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잔인했던건 아니다.


***


깡패새끼들은 도시에서 활개를 치지만 약쟁이새끼들은 외진곳에서 일을 벌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마약은 재배를 할 장소가 필요하고 도시의 치안부대의 주 타겟이 약쟁이들이며 무엇보다 이런 외진곳이 마엘스트롬에 많기 때문이다. 모든 세계에서 흘러나온 퇴적물들이 쌓이는 세계니 당연히 온갖 인외마경들이 존재한다.


그럼 깡패새끼들은 뭐냐고?. 그새끼들이 삥뜯는거말고 더할까?. 유적지에서 삥뜯을수있었다면 진작에 따라했을것이다. 그리고 나와 헬레나는 지금 마엘스트롬에서 가장 많은 더러운돈을 쓸어담는 카르텔의 비밀도시를 발견한것이다.


괴물의 심장이라는 비유가 참으로 어울리는게, 이곳의 패거리들은 도시 기준으로도 보통실력이 아니였다.


"레인!. 측면으로 가속해서 오고있어요! "


공중에서 마법을 난사하는 헬레나가 멀리서 크게 말하였다. 측면이라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권총과 칼을 양측면을 향해 겨눴다. 만약 내눈이 맛이 간것이 아니라면 그새끼들은 바로 코앞에서 대각으로 순간이동하면서 공격해왔다. 반격대신 몸을 피했다. 그럼에도 상처는 났다.


"대체 무슨 시술을 몸에 바른거야?. 도시에서도 이런건 본적이 없어."


"도시에서 온거냐?. 보나마나 우리 아지트를 파괴하러 온걸테고. 이곳을 파괴하면 우리랑 거래하던 조직들이 도시 곳곳에서 난리를 칠텐데 후폭풍이 두렵지도 않은거냐? "


"도시는 아니고. 탑에서 왔는데?. 윗층녀석들이 예기 안해줬어? "


그순간 놈들의 눈빛이 변했다. 교활한 삵에서 살벌한 범으로. 하지만 그 범은 두려움에 휩싸인듯했다. 날고 뛰는 놈들도 식겁해하며 움츠리게 만드는게 바로 탑의 마법사들이다. 뭐 난 탑의 마법사는 아니지만 헬레나는 탑의 마법사가 맞고 나도 그쪽일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거짓말은 안했다.


"..탑의 마법사들이 어째서 이런 변방에 온건지?. 속세에 개입하기 귀찮아서 탑에 은거한거 아니였나? "


"저기 지팡이위에 앉아있는 마녀씨가 니들 마약때문에 피해를 봤거든. 나도 개인적으로 좀 감정이 있고 말이야"


헬레나는 모자를 누르면서 멋쩍게 웃었다. 물론 그녀에게 그렇게 큰 피해가 가진 않았지만 그러게 사기를 치지 말았어야지. 명분이 생긴 이상 우리는 움직일뿐이였다.


"그리고 너희들 이런 외진곳에 눌러앉아있어서 도시 상황을 모르는구나?. 마엘스트롬의 대부분의 도시가 지금은 약쟁이들 털린것도 신경 못쓸정도로 개판인 상황이야. 오죽하면 단검 한자루 들고 도시 하나를 박살을 내버린 어떤 미친놈이 활개를 쳐도 치안관들 코빼기도 안비추는데. 너희들이 다 죽어봐야 별일 있겠어? "


"..원래 마엘스트롬은 개판 아니였나? "


"농담도 적당히 하자고. 일상적인 개판이랑 세기말 개판은 다르잖아.적어도 일상적 개판은 웃음거리라도 남아있지. 뭐 예를들어 폭주족들이 아파트 위에 도로를 깔아놓고 vip전용 층간소음을 일으키거나, 메리 홀리데이랍시고 어린아이들 인형에다가 신성한 안티오크 핵류탄을 쳐넣어서 선물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도시 시민들이 단체로 피자를 주문해서 음식배틀을 벌인다든가... 왜 피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칼을 역수로 잡았다. 슬슬 말장난하기도 귀찮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너무 다르지. 이젠 웃을 여유조차 없어졌으니까. 너희들을 전부 죽여도 목표까지는 산맥 넘어 산맥이니까. 그러니 편하게 죽자"


***


피냄새가 코를 찌른다. 완벽한 현대미술이다. 바닥이란 바닥은 죄다 빨간색으로 칠했으니까. 시체들은 적당한곳에 쌓아뒀다. 그걸 처리하는건 헬레나 몫이다.


