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도심은 시끌벅적하다. 도로에는 사람 가득탄 전차가 옛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곳곳에는 중요한 기념일을 알리는듯 깃발이 개양되고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기념일에 한 사람이 도서관을 방문했다.


"아. 마르텔씨군요. 새로 구한 집은 괜찮으신지요? "


문을 열자마자 방문객한테 말을 걸어온것은 얼굴이 투명한 사람이였다. 그곳에 얼굴이 있다는것을 알리는건 안경뿐이였다.


"오랜만이에요 부관장님. 여기 혹시 녹스씨 계시나요? "


"난 왜불러? "


순간 백색 로브를 걸친 적안의 마법사가 천장에 매달린채 마르텔의 뒤에서 말하였다. 물론 얼굴에 피가 흐르는채로 말이다. 마르텔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줄 알았다


"아이고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줄 알았네..아  그거 하지 마세요"


"미안 미안~. 오늘따라 누구 심장마비 걸리는 모습 보고싶어진 기분이라서 나도모르게 저질렀네? "


아니 대체 그게 뭔 기분인데. 마르텔은 생각했다.


"근데 여긴 어쩐일이야?. 왜 안풀리는 일 있어?. 내가 도와줄까?. 마침 방금전에 로브도 깨끗이 닦았는데. "


"그 도움이 필요하긴 한데 그렇게 큰건 아니고-. 아니 근데 로브 깨끗이 닦은거랑 무슨상관인데요? "


"뭐야. 누구들 죽이는일 아니였어?. 피칠갑 할일은 아닌가보네. 아쉽다~. "


"녹스씨는 제가 살던 세계에 있었으면 분명 사형선고 받았을거에요"


여기 서있는 마르텔은 사실 완전 이곳출신은 아니다. 그는 특수한 법칙으로 인해 이곳에 온 전생자다. 본래라면 전생자라는 특성상 좋지않은 꼴을 당할테지만 다행히 집안이 고위마법사 집안이였고,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부모덕분에 한동안 차원도서관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녹스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인건 매한가지였다.


"아무튼. 도움이 필요해서 왔어요. 약 관련해서요."


"마르텔?. 난 마법사지 연금술사는 아닐텐데..?. 나한테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더 실력좋은 사람들이 있지 않아?. "


"맞아요. 맞긴한데...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흠. 설명할 필요 없겠네. 그 편지봉투 줘봐"


들켰다는듯 마르텔은 자포자기인 마음으로 봉투를 건네줬다. 편지를 읽은 녹스의 붉은색 안광이 은은하게 빛났다.


"검은태양... 그녀석들이 맞긴거구나? "


검은태양. 설명을 길게 할 필요도 없다. 마법의 신을 섬기는 집단이다. 단지 꺼림칙한점은 이 땅의 마법의 신은 이미 죽었다는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죽은 신을 섬기는 놈들은 죄다 위험한 새끼들이라고. 별빛으로 속삭이는 그새끼 아니다.


무엇보다 녹스가 싫어하는 조직이다.


"뭐. 속내는 대충 알겠고. 우리 꼬마친구 물먹일순 없으니. 도와줄게! "


"아 녹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부탁했잖아요!. 저도 이제 알건 다 안다고요"


"그래봤자 나한테는 꼬맹이. 자 따라와. 오랜만에 연금실로 가자"


마르텔은 성질을 냈지만 이내 체념했다. 녹스가 말한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본 수천년단위로 사는 마법인들은 시간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를 구분짓는다. 육체의 노화는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노화는 늦출수 있고 멈출수 있으며 조절할수 있는것이다. 세월과 인격, 지식과 지혜만이 나이의 척도다.


그런의미에서 겉모습으로는 마르텔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녹스는 사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높은 사람중 한명이라고 할수있다. 그놈의 끔찍한 취미가 아니라면 존경받는 마법사가 될수 있을텐데


"다 왔다!. 문열테니까 조심해. 안에 마법먼지가 가득해서 열자마자 에너지때문에 폭발할지도 몰라~ "


마르텔은 속으로 당황하는 기색을 감췄다. 폭발을 한다고?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푸른색 기체와 함께 먼지가 크게 터져나와 마르텔과 녹스를 덮쳤다. 녹스는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정확히는, 먼지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마법도구와 책들위에 쌓인 먼지. 참 좋다 좋아. "


"어우 씨.. 여기 청소 언제했어요?. 허 저거 뭐야. 겁나 큰 거미네!? "


그 말대로 연금실 중앙 테이블 위의 합성장치위에는 거대한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있었다. 매우 징그럽게 생겨서 인터넷에서는 혐짤이랍시고 올리면 부모님 안부가 걱정될 정도였다.


