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10편은 약 1만자 정도로 내용이 많이 깁니다.
[2.5주년]
환상! : BlueRose (10)
― Daydream : Pathfinder
고귀한 귀족은 감탄도, 실망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지켜보았다.
이번 환상은 어떻게 망가질까?
곧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냐고.
어제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고인 물웅덩이 위로, 드문드문 허공에 총성이 빗발쳤다.
단정한 학생화를 신은 발이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니, 수면에 비친 흐린 하늘이 마구잡이로 일그러졌다.
침식체가 내는 괴성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조합.
이 도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학도병을 쓰는 거냐고 욕을 하겠지만, 그들은 환상 고등학교 소속 동아리, 통칭 카운터즈. 그들 모두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학생들이다.
늘 그렇듯, 앞장서있는 제이크와 클라레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는 샬롯이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고, 후방에는 카린이 접근하는 개체가 없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인이나 외부 용병, 그리고 지도 선생님들도 빠짐없이 모여있었다.
보통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군인들이나 용병들이 대부분의 임무를 수행했지만,
오늘은 유달리 단순 지원이라 하기엔, 꽤 높은 난이도의 임무였다.
나름 태스크포스나 군인을 지망하다가 선생님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박현수도 이번만큼은 지치는지 한숨을 쉬었다.
"하, 다들 수고했다. 큰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모두 생수병 하나씩을 들고 갈증을 해소하다가, 카린이 지금 상황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요즘 점점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빈도 수도 늘어나는 것 같고..."
"그래,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 부쩍 많아졌어. 그래도 1~2종이 대부분이라 제압이 가능하니 괜찮을 거다. 자, 다들 먼저 차로 복귀해."
"어후, 어제 비올 때보단 그래도 낫다. 다들 고생 많았어."
지도 선생님들은 현장 정리를 위해 자리를 떠났고, 남은 네 명은 서로 고생했다는 격려와 함께 복귀할 채비를 했다.
각자의 무기에 가득한 흠집과 흙먼지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온 탓에 복귀에도 시간이 걸릴 터. 카린은 컨디션 조절해야 하니 차에 타면 눈을 좀 붙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발을 뗐다.
"카린."
샬롯에 부름에 카린이 샬롯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클라레스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학생회장님과 이야기할게 있으니, 제이크 선배랑 먼저 돌아가."
"네. 네...?"
"그럼 차에서 봐."
차에서 보자는 말로 확인사살까지 끝낸 샬롯은 클라레스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정말 갑자기 이대로 자신과 제이크만을 두고 가다니,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카린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했다.
옆에서 멀뚱멀뚱 보고 있던 제이크는 카린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왜? 아직도 내가 어색 한거야?"
"네?! 아뇨!! 그럴 리가요! 아하하...!"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뛰어다녔는데도 기운 넘치네, 목청 봐."
카린이 왜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아니 애초에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는지 제이크는 선생님 차로 돌아가자며 손짓했다.
이렇게 갑자기 단둘이 있는 건, 실내수영장에서 놀던 날 튜브와 구명조끼를 찾으러 창고를 갔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갑자기 거의 반쯤 끌려가듯이 따라갔던 탓에 제이크의 페이스에 끌려다녔지만...
"이야, 매번 볼 때마다 대단해."
"네? 뭐가요? 클라레스 선배요?"
"아니? 카린 너 말이야. 동작이라던가 상황 판단이 무슨 정식 전투요원 같아."
"네?! 그, 그런 과찬을..."
오늘만큼은...
'타인과 얽힌 것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 존경, 우정, 사랑 그 뭐든 간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자가 쟁취하지.'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는 자가 눈에 띄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오늘만큼은 마냥 휘둘리지 않겠어!
"과찬 아닌데? 난 머리 너무 쓰는 건 질색이라 화력빨로 밀어붙인다고."
"......"
"음? 카린?"
제이크가 문득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카린이 없어졌음을 자각했다.
