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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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

닉스가 나에게 준 유예였다.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 '어느 정도의 자유'

이 기간만큼은 닉스는 참아줄 수 있는 선에서 자유를 보장해주기로 약조하였다.

이 마을에 첫눈이 오는 날.

하늘에 그 눈이 내리는 순간, 나는 이 안식처를 떠나 다시 무거운 여정을 떠나야 한다.

....

그렇기에, 나는 이 반 년동안 이 마을을 지켜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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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보오옥.....]


기억 속 과거를 깨어내는 목소리가 들린다.

눈 앞의 흉물스러운 마수가 검은 피를 토해내고 있다.

외눈에, 붉으면서도 혈관이 비쳐보이는 기이한 형태를 한 마수였다.

몸의 절반은 차지할만큼 커다란 공동과도 같은 아귀에서 샘물처럼 피를 쏟아내는 그 마수는, 놈의 심장이 쥐어짜내는 마지막 맥동과 함께 멈추었다.

머지않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바닥에 몸을 뉘였다.

색채를 잃듯이, 피부가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다만, 약간의 시간을 들여, 놈의 시체를 면밀하게 살핀다.

이 녀석은 처음 보는 마수이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저번의 마수는 '죽은 척'을 했었으니까.

방심은 죽음을 부른다.

그렇게, 얼추 십 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놈에게 다가간다.

처음 보는 개체였지만, 이제는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는 것을 머리에 새긴다.

싸늘히 식은 마수에게서 박혀있는 검을 쥐었다.

얼마나 베어낸 걸까.

얼마나 또 베어야 하는걸까.

얼마나 또 죽은 걸까.

얼마나 남은걸까.

머리에 드는 상념을, 검과 함께 뽑아낸다.


찌익!


살결을 찢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다.

검다.

수없이 전장을 오갔음에도, 날카롭게 빛나던 검은 셀수도 없을 만큼의 피에 물들어 검게 변해있었다.

언제부터 변한걸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간단하게 피만 털어내고는, 곧장 자리를 옮겼다.

조금만 더.

요즘 따라서는 마수를 베어넘기는 것보다 찾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드디어 씨가 마르기 시작하는걸까.

이 근방에서 한 달동안 미친듯이 마수를 사냥해온 것이,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꽤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지만, 아직 안심할만한 것은 아니다.

이 곳 부터, 마을까지의 거리는 대략 사람의 걸음으로 일주일.

조금이라도 더 줄일 필요가 있었다.


후우웅.


숲을 가로지르는 싸늘한 바람이 이마를 쓴다.

...겨울이구나.

바람에 담겨있는 그 한기에 몸도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결국에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계절이다.

사흘 정도가 남았나.

시간감각은 아직 남아있기에, 오늘이 닉스가 말한 마지막 달임을 알고 있다.

나는 뛰듯이 다른 마수를 추적했다.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돌아가면 충분할 시간이다.


"...하나만 더 잡자."


반 년.

닉스가 내게 준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오로지 이것 뿐이었다.

마수 사냥.

마을 사람들과 카탸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기사가 아니기에, 검을 쥐는 법을 모른다.

데우스 왕국이었던 시절에는, 모두가 검을 쥘 수 있었지만, 이미 흘러버린 백 년 이라는 시간은 절망적일만큼 그들에게서 많은것을 앗아갔다.

그들을 처음부터 가르치기에는 반 년은 너무 짧았다.

카탸가 어느정도 기초를 다져놓은 기사들이 있기는 했다만, 안타깝게도 기초부터 잘못되어 있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하급 기사 수준에 이르는 것만도 오 년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밖으로 나가 닥치는대로 마수를 베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기 위해.

나는 점진적으로 나아가, 한달에 한 번 정도만 정비를 위해 마을로 돌아갈 뿐, 그 시간동안 숲에서 홀로 마수를 사냥했다.

죄를 값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곳에 오래 남아있을 수 없었다.

그것을 다섯 번.

