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아카 왕국의 기사였어.

뛰어난 무예와 두뇌를 지닌 그녀는,

왕국의 기사단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

뿐만 아니라 그녀의 미모 역시 매우 뛰어나,

많은 귀족들, 심지어 왕족의 청혼까지 들어올 정도였어.

하지만 얀순이는 그러한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

결혼 한번 제대로 한다면 그 힘든 기사단장으로서의 근무도 그만두고

명예직을 수여받아 연금을 타면서 편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얀순이는 그러지 않았어.

얀순이는 정치라던지 권력이라던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거든.

아, 물론 얀순이가 성인군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어.

오히려 반대였지.

얀순이는 천성 전사였어.

얀순이에게 안정이란 햇빛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의 차 한잔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풍겨지는 피 냄새였지.

무엇보다 그 정치라는 건 상당히 귀찮아 보였어.

물론 얀순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배우자를 뛰어넘고,

오히려 배우자의 권력을 배후 삼아 왕권까지도 노려볼 만 했건만,

얀순이는 그 모든 활동이 말 그대로 귀찮아보여서 하지 않는 거였어.

처음에는 왕국과 기타 귀족들이 얀순이를 의심했지만,

한 전투에 참전헀던 귀족의 증언으로 얀순이의 성격이 알려지며

얀순이는 위험인자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고,

동시에 그녀를 향한 청혼도 끊겼지.


그런 얀순이에게는 얀붕이라는 보좌관이 있었어.

하급 귀족 출신으로, 얀붕이의 부모님은 처세술의 달인이엇지.

대부분의 하급 귀족이라면 더 위쪽에 위치한 귀족의 봉신 느낌으로 전락하는

아카 왕국의 특성과는 달리,

얀붕이네 가문은 영지의 주권을 보장받으면서도

크게 눈 밖에 나지 않는 매우 평화로운 곳이였어.

그런 얀붕이의 부모님이 얀붕이를 얀순이에게 보낸 것 역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얀순이 옆이라면

얀붕이가 권력 쟁탈전에 휘말려 가문이 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내려진 결정이었어.

얀붕이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얀순이의 보좌를 맞게 된거지.


얀붕이는 상당히 활발한 사람이었어.

어렸을 때 처음 보는 메이드나 저택 구성원들과 찬하게 지내며

사람을 대하는 데 편안함을 느꼈고,

이는 귀족간 친목회 등지에서 매우 유용했어.

그래서 얀붕이는 친한 친우들도 많았고,

이번에 얀순이의 보좌관으로 들어가며

기사단원들과도 친분을 유지했지.

하지만 얀순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

얀순이는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저 단답만 할 뿐이었지.

얀붕이가 옆에서 질문을 해도,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면 대답을 하지 않았고

얀붕이가 농담을 했다간,

싸늘하게 쳐다보고 갈 길을 갔어.

얀붕이는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처음 봤지만,

그녀가 전쟁터에서 보인 표정을 보고


"역시, 차갑기만 한 사람은 아니구나."


라며 낙천적으로 생각할 뿐이었지.


하지만 그런 얀붕이와 얀순이의 관계가 뒤바뀌게 된 일이 일어났어.

인근 왕국을 정벌하러 산길을 지나가던 도중

얀순이의 부대가 매복을 당한거야.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부대의 전열을 무너졌고,

병사들은 우왕좌왕 하고 있었어.

얀붕이는 얀순이의 명령을 기다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지휘관이 있어야 할 곳에 얀순이는 없었어.

대신, 말 그대로 적진 한가운데서 난투를 벌이고 있었지.

나름 쏠쏠한 전과를 내고 있었지만,

본대가 괴멸 직전인 상황에서 그런건 다 쓸모가 없었어.


"보좌관님!! 어떻게 해야... 끄아악!"


"단장님은 어디가신....크헉!"


얀붕이는 자신의 옆에서 호위 병력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곤,

이내 결심한 듯 칼을 뽑고 퇴각 명령을 내렸어.