걸음이 너무 빨랐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카린이 입을 꾹 다물고 비장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화난 것 같은 표정 같기도 하면서, 화가 났다고 하기엔 무언가 다른 분위기.
빨개진 얼굴로 애꿎은 자신의 소총만 꾸욱 잡고 있는 카린을 향해서 제이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왜 그래? 내가 뭐 말 잘못했나?"
"...그게 아니에요."
카린의 소총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 제이크의 팔뚝을 무작정 잡았다.
이런 행동을 하기까지 카린의 머릿속에 천둥번개가 얼마나 많이 쳤는지, 제이크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성실하고 착한 동아리 후배의 돌발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제이크가 잡힌 팔뚝을 어정쩡하게 들고, 난감한 목소리로 이 행동의 이유를 계속해서 추측했다.
"그럼 왜? 어디 아픈가? 이 선배가 업어줄까?"
"아뇨! 아니에요...!"
"그럼?"
카린이 손을 떼고, 날숨을 한번 크게 뱉은 다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대령님!"
"...응?"
"......"
......대령님?
쿠구궁――――――――――――――
쿠우웅.
"꺄악!"
"조심해!"
"....!"
서로 당황하는 순간, 뒤편에서 울려온 굉음이 작전구역을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제이크가 반사적으로 카린의 손목을 잡아당겨 끌어안고 주위 상황을 살폈다.
얼떨결에 품에 안겨버린 카린은 숨이 막힌다는 감각조차 없었다. 들려오는 건 자신의 생각뿐이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너무 따뜻하고, 자신의 머리를 감싼 큰 손의 감촉에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뭐,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건... 뭐야...?
아니면,
낯선 감정에 대한 두려움...?
"아악?!"
머리와 등을 감싸던 손이 어깨로 옮겨가고, 카린을 바로 세웠다.
계속 지평선을 주시하던 제이크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크게 놀란 얼굴로 외쳤다.
"카린! 뛰어야 해!"
"네? 갑자기요?"
"3종이야!"
설렘의 두근거림은 온데간데없고, 놀람과 공포가 커졌다.
3종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본 뒤쪽엔, 저 멀리 황급히 빌딩 숲 앞으로 방어선을 만들고 있는 군인과 용병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더 먼 곳.
그곳엔 정말로 3종 비스트가 위협적인 자태를 드러내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한꺼번에 건물 사이에서 난동을 부렸다.
3종이 뛰는 한발 한발마다 콘크리트 땅이 울리고, 집 한 채 만큼 큰 몸뚱이에 걸맞게 고막을 찢을 듯한 괴성을 질러댔다.
"카린! 멍 때릴 시간 없어! 빨리!"
저건 위험하다. 그런 판단으로 제이크가 후퇴하자며 재촉했다.
이유는 당연했다.
1~2종이면 몰라도, 3종은 한 마리만 존재해도 도시 하나는 쉽게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어설픈 풋내기 카운터는 잡아보겠다고 나서봤자 중상으로 끝나면 기적이며, 이미 저 방어선을 만든 군인과 용병 무리들은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제이크가 카린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카린은 도망치는 것 대신, 떨어진 자신의 소총을 재빠르게 잡아들었다.
"안돼요!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 정말 3종이라면, 이대로 후퇴했다간 비카운터분들이 무사하지 못해요!"
"카린!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야! 그리고 애초에 우리는 3종을 정면으로 맞서본 적 없어! 무모하다고!"
"아뇨! 할 수 있어요! 우린 더더욱 도망쳐선 안돼요!"
도망쳐야 한다는 주장에도 카린은 굽히지 않고 탄창과 상황을 빠르게 확인했다.
카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평선에서 몇 없는 군인과 용병들이 만들어 내는 방어선을 지켜보며, 제이크를 설득했다.
"제이크 선배. 선배의 화력이라면 3종은 물론이고, 4종도 잡고 남을 화력입니다. 비카운터 분들과 저와 부원들의 서포트를 받으면 승산이 있어요."
