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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진 방 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소년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 침대 옆의 작은 스툴 위를 더듬거렸지만 휴대 전화는 찾지 못했고, 검도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를 손으로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휴대 전화는 침대 옆 바닥에 있었다.


'이재현'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 예정인 도재화는 문득 몇 년 전 중학교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불세출의 천재로 칭송받았던 이재현은 주변에 늘 사람이 없었다. 도재화 역시 이재현과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만약 이재현이 친구가 있었다면 그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재현을 친구라 부를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다소 불명확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한두 살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재화는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재현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1년 만이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말할게. 휴교령이 내려지면 절대 집 바깥으로 나가지 마. 그리고 팔이나 다리를 물리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


이 뜬금없는 소리에 도재화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이메일로 자세한 정보를 보낸다니, 그는 이재현과 이메일 주소를 교환한 적이 없었다. 문득 이재현을 마지막으로 본 중학교 1학년 때 이후 휴대전화 번호를 한 번 바꾸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새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도재화는 알 수 없었다.


"휴교령이라니?"


1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아직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도재화는 이재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추가적인 설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재화는 전화기 너머 누군가의 희미한 신음 소리와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들었고,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것인지 둔탁한 '쿵'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전화기에 대고 아무리 외쳐 봐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도재화는 별 수 없이 전화를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며칠 뒤, 고등학교는 방학을 약간 줄여서 1월 21일에 개학을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학식 다음 날, 도재화는 평소와 같이 어머니가 출근하기 전에 책상 위에 놓아두신 현금을 챙기고, 휴대전화로 택시를 불러 학교로 향했다. 구급차 몇 대를 중간에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등교였다. 


도재화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사온 충남 공주시는 인구 11만의 작은 도시였다. 청년층이 매우 얇고 고령화가 심하게 진행된 현대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좋게 말하면 평화로웠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루했다. 도시는 조금 큰 규모의 교통사고 정도만 나도 큰 화제가 될 정도로 수십 년째 아주 얌전했다.


학교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빈 자리 여럿이 눈에 띄었다. 몇몇은 개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늦잠을 자거나 해서 조금 늦게 등교한 경우였지만 2교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는 학생들이 세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성적으로 따지자면 학교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우등생으로, 담임교사는 그를 '우리 학교에서 드디어 서울대 의대 합격자가 나올 것' 이라며 추켜세우곤 했다. 그런 그가 무단 결석이라니, 담임은 황당해하며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틀 째, 여전히 몇몇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흘 째, 도재화는 옆반의 은 현이라는 이름의 학생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은 현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현은 굉장히 내성적인 학생인 데다가 그와 관련된 흉흉한 소문이 많아 친하게 지내려는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소문 중 일부는 사실일 것이라고 도재화는 믿고 있었다. 현은 학교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교사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다만, 그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알려진 같은 반의 이화영만은 예외였다. 도재화는 현과는 별 관련이 없는 다른 일로 옆반을 방문했다가, 화영과 현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 뿐이었다.


"정신이상자가 팔을 이빨로 물었다고?"


화영의 황당해하는 질문을 듣고, 뭔가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재화는 휴대 전화를 꺼내 들고 인터넷을 하는 척 하며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현은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빨로 물었다기보다는 잇몸으로 물었지. 두꺼운 옷도 입고 있었으니 그냥 조금 멍들고 말았어. 분명 술 취한 노인네 같았는데,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순식간에 팔을 잡고 물어뜯으려 하더라. 장갑 낀 손으로 머리를 세게 치니까 나가떨어지긴 했는데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지 모르니까 가서 사과할 수도 없고..."


순간, 재화는 며칠 전 이재현의 전화가 생각났다.


'팔이나 다리를 물리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


이재현은 뭔가를 아는 것일까, 하고 재화는 고민했지만, 우연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도재화는 지난 며칠 사이 이상한 일을 실제로 겪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 도재화는 부모님이 외출하신 틈을 타 슈팅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이 게임은 두 가지의 플레이 방법이 있다. 하나는 '빠른 대전' 으로, 게임 내에서의 티어나 점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임 모드이고, 다른 하나는 점수를 따서 티어를 올리기 위해 플레이하는 '경쟁전' 이다. 도재화가 택한 게임모드는 후자였다.