"전부 소멸시켰어요. 근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요? "


"딱히 없어. 그냥... "


나는 무심코 손등을 봤다. 하지만 아직 문양은 남아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전부 죽였을텐데?. 놓친녀석이 있는건가?.


"헬레나. 혹시 이 아지트에서 살아서 도망간 녀석이 있는건 아니지? "


"네??. 그럴리가요!. 애초에 레인이 숨은녀석들까지 기어코 찾아서 죽였잖아요!. "


그녀의 말이 맞다. 이곳에 오고나서부터 살아서 도망간 녀석은 없다. 전부 내가 찾아서 죽였으니까. 놓쳤을리 없다. 만약에 놓쳤다면 칼이 내 손을 먼저 찔렀을테니까. 그런 저주니까.


"헬레나. 너 지금 나랑 같은생각하고있지? "


"아주 끔찍하고 지겨운 예상이지만..맞아요. 하고있어요"


층이 더 있다. 그것도 강력한 마법에 의해 숨겨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와 헬레나가 감지할수 없단 말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마법사들중에는 탑의 마법사들이 가장 실력있는 마법사들이다. 헬레나는 그들중에서도 가장 재능있는 녀석이고. 근데 그런녀석도 감지하지도 못했다.


"가있다한들 자물쇠가 열리지는 않는이지"


생물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제서야 눈치챘다. 이곳에 온 사도는 한명뿐이 아니다.


"헬레나. 우리 뒤에 있는 녀석. 우리가 알고있는 녀석은 아니겠지? "


"저도 처음이에요. 그 사도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우리 둘은 동시에 뒤돌면서 무기를 겨눴다. 뒤를 돌자 보인것은 마법사 로브를 걸친자. 그러나 머리가 있어야할곳에는 머리 대신 책이 떠있는채로 요란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고 팔이 있어야할곳에는 팔이 없으며 그 대신이랍시고 두 손이 그 자리에 떠있었다.


마엘스트롬에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있다. 정점에서 군림하는 신, 신과 가까운 힘을 지니고 비슷한 존재이지만 신을 섬기는 사도, 생물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영웅.그리고 우리앞에 서있는 이 존재는 지혜의 삼각형 일룬의 두번쨰 사도. 끝없이 올라가는 탑의 수호자이자 영원히 문자가 새겨지는 자. 기록의 니네베였다. 


이녀석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모든 사도가 위험한 존재들이다. 탑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힘의 원본이 이들의 것이니까. 즉 우리는 이녀석들과 대적할수 없다. 마엘스트롬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의 힘을 사용하니까. 서로 싸움을 좀 할지라도 완전히 대적하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천년을 산 녀석들이 매우 꽉막힌 꼰대들이거나 성격이 이상한 미친놈들이겠지. 그동안 만난 사도들이 다 그랬으니까.


"뭘 그렇게 보ㄴ_거지?. 내 대갈tong이 그러A게도 신기한가$?%. 와 갖ku싶으뇨?ㅛ "


방금 말 취소다. 어쩌면 대화가 통할지도 모른다.


"저흴 도와줄 생각인가요? "


"그래 좀 말이 통할거...잠깐 헬레나. 저녀석이 우릴 도와줄 생각을 한다고? "


"나도 궁ㅋㅁ하군. 내가 어째서 너희를 dou러 왔다고 생각ㅏ는거지? "


"당신한테서 느껴지거든요. 비명의 숲에서 봤던 사도의 힘이"


"파트라가 도와준 hum들이 너희들)(군. 그리고 그녀석을 죽인것도... "


그녀석이라는 단어에 어째서인지 저번에 죽였던 유스튼의 추방당한 사도가 떠올랐다. 이녀석도 그 일에 연관있는건가?. 정작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는 모르는것같았다.


"훌룡히 해냈군. 유스튼@@@ 떨거지들이 죽는건 우리로써 이득이지. 칭찬받아 마땅해. "


"그 말 끊어서 미안한데 제대로 말하면 안돼?. 뭔 단어를 내뱉을때마다 이상한게 딸려오냐? "


"아 미안하군.내가 발성기관이 없어서 말야. 보다시피 내겐 머리대신 책 한권밖에 없잖나. 악필의 형태로 대화하는게 더 편하긴 하지만 마법의 힘으로 발성기관을 모방하는것도 좋은 방법이지. 아 발성기관하니 떠오르는 일이 있군. 저번주에서 사흘 전에 시곗바늘이 12에 도착하기 10초정도 남았을때 비슷한일이-"


그러면서 녀석은 영문도 모를 소리를 아주 난잡하게 내뱉었다.


