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도록 체스를 두었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결국 패배의 쓴맛을 곱씹으면서 폴룩스가 내온 저녁식사를 먹었다. 그녀가 내온 생선 요리를 만족스럽게 먹고 나니 알프레드가 저택에 돌아왔다.

 알프레드는 인사를 하고 곧바로 카스톨에게 오늘 저택에 있었던 일을 물었다. 그녀는 알프레드에게 조심히 다가가 조곤조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정말 작게 말해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폴룩스가 내온 요리가 환상적이었던 것도 있었다.

 이 후, 식사를 마치자 알프레드가 나에게 다가왔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2층 안내는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누가 안내를 하든 상관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알프레드의 안내를 받고 식당을 나와 계단을 오르자 문득 아버지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과거 이 마을에 있었던 민속신앙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혹시 신경 쓰이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초상화를 너무 뚫어져라 쳐다 봐서 그런지, 알프레드가 나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초상화 속 아버지의 손에 있는 반지가 눈에 띄었다.

 “저 반지는 뭐죠?”

 “아, ‘가문의 반지’를 말씀하시는 거 군요.”

 나는 알프레드에게 가문의 반지가 무엇인지 되물었다.

 “가문의 반지는 디어혼 가문의 주인에게 대대로 물려받는 반지입니다. 이 반지에 쓰인 보석을 자세히 보시면 안 쪽에 사슴의 머리 모양과 비슷한 문양이 있어 디어혼 가문을 상징하는 반지가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초상화 속 반지의 보석을 자세히 보았다. 붉은 빛의 보석 안쪽에는 알프레드가 말한 대로 사슴의 머리처럼 보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왠지 사슴의 머리가 아닌 두개골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어제 꿈의 영향이 컸겠지.

 이윽고 계단을 다 오르고 알프레드는 가운데 큰 문을 열었다. 1층을 안내받을 땐 왼쪽부터 안내를 받아 무심코 알프레드에게 왼쪽은 보지 않는지 물어봤다.

 “원하시다면 안내할 수는 있지만, 왼쪽은 사용인들의 방이라 아마 볼 건 없을 겁니다.”

 그 말에 곧바로 납득했다.

 “또한 오른쪽은 모두 객실로 이루어져 있어, 안내를 받을 만한 곳은 이 중앙의 문을 기준으로 양 옆의 방 밖에 없습니다.”

 말을 마치고 알프레드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넓은 공간에 업무용 탁상과 손님 맞이용 소파와 테이블이 보였다. 그 외에는 일할 때 쓰이는 파일철을 모아둔 책장이나 스탠드를 올려놓은 장식장 정도이다.

 “이곳은 주인님께서 살아 생전에 업무를 보았던 집무실입니다.”

 알프레드의 설명을 듣고 나는 아버지가 사용하신 탁상에 다가갔다. 고급스러운 나무의 무늬와 섬세한 조각이 장식된 탁상이었다. 다만 탁상과 합을 맞춘 의자는 많이 낡고 헤졌다.

 감성에 젖어서일까 물끄러미 탁상을 보던 중 툭 튀어나온 서랍을 보게 되었다. 서랍을 열고 안에 내용물을 보았다. 내용물은 칼이었다.

 “셀베스님.”

 목소리에 놀라 알프레드를 쳐다보았다. 평소와 다른 매우 차가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언제나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아직 유산 문제와 사업 문제 관련 서류가 있어 이 곳의 물건은 함부로 만지시면 안됍니다.”

 알프레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나는 그에게 알겠다 말하고 그와 함께 집무실을 나왔다.

 물론 나는 그 칼을 똑똑히 보았다. 오늘 아침에 보았던 의식용 돌칼을.

 

 몇 분 후

 “이곳은 주인님의 침실입니다.”

 주인의 침실이라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가구의 디테일과 벽지, 카펫만 다를 뿐 전체적인 인상은 다른 침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위화감에 이끌려 침실 안쪽으로 가다 문득 아까 알프레드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여기에도 만져선 안 되는 것이 있습니까?”

 “아뇨, 여기에는 유산이나 사업과 관련된 자료는 없으니 마음대로 구경 하셔도 됩니다.”

 알프레드가 웃으며 답해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려고 한 창문에 다가가니 눈 앞에 넓고 안개가 낀 숲이 보였다. 조용히 일렁이는 안개를 보고 있으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주인님께서는 그 창문을 통해 숲을 보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안개가 잔뜩 낀 숲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해 보이는 것이 없어 보여 나는 알프레드에게 어째서 좋아했는지 물어보았다.

 “저 숲을 통해야 이 마을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회를 좋아하신 주인님께서는 손님이 오시는 저 숲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버스를 타고 지난 숲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 묘한 기시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곳을 보기 위해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사슴 박제가 있었다.