"카린, 객기와 용기는 달라.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강하다는 근거는? 나는 학교에서 CRF 출력 테스트 최고점을 찍은 게 다라고."
제이크도 카린의 주장에 지지 않았다.
카운터 아카데미도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서 사용한 CRF 측정기에 의구심이 드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카린은 고작 테스트기의 최고점만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요! 카운터 인력이 저희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저희 다치는 거만 생각하다가 이 일대가 전부 쑥대밭이 된다고요! 그리고 저길 봐요!"
카린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제이크의 시선이 꽂혔다. 똑같이 사태를 파악한 클라레스와 샬롯은 이미 선봉에 서기 위해 이동 중이었고,
구축한 방어선에서 캐시가 카린과 제이크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승산?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후퇴해야 하나요? 선배."
"하아..."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더니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하, 그래. 네 말이 맞네."
두 사람만 합류하면 끝나는 긴급작전. 둘은 제이크의 긍정과 동시에 급하게 구축한 방어선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상황 판단력에 제이크는 속으로 감탄하며 달리는 동안 카린에게 물어왔다.
"후, 아까도 말했지만 카린은 판단 능력이 저기 방어선 만든 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단 말이야. 누가 선배인지 모르겠어~"
"잡담은 사태가 수습된 다음에 이야기해요!"
한참을 달리고, 두 사람을 발견한 캐시가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카린 학생! 제이크 학생!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생각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상황은 어떻죠, 선생님?"
"좋지 않아요. 지원 요청을 했지만 오는 데 시간이 걸려요. 일단 방어선을 구축하고, 막을 준비는 하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크어어어어어어어억―――――――――!!
저 멀리 다가오는 3종 두 마리가 크게 포효했다.
마치 자신들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의 울림에 모두가 겁을 먹었다.
용병들과 군인들은 물론이요, 나름 한가닥 한다는 카운터들인 선생님들도, 어느새 카린의 옆으로 다가온 샬롯도,
늘 앞장서서 부원들을 보호하던 클라레스도 대검을 땅에 꽃은 채 검자루를 잡고 서있는 모습에서 긴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이곳에 서있는 모두에겐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없으며,
생존 대책을 강구할 시간도 촉박했다.
소총을 들지 않은 카린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두려움이기도 하면서, 결심이기도 했다.
"선생님, CRF 출력이 제일 높은 클라레스 선배와 제이크 선배를 산개 시키고, 두 선배의 화력과 저희들의 지원사격으로 3종을 제압하는 방법을 써야 해요. 무작정 뭉쳐서 제압하려 하면 오히려 서로의 CRF 출력에 부상을 입을 수 있..."
"네?! 카린 학생 잘 들어요. 저와 다른 선생님들은 많이는 아니어도, 방위 활동이 아닌 정화 작전에 지원을 나간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3종을 상대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객기와 용기를 구분할 줄 모르는 게 아니에요! 학교 CRF 출력 테스트기가 최대 A+급의 출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 테스트 기기 매뉴얼을 본 적이 있어요. 최고점을 찍은 제이크 선배와 근접한 수치를 끌어낸 클라레스 선배면 3종을 간단하게 죽이는 건 불가능해도... 선배들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카린, 학생!"
카린의 열띤 목소리에 샬롯이 카린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클라레스도 언성이 높아지는 카린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이대로 방어선만 고집하면 비카운터분들은 최소 중상을 입게 될 확률이 높아, 방어선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일격에 퇴치하는 건 힘들더라도 되도록이면 제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거예요!
이론상으론 3종은 B급 카운터의 협공 혹은 A급 카운터의 단독 토벌이 가능하니까요. 그걸 알려주신 건... 캐시 선생님이셨잖아요."
"후우... 그래요. 계속 들어보죠."
"네. 그간 활동 중에 배운 이론과 경험을 생각해 보면... 다른 카운터의 서포트를 받아 가면서, 비스트 타입의 주요한 특징이자 약점인 포신 부분에 정확히 A급 이상의 CRF 출력을 올린 공격을 꽂아 넣으면 무력화 시킬 수 있습니다. 동아리 이론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이 틀리지 않았다면요."