"사도라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저모양인거야?. 처음에는 관음증에 그다음은 전쟁광이고. 이젠 외계어 설명충이냐? "


"제가 말하기에는 껄끄럽지만 확실히 그런면도 있네요"


그 사도라는 녀석들에게서 마법을 가져다 쓰는 탑의 마법사조차 인정할정도라니. 


"아 이런. 말이 많았군. 궁금한게 있겠지?. 여기 아랫층에 어떻게 내려갈까? "


"내려가는 방법 말고 아예 내려보내주면 안돼?. 사도라면 그정도는 충분히 할수있을텐데? "


"신은 언제나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사도들은 언제나 2% 부족한 축복과 조력을 내리는법이지"


"하지만 너도 우리가 아랫층에 있는 누군가를 죽이길 원하잖아. 우리가 여기서 드러누우면 너도 손해 아냐? "


"레인?. 설마 진짜 드러누우려는건 아니죠? "


"막되먹는군. 하지만 의욕은 없어. 처음 여기 왔을때와는 달라. 내가 등장한것이 너의 의지에 영향을 준건가? "


"일룬의 사도라면 전부다 알거 아냐. 지혜의 신이라면서?. 어차피 난 저녀석을 죽이게 될테고 그게 다 너희들의 보이지않는 계획일텐데 내가 의욕을 낼수 있겠냐고. 이젠 바닥 부수기도 귀찮아. 그러니 좀 워프라도 열어줘라.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격언을 마음속 깊이 새길수 있다면 좋을련만. 어쩔수 없는 노릇이군. 뭐 어차피 네녀석은 결코 凡人의 자리에서 벗어날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대가리를 한 사도가 내 아픈 기억을 자극했다. 나는 일어서자마자 바로 녀석에게 엿을 날렸다.


"犯人이라고 해줄래?. 적어도 그렇게 불리는게 좋거든?. "


"대체 둘다 무슨 말을 하는건가요... "


헬레나는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두명에게 힘없는 말을 읇었다.


"뭐. 이번에는 특별히 나 기록의 니네베가 너희들에게 웜홀을 열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대가가 있다네. 정확히는 레인 네녀석한테"


그러면서 녀석은 거대한 웜홀을 열었다. 대가...사도가 필멸자한테 무슨 대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결코 나와선 안되는게 생각났다.


"아 제발 그건"


"아직 말도 안했다"


"말 안해도 알아 이 책대가리 자식아. 저 아랫층에 있는 녀석을 죽이지 말라 뭐 그런거 아냐? "


"오!. 잘 알고있네!. 추측을 잘하는군!. 너 진짜로 내 도서관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을래? "


"나 말고 헬레나 대려가. 뭐 종이책은 고사하고 점토판만 가득한 도서관을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그러고보니 모세의 십계명 원본 석판 조각들이 그 도서관에 있다고 들었어요!. 관심이 가는데요? "


아무래도 헬레나를 위험한곳으로 유도한듯 싶었다. 빨리 아랫층으로 내려가야지.


"길을 만들어준건 고맙지만. 내가 판단할 일이야. "


헬레나를 먼저 보내고 나는 웜홀 앞에서 말했다.


"너도 알잖아. 내가 멈출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걸"


"잘 알지. 참으로 딱한 운명이구나 레인 이리스. 하나만 남은 가족을 위해 스스로 죄를 먹어치워야하는 운명이라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이곳의 녀석을 죽여도 나의 고행은 끝나지 않을걸 알기에.


***


처음에는 친구에게 사기를 친 약쟁이들을 족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잠깐의 후퇴조차 허락될수 없을정도가 되었다.


사도가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그렇다는건 무슨수를 써도 지금 당장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그녀석을 죽일수밖에 없다. 


아니 시발 근데 이 뭔지도 모를곳에서 어떻게 찾으라는거야?


"벽도 없고 바닥도 없고 복도도 없어 시발 여긴 대체 어디야?. 진짜 지하 맞아? "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였다. 모든게 새하얀 공간이였다. 아직 물감이 칠해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와도 같았다. 천장이 있는지 없는지 어디가 오른쪽이고 왼쪽인지 애초에 내가 밟고 있는게 바닥이 맞는건지 의문만 가질정도로 새하얗고 경계가 애매한 공간이였다.


"백색공간... "


헬레나가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탑의 책에서 읽어본적 있어요. 어떤 강대한 마법사와 미지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공간. 모든것이 얽매일수도 있고 모든것이 가능해질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했어요. "


헬레나는 갑자기 완드를 집어들었다. 무언가를 경계하듯 안광도 자줏빛으로 살기넘치게 빛나고 있었다.