"어머 징그럽다!. 찍어서 호라이즌 네트워크에 올려야지~. "


"녹스씨!. 저번에도 이상한 바이러스같은거 올렸다가 도서관이랑 연구소 직원들 패싸움 일어났잖아요!. "


마르텔은 마치 못볼걸 봤던것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에이~ 혐짤은 괜찮아. 그도 그럴게 저번에 굿 박사가 올린 늙은 @@@의 @@@@ 사진이 올라오고 나서부터 왠만한건 끄떡도 없더라고~ "


시발 연구소 직원분들은 대체 뭘하는거야!?. 마르텔은 속으로 기겁했다. 얼마나 불결한 말이면 자체검열이 되냐고


"..어이쿠. 말하는도중에 끼어들면 안되지?. "


순간 녹스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거미가 다리를 뻗어 마르텔을 향해 휘둘렀기 때문이다. 거미가 다리를 거두자 녹스는 싸늘한 눈빛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연금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미안한데, 너가 좀 방해가 되거든?. 물론 집잃는 사람들 마음은 잘 알아. 어떻게 구한 집인데.. 자식들도 있는데.. 흑흑. 근데 말이야. 여긴 우리 건물이고, 너는 세도 안내는 불법입주자에, 집주인 지인한테 칼같은 팔을 휘두른 거미인데.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까?. 거미줄 보니까 한 20년은 산거같은데. 20년치 밀린 월세를 낼 형편은 아닌거같고, 애초에 난 거미 돈은 안받고... "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붓는 녹스가 눈을 다른곳으로 돌린 틈을 타 거미가 다리를 움직이려한다. 아주 잠깐동안 다리가 창문과 녹스를 왔다갔다 한다. 결국 다리가 선택한건 녹스였다.


물론 그 대가는 가벼운 칼자국으로 끝나지 않았다. 녹색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 너도 길게 대화하는건 싫지?. 이해해 내가 말이 좀 많았어. 그럼 짧게 말할게. 내가 녹색 물감이 떨어졌거든?. 양지바른곳에 이주시켜줄게. 그것도 땅밑에.괜찮지?. 나쁘지 않잖아?. 피만 다 주면 돼. 싫다고?. 뭐 어쩔수없지. "


자기 멋대로 질문하고 끝내는 녹스는 거미가 사람의 말을 꺼내려 하기도 전에 난도질했다. 물론 그 새끼들과 거미줄까지.


"흠. 마르텔. 이런것도 청소라고 할수있지? "


"깨끗함의 기준이 시체가 널부러진 고담시티라면 충분하겠네요. 어우 씨 비위상했-"


순간 마르텔은 두 눈을 감을수밖에 없었다. 녹스가 양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봐. 머릿속에서 지워줄게. 나 믿지? "


마지막에 내뱉은 의미심장한 말을 뒤로 하고 마르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손등위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자 됐어. 난장판도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그 구역질나는 광경도 너의 머릿속에서 지워졌어. 이제 눈을 떠봐"


눈을 뜨자 보인것은 피를 흘리는 녹스의 감긴 눈이였다. 그녀가 눈을 뜨자 잔뜩 충혈되어 대부분이 붉게 물든 흰자가 보였다.


"연금술은 잡념이 있으면 안돼. 혐짤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면 안되잖아?. "


"..그렇게 따지면 녹스의 눈도 혐짤이 아닌가요?. "


"후후. 무슨 소리를! "


녹스는 연금실의 전원을 키면서 말했다. 


"너와 내가 함께 있던 시간이 몆년인데!. 이젠 무심한 광경이 아니겠니? "


"뭐 그러겠네요. "


무심한듯 말하면서 마르텔은 책을 펼쳤다. 그래 이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마르텔은 75페이지에 적혀있는 주술 촉매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이중에 혈주술 촉매제를 의뢰했을거에요. 어디보자 재료가.."


순간 가마솥형태의 합성장치에 불이 피어오르고 물이 끓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마법약 제작법이였다.


"근데 왜 포도주와 빵을 넣는거죠?. 아직도 이해가 안가네요. "


"예수께서 말하시길, 이것은 나의 피와 살이라 하셨다. 관련이 없는건 아니지"


"예수가 누군데요?. "


"있어. 너가 살던 세계에서 채찍질하던 신님. 뭐 기억은 못하겠지만"


그외에도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 눈 결정과 동일화된 마력 결정, 말 그대로 고체화된 벼락, 인공적인 소형 천체, 그리고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메밀꽃 수십송이도 넣었다. 호라이즌 연구소에 웜홀로 연락해서 자각몽속에서 만들어진 보석을 가져와 넣고, 넓고 넓은 도서관에 널려있는 낡은책위에 쌓인 마법먼지들도 모아서 넣었다.


