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얀붕이 생각남


 일단 얀붕이는 도시에 들어온지 꽤 된 용병임. 2077겜의 V를 생각하면 좋을듯. 구를 대로 굴러 봤고 짬밥도 꽤 먹었지. 여럿 유명한 픽서들에게 픽업되서 일도 몇 번 같이 해봤고, 얀붕이랑 같이 일 시작했던 드글드글한 신입 놈들 중에 살아 남은 동기 용병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밖에 남지 않았지.


 여느 때와 같이 언제까지 남 뒤 닦아주면서 푼돈이나 만지는 삶을 탈출할까 고민중인 얀붕. 이정도 사는 것도 나이트 시티에서는 정말 손꼽히는 중산층이지만, 얀붕이 노리는건 맨 위. 도시의 전설이었음. V, 조니 실버핸드나 아담 스매셔, 모건 블랙핸드 같은 전설들 말이지.


 물론 얀붕이는 그런 전설에 홀려 날아가 타버리는 불나방 같은 사람은 아니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 한계 내에서만 활동하는 인물이거든. 총질, 칼질 같은 싸움은 끝내주지만 이런 미래 도시에서 쉽게 쉽게 살아갈 넷러닝 기술은 정말 꽝이었거든.


 그래서 반 몽상가, 반 현실주의자 같은 자세를 취하고 살던 얀붕이에게 어느 날 의뢰 하나가 들어와.


 예전에 스치면서 본 기업 일을 전문 수주하는 픽서의 의뢰였지.


 픽서의 의뢰는 간단해. 어느 모텔 하나에 가서 여자 한 명을 처리하라는 일이었지. 그런 일들은 굳이 용병을 쓰지 않고 뒷골목 스캐빈저들한테 푼돈 쥐여줘도 끝날 일인데 왜 내게 맡기는지, 왜 기업이 여자 하나 죽이자고 요원이 아니라 용병을 구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얀붕은 굳이 질문하진 않았어.


 픽서에게 대드는 것처럼 보이는건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닐 뿐더러, 그 픽서가 기업 뒷배가 든든하다면 더욱 그랬지.


 일단 목적지 모텔로 향한 얀붕. 이런 일은 금방 금방 끝내는게 좋지.


 모텔은 조용했어. 정말 쥐죽은듯이 조용했지. 이게 얀붕의 심기를 굉장히 거슬리게 만들었어. 보통 밤 시간대의 모텔은 자러 오는 관광객들이나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었거든. 적어도 방 안에서 들려오는 티비나 라디오 음이라도 들려야 했는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


 뭔가 일이 제대로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얀붕은 목표인 한 호실 문을 열어.


 거기엔 눈이 가려진 채, 사지가 의자에 테이프로 결박된 채로 앉아 있는 한 여자가 있었지.


 얀붕은 여자를 보자마자 서늘한 비수같은 직감이 머리를 관통하는걸 느껴.


 이 여자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고, 내가 이 여자를 죽이면 기업이 내 뒤통수를 후려 갈겨서 자신을 좆박게 만들고 치워버릴 거라는 직감. 그리고 이런 직감은 보통 틀릴 일이 없으니, 얀붕은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어.


 먼저 묶인 테이프를 뜯어내고, 눈가리개를 치웠지.


 가까이서 본 여자는 예뻤어. 정말 예뻤지. 나이트 시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긴 생머리의 흑발과 아름다운 두 벽안. 얀붕이는 정말 무심코 그녀에게 키스할 뻔 했지만, 지금 상황이 좆같이 흘러가는데 그럴 정신이 없다며 정신 차리고 여자를 풀어줘.


 여자는 얀붕이 풀어줄 때까지 아무 말도 안하다가, 전부 풀어주자 자신의 손목을 만지면서 얀붕에게 묻지.


 넌 누구냐, 젠킨스가 보내서 온 사람인가? 하면서. 물론 얀붕이는 젠킨스가 누군지 몰라. 픽서의 이름이 아니였거든. 얀붕은 여자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해. 기업 일 전문 픽서에게 일을 받았는데, 그게 당신 머리에 총알을 박는 일이였다고.