"즉 이 공간에 주인이 존재한다면, 우린 언제 어떤식으로든 갑자기 공격당할수도 있다는거에요"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옆에서 무언가가 헬레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비록 미리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필이 움직였기에 막을수 있었다. 팔에 맞긴 했지만 통증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연했다. 날아온건 무시무시한 무기가 아니라 주사기였으니까. 그저 옷을 뚧고 파고들정도일뿐인 주사기였다.


"아니 기껏 날린게 주사기라고?. 여기 주인은 성격 참 괴상-"


"레인. 당장 뽑아요! "


알아챘어야 했다. 주사기가 비어있지 않다는것을. 주사기의 피스톤이 눌리면서 안에있던 약이 몸에 들어왔다. 평범한 주사기는 아니였다. 순간적으로 주사기를 뽑아 던졌음에도 대부분의 약이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 그리고 이내 몸속에 들어온 약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몸이 갑자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야 이거 왜이러는거야. 나 지금 녹고있잖아"


"레인. 일단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무리 마엘스트롬이라고 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 "


갑자기 내본적도 없는 화를 내고있었다.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있었다.


"이것좀 어떻게 해봐. 이러다가 진ㅉ- "


"그만"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어째서인지 분노도 공포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레인. 잘들어요. 레인은 지금 녹아내리지 않고 있어요. 그저 무릎을 꿃고 고개를 숙이고 멀쩡한 두 손을 바라보며 공황상태에 빠졌을뿐이에요. "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


"아무런 이상도 없어요. 아무래도 그 약은 매우 강력한 환각재인거같아요. 그래봤자 조금만 더 강할뿐인거같고요"


그녀가 완드를 내 가슴을 향해 겨누자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애초에 오만가지 방법으로 죽어보고 마엘스트롬에서도 미친놈이라고 불렸던 사람이 고작 녹아내리고 있다는 이유로 패닉에 빠지는것부터가 이상하잖아요"


"그렇네"


내 목소리는 다시금 가라앉았다. 평소대로


"듣고 보니 그렇네. 약은 다 제거한거지? "


"보다시피요. "


"아닌거같은데"


난 지금 움직일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었기에.


"보다시피 지금 움직일수가 없거든. "


"네?. 약은 전부 제거했고 항독마법까지 퍼트렸는데...아. 항독마법에 노출되면 트리거가 발동되는 주문일지도 몰라요"


"요즘 마법사들은 약에도 마법진을 입히는거야? "


"어르신분들이 애용하는 방법이에요. 어쨌든 당분간은 움직이기 힘들것같아요"


그러면서 위에서 뻗어나온 촉수를 완드로 검기를 만들어 작살을 내버렸다. 그러자 사방 팔방으로 촉수들이 뻗어나왔다.


그리고 촉수들은 전부 주사기를 들고있었다.


"어릴때가 생각나네요. 주사가 무서워서 병원 4층에서 뛰어내렸는데"


"그래?. 난 주사 엄청 많이 맞았는데"


"어렸을때 몸이 안좋았던 거에요? "


"생체실험 당했어. 동생몫도 포함해서 "


"대체 무슨 삶을 살았던 거에요.. "


그러면서 그녀는 태연하게 일곱개의 각기 다른색의 마법진들을 펼치고는 탄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탄막이라고 하기에도 뭣한게 그것들은 마치 공중에 흩뿌려진 물감처럼 정해진 형태가 없었다. 하지만 그점이 오히려 전투에 유용했다. 정해지지 않은 형태는 반대로 말해 무엇으로든 변형될수 있다는것이였다. 혈관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창처럼 뾰족한 모양으로 빠르게 날아가기도하고 가끔 나에게 날아오는 촉수들은 구체형태를 취해서 막아냈다.


그런 탄막들이 지금 수백 수천개가 날아가고 있었다. 눈앞에 촉수가 화망의 사각으로 파고들어오자 헬레나는 손을 뻗어 실시간으로 패턴이 바뀌는 마엘스트롬의 마법진을 전개했다. 그러자 뻗어나오던 촉수가 안과 밖이 반전되면서 나가떨어졌다. 피부가 위치했을곳에 내장들이, 그리고 내장들이 위치했을곳에 피부조직이 나타나는식으로 반전된것이였다.


형태도 알아볼수없는 괴물한테 써서 다행이지 사람한테 썼으면 끔찍한 모습이였을것이다. 이런점에서 마엘스트롬의 마법은 참으로 잔인하고 이해못할것이였다. 물론 나는 이젠 별 감흥도 들지 않을 광경이지만 말이다.