병사들이 헐레벌떡 후퇴하자,

얀붕이는 옆에있던 다른 기사에게 명령권을 넘기고는

적진으로 돌진했어.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

살이 베이는 끔찍한 소리.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

얀붕이는 이런 소리를 견뎌가며,

그리고 자신의 몸에 하나 둘씩 나는 상처를 견뎌가며

얀순이에게 도달했어.

그러자,


캉!


얀순이가 매서운 속도로 뒤를 돌아 얀붕이의 칼을 쳤어.

이내 아군임을 확인하고 다시 뒤를 돌아 싸움을 계속 하려는 찰나,


"야! 이 미친년아!"


"...뭐?"


얀순이는 경계를 약간 풀고 뒤를 돌아봤어.

그러자 손바닥이 날아들었지.


짝!


따귀 때리는 소리와 함께, 

얀순이는 물론,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적군까지 멈췄어.


"이 미친년아! 주위를 한번 봐봐!"

"다 죽었어! 다 죽었다고!"

"어떤 싸움광이 자기 임무도 버려두고 적진에 뚸어드는 바람에,"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고!"


"...."


소리를 마구 질러대던 얀붕이는,

무게중심이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고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자,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의 옆에

얀순이의 칼이 박혀있는 것을 확인했어.

얀붕이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지.


"허... 그래...! 죽여! 죽여 이 썅년아!"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 처럼! 다 죽여보라고!"

"뭐해 이 병신새끼들아! 여기 단장님께서 싸움을 원하신단다!"

"와서 죽이던 죽던 너희들 좆대로 해봐 한번!"


얀순이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 졌고,

그녀가 땅에 박힌 칼을 빼내어 그대로 얀붕이에게 꽂으려는 순간,


휘익! 탁!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적병 한명이 활을 맞고 쓰러졌어.

얀순이가 화살이 날아온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여검사가 서 있었지.

그녀 옆의 병사가 나팔을 길게 불자,

병사들이 산을 맹렬한 기세로 뛰어내려왔어.

적군은 그들이 적장을 포위하고 있었단는 사실마저 망각한 채,

급하게 방어진을 구상했지만

얀순이의 칼에 맞아 목이 날아가기 시작했고,

이내 지원군까지 합세하자 완전히 무너지고 패퇴하게 돼.


전투가 끝나자,

바닥에 앉아있던 얀붕이에게 얀순이가 칼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어.

얀순이의 칼과 갑옷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지.

칙칙한 회색빛의 갑옷이, 빨간 피가 묻었음에도 오히려 더 어두워 보였었어.


"거기까지입니다. 기사단장."


얀붕이 앞을 황금 갑옷을 입은 여검사가 막아섰어.


"...뭐야."


"아카 왕국 총사령관, 얀진입니다."

"후퇴하던 당신의 부대를 마침 만나 이쪽으로 오게되었는데..."

"살육에 정신 팔린 지휘관을 쫓아온 부관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뭐하는 짓입니까?"


"너가 간섭할 바 아니야. 애초에 너가 내 유흥을 방해했어."


"어떻게 그딴 걸 유흥이라고....!"


얀붕이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려하자,

얀진이가 그의 어깨를 살포시 잡으며 말했어.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란 거 알고 계시겠죠."


"기사단장은 왕의 명령만을 받으며 움직인다."

"너에게는 나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을텐데."


"네, 맞는 말입니다, 기사단장님. 하지만 다른 건 할 수 있죠."

"당신의 부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뭐?" / "예?"


"말 그대로입니다 단장님. 능력있는 부관을, 미치광이 아래에서 썩힐 수는 없죠."


얀순이가 꿈틀하며 칼을 뽑으려 하자,

얀진이는 눈 깜짝할 새에 칼을 뽑아 그녀의 목에 겨눴어.


"이 왕국에서 검을 쓰는 사람은 당신 뿐만이 아닙니다. 얀순 양."


"......"


"거절하겠습니다."