 쉬운 일인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묻는 여자. 당연히 박았다가는 기업에서 당신 살해자로 날 내걸고 내 머리통에도 총알을 박을 텐데, 그런 개죽음은 사양이라서 그러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얀붕.


 여자는 얀붕이 좀 마음에 들었어. 생긴 것도 반반한게 머리도 똑똑하고, 보기보다 총질도 잘하게 생겼거든.


 여자는 자신을 소개해. 이름은 얀순, 메카-코프 중 한 곳, 얀붕이도 알만한 그 곳에서 새 CEO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밀려나서 좆박은 상황이라는 거였지. 자기 수족들을 모아서 반격을 준비하려던 과정에 납치됐다는 거였지. 그리고 용병 손에 죽는 개죽음을 통해 기업 동정표도 좀 얻고 말이야.


 얀붕은 이 여자를 살려주나 죽이나 개좆된 상황임을 깨닫지. 죽이면 이 여자 라이벌 손에 놀아나는 거고, 살리면 살려주는 대로 기업 똥을 존나 크게 밟아서 찌린내가 씨발 온 나이트 시티에 진동하겠구나 싶었거든.


 얀순은 한 가지 제안을 해. 아직 자기 세력은 건재하고, 지금 좀 흔들렸지만 내가 돌아오면 그 개새끼들 다 밟아버리고 내가 새 CEO에 오를거다. 너 보아하니 머리도 좀 돌아가고 총도 잘 쏘는데, 나랑 같이 일 할 생각 없냐고.


 얀붕이 고민하기도 전에, 상황이 대답을 강요했어. 낌새를 눈치챈 반 얀순파 기업 요원들이 모텔 바깥에서 총질을 시작한거지.


 물론 나이트 시티에서 총질로는 원탑인 얀붕은 실력으로 전부 머리통에 총알 한대씩 때려맥이고, 이렇게 된 이상 한 배를 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 깨달아.


 자기 뒤통수를 후려깔려는 개새끼들이 참 괘씸하기도 하고, 나도 한대 맞았으니 너도 한대 맞아야 하는 게 상호주의 아니겠음? 열렬한 상호주의자인 얀붕이가 뒤통수 한 대 맞았으니 이제 뒤통수 한 대 때릴 때가 된거지.


 다만 누군가한테 진짜 총맞는 상황이 처음인 얀순이가 공황 상태에 빠져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얀순이를 잘 달랜 후에, 자기 차에 태워서 친 얀순파가 모여있는 곳으로 향해.


 물론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추가적인 반 얀순파 파벌 똘마니들이랑 존나게 추격전하고, 자기도 총 좀 맞고 그랬지만 얀순이는 멀쩡하지. 가는 길에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생각보다 얀붕이랑 얀순이는 궁합이 잘 맞았어. 좀 시니컬한 면모가 있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낭만주의자인 점도 그랬지.


 얀순이를 자기 파벌에 다시 합류시켜주고, 빠방한 기업 클리닉에서 총알 구멍 난 곳 좀 매꿔. 그다음 얀순이랑 함께 반 얀순파를 아예 아작을 내버리지. 얀붕이가 붙잡은 반 얀순 파벌의 머장 대갈통에 총알 박는건 얀순이가 직접 하는 걸로, 파벌 전쟁은 끝나고 얀순이가 새 CEO에 오르는건 확정 나.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정말 자기랑 같이 일 할 생각 없냐고, 그런 길바닥 삼류 용병 인생보다 자기랑 함께 일하면 상상하지도 못한 부와 명예를 주겠다고 약속, 아니 맹세까지 해.


 얀순이는 얀붕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 이 도시에 몇 남지 않은 낭만주의자인 점도 그렇고, 생각보다 쑥맥인 점도 그렇고, 잘생겼는데 능력도 좋아, 머리도 잘 돌아가, 이 도시에서 총질 하나 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지. 요즘 시대에 이런 남자 찾기가 어디 쉬워? 거기에다 기업 출신도 아니라서 순수해.