"레인?. 이제 움직일수 있는거죠? "


"니입으로 말했잖아. 한동안은 움직이기 힘들거라고"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슬슬 힘이 빠지고 있거든요"


어림잡아 7만마리는 죽였을것이다. 단순한 패턴에 그리 강하지 않은 내구성을 가진 촉수들이지만 너무 많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헬레나는 이미 충분히 지친 상태였다. 더 시간이 지나면 공격을 허용할것이다.


마법을 자주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쓸때는 써야하는게 당연했다. 나는 마력을 이용해서 바닥에 떨어진 칼을 공중에 띄웠다. 여기 오고 나서 본 영화중에 아주 인상깊은 영화가 하나 있었다. 휘파람을 부는것만으로도 화살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캐릭터가 있었다.


물론 나는 휘파람은 안불거다. 휘파람이 싫거든


"맞지 않게 조심해라"


"뭘 쓰려고 그러는- "


순식간에 앞으로 날아간 칼은 촉수 하나를 베어가른뒤 옆에서 솟아나고있는 촉수들 여섯개를 가르고 빠르게 날아갔다. 자라나는 족족 베어가르니 그야말로 자동사냥이었다. 물론 내가 세세하게 컨트롤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유용한건 마찬가지였다.


"진작에 쓰지 그러셨어요"


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처음 활용해보는거야. 이거 은근 컨트롤하기 힘들어"


"처음 하는거 치고는 잘하고 있는데요?. "


그녀의 말이 맞았다. 영화를 따라한거 치고는 매우 잘 쓰고있었다. 게임을 자동사냥 돌리는게 이런느낌이였을까?. 게임을 해본적은 없지만 도심에서 돌아가는 게임공장은 본적이 있다. 거기서 돌리는게 이런거였다면 나도 따라할껄 그랬다.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공격해왔다. 이미 수많은 촉수들이 녹아내려 기분나쁜 액체로 변해 땅을 가득 채웠음에도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 역시 지치고 있었다.


"왜이렇게 지치는거지?. 일주일동안 싸워도 이러진 않았는데"


'그렇게 즐겁니? '


순간 들린 목소리. 갑자기 맴돈 악몽. 죽기직전의 주마등보다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귀에서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칼을 제어하는 내 정신줄을 놓게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한테만 들린게 아닌거 같았다. 앞에서 마법을 전개하던 헬레나도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촉수들 아니, 이젠 인간손의 형상들은 놓치지 않았다.


"헬레나!. 앞에! "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고 그제서야 헬레나는 정신을 차린듯 동공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였을떄 이미 사람손의 형상을 한것들은 수십개의 주사를 헬레나의 몸에 박은 상태였다. 그녀는 지팡이에서 내려 주저앉았다. 이윽고 수백개의 주사바늘이 그녀의 몸을 찔렀다. 그제서야 공격은 멈췄다.


"헬레나. 괜찮은거야? "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돌아온건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도,도망쳐요 레인. 어, 어서.."


그것은 주변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더욱 끔찍하게 헬레나의 머릿속을 헤집는것이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 약, 무슨 효과인지 알고잇는거야? "


그 반응은 자신으로부터 나온것이였다.


".. :) "


침식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반응. 그다음 일어난것은 살벌한 위협에 의해 마비된 몸이 반사적으로 일어선 상황.


"그래. 그런 종류였군"


지금 내앞에 서있는 소녀는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있는 소녀가 아니다.


그저 약일뿐인데도 사람의 정신을 파해치고 헤집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다니. 대체 이곳은 무슨짓이 일어났던걸까


"레인...레인...도망치세요....제발.. "


마지막 남은 이성을 쥐어짜는걸까. 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비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타깝게도, 난 그녀를 놓고 갈수 없다. 그리고 도망칠수도 없다.


"당연히 도망쳐야지. 우선 너 구하고, 저새끼 죽이고"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백색공간뿐이지만 누군가가 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너지?. 헬레나 머리 헤집은 새끼. 거기 꼼짝말고 기다리고 있어. 도망칠 생각도 하지마. 조금이라도 발 움직이면 니 시체로 포를 뜰거야"


기분나쁜 비웃음이 울려퍼졌다.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부류가 아닌, 어린아이의 악의넘치는 비웃음이였다.


"못할거같지? "


왼손에는 총을 들고 헬레나를 향해 겨눈다.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저 누군지도 모를 새끼를 향한다. 지금부터 나는 이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때문이 아니다.


"넌 지금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 족보에도 없는 애미뒤진 고아새끼야. "


그저 내가 조금 빡쳤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