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어둡고 조용한 골목길 안에서 발소리 하나가 외로이 흘러나온다.

자세히 들어보면, 나즈막한 콧노래도 들려오는 듯 하다.



잘그락, 잘그락.



입고 있는 하늘빛 원피스와는 어울리지 않게 왼 어깨에 무언가 가득히 들어찬 흑색 가죽백팩을 매고 걷고 있지만, 발걸음은 그 무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기라도 하는듯 가볍게 느껴진다.



그 발소리는 이윽고, 어느 허름한 창고의 커다란 철문 앞에서 멈춰선다.

철문 옆의 유리창에 얀순이의 얼굴이 비추어진다.


얀순이는 매우 신나는 일이라도 있던 것인지 얼굴에 행복이 한가득 우러나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잠시 흥얼거림을 멈추고, 주머니 속에 있는 열쇠 하나를 집어든다.


잠시 열쇠를 달빛에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철문 손잡이에 걸린 자물쇠에 맞추어 끼운다.



끼기기기긱.



철문이 비명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철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얀순이의 얼굴에서는 점점 더 감정의 색채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참을수 없는 기대감에 흥얼거림이 다시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철문이 미처 다 열리기도 전에 문틈을 비집고 들어선 얀순이는 1분 1초가 아까운듯 빠른 발걸음으로 맞은편 벽면으로 다가간다.

벽면에는, 짚더미가 한가득 들어차 있다.


가방을 내려놓고 짚더미를 옆으로 밀어내자, 지하로 향하는 철문 하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금괴라도 숨겨놓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육중한 문을 열고, 얀순이는 가방을 낚아채듯이 든 채 계단을 뛰듯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철문은, 저절로 스르륵 내려오더니 쾅 소리와 함께 닫힌다.




계단의 끝에서는,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불빛의 근원지 바로 아래에는, 입에 재갈을 물린 채 팔과 다리가 묶여있는 채로 쓰러져있는 한 남성이 있다.

아니, 남성이라고 해도 좋을까. 반 시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반바지 이외에 다른 천쪼가리 하나도 걸치지 않았고 온 몸에선 성한 부분 하나라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한듯 온 몸은 앙상한 뼈가 드러나와 있고,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온 몸에 피가 떡이 되어 뭍어있다.



탁, 탁, 탁,



계단을 한칸 한칸 뛰어내리는 소리가 날때마다 어깨가 들어선 안될걸 들어버린것처럼 흠칫 흠칫 뛴다.

이내, 그 흠칫거림은 공포로 인한 떨림에 뭍혀버린다.



"얀붕! 잘 있었어?"



귀여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조용하던 방 안을 울린다.



".......읍......"



이 대답은, 아마도 "네" 였으리라.


얼핏 보아도,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보다 바닥에 누워있는 남성이 더 연장자라는건 훤하지만 얀붕이에게는 얀순이에게 반말을 한다는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한겨울에 바닥으로 내려오면 춥다고 했잖아~ 자, 침대로 업어줄게!"



얀순이는 가방을 한쪽 구석에 던져놓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얀붕이를 공주님 안기처럼 안아 침대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혼자서 침대 위로 못올라가면서 자꾸 바닥으로 내려오면 안된다고 했지? 또 내려오면 그땐 진짜로 화낼거야!"



화를 낸다. 이 한마디에 미약하게 떨리던 얀붕이의 신체가 마치 발작이라도 하는듯 덜덜덜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작인건지, 자의인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처절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얀순이가 만족스럽다는듯 얀붕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준다.



"그래~ 착하지, 착해. 나의 얀붕이.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면 얼마나 편해. 아! 맞아, 얀붕아 내가 선물 하나 가져왔어!"



얀순이가 급하게 가방으로 뛰어가더니, 가방 지퍼를 확 열었다.


가방 안에서 공구들이 부딫히는 소리와 비닐 소리가 시끄럽게 섞여 고막을 찌른다.



"짠! 어때 명붕아?"



호기롭게 외치며 얀순이가 들어올린 것은, 무언가가 들어있는 검은색 비닐 봉지였다.

곁눈질로 얀순이의 손을 바라보는 얀붕이의 눈빛에는 의문이 떠오른다.



"아차차, 내 정신좀 봐.  비닐채로 보여버렸네. 잠시만 기다려봐."



얀붕이가 가방으로 다시 가더니, 피딱지가 뭍은 니퍼 하나를 꺼내어 비닐 봉지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잠시 부스럭거리더니, 다시금 얀순이가 손에 무언가를 쥔 채로 뒤를 돌아섰다.



얀순이의 손에 들린것은, 사람의 머리다.


정확하게는, 한 여자의 머리.



나잇대는, 얀순이와 비슷할까?


검은 머리칼은 헝클어져있지만 한때 열심히 관리했던듯 아직도 윤기가 흐르고 있고, 얼굴에서도 앳됨과 예쁨이 아직 그 머리의 주인이 얼마나 미모의 여성이였는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단지 그녀의 표정에는 지워지지 않는 공포와 고통이 새겨져 있을 뿐.