"저는 카린의 말에 동의합니다."
"샬롯...?"
잠자코 듣고 있던 샬롯이 한 손을 들어 보이며 카린의 의견에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다.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제이크는 말없이 클라레스 쪽을 돌아보았다.
클라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는 캐시와 카린을 보다 제이크의 사인을 알아채곤, 땅에 꽂은 대검을 뽑았다.
"그래요. 지도 선생님들보다 학생 여러분의 CRF 출력이 월등히 높다는 점을 이용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여보고 싶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러나저러나 뭐든 해야 해. 3종은 우리도 상대해 보지 못한 개체야. 얘네나 우리나 지금 다를 게 없다. 지원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박현수 선생님! 3종이 한 마리만 나타나도 비상사태 선포에요. 하물며 두 마리는..."
"제일 위험한 역할인 저와 제이크가 동의하면 실행할 수 있습니까?"
클라레스가 다가와 작전을 수행할 의사가 있음을 알렸다.
점점 사람들의 지지가 모이기 시작하자, 근심과 다급함이 가득했던 카린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하겠습니다. 저와 모두를 믿고 저놈들에게 라이트닝 익스큐션을 먹여보도록 하죠. 하하."
"제이크 학생까지... 휴, 알겠습니다. 승인하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 의견은 어떠신가요."
"동의하지." "동의합니다."
어렵게 떨어진 작전승인.
하지만 작전을 동의했단 이유만으로 안심하기엔, 이들이 실패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심소미는 현장에 바로 들어가야 할 클라레스와 제이크의 신체 컨디션을 체크했고, 박현수는 현장의 비카운터들에게 협력 요청을,
캐시는 카린에게 더 구체적인 작전 내용을 같이 구상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려 했으나...
――――――――――――――――!!!
지진처럼 크게 흔들리는 땅울림이 그들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려왔다.
"이크!"
"선생님! 시간이 없어요! 직접 뛰면서 무전으로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무수한 총성이 방어선을 뒤덮고, 3종은 아까보다 더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비카운터는 모두 급하게 만들어올린 엄폐물에 숨어서 사격을 하고 있었으나, 3종의 눈먼 돌진 한 번만 들어와도 최소 중상이었기에 시간을 오래 끌기 어려웠다.
심소미가 급하게 준비해온 태스크포스용 통신기를 모두에게 나누어주고, 제이크는 귀에 꽂자마자 클라레스에게 외쳤다.
"클라레스! 좌측에 있는 놈은 내가 간다!"
"알았다. 제이크. 샬롯, 너무 앞으로 나오지 말고 비카운터 인원을 보호하도록."
"...네."
샬롯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두 남자는 순식간에 각자 3종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카린이 튀어나가는 두 사람의 이동 루트를 확인한 한 후, 다급히 샬롯의 팔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당겨지는 힘에 놀란 샬롯. 놀란 나머지 왜 그러냐며 물으려다 한껏 비장해 보이는 카린의 표정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샬롯, 할 수 있겠어요?"
"어?"
"선배님들이 3종 두 마리를 떨어뜨리는 것까지 좋아요. 하지만 저들의 머리를 돌려야지 두 선배가 일격을 넣을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아무리 선배님들의 실력이 좋아도 정면으로 공격을 맞아가면서 약점을 꿰뚫을 순 없습니다. 그러니... 그걸 저와 샬롯이 해야 해요. 그리고 저는 몰라도 샬롯의 CRF 출력은...."
"됐다, 카린. 무슨 뜻인지 알았으니 네가 캐시 선생과 전황을 살피고 지시해라."
"네?"
박현수가 샬롯을 붙잡고 있는 카린을 떨어뜨렸다.
카린이 세운 작전이니, 카린은 즉각적 상황 판단과 지시를 내리기 위해 현장요원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바이탈 사인 올그린입니다. 저는 부상자 발생을 대비해 미리 이동하겠습니다."