분명 쉽게 이겼어야 하는 판이었다. 경쟁전에서는 점수가 비슷한 플레이어들끼리 팀을 짜게 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게이머들을 상대로 마음 놓고 플레이하는 것, 소위 양민학살을 하기 위해 고의로 게임을 지거나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서 원래보다 낮은 티어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다. 도재화의 티어는 '골드' 였지만, 그날 그와 플레이하게 된 사람들 5명 중 무려 3명은 양민학살을 즐기기 위해 '다이아몬드' 나 '플래티넘' 티어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반면 상대편은 평균 점수가 약간 낮은데다가, 대놓고 경기를 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두 명이나 달고 플레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절대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이변은 첫 번째 라운드를 2 대 0으로 이긴 이후에 시작되었다. 상대편의 플레이어 중 한명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황당한 채팅을 날리며 무시무시한 기량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혹시 고티어의 플레이어가 아닌가 의심해 봤지만, 두 번째 라운드를 2 대 0 으로 패배한 이후 도재화를 포함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그 플레이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조준을 도와주는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으리라. 채팅이 욕설로 뒤덮이자, '숨겨진오징어' 라는 닉네임을 쓰던 그 플레이어는 갑자기 반응 속도가 엄청나게 상향되었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냥 핵쟁이로 생각하기에는 해당 플레이어의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 3라운드가 시작되자, '숨겨진오징어' 는 채팅을 통해 환청과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제대로 게임도 하지 않고,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채팅에 적으며 도움을 요청하던 플레이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을 나가 버렸다. 


처음에 도재화는 소위 '컨셉충' 을 만난 것 정도로 생각했고,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게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현실에서 했다가는 바로 싸움이 붙었을 심한 욕설이 채팅을 뒤덮는 것은 기본이요, 초등학생들이 아버지뻘의 성인에게도 욕설과 괴상한 농담을 늘어놓는 곳이 게임의 세계이다. 평소대로였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재현의 말에서 어떻게든 어떤 의미를 끄집어내려 노력하다 보니 무엇인가 의미가 있는 없는 듯 느껴졌다. 재현이는 게임과 관련된 말은 한 적이 없으니 괜한 생각이겠지, 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평소보다 자주 보도되는 폭력 사건도 무언가가 있었다. 분명 전혀 보도할 이유가 없는 사소한 일까지도 두달 전쯤 철원에서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과 연관지어져 보도되곤 했다. 그 사건과 이런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일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게 아닌가, 하고 재화는 생각했다. 철원 학살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민감해졌나 보다, 정도 해석을 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이상한 점이라고 한다면 피해자 대부분은 피의자에게 물어뜯기는 부상을 당했다는 점이었다.


'팔이나 다리를 물리지 않게..."


재화는 오늘은 되도록이면 패딩을 벗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간자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도재화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학생은 뭐 갑자기 연락 안 되는 친구 없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택시 기사가 물었다. 


"...없어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재화는 반의 학생 중 무려 네 명이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 명이었지만, 오늘 한 명이 추가되어 네 명이 되었다. 이 학생의 경우 아버지와는 연락이 닿았었다.


"저도 이상합니다. 집사람이랑 아들놈 전부 어째선지 연락이 안 되네요. 어젯밤에 아들놈이 어디를 다쳐서 큰 병원에 갔다고 하던데, 듣고 보니 진짜로 무슨 일이 있는지.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50대의 중년 남성도 연락이 끊어졌다. 


도재화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재현에게 다시 연락을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같은 시각,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변동이 있었다.


'새벽의 저주'


한 세대 전의 공포 영화의 제목이다. 검색어 순위 10위에 있었던 이 이름은 순식간에 9위, 8위를 거쳐 3위로 직행했다. 도재화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재현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