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살아있는 한순간의 사람을 담아낸 추억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러한 그림을 좋아한다. 사람의 일생 중 하나를 담은 매력적인 함페나,

함페나는 그냥 내가 지은 단어이다. 별건 없고 그냥 하모니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의 단어이다.


나는 미술관에서 그런 함페나가 담긴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한다.

색들의 하모니와 다르게 느껴지는 게걸스러움은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여러명의 표정들은 내가 따라하게 만든다.

그러한 함페나를 나도 그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우선 나는 색맹이다. 여러가지의 색을 구분을 못한다. 그래서 보이는 함페나는 더욱 즐겁지만

내가 색을 구분했다면 그저그런 하모니였을지도 몰라 다행이라고 생각은 한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다 손목을 다쳐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보조기구 없이는 절대로 손을 쉽게 조작할수 없다. 이 모든게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이라면 비굴한 삶일테니


하지만 그래서 화가들이 만든 그림 속의 함페나는 즐겁다. 우연이 섞인 색들의 조화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다. 살인마의 웃음이라는 그림은 정말로 사람을 죽인 살인마의 표정을 그린 듯이

섬뜩하며 기괴하고 그의 웃음 사이로 보이는 이빨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즐겁다. 살인마의 뒤로 보이는 시체같은 덩어리를 보며 내가 살아있음이 즐겁다.

살인마의 노려보는 듯한 눈을 바라봐도 내가 살아있을수 있음에 즐겁다.

함페나, 이건 나와 그림 사이에 담긴 함페나인게 분명하다.

화가는 마치 나란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을 그린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선 이렇게나 완벽한 함페나를 볼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해... 이건 정말로..."


"완벽하죠?"


방해, 나와 그림 사이의 함페나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실눈에 빵모자를 쓰고 동그란 안경을 쓴 주근깨의 얼굴은 우월한 사람인 거처럼 내 옆에서 웃고 있었다.

모나리자처럼 미묘한 웃음은 살아있는 그림을 보는 듯 했지만, 그 여자에겐 함페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듯이 손을 펼치고 그림을 향해 뻗으며 말했다.


"이 그림은 정말로 완벽해요. 비슷한 색들로 죽은 자와 죽인 자를 정확하게 나누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섞어

누가 죽었는지 모르게 만들었죠. 당신도 느꼈을거 아니에요? 저 살인마의 미소에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거 말이죠?"


줄무늬 옷에 멜빵바지를 입은 여자는 보는 눈이 없어보였지만 말하는 건 확실히 식견이 있는 듯 했다.

어쩌면 나와 같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보는건 처음이라 좋다.


"두려움... 확실히 느껴집니다. 자신이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모습, 떨리는 느낌의 혼란스러운 표정과 커진 눈에 작은 동공... 하나같이 희열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죠. 팔에 무언가 달려있는 것 같은데.... 제가 눈이 좋지않아 잘 모르겠군요."


"그러게요. 눈썰미가 좋으신가봐요! 저 팔에 붙어있는건 보조기구같은거... 그래요 당신의 팔에 붙어있는 보조기구같은 게 분명해요."


여자는 내 팔을 가리켰고 나는 팔을 흔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럼 저 살인마도 저처럼 팔이 불편한 사람이었나보네요. 그나저나 살인마는 저 시체와 무슨 관계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연히 만난 사람,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는데 조금은 다른 이념을 가진 운명과도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신과 같은 세계를 살 사람을 잃은 것과 자신의 세계를 지켰다는 것이 섞여서 복잡한 표정을 짓는거죠."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과연... 당신은 저와 정말 비슷하군요."


내가 웃으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살짝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요.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길 저는 바라고 있었어요. 제가 이 그림을 보고 느낀 걸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즐겁잖아요."


"그쵸 즐겁죠."


나는 주머니 안으로 손을 푹 집어넣으며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미묘하면서도 달라진 느낌이 드는 그림은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고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머리를 지끈거리는 나를 보고 말했다.


"죄를... 저지른 적이 있나요?"


"그게... 무슨 소리죠?"


"이 그림은 속에 다른 그림이 숨어있다고 해요. '죄인의 변명'이라는 이름인데 무릎을 꿇은 살인마의 앞에 창을 든 천사가 서있는 그림이죠."


"그걸 저한테 말하는 이유는 뭐죠?"


"이 그림이 정말로 완벽한 함페나를 지녔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뒤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아니 시작했다.

함페나, 내가 지었고 나 혼자 알던 용어, 용어라고 말하기도 뭐한 나만의 것.

나는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그 말을 꺼낸 적도 없었다.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내가 생각한게 맞다면 이건 아니야.


"절대로 있을수 없다고!!"


생각났다. 저 빵모자, 저 눈, 저 주근깨, 저 안경, 저 여자 아니 저 여자의 모습, 목소리, 머리, 이빨, 입술, 손톱, 신발, 바지, 옷....