"오케이."
박현수의 컨디션을 카운터 능력으로 확인한 심소미가 이상이 없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이고, 혹시라도 발생할 부상자를 대비해 다른 후방으로 다급히 이동했다.
"기회를 잡기 위한 미끼 역할은 샬롯과 내가 한다. 둘 다 1~2종 어설프게 상대한 게 전부겠지만 할 수 있겠지? 샬롯?"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대답이 나오자마자 박현수와 샬롯이 검을 고쳐잡고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3종이 클라레스와 제이크에게 치명타가 될 공격을 제압사격으로 저지하기 위해 캐시가 분주히 군대과 최고참 용병에게 상황을 알리고, 카린은 전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데 집중했다.
비카운터들이 3종을 직접적으로 타격할 방법은 사실상 없기에, 카운터들의 작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군인 혹은 용병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좋든 싫든 그들은 일개 여고생 카운터와 카운터 선생이 지시하는 것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카린은 견착 자세를 잡아 같이 제압사격을 하며 상황을 살폈다.
"조금 더... 더...!"
계속 붙어있던 두 마리의 침식체가 마침내 두 남학생의 CRF 출력에 이끌려 찢어졌지만, 박현수와 샬롯이 그들의 머리를 돌리기엔 아직 너무 가까웠다.
"샬롯, 박현수 선생님 조금 더 떨어지세요. 아직 안 돼요! 제이크 선배! 아직 주먹질하면 안 돼요! 방출만 해주세요!"
- "샬롯이 나와있다고 했나!?"
"클라레스 선배님! 집중해야 합니다!"
샬롯이 나와있다는 말에 당황한 클라레스가 눈먼 발 구르기 공격에 스칠 뻔했지만, 제압 사격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카린은 클라레스의 예상 밖의 태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계속 상황을 주시했다.
조금 더..
더... 아직 더...
바로 지금!
"CRF 방출 중단! 샬롯과 박현수 선생님이 진입해 주세요! 두 분이 진입하면 선배들은 그쪽으로 우회하여 시선 밖으로 벗어납니다!"
-"침착하게 약점을 노려, 다치지만 않으면 기회는 또 있으니 무리해서 할 필요 없어!"
"비스트 타입 원거리 포격 유도합니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다행히 지성이 없는 3종은 그대로 샬롯과 박현수를 향해 각각 머리를 돌려 주포에 침식파를 집중 시켰다.
그때 클라레스와 제이크의 통신기에선 카린의 빠른 말소리가 들어왔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에너지가 모이기 전 빠른 속도로 약점을 노리거나, 에너지를 방출 후 잠시 멈추는 찰나를 노리세요!"
두 남자는 모두 전자를 택했다.
한 쪽은 그러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자질이 있었고, 한 쪽은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그런 선택하게 만들었다.
"라이트닝――――――!!!" "샬롯! 조심해라!"
섬광이 번쩍이는 주먹과 붉은 검기가 흐르는 대검이 두 개의 주포에 각각 꽂혔다.
3종이 아닌,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지진과 굉음이 지상과 허공을 강타했다.
쿠구궁―――――!
퍼어어엉―――!!
비카운터들은 카운터들의 순수 CRF로 만들어져 휘몰아치는 폭풍을 이겨내기 위해 엄폐물에 숨었고,
카운터인 캐시와 심소미는 미쳐 엄폐물 뒤로 가지 못해 맨몸으로 버텨보려고 노력하다 결국 A+급 이상이 만들어낸 파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큿...!"
(BGM OFF)
(마우스 우클릭>연속재생)
탁한 흙먼지가 시야를 덮고, 카린은 반쯤 부서진 엄폐물 뒤에서 엄청난 CRF의 폭발로 생긴 공기의 흐름과 땅의 충격을 그대로 이겨내며 통신을 계속 걸었다.
"무사하신가요?! 모두들!"
통신기 속에선 지지직거리는 잡음만이 잡혔다.
