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에도 틈이 있다.


가만히 두면


어느새 전체를 집어삼키고 만다.


일어나라


고쳐야 한다


틈을


부조리를.




"헉!"


수연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온몸이 축축히 젖어있었다. 침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써 일주일째야.'


머릿속에 꼬인 실이 가득 들어찬 느낌이다. 뭔가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침대 머리맡에 전자시계가 있다. 수연은 눈을 돌린다. 6시 39분. 붉은 불빛이 차갑게 깜빡인다.


"딸~ 밥 먹어라."


수연은 찝찝한 침대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 없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 왠일이니? 그렇게 깨워도 꿈쩍 안 하던 애가."


수연은 식탁 위를 스캔했다. 베이컨에 계란과 빵. 별로 좋아하는 조합은 아니었다. 기름지게 먹으면 버스 안에서 위장이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자리에 앉아서 먹기 시작한다.


"오늘 새벽 4시, 또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는 57세의 노숙자이며, … 아직도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입니다."


TV에선 아침 뉴스치고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일주일 연속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나 뭐라나. 하지만 수연에겐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녀의 학교는 소용없다는 듯이 야자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어머. 세상 참 흉흉해라. 수연아, 야자 끝나고 곧장 집으로 와라. 알겠지? 큰길로만 다니고."


"네. 알겠어요, 엄마. 이제 씻고 나갈께요. 버스 올 때 다됐네."


지금 수연에게는 살인사건보다 자신의 내신 성적이 더 큰 관심사일 것이리라.




"어? 수연아, 안녕?"


"아,... 안녕…."


민준이다. 수연은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보도블럭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진짜로.


"아, 수연아. 있다가 뭐 물어봐도 돼? 수학이 진짜 어렵더라."


"흐잇!"


혈관이 파열되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수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수연은 민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 그래, 수연아? 어디 아파?"


수연이 이러다 진짜로 골병 들 거라고 순간, 버스가 도착했다. 수연은 속으로 안도하며 버스에 올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서서 가야 하냐고? 아니다. 앉을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왜 최악이냐고? 딱 두 자리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란히.


"앗싸, 운좋다! 수연아, 어서 앉자!"


"으...응…."


수연의 머리는 금방이라도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버스 안은 사람이 많아서, 둘은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어 앉아야 했다.


침착하자. 수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민준이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왜 신경써야 하지? 수연이 그렇게 속에서 마음을 끓이는 동안, 민준은 야속하게도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긴, 대한민국 고 2는 늘 수면부족이니까.'


민준의 잠든 얼굴을 본 탓일까, 잠의 포자가 수연의 눈에도 엉겨붙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히터 바람으로 빵빵하게 채워져 있었다. 수연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일어나라.


나의 아이야.


버드나무 망치를 들고


모난 돌을 쪼아라


틈을 메꿔라


너 가는 길을


내가 축복하리라.




"헉!"


수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허파를 쥐어짜며 숨을 뱉느라 가슴이 아렸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두 눈에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또 뭔가 이상한 기분이야…'


목 뒤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수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가져갔다. 뭔가 딱딱하고 맨질맨질한 것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수연은 여드름이 굳은 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 뒤에 학교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사람들은 그 전에 다 내려서 내리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수연 학생이지?"


"네? 네. 누구세요?"


버버리 코트에 부스스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수연은 경계심이 바짝 올랐다. 아침에 본 뉴스가 귀 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남자는 스마트폰을 꺼내 수연을 카메라로 비추어 보았다. 수연은 어안이 벙벙하여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또 이러면 신고할 거에요. 수연아 뭐해? 가자."


"..으응…"


민준이 그녀의 손을 확 채어갔다. 그들이 저만치 멀어졌을 때에도, 남자는 스마트폰을 본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띠고서.



그 뒤에 있었던 일은 너무나 지루해서 글로 쓰기 싫을 정도였다. 수업받고, 쉬고. 수업받고, 점심먹고. 그 뒤 저녁과 야자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 고등학생 그 자체였다. 야자가 끝나고 나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수연과 민준은 같이 버스를 탔고,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수연아, 그럼 내일 봐~"


"응.. 너도."


민준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골목길을 빠르게 내달렸다. 수연은 그러고도 몇 분 동안 민준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아, 참. 집에 가야지. 요즘 흉흉한데. 나 뭐하는 거람.'


수연은 집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걸음을 내딛으려는 그 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왼쪽 뒤통수를 가격했다. 수연은 왼쪽 뒤를 흘끗 쳐다봤다. 오늘 오전에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뭐야. 무섭게.'