그 모든건... 아니길 바라지만 절대로 있을수 없는 우연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으킨 댓가이기도 할것이다.

만약 여기까지 찾아온 게 우연이 아니라면 우연을 넘어선 운명이라면 나는 어떻게 받아드려야하는 거지?


나는 비를 맞으며 달렸다. 이젠 왜 달리는 지도 모르겠다. 함페나, 그녀는 나와 정 반대의 함페나야.

미묘하게 같은 분위기를 내는 이유도 나와 정 반대의 함페나였고 나와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도 함페나.


여자는 내 눈앞에 서있다.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린 듯이 웃으며 서있다. 나를 비웃던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듯이 나를 기교하게 바라본다. 아니야. 너는 아니야. 너는 내가 말하는 함페나가 아니야. 그걸 너는 알텐데 왜 나한테 보여주는거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하라는 거지? 나는... 아니야. 내가 그러는게 아닌걸 알잖아. 나는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너는 내 눈앞에 있으면 안되잖아. 나는 도대체... 내가 미술관을 왜 간거였지. 그곳에 미술관이 있긴 했었나? 아니야. 거긴 공터야. 공터인게 분명해.


나는 뒤를 돌아봤다. 미술관이 들어갈때만 해도 거대했던 미술관이 공사가 멈춘 공사장으로 변해있었다.


아, 그래. 이게 나였지. 오늘 약 먹는 걸 까먹었구나. 그래서 그런거였어. 나는 이 모든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약을 안먹어서 그런지 세상의 색이 잘보인다. 흑백으로 보이던 여자는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노을이 이쁘다.


이게 나의 완벽한 함페나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여자의 복부에 찌른다.


"윽.... 잘됐네요. 이게 당신의 함페나이길... 바랄..."


웃음이 나온다. 현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저 이건 내가 약을 안먹어서 생긴 허상이길 바란다. 하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내 손은

그녀만큼은 거짓이 아닌걸 말하고 있었다. 어디가 현실이고 허상인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하모니이고 함페나인지 모른다.


따뜻한 시체는 말이 없다. 나는 웃음을 감출수 없었다. 그림처럼 살인마의 미소를... 허상으로 본 그림이었을까.

진짜인데 내가 미술관을 공사장으로 본걸까.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내가 들은 건 환청이었을까. 내가 찌른 건 환각일까.


모른다. 모르고싶다. 따뜻한 시체는 식어가고 나는 앞으로 걸어갈 차례다. 걷고 걷는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걸까.

나는 무릎을 꿇었다. 기도를 할수밖에 없었다. 회개의 기도일지 아니면 그저 자기합리화일지 나조차도 모른다.


누군가가 저벅이며 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속 그림의 내용대로 일까? 나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모른다.

이것도 환각일까. 이것도 환상일까. 이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병일까.


나는 고개를 들어 눈을 뜨며 앞을 바라봤다. 광활한 빛이 나를 반겨오고 빛 앞에 어떤 사람이 점점 다가온다.


"아, 이것이 나의 완벽한 함페나로구나."


.

.

.


비가 그친 하늘은 끝없이 맑았고 햇빛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주 행복하게.


어느 학교에서는 남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야야 경민아, 그거 들었어? 야산의 미치광이 있잖아."


"그 사람이 왜?"


"그 병신이 야산에서 어떤 여자를 칼로 찌르고 스스로 등부터 나뭇가지에 찔러서 자실했데."


"으엑... 내장 다 튀어나오고 그랬겠네."


앞에 있던 남학생은 밥을 씹다 말고 오만상을 지으며 말했다.


"야, 너는 그걸 밥먹는데 얘기하냐? 더럽게 그런건 그냥 반에 가서 말해."


"지금 생각나서 말하는걸 어떡해."


"그나저나 오늘 햇빛 너무 좋은거 아니야?"


경민은 밥을 뜨다 식판에 두면서 옆에 있던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게 오늘 너무 함페나스럽다."


"함페나? 그게 뭐야?"


"그냥 내가 옛날에 지은 말이야. 하모니랑 비슷한데 약간은 다른? 그런 느낌이거든."


"언제부터 썼는데?"


"기억 안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매번 이렇게 답해야해서 귀찮지만 내가 생각해서 만든 용어니까 즐겁게 말할래.

가끔, 너같이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더라고."


"미치광이가 좋다고 쓸 말을 만들고선... 됐다. 밥이나 먹자."


"아니 왜? 좋잖아. 함페나라는 게 아무렇게 쓰는게 아니라..."


"니들 그냥 밥 먹어 돌림노래 하냐?"


"그래..."


경민의 앞에 있던 남학생이 화를 내자 경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었다.


학교 밖에는 개미들이 열심히 먹을 것을 나르며,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신실한 종교인의 집에서는 찬송가가 들려오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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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드리프트가 재밌어서 멈출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