"네? 지금 뭐라고..."


"확실히 저희 단장님은 미쳤습니다."

"하지만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더 많은 무고한 인명이 희생될 것입니다."

"그걸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 그렇군요."

"당신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렇다면 다음에는 원래 만나던 곳에서 만납시다."

"얀붕아."


"공적인 자리입니다 사령관님."


"후훗... 뭐 어때? 내가 편하게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재밌어. 그래서 좋아."


얀진이는 얀붕이가 친목회에서 만난 귀족중 한명이었어.

상급 귀족들 중에선 이례적으로,

상당히 평판이 좋았던 축에 속했던 얀진이의 가문은

하급 귀족들과도 두루 어울리며 친목을 다져갔지.

이미 얀진이와 얀붕이는 구면이었던거야.


.

.

.

.

.


다시 영내로 복귀 했을 무렵,

얀순이는 얀붕이를 따로 불렀어.

일상복 차림으로 대기하던 얀붕이에게,

강철 장갑을 낀 주먹이 날아들었지.


"가만히 서 있어."


얼마나 지났을까.

주먹에 끈적끈적한 살점이 붙어나오려 할 무렵,

얀순이는 장갑을 내 던졌어.


"왜 그러는거야? 넌 내 부관 아니야?"

"부관은 지휘관을 보좌하는게 임무 아닌가?"


"지휘관의... 임무...는... 병력의...통솔입니다....."

"저는... 그런 임....무를.... 유기한.... 지휘관을 멈출.... 의무가 있습...니...다....."


얀순이는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지만,

얀붕이는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 엎어졌어.

얀순이는 의무병을 부른다음,

두려워 하는 그들과 같이 의료병동으로 움직였지.

의무병들이 피떡이 된 얀붕이를 데리고 수술실로 달려갈 때,

얀순이는 입원해 있던 병사들을 시찰하기로 했어.

이번 전투로 인한 부상병들이었지.

그들을 본 얀순이는 색다른 감정을 느꼈어.

항상 자신을 경의로운 표정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이제는 공포, 혹은 증오로 가득 찼었던거야.

얀순이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압도되어

밖으로 급히 나왔어.

그러고는 숙소로 되돌아가 잠을 청했지.


다음날 아침이 되자,

의무병이 얀붕이의 수술이 끝났고,

입원해 있다고 알렸어.

얀순이는 얀붕이이 병실로 가서 천막을 올렸지.

그곳에는 얀붕이가 있었어.

얀순이는 얀붕이의 눈을 봤어.

얀붕이의 눈도 다른 병사들과 같은 눈일까, 하고.

하지만 얀붕이의 눈을 달랐어.

공포나 증오가 아닌, 결의에 가득 찬 눈.

생기가 흘러 넘치며, 무엇을 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눈.

얀순이는 그 눈을 복 찌릿한 감정을 느꼈어.

그리곤 말했지.


"넌... 내가 무섭나?"


"아닙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 시피, 전 부관으로 단장님을 보좌할 것입니다."

"설령 진짜 공포를 느낄지언정, 저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

"미안했다."


".....예?"


하지만 얀순이는 대답하지 않고 병실을 나왔어.

병원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자,

얀순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감정을 느꼈어.

마치 전쟁터에서 살육을 벌일 때와 비슷하 두근거림,

하지만 무언가 조금 더 야릇한 기분이었지.


며칠 후, 얀붕이는 퇴원했고,

얀순이의 옆을 지켰어.

한동안 큰 전투가 없었기에,

둘은 계속 붙어다녔지.

얀붕이는 얀순이를 불편하게 대하지 않았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지.

그러자, 얀붕이는 변화를 느꼈어.

얀순이가 자신을 무시하지 않은거야.

비록 대답은 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때면 항상 눈을 마주쳐 주었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는 의사표현도 드물지만 있긴 했어.

하지만 얀붕이가 좋아하긴 일렀어.

왜냐하면 또 다시 출전 명령이 떨어졌거든.


