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한 선행이 단순히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그 선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봉사활동이라는 이름 아래의 과외는 2시간동안 이어진다. 대체로 학교가 끝나는 4시~5시정도부터 시작해 6시~7시 정도에 끝난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더 하기도, 덜 하기도 한다.

 공부라는 것은 의외로 칼로리 소모가 심하다. 아니, 굳이 공부를 꼽지 않더라도 그 정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라면 물론 배가 고프고, 옆에서 공부를 지켜보는 나도 슬슬 허기질 무렵이다.


 하지만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저녁은 집에 돌아가서 먹으면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 저녁 준비를 시작하면 딱 먹기 좋은 시간이 된다.

 그래서 먹을 걸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혼자서 쓸쓸한 저녁을 해결해야만 했다. 대부분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나머지 대부분은 라면이나 삼각김밥같은 걸로 끼니를 때운다. 마주보며 먹는 상대는 꿈꿀 수도 없고, 호화로운 저녁 식사는 꿈에서도 본 적 없다.

 굶주림에 몸을 떨고

 가난함에는 치를 떤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는 그런 정도의 아이였다. 내가 과외를 끝내고 돌아가버리고 나면, 그 뒤로 그저 시간을 죽치고 보낸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적어도 같이 저녁을 먹자고 넌지시 물어보는 소녀의 모습은,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나로썬 이상하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쌤, 저녁 먹고 갈래요?"


 "저녁?"


 오른손으론 펜을 쥐고 있고, 왼손으론 문제지를 쓸어내리고 있는 소녀가 말했다.

 소녀의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문제지를 채 다 풀어내기도 전에 말을 거는 소녀의 모습에서, 나는 어딘가 모를 결연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라면 끓여 드릴게요."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다른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내가 한 행동은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가 안심한 듯이 살짝 웃었다.


 아주 살짝 웃어서 마치 한숨처럼 보였다.







 6시가 되자마자 소녀는 문제지를 다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소녀가 건넨 문제지를 채점했다. 전부 맞았다. 소녀가 풀어낸 문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빨간 동그라미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물소리에 고개를 들어 소녀를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세 발자국 떨어진 부엌에서 아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마음이 바뀌어 간다고 말할까봐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부산스레 저녁을 준비하는 소녀의 모습에 가만히 앉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지금 간다고 말한다면, 오늘 하루 소녀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이 사라질까 봐, 그래서 말 할 수 없었다.

 나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내가 돌아가 버리고 나면 소녀는 10평 남짓한 집에서 혼자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는 걸.

 그걸 상상하니 마음이 쉽게 내키지 않았다.


 "쌤, 라면으로 괜찮아요? 지금 대접할게 이것밖에 없는데."


 물을 받으며 고개를 돌리는 소녀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주 짧은 바지에 흰 티를 내려입어 마치 아랫쪽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부엌을 따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흰 티가 아슬아슬한 치맛자락처럼 나풀거린다.

 그러면서도 속에 숨긴 짧은 반바지만큼은 드러나지 않고, 오묘한 상상을 계속하게 한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채점한 거는요? 쌤, 이리 줘 봐요."


 소녀가 내 손에 쥔 문제지를 낚아채간다. 결과는 아까 본 대로 백점이었다. 그걸 확인한 아이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살짝 웃는다.

 부엌에는 라면이 끓고 있고, 소녀는 내 앞에 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라면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은 내가 생각해도 어색했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라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면이 끓는다.


 보글보글. 소녀가 내 옆으로 와 바싹 붙어앉는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내 옆으로 붙어 앉은 아이가 내게 몸을 살짝 기댄다.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쌤, 저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애처로운 목소리로,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아이가 내게 말을 건다.

 채 다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영글어가는 가슴이, 아직 순진무구함이 묻어 나오는 얼굴이, 허리를 감아 안으면 품 안에 다 넣고 남을 것 같은 몸매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부모님은 제가 열 살때 돌아가셨어요."


 소녀가 내 어깨와 가슴에 몸을 기댄다. 어린아이의 달큰한 살이 내 옷 위로 스친다.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아이의 마음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돌아가셨고요."


 내가 아이를 내려다보자, 소녀가 내 목 위로 팔을 건다.


 "선생님을 제 보호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쌤은 어른이잖아요."


 내 목 위로 팔을 걸고, 내 가슴팍을 얇은 손가락이 쓸어내린다. 작은 체구의 아이가 천천히 몸을 옮겨 내 무릎 위로 걸터앉을 땐, 나는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었다.

 곱게 정리해 한쪽으로 넘긴 머리카락이 내 시야의 아랫쪽에 있다. 내 무릎, 내 허벅지, 내 몸, 내 팔과 목, 코 끝까지 전부.

 전부 아이의 향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쌤은 믿을 수 있는 어른이잖아요."


