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거에요? 도서관 안쪽 스터디룸 가는 거 아니었어요?"

"아. 아까 보니까 자리가 꽉 찼더라고요. 제가 아는 곳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어요."

마리는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잘했다. 훌륭한 정치인감이다.

"근처에 카페 있는 게 맞아요? 점점 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네, 있어요. 숲 속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르더라고요. 참. 근데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전 마리아에요. 마리아 테일러. 마리라고 불러요."

"아. 그러네요. 통성명도 안하고 지금까지 같이 다녔네요. 헤임달이에요. 헤임달 루즈벨트."

"반가워요. 그런데요, 궁금한 게 있어요. 어쩌다가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 그러니까 헤임달은 주변을 한참 동안 둘러보다가 대답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비밀서재에서 놀다가 어떤 동화책을 봤거든요.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데 한 교실에서 일어난 문제를 아이들끼리 토... 토룸? 인가를 해서 해결하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는 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내용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서 정치학 책을 뒤져보면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 말을 하고 헤임달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발 옆에는 한 떨기의 이름 모를 꽃이 애처롭게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었다.

"아뇨. 괜찮아요. 저도 솔직히 이 나라 싫거든요."

마리는 그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특히 치안유지대는...뭐랄까 좀...싫기도 하고..그러면서 불쌍하기도 하고... 그네들도 공부한다고 고생 많이 했을텐데 막상 되고 나서 하는 짓이 하루 종일 웨어러블 메카트로닉스 입고 국민들 시찰하는 거랑 치마 길이 단속한다고 여자들 다리에 자 갖다 대는 거밖에 없잖아요. 본인들은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말을 듣고 헤임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혹시..."

"그래서 밤마다 그랬나요?"

"네?"

"그래서 밤마다 치안유지대를 때려눕혔냐구요."

"무슨 소리에요?"

그래. 마리. 너무 넘겨짚었어. 아직 정확히 결론난 건 아니잖아.

"제가 교정대원이면 어떻게 하려고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했죠? 감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 싶었나요?"

헤임달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아니면 밤마다 치안유지대한테 하는 것처럼 저를 심판하시게요?"

헤임달의 등에서 쇳덩이들이 부드러운 기계음을 내며 튀어나왔다. 그 쇳덩이들은 헤임달의 등부터 시작하여 팔, 다리, 가슴 등 그의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마블 코믹스의 '아이언맨'처럼.

"당신은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죠? 열정? 혹은 분노?"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왜 그 동화책이 무섭도록 내 기억에 깊숙히 박혀있는 줄 알아? 아냐고!"

마침내 그 쇳덩이들이 헤임달의 몸을 전부 덮어 멋진 기계 갑옷이 되었다. 황금빛이 도는 외피에, 역병 의사의 가면이 떠오르는 까마귀 얼굴 형태의 바이저. 아니, 실제로 보니까 까마귀보단 독수리 같았다. 불을 다루는 독수리 머리의 신? 그런 신이라면....

"'아툼'이군요. 이집트의 창조신이자 태양의 신."

마리가 내 생각을 대변하듯이 말했다.

"그 무쇠주먹에 한 대 맞으면 뼈가 살에 깊숙히 박히겠군요."

이제 나도 그냥 지켜볼 수 만은 없어. 그런데 어느 때에 들어가지? 잘못 들어갔다가 마리가 다치면 어쩌지?

"아참, 그리고 소개가 아직 안끝났어요. 저기 있는 친구는 테세우스 알렉산더에요. 줄여서 테스라고 부르죠."

나는 그녀가 깔아준 타이밍에 맞춰 '신'을 온몸에 두르고 헤임달을 들이받았다. 헤임달은 수십 미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의 몸에 부딪힌 나무들이 우지끈! 하며 쓰러졌다.

"용에게 잡힌 공주를 구하러 백마 탄 왕자님이 이제야 오셨군요."

마리가 어느새 신을 온몸에 두르고는 비아냥대며 말했다.

"뭐? 네가 공주라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안 피할꺼야?"

어느샌가 헤임달이 들고 있던 기다란 지팡이를 불꽃으로 둘러싸인 코피스로 변하게 해서 우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대화는 끝났냐. 너희들."

"와우. 꽤 매너있네. 다굴하는 우리가 미안해지게."

마리가 그를 향해 도발했다.

"전투에서도 깝죽거리다니. 까불다가 죽은 귀신이 붙었나 보구나."

그는 내게 크게 코피스를 휘둘렀다. 나는 뒤로 빠지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코피스가 휘둘러진 궤적대로 그어진 불꽃이 공중으로 떠오른 바싹 마른 나뭇잎들을 태웠다. 내가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그는 순식간에 자세를 바꿔 내게 찌르기공격을 했다. 상체를 펼 겨를도 없이 무리하게 백스텝을 밟느라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헤임달은 내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서 코피스를 위로 올렸다. 그의 코피스에서 불꽃이 마치 검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몇 초 내로 내 머리를 두동강낼 것이다. 이건 못 피한다. 궁니르를 꺼내기에는 늦었다. 아. 나도 이제 끝이구나. 내 머릿속에 12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이 '신'을 처음 얻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