이전의 전투에서 얀순이 휘하의 병력이 괴멸 직전까지 갔던 터라,

이번에 병사들의 사기도 높일겸

저번의 그 왕국을 다시 공격하기로 한거야.

이번엔 매복 없이 격전지까지 잘 갔지만,

얀붕이는 여전히 걱정이었어.

양측의 병력은 비등비등한 상태.

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얀순이가 돌발행동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 지 몰랐어.

전투를 알리는 나팔이 양쪽에 울리고,

양 진영이 맞붙은지 30분 후.

얀붕이는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어.

얀순이가 적진에 뛰어들지 않은거야.

적군은 얀순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많은 병력을 후방의 기습조로 떼어놓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정작 전선에 공백이 생긴 거였어.

얀붕이가 놀란 표정으로 얀순이에게 눈을 돌리자,

얀순이는 갑자기 놀라며 고개를 피했어.

얀붕이가 의아하게 생각하자,

얀순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목을 가다듬고 돌격명령을 내렸어.

기병들이 양측에서 돌격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의 적의 후방까지 다다른 아군은

일방적인 살육을 시작했어.

거기서도 얀순이는 손에 피가 날 때까지 칼을 쥐며

계속 움찔거리는 몸을 참았지.


전투가 끝나자,

얀붕이는 정말 경외로운 표정으로 얀붕이를 봤어.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곤,


"단장님. 잘하셨습니다. 대승입니다!"


라고 외쳤지.


"어... 어...? 나 잘했어?"


"예? 당연한 말씀을! 오늘은 갑자기 튀어나가시지도 않으셨고,"

"전략도 단장님이 중심이 아닌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 좋은 작전이었습니다!"


"에? 아? 으으...."


"혹시, 어디 안좋으십니까? 의무병을..."


"됐어! 부대 재정비하고 다시 진군하도록 해."


"어... 옙! 알겠습니다!"


.

.

.

.

.


이 기분은 뭐지?

원래는 눈엣가시였어야 할 놈인데...

왜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거야?

싸우지 않아서 몸이 근질거리다가도...

그 녀석 말을 들으니까 다시 진정되는 것 같다가.....

이제는 아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울리고 있어...!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

보고싶어.

뭐하고 있을까?


.

.

.

.

.

.


미친년. 뭔 바람이 든거야?

저번처럼 눈 가린 황소마냥 박아댈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얌전히 지휘를 하잖아?

설마....

아냐.

아닐거야.

얀붕이는 내 껀데.

저딴 년한테 넘길 수는 없지.

암.

다시 가서 회유해야겠어.


.

.

.

.

.

.


아카 왕국 총사령관,

아카 왕국 기사단장,

그리고 그 부관.

이 세명 사이에는 매우 무거운 기류가 흘렀어.

두 여인은 완전 무장을 한 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고

벽에 붙어있던 얀붕이는 이게 무슨상황인가 싶었지.


"단장님, 최근의 전투를 잘 봤습니다."

"..'성장' 하셨더라고요?"


"누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머, 저번처럼 죽이려고 들 줄 아셨는데, 제법 문명인 다워지셨네요?"


갑자기 바람이 휙 하고 불더니,

얀진이의 목에 칼날이 겨눠졌어.


"널 죽이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거만한 년."


"하...! 거만한 년이라니! 누구한테 하는 말입니까?"

"됐습니다. 오늘은 이럴려고 온게 아닙니다."

"이제 많이 성장하셨으니, 부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관을 넘기시지요."


"싫다. 얀붕은 나의 부관으로써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근무지를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


"있습니다."


"뭐?"


"저번의 그 부관을 향한 폭행."

"야전병원에서 확인 받았답니다."

"국왕전하꼐 보여드리니, 난감해 하시더군요."

"아, 당신을 처벌하거나 하시진 않겠다고 하셨답니다."

"다만 부관의 근무지를 옮겨달라는 저의 간청은 들어주신지라..."

"국왕전하의 명령서입니다. 읽어보시죠."


