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71102422?p=1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데, 냉장고는 각자 집에도 있잖아? 그걸 열면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엄마만 해도 오늘 아침에 열었을 텐데.”


“마음가짐이 없잖아.”


“마음가짐?”


“이걸 열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어야만 비로소 세상이 바뀌는 거야.”


“뭐가 그렇게 세세해? 어차피 네가 생각한 것뿐인데.”


“진짜 세상이 바뀐다니까 그러네.”


“만약 정말로 바뀐다면 그건 네 탓이야.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었으니까.”


“그런 셈이지.”


“아무튼, 한 번 열어보자고. 세상이 바뀌나 안 바뀌나...... 아! 지금 밖에 봐봐! 저 냉장고야. 어제 봤다는 거.”


“그렇구나. 근데 못 봤어.”


“아, 벌써 지나쳤구나. 하긴, 어찌됐든 버스는 앞으로 가니까. 내가 말할 때 쯤이면 보려고 해도 이미 지나친 후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어쨌든, 이 터널만 지나면 금방 내리니까 슬슬 일어날 준비 해.”


“잘 아네. 여기서 많이 내려봤어?”


“저기, 이 길, 내 집 가는 길이거든? 내려보지는 않았어도 수백 번은 지나갔을 거야.”


“넌 태어났을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았으니까 적어도 만 번은 지나쳤을걸?”


“빨리 내리기나 해! 다 왔어.”


그렇게 못 미더운 등을 떠밀며 내리자마자 한 여름의 잔인한 햇빛이 날 이 땅 위에 서있는 걸 거부하는 듯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너무 더운데?”


“그래도 터널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시원하다.”


“아, 그렇구나. 정말이네.”


“저 터널을 다시 지나가야 하는거지? 걸어서.”


“당연하지. 자, 빨리 가자. 후딱 가서 그 괘씸한 문짝을 열어버리자.”


“그리고 세상이 바뀌겠지.”


“그건 모르겠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응.”


터널 안쪽은 살인적인 더위의 바깥과 자신은 연이 없다는 듯 고고하게 서늘한 온도를 유지 중이었다.


차나 오토바이, 자전거는 물론이고 우리 둘을 제외한 사람이나 심지어는 날벌레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깥의 매미 소리가 희미해질 무렵에는 걸어가는 발소리가 메아리로 울릴 지경이었다. 이대로 가면 세상이 영원히 고요할 것만 같아 먼저 입을 뗐다.


“저기... 너무 조용하지 않아?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네가 안 하길래 조용한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시끄러운 것 보다야 낫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하잖아.”


“그렇긴 하지... 음,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우리에 대해 아무 얘기도 안 하지 않았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얘기할 게 뭐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해?”


“아니, 우리끼리 말고 독자들한테 말이야. 우리 정보를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잖아.”


“지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다는 거야?”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만약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독자들이 불쌍해서 말이야. 기본 인적 사항이라도 말해주려 했지.”


“만약 우리가 정말 소설 속 인물이라면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가 어련히 잘 서술해 주지 않았겠어?”


“난 이 이야기의 작가를 못 믿겠어서.”


“뭐야. 소설 속이라는 건 확정이야?”


“어디까지나 가정이야. 우주가 사실은 시뮬레이션이라는 얘기도 있잖아? 그러니 내 이야기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그래. 그럼 그렇다고 치고 한 번 얘기해 봐. 독자들한테... 잠깐, 우리가 정말 등장인물이 맞다면 지금 우리는 소설 속에서 제 3의 벽인가 4의 벽인가 하는 걸 깨고 있는 거 아니야? 그것도 등장인물들이 직접?”


“사실 그걸 하고 싶었던 거이기도 해. 지금쯤 이 소설을 쓰던 작가는 당황하지 않았겠어?”


“됐어. 지금은 냉장고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하고 싶으면 네 혼자 조금 말하고 말아.”


“알았어. 음... 우리 둘은 시골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 나는 남자고 얘는 여자... 뭐, 이 정도로 할까?”


“뭐야, 정작 중요한 이름은 얘기 안 했잖아.”


“말하고 싶어? 네가 할래 그럼?”


“아니, 됐어.”


“그러면 나도 안 할래.”


“그러든가. 자, 이제 출구야. 곧 있으면 냉장고가 나올 거야.”


“오, 드디어.”


말하기가 무섭게 버려진 냉장고는 곧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서 본 이 냉장고의 첫인상은...


“낡았다.”


“많이 낡았네.”


“그러니까 버렸겠지.”


“그렇지.”


2000년 대 극 초반에 만들어 졌을 것만 같은 인상의 냉장고였다.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문이 한 짝 밖에 안 달린 작은 사이즈, 원랜 하얬을 것 같지만 세월이 l나며 낀 기름때나 손때가 냉장고를 누렇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새 냉장고를 만약 샀다면 당장 갖다 버려도 문제없을 정도의 고물이었다. 분명 원래 주인도 이런 과정을 통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냉장고인데, 열기만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도 안 돼.


“한 번 열어봐.”


“으, 응... 조금만 기다려. 준비 좀 하고.”


“준비할 게 뭐 있어? 네 말대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아무튼 기다려!”


“알았어.”


심호흡을 두어 번 한 뒤, 손잡이를 조심히 잡았다.


“자, 간다! 연다!”


덜컥-




3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71554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