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https://www.youtube.com/watch?v=dUt1fhxLKXg

(중간에 구글링해서 건진 짤 있습니다. 최대한 덜 무서운 거로 고르긴 했는데 주의...)



*



절뚝거리며 여자분이 다가왔습니다.


다가왔다곤 해도 아직 거리가 좀 있었지만요.


남자분은 한걸음에 뛰었습니다.



"거기 아가씨! 아가씨 저쪽에서 왔지? 놈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나?"


"아으윽..."



빛 한줌 없이 밝은지 어두운지도 구분이 안 가는 와중

여자분은 한쪽 팔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어둡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셔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팔다리와 양손, 입을 당하신 모양입니다.



"피 나잖아, 당신 괜찮나? 그 놈한테 찔린 게야?"



말도 못할 정도로 아프단 걸까요.


여자분은 바닥에 주저 앉으며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땅을 향해서 잘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눈물 방울을 따라 낡은 바닥에 하나둘 검은 얼룩이 생겼습니다.



"설 수 있겠나?"



절레절레.


여성의 의사를 확인한 남자분이 망설이다가 허리를 굽혔습니다.



"부상이 심각하구만. 그놈한테서 도망쳐 나온 게지? 그놈은 어디에 있었나?

저쪽이라고? 그럼 일단 2층으로 가봐야겠군."


"위험합니다! 떨어지세요!"


"귀신은 해만 뜨면 약해진다고 아네, 먹구름이 갤 때까지만 기다려봅세."



아아. 이미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런 분을 어떻게 지키란 겁니까 마스터...


저만치에서 떠드는 남성분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습니다.



"자, 어깨 빌려주겠네. 단단히 잡게. 하나둘!"


"어으..."



어라.


한데 이상합니다.


나뭇바닥이란 게

원래 눈물자국만으로 검게 변하던 물건이었던가요.


방금부터 들리던 물방울 소리도 거슬립니다.





... 아.



"아저씨! 뛰세요 아저씨!"


"또 그 애긴가? 그 부적, 결계만 믿자고?"



남성이 혀를 찼습니다.


뒤로 뭐가 오는 줄도 모르고요.



"어떻게 믿겠나. 퇴마사란 양반이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못하고 서 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망할. 이 몸은 너무 느립니다.


남자였으면 창졸간에 옆으로 붙어서 떼냈을 텐데...!



"그나저나 자네 원래 그렇게 시끄러운 성격이었나? 방금까진-."



길쭉하게 뻗은 손가락이 아저씨의 얼굴을 잡았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아저씨의 머리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갔습니다.


30도, 60도, 90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당황한 아저씨가 내뱉는 탄식이 들렸습니다.


180도.


아저씨의 목이 완전히 반댓방향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즈이이."



투욱, 투욱.


물방울 소리입니다.


마루를 적시던 검은 핏방울 소리입니다.


부축을 받던 여자였습니다.



"으웨에에?"



남성을 해친 여자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검은 피눈물에 절어있는 특유의 얼굴로.


녀석이 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결과는 알 것 같았습니다.


투욱, 투욱, 투욱.


녀석의 몸을 따라 물방울 소리가 났습니다.


... 싫어. 싫어. 싫어!


싫어어어!!




*



"완성. 간이결계!"



이마에 땀구슬이 흘러내렸다.


틋순이에게 핵이 될 부적을 줬기에

부적 없이 손수 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 정도는 쉽지.


의뢰인이 떨며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란 거죠?"


"그 정도까진 아니고 영력이 담긴 공격을 방어 정도만 가능하단 겁니다."



간이라 몇번 공격당하면 부숴지긴 하지만.



"마스터! 마스터!!"



멀리서 어렴풋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퇴마사님, 저거 퇴마사님 비서 아닙니까?"


"어디요?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저기 식당 쪽에서 오시는 분이요. 누구랑 같이 오시는 거 같은-."


"즈이이!!"



세상에 맙소사. 저게 뭐야.


저 무시무시한 양의 영력은 뭐야.


비서인 틋순이의 뒤로, 제 피눈물에 의해 얼굴에 검은 줄이 두개 새겨진 여자가 날아왔다.



"즈이이."


"꺄아악!"


'터엉'


"으웨아? 여어억?"



비서인 틋순이가 아슬아슬하게 결계를 통과한 후였다.


귀신만 잡아내는 결계에 가로막힌 여자가, 결계를 몇번 두들겨보더니 힘껏 때리기 시작했다.



'쿠웅'


"마스터! 저 사람입니다. 악귀가 저 분 몸으로 갈아탔어요!"



방금 전 지진은 그런 이유였나.


