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주년]
환상! : BlueRose (1)
― Crossroads
이제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이를 찾고 싶으신가요?
환상이라도 좋으니 만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블루로즈 건'은 그리운 사람과 재회하고, 구할 수 있습니다!
환상 속에서 당신이 그리워했던 사람을 만나세요!
수많은 꽃들 사이, 흰 장미가 유달리 눈에 띄는 담장,
그 너머에는 공을 차는 소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웃음소리가 만개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학교의 정문을 찾아서 담장 주위를 돌면,
활짝 열린 정문 옆에는 ‘환상 아카데미’라는 팻말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어딘가 대학교 캠퍼스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규모의 이 학교.
중고등학생의 아이들이 뛰노는 담장 둘레 안은 젊음이 가득하지만, 세워진 건물들의 모습은 이 학교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맑고, 흰 구름이 떠있는 하늘 아래, 정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학생들,
입구를 지나 교내로 들어가면 펼쳐져 있는 수많은 교실. 교무실. 각종 다목적실.
어느 층의 복도 끝에는 큰 규모에 비해서 다소 작아 보이는 도서실이 있고,
"카린."
그 도서실 데스크에는 머리 뒤쪽에 노란색 리본 핀을 한 긴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리고 데스크 앞, 연한 핑크빛이 도는 금발과 흰색 머리띠를 한 여학생 두 권의 책을 들고 눈앞에 졸고 있는 자신의 동급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어 번 이름을 불러보고, 스스로 깰 때까지 기다렸지만...
카린이라는 여학생은 아프지도 않은지 목이 완전히 90도로 꺾여 숙인 상태로 미동조차 없었다.
이제 선도부실 가야 하는데...
난처한 듯 들고 있는 책을 만지작거리며 더 기다려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결심한듯 여학생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꺾인 목이 아픈지도 않은지 세상모르게 잠든 카린을 불렀다.
"...카린!"
"으... 네...?"
카린이 비몽사몽 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깨자마자 먼저 시야에 들어온 명찰의 이름을 읽고 나서야, 카린은 깜짝 놀라 잠을 깨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녕. 오늘 엄청 흐물흐물하네."
"네? 흐물흐물이요...? "
"이거 반납하려고 왔어."
"아! 알겠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샬롯."
샬롯은 딱히 상관없다며 카린에게 들고 있던 책을 넘긴 뒤, 가볍게 손인사를 하고 유유히 도서실을 빠져나갔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진 않았는지, 카린은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했다. 다행히 졸고 있는 동안에 도서실에 별다른 일은 없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늦봄 점심시간의 나른함은 철저한 컨디션 조절을 하는 카린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그런 카린의 앞으로, 이번엔 같은 도서부원인 남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교대하자. 아, 그리고 카린 이거 좀 사서쌤한테 갖다 줘.”
“아! 네! 근데 이게 뭐예요?”
“몰라? 선도부실 통해서 온 것 같던데. 그리고 오후엔 다른 애가 한다니까 안 와도 돼.”
“음... 네! 그럼 고생하세요. 지훈 선배!”
“내일 보자.”
***
“하아...”
양팔 가득 책을 들고, 본관 건물로 향하는 길. 카린은 운동장 바닥이 꺼질 기세로 한숨을 쉬었다. 피곤하다거나, 지친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감히!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에 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졸고 있었다니!
혹시라도 자신이 졸고 있는 사이에 책이라도 도난당했으면 큰일이라는 걱정에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지훈 선배가 별말 안 하시면 괜찮은 거겠지..."
양손에 든 책 뭉치가 무겁게 느껴질 때쯤, 카린은 운동장 오른 편에 난 길을 지나고 있었다.
무거운 책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카린의 귓가에는,
드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로운 점심시간을 만끽하는 남학생들의 외침과 시원하게 공을 차는 소리, 그리고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박, 진짜 풀파워다!
봐! 내 말 맞지?
오오!
온갖 감탄사가 섞인 환호성에 카린은 무심코 운동장 쪽에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환호성은 금방 놀람과 탄식으로 변하고, 다급히 달려오는 남학생들의 발소리가 운동장 바닥을 울렸다.
“와! 큰일 났다! 저기, 괜찮아?”
“기절한 거 아냐?”
“야, 지랄하지 마! 그냥 찬 건데!”
“네가 풀 파워라며. 미친놈아!"
날아온 축구공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갖 말소리가 카린의 머리를 시끄럽게 울렸다.
얼굴의 정면으로 맞아버린 탓인지 눈물이 핑-돌기까지 했다.
“으... 으으...”
“괜찮아? 저기... 어, 명찰이... 그래. 이름이 카린이구나―”
카린이 간신히 눈을 뜨자, 금발 머리의 남학생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흐릿한 실루엣에도 어째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교복 매무새가 보이고... 저...건 뭐지...
아,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책.. 책...”
