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철혈 전함 비스마르크

철혈 중순양함 론

철혈 전함 티르피츠

"요즘 해이해진 거 아닌지, 지휘관" 


손에 든 서류를 슬그머니 책상에 내려놓으며

짐짓 시선을 괘종시계로 보며 탄식을 내뱉은 그녀

비스마르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론이나 티르피츠는 미안한 듯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뿐 이였다

물론, 시간을 잊고 있었던, 내 탓이 크긴 했지만 말이다



"지휘관, 남들 위에 선 이상 약속은 소중하다

상사로서 사소한 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부하와의 신용을 잃어버리는 법이야"


"응..."


"나야 괜찮지만, 다른 얘들에게 그러면 큰일 날 거야"


"응... 조심할게"


"지휘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정신 차려"


"응... 열심히할게"


옆에서 보면

누가 위에 서 있는 지 알 수 없는

마치 한심한 광경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 위에 서본 경험의 길이는

그녀가 훨씬 길었다

그러니까, 아직도 병아리인 나를 보면서

여러가지 조언 해주고 싶은 거겠지




비스마르크


철혈 함대의 지도자이자, 철혈의 대표격인 함선


동료를 지키겠다는 신념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시리우스를 제외하면, 누구보다 나를 지탱해준 함선

그래서 남들 위에 선 지도자로서 행보를 잊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를 보기만 해도

교과서 등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는 내 행실에

골머리를 앓고 잇는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였다


"지휘관,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그래, 그럼 됐어"


그녀를 의지하는 동시에

그녀가 화나면 매우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니, 잘못한 건 지휘관이 아니라 나야

혼낼거면 차라리 나를 혼내줘:


일단 일방적으로 대화가 멈춘 것을 가듬이라도 한 듯

티르피츠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티르피츠, 너 비번아니였어?"


방금과는 다른 상냥함과 배려를 앞세운 목소리가 나왓다


훌륭한 지도자라지만, 여동생인 티르피츠를 앞에 두면

언니로서의 측면이 드러나는 비스마르크였다


"뭐, 됐고

너한테서 왜 늦었는지 얘기를 들려줄까?"


"알았어"


그녀가 앞에 나와 준 덕분에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티르피츠는 이곳에 오기 전 모습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정말 세세하게 말이다



"...그렇군요, 함선들과 놀다보니 늦었다는 것"


"미안해"


다시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들리는 한숨소리에 덜덜 떨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핑계가 되기는 커녕

핑계조차 되지 않는 말들 박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나의 내면조차 꿰뚫어보고 있는 탓인지

비스마르크는 지휘관, 이라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는 눈치라도 볼 수 있었건만

이번만큼은 무서워서 얼굴을 들 수 조차 없었다


어떤 말이 올지, 불안에 떨며

바닥에 떨어지는 식은땀이 튕겨지는 것을 볼 뿐이였다


"...뭐,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얘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철혈만 봐도,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는 얘들이 많습니다

그런 얘들 상대하느라 늦었을 줄 알았는데

응석부리며 놀다가 늦었다니..."


"미안해"


조금 전까지의 어딘가 따뜻함을 느끼는 목소리와 달리

다시 차갑고 묵직한 목소리로 인해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처절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못하는 고지식한 성품의 티르피츠는

이런 분위기를 만든 일에 책임을 느끼는 지, 더 미안한 얼굴을 했다


다만 론은 그러거나 말거나

이 모습이 꽤나 재밌는지,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도 마이페이스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마이페이스한 성격 때문일까

그저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만 들던, 그 때...




비스마르크는 방 안의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마냥, 손뼉을 쳤다

마치 내 생각을 읽혔다고 생각하니, 더욱 땀이 났다


"지휘관님, 고개를 들으세요"


"음... 미안해.... 응?"


"고개를 들으세요"


"어? 아, 알았어"


하라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보기 드문 장난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엷고 어렴풋이 서려 잇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허리는 반듯하게, 가슴은 활짝, 눈은 또렷하게!!"


"어... 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인 나였다


이제는 옆에서 보든 말든

어느 쪽이 위 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좋아!"


그녀는 세세한 지적을 한 끝에

만족스러웟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하면서


"지휘관, 당신은 그 직함처럼, 이 함대의 우두머리입니다

누구보다 잘나고, 누구보다 냉정해져야 합니다

그런 당신이 주위의 아이들에게 응석받이로 있어선 안됩니다"


"응..."


