잡고 시작했는데 힘주고 쓴 소설보다 더 잘 팔립니다.

그 다음 작품은 욕심이 나서 다시 힘줘서 써보자라고 생각하고 썼다가 또 말아먹고

그 다음은 힘빼고 소설을 썼는데 또 이게 잘 팔립니다.

이게 반복입니다.

 

다른 작가들도 흔하게 말하더군요.

힘 잔뜩 준 소설보다 힘 뺀 소설이 원래 더 잘 팔린다고요.

왜냐면 독자들은 힘빼고 읽기 때문이죠.

 

물론 전독시 같이 힘 잔뜩 주고 시작하는 소설이 잘 팔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신 그런 경우는 작가가 그만한 노련함이 있기 때문이죠.

수 년간 갈고 닦은 내공이 있기 때문에 그 탄탄한 설정과 세계관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 소재를 가지고 시작했다면 설명만 주구장창 하다가 독자들이 '설명충 작가 극혐!'이라고 댓글달고 떠났을 겁니다.



4. 지망생이라면 쓰던 소설을 엎지마라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를 보면 가장 안타까운게 쓰다가 조회수가 안나온다고 소설을 버리는 겁니다.

연독이 나쁘다고 버립니다.

근데 예전에 어떤 작가분이 말했듯 그렇게 계속 소설을 엎다가는 나중에 제대로 하나 얻어걸려서 조회수 폭발하는 소설이 나와도 중간에 무너집니다.

왜냐면 소설을 매번 초반만 써봤기 때문에 중반과 후반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완결 하나 내보면 글 쓰는 실력이 확 늘어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제가 소설을 3개 완결내고 4번째 소설을 쓰다가 유료화 하기 전에 버리게 됐는데 이번에 새로 쓰는 소설에서 기분 좋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전 소설보다 크게 성장한 게 느껴진다는 댓글이었죠.

 

만화가 박중기 작가님이 그러더군요.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생기는데 창작자에게 근육통은 스트레스라고 말하더군요.

글을 쓰게 되면 더 재밌는 소설 더 잘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게 운동선수가 성장하는 근육통과 같다는 겁니다.

성장통이라는 거죠.

저는 소설을 쓸때마다 매번 이전 소설보다 필력이 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글 쓰는 건 힘이 듭니다.

나는 글 쓰는게 왜 이렇게 힘들지. 왜 이렇게 스트레스 받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창작자에게 스트레스는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죠.

스트레스 받기 싫으면 창작자를 하면 안됩니다.

물론 창작자 때려치고 직장에 들어가거나 사업을 해도 스트레스 안 받는 직업은 없겠지만요.

 

같은 일을 두고 스트레스의 받는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더군요.

나는 이렇게 힘든데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조금이라도 더 쓰고 싶어서 운동도 안하고 휴식도 최소화하는데

막상 글은 간신히 하루 한편을 간신히 씁니다.

9시에 직장가서 6시 퇴근하고 7시에 집에 도착해서 부업으로 소설을 쓰는 분들도 하루 한 편을 쓰는데 참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를 본다면 전업이라면서 하루 두 편은 써야지!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전업이라면 하루 두 편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운동도 시작하고 외부로 자꾸 나가려고 합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여야지 에너지도 충전이 되니까요.

외출을 자제하고 휴식도 최소한으로 종일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자꾸 번아웃이 오더군요.

누구 말마따라 작가에게는 운동이라는 취미가 필수인 거 같습니다.

사람 헐뜯고 비난하는 커뮤니티는 정보습득 차원에서 최소한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프리랜서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필수인 거 같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좋은 노래들으면서 좋은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해서 재 충전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합니다.

 

 

추가로 한 마디 덧 붙이자면,

최근에 좋은 글귀를 봤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분명 찾아올텐데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민 + 노력 = 성장

이 공식은 어느 일에나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