마을에 들른 순간은 고작 다섯 번이었다.

그리고, 곧 마지막 여섯번째 달이 코 앞이다.


[닳고 닳아가라....축복자...여.]


기어코 찾아낸, 다른 마수의 단말마를 뒤로했다.

그들의 의미없는 말들은, 더이상 아무런 감흥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돌아가자.

마을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유독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는 끝이니까.

그 마지막 시간은 너무나도 참기 힘든 것이었다.

...

숲을 가로지른다.

마을로 돌아가는 내내, 숲은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채 그저 걸었다.

허기도, 피로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닉스의 가호는, 죽음을 매개로 강해지는지, 죽을때마다 나는 무언가 하나씩 잃기 시작했다.

무뎌진다.

감정의 표현이 점차 적어지기 시작했다.

웃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였지.

우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였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져간다.

아무리 소중히 움켜쥐어도 그것들은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만, 잊지는 않는다.

그 과거들이 아직은 기억나고 있다.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그곳을 지키는 것. 그녀를 지키는 것.

이 몸뚱아리는 그것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아."


익숙한 초원이 보인다.

낮밤이 바뀌는 감각만을 유지한채 사흘 동안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수 하나라도 더 잡겠다는, 작은 욕심때문에 이미 밤이 내린 마을에는 드문드문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늦었구나.

그리고 벌써, 와버렸구나.

무뎌지는 감정속에서도 작은 아쉬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던 것이 떠오른다.


철컥. 철그럭.


마을을 걷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울리고 있었다.

마을 안은 이미 밤이 깊어, 밖에 나온이는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들에게, 나는 그저 저주나 다름없으니까.

한 때는 영광스러운 왕국의 마지막 신민들.

그들은, 나를 두려워 했다.

또한, 나를 저주처럼 대했다.

이곳에서 나는 죄인이었다.

그 날.

닉스를 섬기겠다고 말하던 그 날 밤, 마을의 대표였던, 카탸는 닉스의 일부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살아남은것이 기적이라고 했었나.

그녀의 눈이 멀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몸이 무너지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넋을 놓은채 걷던 나에게 저주가 분명하다며, 돌을 던지던 마을 사람들의 그 두려운 표정이.

고통과 절망에 파묻힌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하던 순간이.

야속하게도, 그런 감정들만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지독한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원하지도 않았으면서도, 닉스의 그 이기적인 '대가' 때문에 그녀는 빛을 잃었다. 

그저, 나에게 엮였다는 이유로.

그저, 빛을 보았다는 이유로.

그녀는 평생을 보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나 때문이다.

그 죄책감은, 아직도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끼익.


문을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혹시라도 깰까봐,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나는 방 너머에서 자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카탸...

그녀의 수척해진 모습은 가슴을 헤집었다.

여전히, 붕대를 눈에 감은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그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녀는 망가져 버렸다.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며, 눈이라도 돌려달라며 닉스에게 간청했었다.

하지만, 닉스는 그것만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벌이라며...

자신을 버렸었던 벌이기에, 설령 돌이킬 수 있다 해도, 이루어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오히려 그러면서도, 닉스는 더이상 카탸에게 관여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잔인하다.

이에 마음 속 깊이 절망하고 또 분노하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검을 뽑을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입으로 말했으니까.

'언약'이니까.

기사는 주군을 배신해서는 안된다는 그 언약이, 나를 묶어놓고 있으니까.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은 지독하게 아팠다.

그저, 지금처럼.

전의 그 다섯번처럼, 멍청하고 병신같이.

그저, 밤늦게 몰래 찾아와 그녀를 보며 속으로 사죄할 수 밖에 없었다.

닉스가 보고 있을테니까.

그녀가 언제든지, 카탸를 더욱 망가뜨릴 수 있음을 알기에.

그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도, 그녀에게 말 한번 걸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속으로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범한 죄가 너무나도 큰데도.

그 죄를 다 값을 수도 없는데도.