그걸 본 얀붕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며 그 머리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얀붕이의 귓가에서 얀순이의, 아니, 악마의 목소리가 맴돈다.



"이년이 나한테 계~속 얀붕이가 어디있는지 물어보더라고. 자꾸 날 의심하지 뭐야? 어차피 얀붕이의 생일날에 혼쭐을 내주려 했는데 짜증이 나서 오늘 바로 해버렸어. 얀붕이의 생일날 선물을 뭐로 해야할지 고민을 다시 하느라 고생했다니까~"



얀붕이의 사고가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눈과 입에서 비통함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어머, 감동받은거야? 아하하, 울 정도로 기뻐할 정도는 몰랐는데. 하긴 이년이 얀붕이한테 꼬리치던 년인데 없어져서 얀붕이도 기쁘지?"



얀순이가 천천히 걸어와서, 얀붕이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후후. 이년은 이미 죽어버렸으니, 얀붕이 생일선물로는 뭘 주어야 할지 고민 좀 해봤어. 생각해 봤는데, 얀붕이 너에게 남은거라고는 이제 나와 네 여동생 얀진이 뿐이더라고? 얀진이 그새x도 네게 관심이 좀 있던 년 같은데, 생일때는 그년을 데려올께. 그년까지 없어지면, 얀붕이 네겐 나 뿐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얀순이는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나중에 올게~ 라는듯 손을 흔들고 다시금 계단을 올라간다.

나즈막히, 저 멀리서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방 안에는 흐느끼는 소리만이 남는다.


얀붕이는, 고개를 들어 머리말에 놓인 머리를 바라본다.


그녀와의 추억이, 클라이막스처럼 재생된다.



사귀기 시작한 첫 날에 행복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웠던 추억.

사귄다는걸 반 친구에게 걸려서 한동안 얘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추억.

처음으로 데이트를 가서 손을 잡아보았던 추억.

분위기에 휩쓸려 첫 키스를 했을 떄의 추억.

첫 경험에 힘들어하던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던 추억.

내가 스토킹을 당하는것 같다고 하자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던 추억.


그 모든 추억이 얀붕이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내가, 그날 얀순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얀순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얀순이에게 말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날 얀순이가 집으로 초대했을때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얀순이에게 고문당하여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팔과 다리의 통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얀순이에게의 증오심도,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지금 얀붕이가 느끼는 감정이라고는, 비참함과 자책감, 그리고 슬픔 뿐이였다.


그렇게 자책하던 얀붕이의 눈에, 얀순이가 두고 간 가방이 보였다.




-




"네, 네. 네~ 꼭 4월 오기 전까지 작업 부탁드릴게요. 네, 네~"



통화 종료음이 들리자, 얀순이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끈다.

책상에 걸터앉아, 인터넷을 켜면서 과거를 잠시 떠올린다.



어릴적 그토록 신뢰하던 고모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날 이후부터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었다.


그렇게 피폐해져가던 얀순이를, 그 구렁텅이에서 빼내어준 얀붕이와 만나기 전까지.


그 이후부터는 늘 얀순이의 삶엔 얀붕이가 끼어있었다.

얀순이겐, 얀붕이가 삶 그 자체였다.

얀붕이와 함께 있을땐, 삶을 살아가는것이 실감되었다.

얀붕이가 하루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삶을 살아갈 의욕조차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걸, 그 벌레같은 년이 뺏어갔다.


얀순이는,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얀붕이를 집으로 끌어들여 납치한 후, 반항을 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매일같이 관리를 해 주니 일주일정도 되니까 주는 밥도 고분고분 받아먹을 정도가 되었다.

얀붕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감히 얀붕이를 뺏어갔던 그년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었다.

천천히, 천천히 고통이란 고통은 다 느끼게 해 주고 마지막으로 산 채로 머리를 잘라냈었다.


실은 이걸 몇달 뒤 얀붕이의 생일날에 할 예정이었지만, 뭐 얀붕이도 만족한거 같으니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얼른 저 지하실 공사가 끝이 나야 얀진이 그년을 얀붕이 생일 전에 잡아넣을텐데, 하며 얀순이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차, 지금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라고 중얼거리며 얀붕이의 저녁 식단을 짜기 시작한다.




물론 그 저녁을, 아니, 이제 얀붕이가 무언가를 먹게 될 일은 없지만.






글 써본 적은 없어서 막 끄적이긴 했다

3인칭으로 쓰다가 1인칭으로 툭하면 노선변경하려고 하는거 개화나네

글 잘쓰는 넘들 개부럽자너


여하튼 난 이런식으로 얀붕이가 굴복하는 거보다 죽음으로 파토나는 케이스가 딱 취적인거같음


얀붕이가 죽거나 얀순이가 죽어서 끝장나는 얀데레 커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