 그 순간, 안개 낀 숲과 사슴의 머리가 겹쳐지면서 무엇인가 떠올랐다. 도망치는 여인, 무한히 반복되는 숲, 미쳐가는 아이, 사슴의 두개골. 꿈이다. 기시감은 버스에 있을 때가 아닌 꿈에서 온 것이다.

 “셀베스님, 괜찮으십니까?”

 알프레드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괜찮냐는 말에 순간 알아채지 못했지만 인중에 뜨듯 미지근한 것이 느껴졌다. 코에 손을 대고 보니 손에 피가 묻었다.

 “괜찮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가보겠습니다.”

 방의 구조는 내가 잤던 방과 똑같으니 화장실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피는 멎었고 아픈 기색은 없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손의 물기를 닦았다.

 그러다 문득 이 화장실에 위화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창문이 없다. 정확히는 창문의 개수가 하나 부족했다. 내가 묵은 방과 구조가 같다면 세면대가 있는 벽 반대편 욕조가 있는 벽에 창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저 목욕하는 모습을 숨기고 싶었던 걸까 싶어 화장실을 나서자 곧바로 위화감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묵은 방의 화장실 폭은 방의 폭과 똑같았다. 하지만 이곳 화장실의 크기는 유독 방과의 폭이 많이 달랐다.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알프레드의 말에 아까 느낀 위화감에 더 생각 할 수 없었다. 코피 정도의 일에 너무 신경쓰는 알프레드에게 연신 괜찮다 하고 침실을 나가려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침실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의 위화감을 알 수 있었다. 저 창문이 있는 벽 바로 옆의 벽의 벽지 패턴이 아주 살짝 밀려 있었다.

 

 몇 분 후

 어제 서제를 갔다 왔기에 서제는 간단하게 안내를 받았다. 이후 방에서 읽을 소설 책 한권을 골라 방으로 돌아왔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역시 화장실의 폭과 침실의 폭은 같았다. 거기에 욕조 위 창문도 정확하게 있었다. 그리고 막상 보니 침실의 화장실이 이 곳 객실 화장실보다 좁은 것 같다.

 나는 옷을 벗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몸에 물을 끼얹는 동안 나는 오늘 느낀 이상한 느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꿈에서 본 저택 홀과 민속신앙에 관련된 여러 유물들, 그리고 께름칙한 카스톨과 알프레드의 태도, 집무실의 의식용 단검, 같은 침실 다른 화장실, 그리고 꿈과 현실사이의 묘한 기시감.

 최근 빚 독촉이나 궁핍한 삶 때문에 이런 저런 의심이 심해져서 조금 예민해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저택에 오고 나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제 읽은 책 속 민속신앙의 내용이 계속 내 머리에 맴돌아 내게 도망치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빚과 가난이 나에게 현실을 보여주며 도망치지 말라고 붙잡고 있다. 나는 점점 미쳐가는 걸까? 그저 유산만 받고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점점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 그렇다면 내일 시내로 가야 겠군.”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서자 알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샤워 가운을 입은 채 문을 열어 무슨 일인지 확인을 했다.

 문 밖에는 알프레드 뿐만 아니라 찻잔이 담긴 카트를 끌고 온 폴룩스도 함께 있었다.

 “소란스러웠다면 죄송합니다.”

 폴룩스가 말을 끝내자 나는 곧바로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실은 곧 저택의 식량이 떨어지는 지라 내일 시내에서 장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워낙 사야할 물건들이 많아 집사장 혼자서는 무리라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의논 중이었습니다.”

 “그럼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알프레드도 폴룩스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잠깐 시내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싶었습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알프레드에게 알겠다 말하고 내일 아침 8시에 저택을 나설 것이라 들었다. 문제가 해결되자 알프레드는 나에게 잘 쉬라는 안부를 전하고 본인의 방으로 떠났다.

 “참, 그리고 여기 차 한 잔 드리겠습니다.”

 폴룩스는 가져온 카트에서 차를 따라주었다. 차를 가져다 달라 주문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폴룩스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에 코피를 흘리셨다 해서 몸에 좋은 허브티를 가져왔습니다. 피로회복과 편안을 줄 것입니다.”

 나는 폴룩스에게 차를 받고 고맙다 말했다. 말이 끝나자 폴룩스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카트를 끌고 방문을 나섰다.

 그나저나 계단도 많은데 용케 카트를 가져왔다 싶어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계단을 두 번 왕복해서 카트와 그 위의 찻잔 세트를 1층에 옮겼다. 그 모습에 뭔가 안쓰러우면서 묘하게 웃겨 내 지나친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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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및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