수연은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핸드폰을 꺼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집 쪽을 향해 갔다.


남자도 비슷한 속도의 걸음으로 쫓아왔다.


수연의 가슴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에 맞추어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남자도 점점 속도를 내었다.


'제발. 왜 그러는 거야. 따라오지 마.'


어느샌가 수연은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가슴은 수축과 팽창을 맹렬히 반복하여 지금 당장 찢어질 것만 같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뜀박질 소리는 이미 수연을 앞지르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수연의 머릿속에서 어제 본 뉴스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시체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신발에 망치를 단 듯 그 발소리가 둔탁했다.


그 때,


"그르륵… 그르르르륵!"


"아.."


3번째 골목길이었다. 수연은 봐 버리고 말았다.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꿈인 것 같았다.


"그르르르륵."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그림자는 사람을 닮았다. 그러나 얼핏 보기만 해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그것의 피부는 검붉었고, 손가락은 뾰족했다. 입은 일반인의 배는 컸고, 그 안은 솔잎같은 이빨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아...아…."


수연은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바닥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버둥거렸다. 그것은 그 사람의 뱃속을 한창 뒤지는 중이었다. 피가래가 끓는 소리가 끔찍했다. 아무리 사람이어도 갈라놓으면 돼지고기랑 별다른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르르.. 그하아아앗!"


그것은 씹던 고깃덩이를 뱉어버리고 수연에게 달려들었다. 수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것이다


저것이 바로 틈이다.


다른 말로 이명


너가 잠들지 못하게 귀찮게 구는 것


저것을 없애라


찢어진 것을 다시 붙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그하앗!"


그것은 달려들 때와 거의 같은 속도로 튕겨져 나갔다.


'뭐지…? 저거…. 내가 한 건가?'


수연은 몸이 뜨거웠다. 몸 안에서 잡동사니들이 마구 뒤섞였다가 다시 배열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목 뒤편에 있던 비늘들이 자라나서 가슴께까지 덮었다. 팔에도 비늘이 자라나고 손톱이 길고 날카로워졌다. 동공이 고양이의 그것처럼 스산해졌다. 송곳니도 몇 배로 길어져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르르르르…."



바로 그것이다


내 딸아.


그것이 나의 축복


깨끗한 샘물과 같은 힘


이제 그 힘으로


고장난 것을 고쳐라!



그것은 인간과 뱀이 반씩 섞인 모습이었다. 수연은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어냈다. 아스팔트가 맹렬한 소리를 내며 녹아들어갔다.


"그하아아앗!"


그것은 갑자기 달려들어 수연의 어깨를 물었다. 그러나 두터운 비늘 때문에 이빨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연은 오른손 주먹으로 그것의 머리를 마구 쳤다.


"그르륵...그르르르르"


수연이 한 대씩 칠 때마다 그것의 머리가 함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놓지 않았다.


"샤~앗!"


수연은 그것의 왼팔을 잡아당겼다. 탈골되는 소리와 근섬유가 찢어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마치 백과사전을 찢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것은 놓지 않았다.


"샤~앗!"


수연은 그것의 배를 후벼 팠다. 뚫린 구멍을 통해 내장이 흘러나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소시지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놓지 않았다.


"쉬~잇!"


마침내 참지 못한 수연은 그것의 목덜미를 물고 독을 주입했다. 상한 복숭아 맛이 났다.


"그르륵? 그하아아앗!"


그것이 목덜미 아래부터 녹아내려갔다. 붉은 고기죽 같은 것이 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제서야 그것은 놨다.


"그르륵… 그르르르르…"


머리만 남은 그것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듯 여전히 꿈틀거렸다. 수연은 오른발을 높게 들었다가 그 머리를 밟아버렸다. 둔탁한 펑 소리가 나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제서야 그것은 조용해졌다.



수고했다 내 딸아.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다시금 수연의 몸에 열이 올랐다. 수연은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온 몸에 났던 비늘이 사라지고, 동공과 송곳니, 손톱도 원래의 귀여운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으으...우웩…"


수연은 그날 먹었던 모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새 몸 안에서 충분히 섞여서 메뉴를 다시 알아보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수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웩. 웩."


너무 많이 게워내서 위액만 나왔다. 더 이상 게워낼 것이 없어지자, 수연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난도질하는 장면을 봤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초연했다. 마침내 수연이 정신을 잃자, 남자는 조용히 다가와서 수연의 맥을 짚었다.


'살아있군.'


남자는 수연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착신음이 5번정도 울리고 나자, 누군가가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두번째 샤먼, 확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