고개를 숙이다가

날카로워진 시선을 받자

아까 지적한 자세대로 돌아왔다


"그래도 당신은 착한 사람

저도 옛날부터 곁에서 보고 있던 몸 입니다.

그 상냥하게 닿았던 몸이기에

안 된다고는 할 수는 있지만, 그만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짝짝


다시 토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아니였다

눈앞의 그녀는 일부러 자신의 허벅지를 때렸다


"이봐"


"이봐... 라뇨?"


나도 모르게 상사를 상대하듯 답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이 기행은 무엇인가?


나는 대량의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여자야

지휘관을 응석받이로 키우는 정도라면

문제없이 할 수 있어"


"비스마르크, 농담하지마

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게 아니야"


"이봐"


"비...비스마르크?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뭔가 불안해져 가는 분위기에서

도망치듯 한 발 물러서려다

뭔가 부드러운 감촉이 뒤통수에 닿았다


어머나,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인 론은 가만히 두 어깨에 손을 얹고 즐거워했다


"헤에, 이번에는 비스마르크 언니에게 응석부리고 싶은 건가요~"


그런 말과 함께

나를 희생양으로 바치듯, 억지로 앞으로 보내는 론


"언니는 한 번 말을 꺼내면, 거의 굴하는 일이 없요

포기하시죠, 지휘관"


거들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듯

티르피츠는 내게 손을 대진 않았지만

그저 가만히 나를 쳐다볼 뿐 이였다


"봐봐, 지휘관"


비스마르크는 나를 보며

계속해서 자신의 무릎을 치고 있었다




*





"나를 보고도, 자침하지 않을 뿐더러

가라앉히는데 내 손을 번거롭게 하다니... 용서 못 해!!"


그런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가 테이블에 놓인 녹음기에서 들렸다

요전번 해역 순찰 때,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말

이것은 우연히 정찰기에 녹음된 목소리였다


그 밖에도

내면에 끝이 없을 것 같은

뒤숭숭한 말들을 눈 앞의 

약간 곤란해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론이 말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전투를 하면 흥분하는 타입이어서요"


발뺌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선뜻 고개를 숙이는 론이였다


"지휘관, 우리 편에 대해선게 아니니까

너그럽게 봐줄 순 없겠어?"


비스마르크는 론을 엄호하듯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나는...


그녀의 무릎에 앉힌 채

그녀의 손에 의해 몸을 밀착당하고 있었다

새빨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채, 창피함을 어필했다


보지말아줘, 보지말아줘


조금이라도 도망가려고 하면

여자의 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힘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이였다

나는 정말 울 것만 같았다


"지휘관, 내 이야기를 못 들은 건가?"


"비스마르크 씨

좀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요~"


"그런가, 알겠다"


"듣고 있어! 듣고 있었으니까...!!"


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티르피츠는 이쪽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러운 듯,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 여성스러운 몸매는 전투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만큼은 내 몸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군"


"언니, 너무 독차지 하시는거 아니에요?

저도 지휘관님을 치유해줬음 해요"


"후훗, 티르피츠 씨, 다음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다들! 그만 좀 하라고!"


나는 손으로 음성 기록기를 가리켰다


본 주제로 돌아가는 나를 보고

모두들 웃는 얼굴을 감추었다


"상대방은 적인데, 거친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걸까?"


"언니 말대로에요

상대는 적입니다

가라앉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비 따윈 필요 없어요"


"그렇긴 하지만, 음..."


철혈은 유난히 호전적인 함선이 많았다

그러니 전투 때마다, 뒤숭숭한 말을 많이 하는 지라

별로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함선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녀는 유독 그런 경향이 많았던 것일까




특별 개발함


티르피츠나 비스마르크, 시리우스나 벨파스트 같은 함선들은

수수께기가 많은 큐브의 힘을 이용해 건조한다

세이렌의 힘인 큐브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론만은 달랐다


큐브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뿐만 아니라, 함대에서 채취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조된

그녀는 여타 함선들과는 달랐다


론이 나의 함대에 배치된 이유는

다른 함대를 위한 특별 개발함의 데이터 수집을 위한 것이였다


처음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함선이라고, 기술자들은 말했다

나는 그 주제에 생소했기 때문에, 그다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일단 호전적인 철혈 데이터를 취합해 만들어진

그녀가 호전적이게 되어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구축함 얘들이 론을 착한 함선으로 생각했기에