“어?”
“책... 사서... 선생님... 아, 아파...”
자기들이 신나서 찬 공에 가녀린 여학생이 맞아서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만화 같은 클리셰가 있을 줄이야.
우르르 몰려온 남학생들이 분주해졌다. 그 공을 찬 장본인이 제일 당황하여 주변에 있는 남학생들에게 무어라 외쳤지만 카린은 어지러워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야, 제이! 네가 쟤 책임지고 보건실 데려가라. 내가 이거 대신 쌤 갖다 드림.”
“어, 그래! 부탁한다. 야, 얘 업게 좀 부축해 봐.”
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책에 대형사고(?) 현장은 순식간에 수습이 되고, 카린은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그대로 전혀 모르는 남학생의 등에 업히게 되었다.
급하게 보건실로 달리는 통에 울렁거림이 심해지고, 자기보다 체급이 훨씬 큰 남학생의 등이 제아무리 편안한들...
...맞은 안면의 통증은 결코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코 아파...”
“거의 다 왔어! 진짜, 진짜 미안하다!”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에 연신 사과하며 뛰는 남학생의 말에 카린은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그게 코가 아파서인지, 사과에 감명이라도 받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자기 자신은 둘째치고 직접 전달하지 못 하는 책 뭉치들이 더 걱정일 뿐이었다.
카린을 업고 빠르게 보건실로 달린 남학생은 축구를 하고 있던 만큼 원래도 운동 신경이 좋은지 보건실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업혀져 들어오는 탓에 심각한 응급상황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한 보건 선생님이 크게 놀라 다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공부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했어? 괜찮아!?”
“아, 그게... 제가 찬 공에 맞아 가지고...”
으으, 머리... 머리가 울려...
주변인의 호들갑 때문에 머리가 울려오는 듯했으나, 카린은 안면의 통증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불만을 외칠 뿐이었다.
남학생은 보건 선생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카린을 보건실 침대에 눕혔다.
넓은 등판에서 떨어져 나오고, 자신의 앞이 휑해짐과 동시에 카린의 시야는 잠시 완전히 암전 되었다.
***
“그래도 다행이다. 별 탈은 없어 보이네. 카운터라 그런가?”
잠깐의 암전이 다음 수업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의 시간일 거라고, 카린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자신의 친구들이 필기를 성실하게 해놨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고 하기엔 한 교시가 그냥 지나 버렸는걸요... 아, 세계사 시간이었는데...”
카린의 우는소리를 듣던 보건 선생님 심소미는 미소를 지으며, 카린에게 만약을 대비한 상비약을 쥐여주며 말했다.
“카운터 아닌 애가 맞았으면 뇌진탕으로도 안 끝날걸? 얘기 들어보니까 널 업고 온 애가 찬 공에 맞았다는데?”
“으... 누군지도 안 궁금하고... 모르겠어요. 그땐 정신없고 머리가 울려서...”
“하하, 데려다준 애가 제이크야. 걔도 카운터고. 자, 더 쉬었다 가려면 쉬었다 가도 돼. 선생님은 잠깐 1학년 교무실에 다녀올게?”
심소미가 보건실을 나가고, 카린은 손을 올려 코 뼈가 멀쩡한지 만져보다가 안면 전체, 머리 위, 그리고 뒤통수를 만져보았다.
뒷머리가 허전한지 뒤통수를 연신 더듬거리더니 카린은 한숨 섞인 말을 뱉었다.
“아... 머리핀...”
늘 꽂고 다니던 쨍한 노란색의 리본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 아끼던 건데, 오늘은 날이 아니구나.
홀로 남은 보건실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괜히 조명이 어둡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지럼증도 두통도 가셨으니 더 이상 결과(학생이 수업 시간에 빠지는 것)는 용납할 수 없었다.
머리핀은... 찾을 방법도 없을 거란 생각에 그냥 긴 생머리 그대로 있기로 결정하고, 카린은 다시 교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수업을 다 듣고 오후에 책 뭉치의 행방도 찾아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천천히 보건실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제이크?”
뒤늦게 선생님이 알려준, 자신을 보건실에 데려다준 사람이자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을 떠올렸다.
이 이름이 내가 기억하는, 몇 번 들었던 그 이름 맞나?
카린은 골똘히 생각하며 보건실 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는 길,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 쉬는 시간의 끝물.
카린은 자신의 반으로 가면서, 마침내 기억해 냈다.
그 사람!
농구부 유망주인데다가 엄청난 인기인이라고 다른 애들이 호들갑 떠는 걸 들었던 것 같은데.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어렴풋이 기억하는 말들이 왜 인기가 많은 지를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딱 봐도 평범한 여학생들과 보기 좋은 키 차이에 넓은 어깨. 여자애들이 싫어할 수가 없는 외형.
카린은 '그래,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를 자각한 듯 잠깐 멈칫했다.
