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줘 원본글: https://arca.live/b/yandere/82207242

(원본에서 약간의 각색이 들어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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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키우겠다니, 제정신이야?!"


경악하는 듯한 목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 퍼졌지만, 정작 이를 듣는 이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한 손으로 몬스터의 목을 움켜쥐어 제압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동료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상황.

마치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못하는 것 마냥 긴장하는 낌새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치만 맨손으로도 제압 가능할 정도로 약한걸. 정 불안하면 입마개라도 끼울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용사인 네가 몬스터를 끌고 다니는 걸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뭐 어때, 늑대 기사는 별명까지 생기고 더 유명해졌잖아. 솔직히 그 인간 혼자 다니던 시절에는 별거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라고 늑대 한 마리 끌고 다니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용사님... 저들은 마땅히 없애야 할 악입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할 그대의 사명을 잊으신 건 아니신지요...?"


사제로 보이는 동료가 하는 말은 지극히 옳았다.

용사가 할 일은 나 같은 몬스터들의 목을 썰어버리는 일이지, 데려다 키우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용사는 지루한 설교를 듣는 듯한 표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되려 사제에게 되물었다. 


"언제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게 내 사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진정한 평화는 싸움이 아닌 화합에서 오는 거야.

비록 작은 한 걸음일 뿐이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 인간과 몬스터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처구니없다는 기사의 반응. 지극히 상식적이다. 비록 두꺼운 갑옷을 입었지마는 그 속의 표정이 훤히 보일 정도다.


"너 사실은 화합이니 뭐니 하지만 그냥 겉으로 보기에 귀여워서 키우려는 거지?"


"하하... 들켰어? 내가 밥도 주고 산책도 시킬게! 응? 우리 파티에도 마스코트 하나쯤은 필요할 거 아니야!"


거 듣자 하니 정작 내 의사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구만...

마치 길에서 주워 온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떼를 쓰는 것 같은 용사의 모습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시끄럽다, 인간! 나는 이래 봬도 이 던전의 주인이거늘, 더 이상의 모욕은 용서치 않ㄱ..."


"너 말도 할 줄 알았구나?"


계속 동료들을 응시하던 용사가 내게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뒤틀린 미소를 마주한 순간 나의 항변은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녀에게서 순간적으로 느낀 기백은 내게 남아있던 마지막 한 줌의 저항 의지마저 완전히 꺾어버렸고

그 순간부터 나는 웨어 울프가 아닌 한 마리의 하룻강아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너...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거지?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


용사가 내 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지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내 꼬리는 나도 모르는 새 배 밑으로 숨어들어 갔고 귀는 도망치듯 뒤로 누워 있었다.

그녀가 내게 무엇을 하려는 건지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상외의 행동을 취했다.


"손!"


용사가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길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내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겁에 질려 있었던 나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는데,

그 순간 그녀가 띠고 있었던 뒤틀린 미소는 없어지고 오직 분노와 살기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손."


극한의 공포로 인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지만 생존 본능이 억지로 내 앞발을 움직였다.

내가 그녀의 손바닥에 앞발을 얹자, 용사의 얼굴에 급격하게 화색이 돌며 이런저런 명령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앉아! 누워! 굴러!"


방금 전까지의 살기는 어디 가고 어린아이 마냥 까르르 웃는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으나, 

저 명령에 불복하는 순간 내 목이 달아날 것이 자명했기에 나는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이것 봐! 이렇게나 말을 잘 듣잖아! 이렇게 착한 멍멍이인데 키워도 되지 않을까?"


"하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마법사처럼 보이는 이가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다.


"누구 하나 물려도 나는 모른다~ 애초에 얘 이빨로 내 근육을 뚫을 수 있을 지나 모르겠네. 하하!"


"...적어도 목줄이라도 채워 주시죠, 용사님."


기사와 사제로 보이는 이들도 결국 직접적인 거부를 표명하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용사 파티에 편입되었다.


"진짜? 그럼 얘 키워도 되는 거지? 읏차!"


용사는 어찌나 신이 났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던전에 널부러져 있던 쇠사슬 중 하나를 힘으로 끊어 내 목에 감았다.


"헤헤... 가자!"


"..."


그녀에게 끌려 나오며 던전을 살펴보았더니, 던전의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 던전에 서식하던 몬스터들은 모두 도살당했고, 이곳의 주인이었던 나는 강아지 마냥 목줄을 채워 끌려가고 있는 꼴이라니.

그렇게 네 명의 여인과 한 마리의 늑대가 여정을 떠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을까... 


배곯는 일이 없는 건 좋았지만, 더는 못 참겠다!

용사는 마법 도구점을 갈 때마다 목줄을 파는지 계속 물어보고,

기사는 추위를 많이 타는 주제에 잘 때도 갑옷을 입을 수는 없다며 맨날 나를 끌어안고 자며,

마법사는 영창 도중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핑계로 나를 말처럼 타고 다닌다. 

처음에는 나를 데려오는 걸 반대했던 사제가 틈만 나면 강아지풀을 들고 오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비록 변방의 이름 없는 던전이었지마는, 그래도 한 던전의 수장이었던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용사 파티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기사가 불침번을 서는 날이지만 그녀는 모닥불 앞에서 졸고 있으니 탈출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텐트에서 빠져나와 숲으로 향했으나, 누군가의 시선을 느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


분명 자고 있을 터인 용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야. 어디 가냐?"


그녀를 마주하고 잠시 당황했지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옆에 있던 나무 쪽으로 간 뒤 한쪽 뒷발을 들어 올렸다.


"아... 그거였구나..."


용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텐트에서 목줄을 가져와 내게 채웠다. 

내가 도망치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혹시라도 나 버리고 어디 도망가면 안 된다...?"


용사는 줄 끝을 말뚝에 고정하고 다시 자러 갔으나,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냥 늑대가 아닌 웨어 울프라서 사람의 형태로 변신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늑대의 목은 사람의 목보다 훨씬 두껍기 때문에, 지금의 목줄 둘레면 충분히 인간 형태의 머리를 빼낼 수 있다.

용사가 잠들기를 기다리기를 몇 시간, 곧 있으면 동이 틀 시간이 되었기에 나는 인간 형태로 변신한 후 목줄을 빼고 유유히 도망쳤다.


"완벽한 계획이다... 잘 있어라, 이 년들아!"


늑대 형태가 달리기에는 훨씬 편하지만, 도중에 잡힐 것을 우려해 굳이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나는

인간 형태일 때는 늑대 형태를 취할 때보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단점을 간과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용사가 내 뒤를 따라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심지어 내 뜀박질로 그녀를 따돌릴 수 있다는 오만한 상상을 해버린 결과... 

나는 머지않아 용사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내 인간 형태를 보는 것은 처음일 터, 잘만 하면 속여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 하고 계신 거죠? 이런 숲속에서 아무런 짐도 없이..."


"아이고, 용사 나으리! 들어 보십쇼, 제가 도적을 만나서 가진 것을 죄다 빼앗겼습니다!"


"거짓말. 이 근처에 도적 무리는 없었어. 하물며 이 근방은 노예무역이 성행하는데 굳이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장정을 보내줄 이유는 없지."


"정말 죽기 살기로 도망쳐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오밤중에 도망쳐 나와서 동이 틀 때까지 도망쳤다니까요... "


"그리고... 나는 내가 용사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앗.


"내가 분명 도망치지 말라고 했지...?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