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는 닮았지만 동물과도 닮은 생물인 비인(非人)이 존재하는 세계인거야.

당연한건 아니지만 비인들에겐 인권이 없는거지.

인간 말을 할줄 알고 인간 말을 알아듣는데도 말이야. 아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엔 수가 너무 적어서 그럴지도 몰라.


보통 잡히면 가축이하의 취급을 받는 비인중에서 예상 외의 대접을 받는 비인이 하나.

바로 사냥꾼중에서도 최고의 사냥꾼이라 불리우는 얀붕이의 파트너. 늑대 비인인 루나인거야.

아직 얀붕이가 풋내기 사냥꾼이던 시절, 덫에 걸린 그녀에게 연민을 느껴 풀어준뒤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도시락도 나눠준 것이 인연이 된거지.

그렇다면 어째서 얀붕이가 그녀에게 사람같이 대접해주느냐?

답은 간단했어. 가장 큰 이유는 몇년동안 동거하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나머지 이유는 그가 최고의 사냥꾼이라 불릴 수 있었던건 그녀의 공이 컸기 때문인거야.

그녀가 지금까지 얀붕이를 위해 잡아왔던 맹수들과 짐승들의 수는 네자리가 넘어갔고, 그중에는 호랑이나 곰같이 혼자서는 잡을 엄두가 안나는 맹수들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는거지.

많이 잡아오면 얀붕이가 기뻐하니까. 많이 잡아오면 얀붕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까. 기타등등의 이유.

얀붕이의 애정을 받기위해 루나는 매일매일 네다섯마리의 짐승을 잡아오는거야.

보통 사람과 같은 넓적한 모양이지만 강도와 날카로움은 훨씬 뛰어난 열개의 손톱으로 말이지.



얀붕이에겐 혼담이 자주 오가는거야. 최고의 사냥꾼인데 아직 미혼이었으니까. 하지만 얀붕이는 그런것들을 전부 거절하는거지. 루나가 있었으니까.

그녀에 대한 얀붕이의 인식은 연인이라기보단 딸에 더 가까웠지만 혼담을 거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루나가 있기 때문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맞선을 보자고 요청하는 여성이 있는거지.

바로 얀붕이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큰 대저택에 거주하는 백작가의 영애. 얀순이인거야.

사냥을 마치고 루나와 함께 돌아오는 얀붕이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얀순이 역시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거야.

사냥에서 돌아오는 그에게 음료수를 갖다준다던가, 만찬에 초대한다던가 하면서도 맞선을보자는 요청을 꾸준히 하는거지.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교육을 아주 잘 받았다는거야.

그게 뭐가 문제가 되나? 당연히 되지. '비인들은 인권이 없으니 가축취급을 해도 된다.' 라는건 그 세계의 상식중 상식이었으니까.

당연히 그와 함께 다니는 루나의 존재는, 그녀의 눈엔 잘 길들여진 사냥개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았던거지.


"루나, 잠깐 어디좀 다녀올게."

"얀붕아, 나도 같이 가면 안돼? 응?"

"미안해. 대신 갔다오면 잔뜩 쓰다듬어줄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줘?"

"으응.. 알았어! 빨리 돌아와야 돼?"


루나를 두고 집을 나선 얀붕이가 향한 곳은 얀순이의 저택이었어.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저런 대접을 해주는데 계속 맞선을 거절하는것도 실례라 생각하는거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얀붕씨."

"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얀순씨."


얀순이는 얀붕이의 사과를 받아주며 그의 손을 잡아 이끄는거야.

흑장미가 만발한 정원 한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에서, 얀순이는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며 얀붕이에게 묻는거야.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혼담을 거절해오셨나요?"


얀순이의 질문을 들은 얀붕이는 고심끝에 진짜 이유를 털어놓는거고.

그의 대답을 들은 얀순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거지.


"그 루나? 라는 꼬맹이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구요?"

"네. 어째서인지 루나가 여자한테는 특히나 까칠하게 굴더라구요."


얀붕이는 그렇게 말하며 지난 날을 떠올리는거야.

처음으로 소꿉친구를 데려온 날. 얀붕이를 맞이하러 현관앞까지 달려온 루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던거지.

그리고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맹수를 바라보듯 살벌하게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렸었고.


"그렇다면 그걸 내쫓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네?"


얀붕이는 당황하며 횡설수설하는거야.

지금까지 수년동안 같이 살아왔다던가, 루나를 내쫓으면 그 아이가 슬퍼할거라던가, 루나가 사냥에 도움이 많이 되어준다던가 하며 말이야.


하지만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를 바라보며 말하는거지.


"애초에 그건 비인이잖아요? 그게 슬퍼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요? 그리고 그게 없다고 해서 사냥을 못하는것도 아니고요."


그녀와의 맞선이 끝나고 도망치듯 나온 얀붕이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거야. 마음속으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얀순이의 맞선 요청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때마다 얀붕이는 비인에 대한 그녀의 정론을 듣는거야.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고 루나에 대한 얀붕이의 생각도 점점 바뀌는거고.