더 무서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조만간 모두 익숙해지겟지만

무서워 하는 아이가 있는 동안엔 조심해달라고"


이 정도는 말해 두겟다


그녀가 짓고 있는 잔잔한 미소에서

적을 규탄하는 말이 나올 것을 상상하자니

너무나도 두려웠다

구축함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군


조금 어깨가 떨리면, 나를 껴안는 손이 조여지기 때문에

나는 떨 것 같으면서도, 꾹 참았다


"론은 착하니까

말만 신경쓰면, 다들 이런 말을 하지 않을거야"


"...네, 조심하겠어요"


반성하는지, 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하는 그녀의 답변을 듣고

조금 만족했다


함선에 따라서

주의를 줘도, 즉각 반발하는 함선도 있었다


최근에 만난 함선인, 아카기, 카가, 다이호 랄까

그들은 아주 그냥 거리낌없이 말하는 함선들이였다

나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상, 좀 처럼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만큼 신뢰받는다는 식으로 해석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면

반성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일단 얌전하게 물러가주는 론을 보면

마치 어른 같이 느껴져,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보수 때, 의논해 볼게요"


"유지관리?"


대충 알아먹기 쉬운 단어로 돌렸다


"네, 이번에 본부로 가서 유지보수를 합니다

특별 계획함 자체 데이터도 모였기 때문에

다음 대상을 위한 데이터 제공과

오류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있었어?"


"요전에 전해드렸지 않았었나요, 지휘관"


"뭐!? 그럴리가!?"


머릿속 스케줄과 함께

주머니에 넣어둔 수첩을 꺼내 확인했다

얼추 돌아보아도, 그런 일정은 없었다


"언제 하는 데!?"


"아직 미정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야....?"


이럴수가

본부와 관련된 중요한 일정을 잊고 있었다니...


본부를 간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왔다


"지휘관, 정신 차려, 당신이 여기 대표잖아"


"...미안"


머리 위의 목소리에 사과하며 반성했다

나사가 빠졌던 걸까, 아님 바쁜 일에 매여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는 이런 적 없었는데...



"당일엔 지휘관도 동행해요~"


"나? 왜?"


"뭐든 저의 평소 모습을 말하기 위해서에요~"


"...그렇구나"


평소에 지휘관실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그녀의 평소 모습을 어떻게 알 것인가


머리를 감싸듯, 손을 얹어, 부드럽게 좌우로 흔들었다


"자료는 내가 챙겨놓을테니, 너무 신경쓰지마

지휘관은 최대한 머리에 넣어둘 준비나 하라고"


"...항상 도움만 받네..."


"문제 없어, 언제나 있는 일이야"


그녀의 부드러운 입김이 내 머리를 간지럽혔다

나는 그녀의 숨에 전염된 듯이, 나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한심한 나 자신을 탓하듯이...


"고마워, 조심할게"


"그래, 조심해"





"론, 티르피츠

잠시 지휘관과 단둘히 할 얘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


자기혐오에 빠지는 나를 감싸면서

두 사람에게 말하는 비스마르크였다

론과 티르피츠는 수긍하며, 자리를 떴다


"티르피츠, 너는 오늘 쉬는 날이니까, 쉬도록 해"


"오늘은 지휘관님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추위 속에서 잊어버린 따뜻함을 되살렸으니, 이제 좀 쉴까"


"론, 오늘 이야기는 잊지 말도록 하세요"


"네, 아직 이곳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지휘관님과 여러분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도록 주희할게요"


비스마르크는 퇴실하는 2명에게 각각 말을 걸어, 배웅해주었다

참 좋은 상사다

부하직원을 마치 가족에게 대우하듯이, 대우해주고 있잖아

나와의 너무나도 큰 차이에, 정말 한심해지는 것 같았다


"자, 오랜만에, 지휘관과 단둘이 있는 군"


늠름한 그녀답지 않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더욱 더 힘차게 끌어안았다


"비...비스마르크?