설마... 나 학교 유명 인사 등에 업혀본 거야?
카린이 걷다 말고 기겁하며 제자리에서 한번 폴짝! 뛰곤 한숨을 쉬었다.
쉬는 시간에 남몰래 읽어온 수많은 순정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클리셰에 소름이 돋았는지 양팔을 마구 쓸어내리는 건 덤.
“아아...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는 건 아니겠지...?”
축 처진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교실 앞. 다음 수업이 뭐였는지 떠올리려는 그 순간, 카린의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나타났다.
“카린, 맞지?”
“히이익!”
어깨에 느껴지는 예상하지 못한 촉감과 말소리에 카린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돌아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눈앞에 서있었다.
“그... 아까? 제이크... 선배?”
“아~ 미안, 미안. 놀래 킬 생각은 없었는데.”
자기 멋대로 입은 교복과 학생 신분으로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를 선글라스.
그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표정...
근데 1학년 층은 왜 온 거지?
카린은 여전히 뒷걸음질 친 모습 그대로 앞에 서있는 3학년 선배를 바라보았다.
“아, 딴 건 아니고, 미안해서 다른 애들한테 너 1학년 몇 반이냐고 좀 물어보고 찾아왔어. 사과의 의미로 선물 하나만 주고 갈게.”
“네? 사과 선물이요?”
선물이라는 말에 카린이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멀쩡하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에이, 사양하지 말고... 진짜 미안해서 그래. 잠시만!”
카린은 자신은 괜찮다며, 연신 주머니를 뒤적이는 제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
빡! 하는 타격음과 함께 눈앞의 제이크 선배가 앞으로 살짝 꼬꾸라졌다. 그 뒤에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서있는 1학년 수학선생님, 박현수가 제이크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야, 이 새끼야! 지금 수업 종 친 지가 언젠데 1학년 교실 앞까지 와서 여자애한테 치근덕거리고 있어?”
“아! 쌤! 오햅니다. 오해~”
“오해는 얼어 죽을! 빨리 너네 반으로 가! 자식아!”
아무리 훤칠한 키와 외모, 시원시원한 성격도 선생님의 귀 잡아당기기 스킬엔 쓸모없는 장점들이었다.
카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수학 선생님에게 귀를 잡혀 계단으로 끌려가는 제이크의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크게 한숨을 터뜨렸다.
하, 오늘 하루 뭐가 뭔 일 인지...
고작 2~3시간이 마치 하루 종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 치 피로감이 쌓이니 몸도 엄청 무거운 것 같고.
“넌 왜 여기 멍하니 서있어! 빨리 들어가, 수업하게.”
“아! 네!”
어느새 다시 돌아온 박현수는 멍만 때리고 있는 카린을 깨워 교실로 들여보냈다.
(BGM OFF)
***
수업이 한창인 오후 시간.
늦봄의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커튼에 부딪히고, 흰색 커튼이 살랑였다.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는 자장가로, 봄바람 뒤로 아련히 들려오는 체육시간을 만끽하는 남학생들의 외침은 백색소음이 되었다.
카린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백색소음에 집중했다.
공을 차는 소리, 감탄사와 웃음소리.
골인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대체 뭘 주려고 한 걸까?
머릿속에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머리를 한번 살짝 흔들고는 수업에 집중했다. 이전 수업도 그대로 날려버렸는데, 수학 수업마저 망칠 순 없었다.
...
문득 밖에서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린의 자리는 창가 바로 옆. 소리를 따라 살짝 고개를 돌려 운동장 쪽을 보았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들. 3층의 높이에서는 그냥 사람이 있다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자각은 잃어버렸는지 카린은 턱을 괴고, 뛰어다니는 남학생들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딴짓하지 마라! 앞에 자는 사람도 깨우고. 인석들아, 너네 반이 진도 제일 느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는 수학선생님 박현수의 지적에 카린은 흠칫- 놀랐다가, 곧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는 앞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친구 에이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등짝을 톡톡-쳐도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미동이 없으니, 카린 팍! 소리가 나도록 등짝을 내려쳤다.
“아악!”
“아악은 무슨!”
에이미의 외마디 비명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고, 박현수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수업에 집중 좀 하라며 호통을 쳤다.
에이미를 깨운 당사자인 카린은 비명에 살짝 당황했지만, 곧 조용히 피식 웃고는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남은 오후 시간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일상적인 평범한 시간이었다.
...아, 맞다. 심부름.
평화는 무슨.
수업이 끝나면 곧장 사서 선생님한테 먼저 가야겠다.
+)
예상 편수는 18편 내외, 편당 최소 5천자를 넘기는 장편이며, 커플링 요소가 조금 있습니다.
챈에 올라온 카사짤에 영감을 받고, 기존에 생각만 해둔 아이디어와 접합해 쓴 글이고,
오늘 내로 2편까지는 올라갈 예정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