"....."

"....."

".....이런 씨발년이 얉은 수를...."


얀진이는 얀붕이의 손목을 잡고 확 끌었어.

얀순이도 얀붕이의 반대쪽 손목을 잡았지.


"놓으십시오. 국왕전하의 명을 거역하는 것입니까?"


"씨발년이...!"


"후훗... 다음에 보죠. 단장님."


얀붕이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끌려 나갈 뿐이었어.



"자, 얀붕아, 아~~"


"어... 이게 뭡니까?"


"말 놓으랬지."


얀진이의 말투가 사나워졌어.


"어...응..."

"아니 근데 여기는 어디냐고! 아까까지만 해도 영내에 있다가,"

"왜 갑자기 전쟁중에 니네 저택으로 호송된건데?"

"너 총사령관이잖아! 안싸워?"


"휴가냈어."

"어차피 저 왕국은 금방 망하니까,"

"기사단만으로도 충분하거든."

"그러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고맙고."


"뭐?"


"아니야~ 자, 어서 케잌이나 먹어. 아~"


"아...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건지....'


.

.

.

.

.

.

죽여버릴꺼야죽여버릴꺼야죽여버릴꺼야죽여버릴꺼야죽여버릴꺼야죽여버릴꺼야

좆같은 년 사지를 잘라버릴거야

왕이란 새끼도 죽여버릴거야

아무도

아무도 못 뺏어가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

나를 바꿔준 사람

나를 바꿀 유일한 사람

절대로

절대로 못 뻇어가

.

.

.

.

.


"전하! 기사단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어찌한단 말인가!"


"총사령관 얀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오오! 그래! 사령관! 상황은 어떤가?"


"좋진 않습니다. 기사단의 병력이 적을 순 있어도, 숙련도는 저희보다 높을 겁니다."


"그럼 이대로 역도들을 성내에 들인단 말인가?"


"아닙니다. 총사령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반란군이 성을 포위했습니다!"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어.

왕국 기사단과 수도 방위대의 싸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은 성벽을 점령하곤

도성 안으로 쑥쑥 진군했지.

얀진이를 필두로 한 병력들이 계속 방어를 했지만,

얀순이가 선두에 선 기사단은 누구도 막을 순 없었어.

그렇게 4일 뒤,


텅.


왕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16일간의 공성전은 끝났어.

얀순이의 앞에는 사지가 결박된 채, 입에 재갈이 물려있는 얀진이와

다소 자유로웠지만 분명히 포박되어 있는 얀붕이가 있었어.


"어때? 기분이."


"우으으읍!! 으구우으읍!!"


"어머, 짐승같은 소리를 내는구나."

'뭐... 이제는 익숙해져야겠지."


기사들을 시켜 얀순이의 포박을 푼 뒤,

사지를 잡아 팽팽하게 잡아 당기게끔 했어.


"으으읍!! 끄후우으으읍!!!!"


그리고 얀순이는 칼질을 시작했지.

팔꿈치 아래를, 그리고 무릎 아래를 절단하기 시작한 얀순이의 눈에는

희열로 가득찼어.

신체부위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자 얀진이의 비명을 커져갔고,

나무 재갈에서는 미친듯이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서

결국엔 입에서 피까지 나기 시작했어.

끔찍한 시간이 지나자,

얀진이의 오른 종아리가 땅에 떨어지자,

얀진이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어.


"가죽 세공인들이랑 대장장이들 데려와."


명령이 떨어지자,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어.


"정말로...합니까요...?"


그 질문을 한 사람의 목이 날아가자, 나머지는 눈치껏 일을 시작했지.

얀진이의 무릎과 팔꿈치가 있던 자리에, 대장장이들이 돼지의 발을 본뜬 쇳 덩어리를 박아넣었고,

가죽세공인들은 얀진이의 떨어져 나간 신체부위를 잘라내어 그 쇠를 덮었어.

얀진이의 처절한 비명소리는 재갈을 뚫고도 울려퍼졌지.