"이거 맞아요?. "


"다 마법적 법칙이 있는거야~ "


"아무리 그래도 농사행성에서 날뛰는 매뚜기때를 유인해서 넣는다고요?. "


아공간 웜홀을 열고 매뚜기때를 받아가면서 말하였다.


"매뚜기는 흉년의 상징이지. 그래서 일부지역에서는 신, 혹은 그의 사도로 여겨졌는데. 꼴에 신이라고 제물까지 받았다더라. "


"도움도 안되는데 신으로 모신다고요?. "


"악신도 신이잖아~. 싹싹빌면 봐주기라도 하나 싶었나보지. "


그러면서 점점 재료를 넣어갔다. 백색공간에서 1억년을 자란 신경세포나무의 가지(이것도 양산이 가능하다), 잉크마법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심장, 거대한 금속장치에 끼어있는 운없는자의 부산물, 그리고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재료를 보자 마르텔은 기겁했다.


"사람의 파편? "


녹스의 안광이 은은하게 빛났다.


"돌려서 말하네. 그녀석들도 예상한거같아. 파편...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신체부위야. "


"씨..혈주술이라서 설마했는데 생각이상일줄이야..."


마르텔은 고민했다. 당장 사람의 파편을 구하는게 쉽지 않았다. 대뜸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손좀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할수는 없는노릇이였다.


"뭐야. 너무 쉬운 방법인데? "


그순간 녹스가 빛속에서 검을 꺼내더니 그것으로 자신의 왼손목을 내리쳤다. 피가 더 나오기도전에 녹스는 가마솥의 화로에 절단면을 지졌다. 불로 상처를 지혈한것이였다. 그러나 녹스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녹스씨!. 지금 뭘하시는거에요!? "


"재료는 다 모았어. 이제 곧있으면 약이 완성될거야. 저기있는 유리병좀 가져올래? "


마르텔의 걱정어린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해야할일만 말하고 있었다. 마르텔은 체념한듯 유리병을 가지고 가마솥에 달린 꼭지에 가까이 댔다.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나왔고 겨우겨우 유리병 하나를 가득채울정도의 양이였다. 이후 그 약병을 편지에 달린 술식을 통해서 전송하는것으로 모든게 끝났다.


"연금술은 이래서 수지타산이 안맞다니까. 가성비가 너무 안좋아. 연금술 배우겠다는 놈들은 차라리 화학쪽을 가는게 좋을텐데"


"팔 괜찮아요? "


"괜찮을리가. 어서 재생시켜야지. "


"아니, 어떻게 상처를 불에 지질생각을 해요?. 물론 그게 효과가 있다는건 알지만"


"통증때문에 걱정하는거야?. 걱정할 필요없어. 적어도 아까 널 위해 흘린 피눈물보다는 약한고통이니까"


녹스가 손짓하자 절단면에 빛이 감돌더니 이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의수가 만들어졌다. 


"날 뭘로 보는거야 마르텔?. 난 대마법사에 오르기위해 이것보다 더한것도 견뎌냈다고. 감내할수 없었으면 진작에 오르지도 못했을거야"


"허. 뭐 그러겠죠. 괜히 대마법사 칭호 다는게 아닐테니까"


"일도 다끝났는데. 오랜만에 뭐좀 먹으러 갈까?. 저기 도넛이 맛있다는데"


"전 괜찮습니다. 아직 해야할일이 많거든요"


녹스는 그 말에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분명히 마르텔의 스승. 즉 그녀의 친구일것이다.


"예리코구나?. 고생이 많네. 그녀석은 어떻게 살고있어?. 이상한짓? "


"뭐 녹스씨보다는 정상적으로 살고있죠. 적어도 자기 피를 뽑아서 현대미술을 그리는짓은 안하니까요"


"흠. 그럼 나도 하나 부탁하자. 내가 기억하는게 맞다면 예리코 그녀석 창고에 온갖것들을 넣어놨을텐데, 그중에 가마솥 쓸만한거 있으면 가져다줘"


"어..만약 스승님이 거절하신다면요?. "


"뭐 그럼 내가 직접 가야지. 뭐 괜찮을거야. 무슨 선택을 하든 내가 가져가는건 변함없으니. 뭐 공짜는 아니고 매즈한테 받은 초콜릿이나 주지 뭐. 아마 좋아서 환장할걸? "


"어...혹시 매즈씨랑 스승님이 그렇고 그런 관계인건 아니겠죠? "


"20년동안 같이 일하면서 그런것도 몰랐어?. 둔감한 새끼. 뭐 상관없긴 하지만. 잘부탁한다 알겠지? "


그렇게 말하고는 녹스는 사라졌다. 이후 마르텔은 부탁한대로 가마솥을 가져왔으나 그것때문에 훗날 녹스랑 예리코가 도심 한가운데에서 싸웠지만 다룰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녹스는 의사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다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