귀신이 빙의체를 환승했다라... 나도 교과서로나 봤지, 실제론 처음 보는데.



"같이 있던 사람은 어디로 갔어?"


"모른 척 접근해온 악령한테 그만..."



그러고 보니 틋순의 안색이 좋지 않다.


좋은 꼴은 못 봤겠군.



"일단은 아무거나 해봐야겠지. 음연 부적!"



부적 두개를 공중으로 띄우자 이내 부적이 타들어가며 사라졌다.


부적이 자취를 감춘 곳에서는 두개의 거대한 얼음 조각이 나왔다.


원뿔 모양의 얼음 두 조각이 악령에게 직행했다.



"크, 크다. 저거라면..."


"즈이이!"


'쨍그랑'



매서운 속도로 돌진하던 얼음이었으나 악귀가 손으로 쳐내자 맥없이 부숴지고 말았다.


쯧, 암컷 귀신은 아니었나.



"참액살 부적!"



부적 한장을 더 태웠다.


싹둑-하는 소리와 함께 악귀가 차지한 몸에 대각선으로 긴 선이 생겼다.


참斬부적을 써서 벤 상처였다.



"아... 아아아!"



상처를 따라 악령이 검은 피를 뿜어냈다.


피는 결계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틋순이 두눈을 질끈 감았다.


의뢰인이 눈을 빛냈다.



"먹혔나봐요!"


"아니요. 본 위력을 못 냈습니다. 본래라면 몸이 두동강 났어야 해요."



안타깝게도.


악령의 화만 돋운 모양이었다.



"즈이이!"


'쨍그랑'



힘껏 휘두른 악령의 주먹은

기어코 결계를 부수고 말았다.



"나와라 제발... 어서!"



나는 비서 틋순이의 팔을 잡아끌며 달렸다.


뛰어봤자 독 안에 든 쥐 꼴이었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낡은 나뭇바닥이 극성을 부렸다.


끼익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소매 안에서는 엉뚱한 부적만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에 정리 좀 해두는 건데.



"조음 부적!"



부적이 굉음을 불러 일으켰다.


악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봉박귀 부적!"



악령의 주위로 금줄이 쳐졌다.


악령을 묶기 위한 줄이었다.


줄은 악령이 가볍게 몸을 흔들자 끊어져버렸다.



"빨리 양연 부적... 양연 부적이 나와야 하는데."



양연 부적.


음연 부적이 암컷 귀신에게 효능이 있는 부적이라면

양연 부적은 그 반대, 수컷 귀신에게 효력을 보이는 부적이다.



"찾았다! 양연 부적!"



도술로 확장시켜 놓은 소매 안은 넓었다.


찾기가 힘든 건 그런 경위에서였다.


지금, 양연 부적이 손에 들어왔다.



"타라 빨리, 타!"


"으거어..."



화르륵-.


몇발짝 앞까지 다가온 악령의 몸에 불이 붙었다.


양연 부적의 효과였다.


예상이 맞다면 이걸로 끝이 날 터였다.



"됐다, 끝났나봐요 퇴마사님!"


"으... 아으으."



예상이 맞았더라면.


악령은 비틀거리면서도 걸었다.


타는 몸으로 걸었다.


본래라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바닥을 굴러야 정상인데.


뭐야 저게.



"저런 게... 어딨어."



수컷도 아니고 암컷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고?



"즈이이!"



망연자실.


얼이 나가버린 새에

악령이 돌진해 왔다.


바닥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돌진해 왔다.


순식간에 가까이에 온 악령의 손이 내 머리에 닿았다.


서늘했다. 손에 흉기가 없는 것을 보니 목이라도 꺾어 죽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가까이에서 본 악령의 얼굴은 기괴했다.


두눈은 흑색 일변도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창백한 얼굴에는 눈에서 흐른 눈물에 의해 검은 줄이 두개 그어져 있었다.



"마스터! 뭘 멍하니 있는 겁니까 마스터!"



누구지.


질끈 눈을 감은 내게 일갈이 들려왔다.


틋순이였다.


틋순이 복숭아나무 봉을 들고 악령과 대적하고 있었다.


내가 줬던 부적 중에 하날 사용한 건가.


자신도 무서워서 떨고 있으면서...



"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 진짜로?"


"얌전히 죽을 생각이십니까 마스터...!"



넋이 나가버릴 듯한 상황이지만

지금까지의 일을 되짚어보았다.


안 된다. 여기 생각하는 걸 포기하면 진짜로 죽는 거야.


생각해내라. 어서...!


내가 저 귀신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지?


강하다? 암컷도 수컷도 아니다? 무슨 부적을 써도 소용이 없다?


... 답이 없나? 여기서 죽는 것 뿐인가?