 하지만 얀붕이는 거절해. 기업이랑 일을 하면 늘 항상 좆같이 똥밟는거로 끝나면 다행이고, 자칫하단 정말 좆될 일도 생기기 마련이었거든. 이번 일도 그렇잖아? 그 씨발 픽서 새끼가 희생양으로 자신을 고른 것도 괘씸해서 이제 그새끼 조질 생각인데, 기업 일을 더 맡다 못해 기업 소속이 되서, 목에 목줄 걸린다?


 정말 끔찍한 소리지.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아쉽지만 기업과 일하는건 좋지 않은 생각이다, 늘 항상 안좋게 끝나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부탁이 있다면 연락하겠다며 말하지. 얀순이도 아직 얀진회로 돌아가기 전이라서 뭐, 그래라 하면서 시원섭섭하게 보내주지.


 그리고 얀순이는 새 CEO로 취임하고, 얀붕이는 다시 용병 일로 돌아가.


 뭐 그 동안 얀순이는 얀진 회로가 점점 가동하기 시작해서 얀붕이를 생각하는게 하루의 일과를 차지해. 슬슬 이제 얀붕이에게 오퍼를 한 번 더 넣고, 거절하면 그냥 납치해와서 내 곁에 두고 물고 빨고 해버릴까... 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거지.


 그러면서 초고층 건물에서 나이트 시티의 야경을 즐기며 얀붕이를 생각하던 얀순이에게 연락 한 통이 들어오지.


 바로 얀붕이었어.


 얘가 웬 일로 전화를 다 하지? 라는 생각과, 얀붕이 전화다! 하는 리트리버 댕댕이적 생각으로 얀순이는 기쁘게 전화를 받아.


 하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그 기분은 전부 박살나고, 엄청나게 어두운 증오가 얀순이 안에 들어차지.


 전화를 한 얀붕이 목소리는 정말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어. 곧 송장되서 납골당 가기 직전의 목소리였지. 저번에 말한 부탁할 거리 있음 전화하겠다고 한거 기억하냐, 지금 좀 상황이 꼬여서 안좋게 됐다,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말이지.


 얀순이는 증오, 분노, 슬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기쁨을 억누르며 단 한 마디를 말해. 어디야? 라고. 얀붕이는 왓슨에 있는 뒷골목이라고 말하자마자 얀순이는 전화를 끊고 자기 최정예 경호원들을 데리고 왓슨으로 튀어가.


 거기서, 얀붕이를 발견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뒷골목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며, 곧 죽음이 데려가려고 손짓하는 얀붕이를 말이야.


 얀순이는 패닉에 빠진 채 얀붕이에게 달려가서 얀붕이를 끌어안아. 피가 최고급 정장이랑 온 얼굴에 묻었지만 얀붕이 피인데 뭐 어때? 거기에다 얀붕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잖아. 지금 중요한게 그게 다인걸.


 얀순이는 그 때 깨달아.

 

 이 씨발놈의 도시는 우리 얀붕이에게 너무 위험하고, 얀붕이는 언제 총맞아 죽어도 이상할 거 없는 용병이라는걸 말이지.


 그리고 자신은 얀붕이가 정말, 정말 필요하고 말이야.


 그리고 이 도시를 안전하게 만들 수 없다면 얀붕이를 안전하게 가둬두면 되는거 아니겠어?


 


 그렇게 얀붕이를 치료하고 자기 곁에 가뒀다가 얀붕이가 난 이렇게 병신같이 살려고 나이트 시티에 온게 아니야! 하면서 탈출했지만 결국 동네 힘센 기업 CEO인 얀순이에게 다시 잡힌 다음 팔다리 잘려서 얀순이 전용 살아있는 다키마쿠라 + 딜도 된 뒤에 얀순이 임신용 씨앗탱크 되는 이야기 없냐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