모든 상처부위가 그런식으로 덮히자,

기사들은 급속 치료 패치를 수술 부위에다가 부착했고

상처부위는 말끔하게 나았어.

파는 멈췄고, 살가죽은 자연스럽게 붙었지.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어.

늘씬하게 빠져 있던 총사령관의 사지는 절반은 짧아졌고,

마치 네발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다녀야 하는 모습이었어.

얀순이는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며 기뻐했고,

고개를 한번 휘저은 다음 얀진이의 재갈을 벗겼어.


"대단하지 않아? 진짜 짐승이 되었잖아?"


"끄허으으으윽......하우우그그으으그윽....."


"쯧, 진짜 사람말을 못할 줄이야."


얀순이는 그 말을 한 뒤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녀 하나를 꺼냈어.

그러곤 얀진이의 머리 어딘가에 정확히 박아넣곤,

크게 세번 휘저었지.


"으고옥?! 오고고곳?? 흐기오오이잇?!!!"


이제는 인간성이 완전히 결여된,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얀진이는 오줌을 지렸어.

만족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한 얀순이는,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얀붕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어.


"부관, 아니.... 여보. 인사가 늦었지? 구하러 왔어."


.

.

.

.

.

.


"부히이잇! 부힛! 부히힛!"


"하핫, 그렇게 좋아?

"여보 이것 좀 봐! 이 돼지 정말 웃기다니깐!"

"말뚝으로 자위하고 있는 꼴 좀 봐!"


그곳에는 과거 총사령관으로,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쳤던 여자 얀진이가,

정원에 박혀있던 말뚝을 이용해 자위를 하고 있었어.

팔다리는 반년 전에 잘려나갔음에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지 종종 미끄러졌고,

그럴 때마다 말뚝은 깊숙한 곳에 박혀

돼지같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지.

옛날에 있었던 복근과,

적당한 가슴,

얇은 팔다리는 사라지고

축 쳐진 뱃살과 가슴,

그리고 터질 듯한 허벅지와 팔만이 남아있는

완벽한 돼지가 되어버리고 만거야.


"후고오옷!" 


"하하하하하! 아, 진짜 너무 웃긴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니깐!"

"자기야! 여보! 내 말 듣고 있어!"


얀순이는 의자에 앉아있는 얀붕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어.

얀붕이는 무표정으로 얀순이를 바라봤어.

자신과, 싸움밖에 모르던 차갑고, 이기적인 여자.

자신을 두들겨 패며, 한때 진심으로 죽이려 했던 여자.

웃지도, 자신의 말에 큰 반응을 해주지도 않던 여자.

하지만 그녀는 이제 달랐어.


그녀는 지금 환하게 웃고 있었고,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며 계속 말을 걸었으며,

싸움 말고도 다른 소일거리가 많이 생긴데다가

자기자신 말고 신경 쓸 다른 사람도 생겼어.

얀붕이는 바닥에서 콧물과 침을 질질 흘리던 돼지를 한번 보고,

얀순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여왕님."


"어...?! 앗...! 에... 헤헷.... 그걸 물어본게 아닌데에.... 히힛..."


"뭐 어때요. 예쁜 건 사실인데."


"헤.... 너도 멋져! 자기야! 우리 자식은 공주일까 왕자일까?"

"난 자기 닮은 멋진 왕자님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여왕님이야 말로 왜 이야기가 그 쪽으로 흘러가는데요?"

"아직 저희 젊기도 하고, 벌써 후계자는..."


"에이... 자기도... 내가 후계자를 원하는 것 같아?"

"오늘 밤은... 안 재울꺼니깐....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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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빠질 것 같아서

후딱 썼다.

요즘들어 다시 챈에 사료가 많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다.

다음에 또 시간된다면 소설 쓰러 뛰어오도록 하겠음.

오랜만에 꽤나 하드한 묘사를 한 것 같기는 한데......

뭐 의식의 흐름 기법이 다 그런 것 아니겠음.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