어두워져 가는 내 얼굴을 본 걸까.


틋순이가 다시 한번 일갈하였다.



"절 ts녀 노예시장에서 빼내올 때의 베짱은 어디로 파신 겁니까 마스터!"



의뢰인이 틋순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틋순이의 정체를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때도 사람이 많긴 했다.


노예시장 특유의 뭐시기 요원 같은 것도 많았고.


노예시장...


노예시장?


편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 조악한 센스의 편지를.



[누나야엄마야아을지로살자. 갈때를알고짐꾸리는이의뒷모습은얼마나아름다운가. 천지창조이전에말이계셨다. 빛아생겨라라고주께서이르시니그곳에을지로가나타났다. 이세상은을지로요그것을모르는자는바보들뿐이다. 아,十三아해도그리말하는구나.]



그렇구나.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애초에 그렇게 강하던 악령이 틋순이한테 막혀서 쩔쩔 매는 게 이상하잖아.


이거라면 전부 말이 된다.


양연부와 음연부가 둘다 통하지 않던 것도.


어제 보았던 사망자의 집안이 그토록 기묘한 정경이던 것도.



"ts...?"



움찔-.


악령이 몸을 약간 움츠렸다.


반응을 보니 빙고인 모양이었다.



"ts녀. 맞지?"



ts녀들에 대한 신원 증명 방법은 현재까진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많은 ts녀들은 노예시장에서 인권 없는 노예로 매매된다.


저 악령은 ts녀들의 원념.


노예로서 매매되어

노예로서 굴려지던 그녀들의 원념.



"넌 생존에 노예로서 고통 받던 ts녀들의 원혼. 네가 죽인 사람들은 ts녀들을 거두어 노예로서 부리던 주인들이었다."



어제 죽은 피해자는 집에서 큰 동물을 사육하던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 크기인데 털 한올 없는 게 수상하다 했더니만.



"맞나?"


"아... 아, 니아..."



서투른 발음으로

악령이 부정했다.


혓바닥이 잘려서였겠지.



"바늘만 있는 바느질 세트란 건 이상하지. 고문이라도 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면."


"아니, 아니아..."



필히 엄청난 가학성애자였을 테다.


ts녀들은 신원확인이 안 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내게 살해예고를 한 것도, 내가 틋순이를 거둔 걸 보고 취한 조치겠지."


"아니아... 아니아고!"



분노한 악령이 날뛰었지만 틋순은 봉으로 전부 막아내었다.


애수에 찬 눈이었다.



"그만 해주세요. 마스터의 추리가 맞았다면..."


"애 막눈 거아. 비혀, 비히아고!"


"마스터 아래에서 틋순인 즐거웠습니다. 마스터는 절 노예로 부리지 않았어요."



틋순이가 날 힐끔 쳐다보았다.



"가끔 데자와를 맛있다며 권하거나 콜라병에 간장을 넣어놓긴 하지만."



막말은... 데자와가 뭐 어때서.


악령이 검은 눈물을 떨궜다.



"그래도 마스터는 달랐습니다. 매번 맞기만 하던 노예시장에서 절 구해온 분이시라고요."


"아으으... 아, 아으..."


"마스터라면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실 겁니다. 안심하고 성불해주세요."



틋순이 어느샌가 내 이름을 팔았다.


악령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



"2월 8일이랬잖아? 첫 ts병이 발병한 게."



편지를 펼쳐들고

자랑스레 떠들었다.


다소 늦은 발견이었지만.



"편지에서 2번째, 8번째 글자를 묶으란 거지."


"고전적이네요."


"나을(를) 때리지 말아주세요... 평소에 맞고 살던 애들 답지."



틋순이 씁쓸한 얼굴을 했다.


옛 기억이 떠오른 걸까.



"마지막 문장은요? 이건 애매한데. 십리?"


"십이 아니고 十이잖아. 리의 ㄹ은 좌우반전 되어있고."


"十S? ...아."


ts.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단서는 다 있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손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건 그럼..."


"구타당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겠지."



틋순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일 같지 않은 것이겠지.

잠시 침묵이 감돌다가 틋순이 "어라?" 하며 고개를 들었다.



"마스터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저택에 모인 사람들 중에 저와 마스터, 의뢰인은 살아나왔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죽었고. 악령 성불시킨 후에 시체 확인했잖아."


"아니에요. 한명 남았잖아요. 도중에 갑자기 사라져 자취를 감춘 사람이!"



남긴 누가 남아. 다 끝났는데.



"고인의 ts녀 노예요. 마스터가 외투도 벗어줬던!"


"... 어?"



퇴마사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으스스한 상황을 맞닥뜨리곤 한다.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탓이었을까. 등골이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