 내 허벅지 사이로 올라타 앉은 아이의 자그마한 엉덩이, 많이 굶어 앙상한 소녀의 빼빼 마른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이는 내 팔을 자신의 앞쪽으로 끌어 내가 안는 모양새로 만들었다.


 소녀는 내 무릎 위에 앉아, 내 팔을 자신의 앞으로 두르고 그 팔에 얼굴을 부볐다.

 아이의 말랑말랑한 볼살이 느껴진다.


 내 팔이 아이의 앞쪽에 옮겨지면서 흔들리는 소녀의 가슴이 느껴진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아이의 적나라한 알몸이 내 팔뚝 순간순간에 맞닿고 있었다. 잠깐 닿았던 소녀의 가슴은, 소녀의 볼살처럼 부드럽고 말랑거렸다.


 소녀가 내 팔뚝에 얼굴을 비빌 때, 소녀가 내 몸에 기대서 가만히 눈을 감을 때, 소녀가 슬픈 목소리로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소녀가 원하는 대로,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른을 연기했다.

 소녀가 내게 특별한 걸 원하는 게 아닌 걸 안다.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을 안다. 혼자서 힘들 풍파를 이겨내고 이제는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을 안다.


 소녀가 불순함을 내포하지 않고 내게 접근했다면, 나 역시 그 마음을 배반할 순 없다.

 선생과 학생이란 굴레에 씌워져서, 소녀는 내게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져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내 골반쪽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내 팔을 자신의 가슴 사이로 옮겨 문지르며, 얼굴은 내 몸에 기대고 비비고 있었다.

 소녀의 앙큼한 엉덩이가 내 다리 사이에 달린 물건을 자극해 천천히 커지려 하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그것을 억누르는 데 노력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더욱 더 내게 밀착한 표면적을 넓히려 하고 있었다.


 보글보글.


 부엌 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라면이 넘칠 듯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소녀는 황급히 내 품에서 뛰쳐나와 부엌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날 가진 저녁식사는, 아마 최근에 한 저녁식사 중에서 제일 마음이 편한 식사였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공부하던 앉은뱅이 책상을 그대로 밥상으로 쓰며, 소녀와 나는 깔깔거리며 대화를 계속했다.

 그렇게 웃음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아마 내가 그 저녁식사를 스킵하고 떠났더라면, 다시는 할 수 없는 경험에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과외시간도 아닌,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을까.


 어쩌면 이게 시작인지도 몰랐다.

 앞으로는 과외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내가 반찬거리를 사 들고 올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소녀는 적어도 저녁거리에 대한 걱정은 없을 것이다. 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라면만 먹어 영양이 불규칙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가족들의 생각에 슬퍼하는 시간도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쌤이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얻어먹었으니까 이 정도는 예의야."


 나는 깨끗히 먹은 라면과 그릇을 치웠다. 소녀가 재빠르게 움직여 나보다 먼저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려고 했지만 내가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내가 힘까지 쓰며 못하게 말리자 소녀는 내가 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애초에 설거지 거리도 얼마 없었다.

 냄비 하나,

 접시 두 그릇,

 두 사람분의 수저.

 금방 끝나는 일이었다.


 수도꼭지를 타고 물이 쏟아진다.

 얼마 남지 않은 세제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두 세번만 쓰면 바닥이 날 것 같았다. 다음에 올 때는 고무장갑과 세제를 사오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설거지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소녀가 내 뒤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손은 접시를 닦느라 흠뻑 젖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내 몸 역시 설거지를 하느라 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무방비한 내 등을, 소녀가 뒤에서 껴안았다.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소녀가 나를 뒤에서 껴안은 채 몸을 비빈다. 천천히 위 아래로.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내게 애원하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애원.


 소녀의 앙상한 갈빗대가 느껴진다. 뼈가 느껴질 정도로 말라 오돌도돌한 감촉이 등에 느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소녀의 가슴이 있었다. 보드럽고 말랑한 가슴. 밀가루를 빚어 만든 것 같은 기분좋은 감촉이 등 위로 느껴졌다. 조금 작은 가슴이지만, 내 등에 눌려 쫙 펴져 있었다.

 그리고 말랑한 두 개의 둔덕의 각각 가운데에는, 단단하게 굳은 건포도 같은 꼭지가 내 몸에 비벼지고 있었다.


 앙상한 갈빗대, 말랑한 가슴, 작고 단단하지만 존재감을 내뿜는 꼭지.

 나는 얼어붙어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정신이 멍해져 버렸다.


 그리고 소녀는 마치 애무하는 것처럼,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몸을 비비며 이렇게 애원하고 있었다.



 "쌤...... 저... 선생님을...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애달프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더 이상 소녀는 나를 단순히 선생님으로만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https://arca.live/b/yandere/11998939

(1) 편

https://arca.live/b/yandere/10162137

(0)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