이건 좀 부끄러운데 말이야"


"뭐 어때? 이곳은 나와 당신밖에 없는 데"


내가 싫어해도, 놓아주는 기색은 없었다

티르피츠의 말대로, 그녀는 간단하게 꺾이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항하는 것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비스마르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휘관, 잘 들어

위에 선 사람으로서, 기쁜 일과 슬픈 일이란

자기 밑에 있던 자가 보금자리를 떠날 때야

힘 있는 자가 떠날 때는, 자신 일처럼 기쁘고

힘 없는 자가 떠날 때는,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슬퍼지지

내가 보기엔 지휘관은 힘이 없어"


엄한 말과는 달리

조금 다정한 목소리로, 내 몸을 안았다


"나는 처음엔 당신 부하가 아니였어

이곳에 처음으로 정식으로 부임한 건 나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당신을 도울 수 있었지

지휘관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건 본인이 잘 알고 있겠지?"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지휘관은 지휘관만의 일이 있겠지

하지만 어떤 일이든, 내게 의지하도록 해

무능력하면서도 다른 사람 위에 서있도록 강요당하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야

다른 함선이 당신의 무능을 알아버린다면

나는 어떠한 단서도 남겨 놓치 않은 채

부숴버리고 말 테니까...

그러니까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비스마르크는 '나 뿐이야'를 반복해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우롱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그녀의 말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항상

주변 함선과는 다르게

나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무능하다고 인정하는 그녀였다

자신을 진정하게 봐주고 있는, 그런 것처럼 생각되어 버렸다


"지휘관, 힘들어진다면 언제든지 도망가도 좋아

그 때는, 내 곁으로 와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여기 처음왔을 때도 그랬잖아

한심한 모습으로 어리둥절하게 있었을 때

군과 관련된 업무는 내게 맡겼었지?

그러니까, 언제나 그 때처럼, 내게 울며 매달려도 좋아

나는... 아니, 나만 당신편이야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잔짜 편"


그런 달콤한 말을 반복하는 비스마르크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부하에게 들으면 안 될 말을 두고두고 듣는데 불구하고

뭔가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이 위에 올라가기 보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에 감언에 감싸여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여 갈 수 밖에 없었다





*




비서관 자리를 건 연습이 시작되자

아카시 씨가 부산을 떨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아카시 씨가 퍼뜨리고 다니는 거죠?


론은 어두컴컴한 침대에 앉아

지그시 손가락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소문이 나도

지휘관이 부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무언의 증명

모두가 어느 때보다, 훈련에 열중하고 있어요~


자, 저는 어떻게 할까요?


아카시 씨가 떠드는 것이 매우 신경이 쓰이내요

지휘관이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닌, 왜 아카시 씨가?


상점을 운영하는 입장 상

여러 함선들과 접할 기회가 많은 그녀이기에?


그래도 그녀는 사쿠라의 함선

어찌됐든 타 진영만의 함선이 아닌가요


어머나, 정말 어렵내요오



만약, 세계의 각본이 눈에 보이게 된다면 간단할 텐데

누가 이 수를 쓴건지 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나 불편하내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각본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대본


그렇다면, 차라리.......



저는 지휘관에게 말하지 않은

아주 특별한 권한이 있어요


불편 같은 게 있으면

지휘관을 통해 본부에 연락하는 타 함선들과는 달리

저는 본부에서 직접 건조되었기 때문에

본부에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어요~


요즘들어 생각하고 있던건데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를 빼앗고, 부수면 어떻게 될까

모두의 얼굴은 어떻게 변할까, 그의 얼굴은 어떻게 될까


어림을 느낄 수 있는 귀여운 얼굴에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그의 키

그런 그의 망가진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본부 쪽에 날짜를 밝혀야 겠내요

어디보자... 그러고보니 지휘관이 모두에게 나온다는 날짜가...


어머, 나 좀 봐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입 밖에 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죠


나머지는 비스마르크 씨와 입을 맞춰야 겠어요

마침 이번에 지휘관이 온다고 했죠


분명 그녀도...아니, 철혈 여러분은 협력해 줄거에요

그것만은 자신 있게 말 할수 있어요


만약... 만약... 이 각본을 쓴 그 누군가가 드러났다면


부숴 버리는 거에요오


대본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이만 간직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숴버리면 되는 거에요


저 스스로도 신기하내요

만난지도 얼마 안된, 사람을 이렇게도 생각할 줄이야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은

나를 만든, 내 데이터들이 같은 생각이기 때문 일까요?


그래요

내 생각은 모두의 생각


질투도, 증오도, 남달리 강한 감정도...

끓어오르는 추악한 감정에 환희하는, 격앙된 감정도...

그저 생각한 것만으로도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내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전부... 전부... 전부 부숴버릴거야!!"





* 이번 화에서 문제의 주제인

"나를 보고도 자침하지 않고 내 손을 번거롭게 하다니……. 용서 못 해!!!"

이것은 론의 실제 대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