카린이 계속 말을 걸어보지만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침식파와 CRF의 폭발로 먹통인 건가?!
카린이 다급히 엄폐물을 넘어 나가려 하자, 누군가 카린의 손을 잡아끌며 제지했다.
튀어 나가려는 카린을 보고 놀란 캐시가 바람을 이겨내고 온 것이었다.
"카린 학생! 침착해요!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나가면 카린 학생도 위험합니다!"
"하, 하지만..."
캐시의 냉철한 판단이 맞았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아직도 CRF 폭발의 충격이 그대로 지면에 전해지고 있었다.
"제발..."
잠잠해지는 충격, 여전히 날리는 흙먼지.
카린은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Pathfinder)이 틀리지 않았음을 간절히 바랐다.
오늘날, 하늘 아래 아무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날이길....
"으아아아아――――――――!!"
"으읏?!"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그 목소리는 통신기 밖에서도 나고 있었다.
"이게 라이트닝 익스큐션이다! 하하!"
흙먼지가 거의 다 내려앉고 보인 것은,
CRF 충격에 튕겨져 나와 바닥을 뒹군 탓에 꼬질꼬질해지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 없이 주저앉아서 만세를 하고 있는 제이크의 모습이었다.
"제이크 선배!"
안도한 카린이 뛰쳐나갔다. 조금 더 앞으로 나가니 시야에 더 많은 것이 들어왔다.
이미 약점을 파괴당한 3종은 드러누운지 오래.
제이크의 주변으로, 오른팔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박현수가 주저앉아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샬롯과 클라레스가 멀쩡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 다행이다...!"
"다들 침착하게 잘했다. 이거 잘하면 학교에 대대적으로 포상이 내려올지도 모르겠구나. 우리 학교에 이런 엄청난 인재들이 있는지는 몰랐는걸?"
"나 참, 이러다 제가 농구부원인지 카운터 용병인지 모르겠어요."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박현수와 제이크의 말에 카린이 이제는 완전히 긴장이 풀렸는지 똑같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도 한 느낌...
분명 안도감이 드는데, 왜...
어째서
"패스파인더는 틀리지 않았어..."
"응?"
훌륭하게 현장 상황을 이끌어도 결국 어린 학생임은 변하지 않는 법.
카린은 이미 주변의 말소리 따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방언에 가까운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작전에서... 모두 살 수 있었어... 흐어어엉...."
"카린, 괜찮아? 와, 얼마나 긴장했길래 정신을 놨어."
흐느적거리며 우는소리를 내는 카린의 등을 토닥이는 제이크.
샬롯은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클라레스의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클라레스를 올려다보았다.
"학생회장님."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군. 다음부터는 최대한 무모한 짓은 하지 말도록."
"......"
샬롯은 걱정 어린 클라레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한참 정신을 놓고 흐느적거리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제이크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카린.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서 얼른 돌아오라는 캐시와 심소미의 사인을 본 클라레스가 샬롯에게 가자며 등을 살짝 두드렸다.
클라레스가 두 걸음 앞으로 나가고, 그제야 샬롯은 뒤를 따라 움직였다.
두 사람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다가온 심소미가 샬롯에게 물어왔다.
"샬롯, 안 다쳤어?"
"괜찮습니다. 학생회장님도 다치신 곳은 없습니다."
"샬롯이 가벼운 찰과상이 있긴 하나,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으면 괜찮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다... 일단 복귀해서 우리 상태 체크해야 한다고 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가자."
"네."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안심한 심소미가 앞서가고, 샬롯은 여전히 클라레스보다 두 발자국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
샬롯이 잘 따라오는지 살짝 돌아보던 클라레스가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유달리 긴 것 같은 하루에 지친 것처럼, 샬롯은 눈을 반쯤 감은 채 걷고 있었다.
.......
아무리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이라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용병과 군인들, 그리고 능력 있는 카운터들이 한낱 카운터 여고생에게 지휘권을 넘겨준다라...
그것도 너무도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제 시간이 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