반쯤 미친채, 마수에게 온몸을 뜯어먹혀도, 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귀...인?"


"귀인이신가..요?"


언제 깨있었던 걸까.

그녀가 침상에서 몸만 일으키며, 보이지 않음에도 나를 불렀다.

귀인...이라고?

나는 귀인이 아니다.

나는 귀인이...아닙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손을 허공에 더듬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려는 입을 양손으로 억지로 틀어막는 수 밖에 없었다.


"귀인...귀인이시면 제발 말을 해주세요."


"......."


참아야 했다.

울컥하고 터져나오는 감정이 북받쳐서 힘들었다.


"...귀인....울고 계시나요."


병신같게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참으려해도, 눈에서는 무언가가 쉴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귀인, 그대의 탓이...아닙니다."


"그, 존재가...제 몸에 들어온 순간, 미약하게나마 이성을....갖고 있었습니다."


"귀인께서는, 제가 헤아릴수도, 이해할수도 없는 존재에게...붙잡혀 계시군요."


"그 무력함을, 그 절망을...그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았기에, 저는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귀인, 저는..."


쿨럭, 거리며 그녀의 손이 떨렸다.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그 손을 당장이라도 그러쥐며, 울부짖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저는...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귀...귀인...하아...하...귀인, 그러니...제발 한번만 말씀해주세요..."


"흐읍, 흐읍...하아....귀인, 저는 그때의...그때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그때의 대답.

잊을 수 없던 그 기억.

닉스에게 몸을 뺏기는 순간.

그녀가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원하고 있었다.


"귀인...아직 거기에 있나요?"


가쁜 숨을, 억지로 내쉬며 말한다.

끅끅 거리며, 참아왔던 슬픔이, 둑이 터지듯 쏟아지고 있었다.


"으흐윽...흐흐흑...."


"아, 귀인...아직 계셨군요."


카탸는, 웃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그자리에 있는 것을, 그저 그것만으로도 저리 웃고 있었다.


닉스.

닉스!

마음 깊게 부르짖었다.

이것 또한 그녀는 보고 있다.

언제나 느껴지는 그 시선이.

내 그림자에 깃들어, 그 공허의 틈 속에 몸을 숨긴채, 내게 내린 '자유'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닉스.

마지막 간청이다.

네가 준 자유의 마지막 밤.

단 한번의 소원을 들어다오.

이미 서임을 마쳤으니, 나는 영원히 그대를 섬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자유의지도, 소명도 없이 그대만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이미 난 그대의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카탸에게 아량을.

그녀에게 온전히 말할 수 있을 기회를 다오.

넌 알고 있겠지.

그녀의 끝을 알고 있겠지!

언제 죽는지도, 어떻게 죽는지도 전부 알고 있기에, 넌 반 년의 시간을 찝어 준것이겠지!

그렇기에 안다.

그녀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니, 내 바라겠다.

내 이렇게 무릎을 꿇어 빌겠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녀에게...

한 마디라도 하게 해줘...


"...귀인."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처럼, 그녀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끝이 다가온다.

자정.

그녀의 마지막 고동이 멈추고 있었다.

그 순간.

닉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제서야 무너지는 그녀를 그러안은채, 부르짖었다.


"카탸...아아아! 카탸아아아! 받아들이겠습니다. 평생을 그대를 안고, 평생을 기억하겠습니다!"


"카탸, 제발...어흐흐흑...떠나지 말아요...제발..."


너무도 차갑다.

그녀의 손이, 몸이, 너무나도 차갑다.

아무리 그러안아도, 그러쥐어도 잡히지 않는다.

카탸, 제발 떠나지 말아줘요.

카탸, 제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카탸아아아아아아!"


그 한 순간.

그녀가 기적처럼.

손을 들어, 내 뺨을 대었다.


"귀.....ㅇ...사랑....해..."


손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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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저 짤에 회로가 돌아갔음.


애도.


댓 남겨주신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