'그래. 걔는 비인이잖아.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줬음 됐지.'


라는 옛날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도 하는거야.

얀붕이의 마음이 점점 얀순이쪽으로 기울기 시작할수록 루나의 대우도 점점 나빠지는거지.

밥도 알아서 찾아먹으라고 그러고 사냥을 해와도 잘했다고 건성으로 말하고 그러는거야.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사냥을 위해 얀붕이를 따라 도시 근처의 삼림으로 들어간 루나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되는거야.


"야.. 얀붕아,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더 말하기 싫으니 잘 들어. 넌 더이상 날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 그러니 이제부턴 혼자 살아가야 해."

"얀붕아!"

"네 마음대로 살아. 넌 이제 자유니까."


팔아치우지 않고 놓아주려는 건 얀붕이의 마지막 양심이었어. 물론 어느쪽이든 간에 루나에겐 최악의 선택지였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매달리려는 루나를 매정하게 떼어놓은 뒤, 얀붕이는 얀순이에게로 돌아가는거지.

토사구팽.. 아니 토사랑팽당한 루나를 발견한건 소문을 들은 다른 사냥꾼들이었어. 주인있는 비인은 함부로 잡지 못하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은 비인은 잡든말든 상관없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비인이 사냥을 매우 잘했으니 더더욱 잡아야 했지.

그녀를 잡기 위해 일제히 올가미를 던지는 사냥꾼들이었지만 포획에 실패하는거야.

올가미를 잘못 던진건 아니었어. 단지 그 올가미들은 공중에서 깔끔하게 토막이 났을 뿐이었지.

날카로운 손톱을 꺼낸 루나는 올가미에 이어 당황한 사냥꾼들을 차례차례 토막내며 말하는거야.


"내가 어째서 너희들에게 덤비지 않았는지 알아?"


그녀가 한마디씩 말할 때마다 그 주변에선 선혈이 튀고 비명이 들리는거야.


"그러면 얀붕이가 싫어하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이제 상관없어졌지. 얀붕이에게 버려졌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남은 사냥꾼의 머리를 악력만으로 부숴버리는거지.


루나를 숲에 놓아준 뒤,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청혼하는거야. 당연하게도 얀순이는 미소지으며 그 청혼을 받아들이는거고.

두 사람의 성대한 결혼식이 열린지 몇주가 지났어.

아직 사냥꾼일을 그만두진 않았던 얀붕이는 오랫만에 도구를 챙겨 사냥에 나서는거야.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사냥에 나선 얀붕이는, 그날 단 한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한 채 돌아오는거지.

매일 그를 위해 사냥을 하던 루나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어. 왜나하면 대부분의 사냥꾼들도 똑같이 허탕을 쳤으니까.

어째서인지 숲에 가득하던 짐승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거야.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이라도 사냥감이 없는 이상 사냥을 할수는 없었지.

왜 이렇게 사냥감이 없냐고 투덜거리던 얀붕이에게, 같이 사냥을 나서준 그의 친구가 그에게 무엇인가 말해주는거고.


"자네는 결혼식과 피로연때문에 몰랐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숲의 짐승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었네. 하루가 지날때마다 눈에 보일정도로 수가 줄어들더니 오늘은 아예 아무것도 잡지 못하게 되었어."


그때 얀붕이는 루나를 생각했어. '걔만 있었어도 허탕치진 않았을텐데' 라고 말이야.

얀붕이는 루나를 내버린 것을 조금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갔던거지. 속물적인 새끼.

이튿날. 한 사냥꾼이 묘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주는거야.

숲속 깊은 곳에서 고라니를 잡아 가죽을 벗기는 늑대 비인 하나를 봤다는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사냥감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 사냥꾼중 무사히 돌아온 사냥꾼은 없었어. 부상을 입고 돌아온 사냥꾼만 있었지.

수십명의 사냥꾼중 단 세명만이 신체 일부가 결손된 채 돌아온거야.

대체 무슨 맹수에게 이렇게 당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는거지.


"흑발에 호박색 눈을 가진 늑대 비인에게 당했다." 라고 말이야.

곧바로 그것에게는 현상금이 붙고 수많은 사냥꾼들이 그 비인을 잡으려 했지만 결과는 그것의 현상금이 오를 뿐이었어.

그것의 악명이 오를대로 오르고 피해가 사냥꾼들뿐만이 아니라 도시 주민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하자 그 불똥은 얀붕이에게 튀기 시작한거야.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건 최고의 사냥꾼인 얀붕이뿐이라는 온건한 말부터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졌는데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작자는 지금 뭘하고 있냐는 말까지.

도시의 여론은 얀붕이가 나서서 그 비인을 잡아주길 원하는거야. 얀순이가 어떻게든 여론을 진정시켜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던거지.

