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말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는 뜻으로...


“잠깐, 진짜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


“있지.”


“어디에 나오는 말인데?”


“어디에 나오는 말은 아니야.”


“그럼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야?”


“아니,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그 사람이 유명한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어서.”


“내가 들으면 알 만한 사람이야?”


“응.”


“내가 알 정도면 유명한 거 아니야? 누군데?”


“나.”


“...일단 계속해봐.”


“알겠어.”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말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는 뜻으로, 다르게 말하면 길을 지나가다 보이는 버려진 냉장고는 한 번 씩 열어보라는 뜻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런 뜻이 되는거야?”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뀌니까.”


“애초에 그건 맞는 말이긴 해?”


“응. 내가 생각하기엔 그래.”


“그 말 자체도 네가 생각한 거잖아.”


“그렇지.”


“그럼 네 말이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는 거야.”


“그런가?”


“그런 거야. 네가 이 세계의 신이라든가 하는 게 아닌 이상 말이야.”


“만약 그렇다면 믿어줄래?”


“만약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증명해 봐. 그럼 믿어줄게.”


“증명은 할 수 없어.”


“그러면 믿어줄 수도 없겠네. 네가 신이라는 것과, 냉장고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 둘 다.”


“하지만 적어도 뒤에 말은 진짜야.”


“나는 믿어줄 수 없다니까 그러네. 아무튼 내일 봐.”


“그래, 내일 보자. 반드시.”


나는 왜 굳이 내일 보자는 말에 반드시를 넣었을까 싶은 자칭 신이 내리는 것을 보다 금방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지금부터 최소 15분은 더 타고 가야할 버스의 내부 구조를 벌써부터 관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더 이상 창문 밖 풍경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기 짝이 없을 때 까진 아껴두는 내 최후의 보루다. 뭐 아직까진 이 최후의 보루를 사용할 만큼 바깥 풍경을 더는 보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5분쯤 타고 가다 바깥에 버려진 냉장고를 하나 발견한 순간, 남은 10분은 처음으로 버스의 내부를 세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 나는 등교하자마자 책가방을 벗어던지고 어제의 그 자칭 신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얼마든지 말해.”


“그... 여기서 공개적으로 말하기엔 너무 부끄러워서 그런데 잠깐 밖으로 나가면 안될까?”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야?”


“아니니까 일단 나와 봐.”


그렇게 몇 분을 걸어 주변에 귀가 달린 생명체라곤 다람쥐정도가 전부일 것 같은 곳까지 와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제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말이지.”


“나랑 얘기할 때?”


“아니. 네가 내리고 나서.”


“아, 그렇구나. 계속 해봐.”


“아무튼 버스에서 창문 밖을 보던 중에.”


“보던 중에?”


“버려진 냉장고를 하나 봤거든.”


“정말? 열어 봤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부끄럽게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그 얘기는 나한테 왜 하는 거야?”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알았어.”


“열고는 싶지만 또 막상 혼자 열려니 약간 무서워서 말이야. 그런 말을 한 네 책임도 있으니까... 어? 알겠다고?”


“응. 네가 말한 대로 내 책임도 있으니까.”


“어... 그래, 고마워. 그럼 학교 끝나고 다시 보자.”


“냉장고를 열고 난 뒤에 네가 어떻게 할 지 궁금하기도 하고...”


“응? 뭐라고?”


“아니야. 교실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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