결국 등떠밀려 사냥에 나서게 된 얀붕이는 그의 아내에게 인사를 하는거야.


"그럼 다녀올게 여보."

"당신.. 사냥같은건 실패해도 좋으니 부디 무사히만 돌아와줘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얀붕이는 마음을 다 잡고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거야.

그리고 숲의 입구에서, 자신이 버렸던 루나와 다시 만나게 된거지.


얀붕이의 눈에 비친 루나의 모습은 그때와 달라진게 별로 없어보였어. 기껏해야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졌을 뿐이었지.


"오랫만이야 얀붕아."

"...그래. 오랫만이네."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당연히 사냥이겠지? 뭘 잡으러 온걸까?"


"널 잡으러 왔다." 라고 얀붕이가 바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어.

자신을 최고의 사냥꾼이라 불릴 수 있게 해준 그녀를 자신이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게.."

"혹시 씨가 마를대로 마른 짐승을 잡으려고 온걸까나?"


예상치못한 말에 얀붕이의 표정이 굳는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는 미소지은 채 그를 바라보며 말하는거지.


"너 그걸 어떻게.."

"그것도 아니면 날 잡으러 온거겠지? 악명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흉악한 짐승인 날 말이야."


마치 어제 먹었던 아침식사의 맛을 말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루나의 모습을 보며, 얀붕이는 그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는거지.


"루나."

"왜애?"

"..숲의 동물이 줄어들게 한것도, 사냥꾼들을 죽인것도. 전부 네 짓이야?"


그의 물음에,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거지.


얀붕이에게 루나가 버림받은 바로 그 날. 손에 묻은 사냥꾼들의 피와 살점을 닦아내며 그녀는 생각했어. '어떻게 하면 얀붕이가 돌아와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배만 고파질 뿐이었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사슴 하나를 잡아 뜯어먹던 중, 좋은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번뜩인거야.

얀붕이가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신을 찾아와줄거라는 생각이.


"그래서 하루에 백여마리씩 잡아댔지. 점점 수가 주는게 보이더라?"


그래도 찾아왔으면 하는 얀붕이는 오지 않았고 쓰잘데기없는 사냥꾼들만 찾아오자 또다시 좋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인거고.


"뭐어.. 그때부터 악명을 마구 쌓기 시작했지."

"악명..? 대체 왜?"

"그도 그럴게.. 넌 최고의 사냥꾼이잖아? 고작 늑대같은거 잡아달라고 너한테 부탁하진 않겠지. 다른 사냥꾼도 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최악의 야수라면 어떨까?"


그녀는 얀붕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 말하기 시작하는거지.


"다른 사냥꾼은 잡을 엄두조차 못내는 최악의 야수."

"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 그걸 잡을 수 있는건 최고의 사냥꾼인 너 말곤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짐승들의 씨를 말려버리고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고작 날 다시 만나려고?"

"죄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응."


새하얗게 질린 얀붕이는 뒷걸음질치며 말하는거야.


"미쳤구나. 완전히 미쳤어!"

"나도 내 행동이 비정상적이었다는건 알아. 하지만 헛짓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이렇게 네가 날 찾아와줬잖아?"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황급히 도망치는 얀붕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거야.


당연하게도 얼마 안되어 따라잡았지.

루나에게 밀려넘어진 얀붕이는 자신의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톱을 보며 혹시 목을 그으려나 싶어 흠칫했지만 그녀가 끊으려는건 그의 경동맥이 아니었지.

그의 다리힘줄이었어.


"걱정마 얀붕아. 네가 어떻게 변하든 난 널 사랑하니까."


얀붕이의 양쪽다리의 힘줄을 끊어버린 루나는 이번엔 팔의 힘줄을 끊기 시작하며 말하는거지.


"네가 다리를 쓰지 못해도, 손을 쓰지 못해도, 말을 하지 못해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야.. 얀순아.. 미안해."

"얀순이... 그게 그 도둑년의 이름이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루나는 도망치지 못하는 얀붕이를 내버려둔 채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한거고.

...

그로부터 몇년 뒤. 무분별한 사냥으로 동물의 씨가 마르다시피한 숲에는 다시 동물들이 넘쳐나게 되었어. 사냥꾼들은 물론이고 근처 도시의 주민들도 숲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거든.

숲속 깊은 곳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호박색 눈의 늑대 비인 루나는 그녀의 '남편'의 곁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하는거야.


"그때 그년의 목을 이렇게 높이 들어올리며 이렇게 말했었어. '저 숲은 이제 내꺼야. 만약 저곳에 들어온다면 이렇게 될줄 알아.' 라고 말이지?"

"..."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않는 그녀의 남편에게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루나의 모습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어.




옆동네 몬챈에서 글쓰다 여기 오게 되었음.

후회물 말고 얀데레글 써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소원을 이루네.

일단 얀붕이는 살아있음. 일단은.


그리고 루나는 대충 요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됨.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봐줘서 너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