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주년]
환상! : BlueRose (13)
―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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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못했다.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선택을 유보한 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무엇을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을 쥐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이라는 것처럼 평온하게 책이나 읽고 있는 모습이 믿기질 않았다.
거친 숨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카린은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샬롯을 향해 다가갔다.
"뭘 하는 거예요? 재난 경보... 못 들었어요?"
"들었어.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없어."
"무엇을요? 바꿀 수 없다고요? 어제 우리가 해낸 건 바꾸지 못한 미래였나요? 정해진 거였어요? 왜 갑자기 돌발행동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에요!"
뜻 모를 대답에 카린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를 내어도, 샬롯은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카린이 무슨 말을 한들, 책상 위로 올린 두 손안에 쥐어진 책으로 시선을 다시 돌릴 뿐이었다.
"샬롯이 존경하는 클라레스 선배님도 지금 방어선에 나가있어요! 하다못해... 방어선이 어딘지 몰랐다면 적어도 이런 곳에서 태평하게 책을 읽는 짓은 하지 말아야죠! 카운터즈와 재난 프로세스의 존재 의의를 잊은 거에요?!"
"아니. 내가 어떻게 잊겠어. 단지 이제는 의미 없을 뿐이야."
의미가 없다니?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 카린이 샬롯이 들고 있는 책을 거칠게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책장 사이에 꽂혀있던 마른 장미의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져 힘없이 부서졌다.
"지금 이건 명령 불복종이에요!!"
카린은 샬롯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과 눈을 맞추었다. 강제로 잡아 돌리는 탓에 책상도 쓰러지고, 독수리의 문양이 그려진 정체 모를 물건도 같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
"아? 아-라고 했어요? 그게 다에요? 지금 밖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맞서고 있어요! 카운터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이 순간에! 중요한 전력인데! 저희가 얼마나 중요한 인재인지를 알면서! 의미가 없다, 바꿀 수 없다는 핑계로 도망치는 거에요?"
"도망치지 않았어."
"샬롯! 이게 도망친 거에요! 방관하는 것도! 도망치는 거라고요! 지금 밖에서 대령님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군인 맞구나."
"샬롯!!!"
샬롯이 자신의 어깨를 잡은 카린의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어깨의 자유를 되찾았다.
여전히 씩씩거리며 화를 삭히는 카린과 눈을 마주치는 샬롯.
계속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에 허탈감과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네가 지금 말하고도 이상한 거... 못 느끼는 거야?"
"제가 뭘요? 제가 뭐가 이상한데요? 이상한 건 샬롯이에요!"
웃고 있지만, 모든 걸 달관한 듯한 공허한 눈빛.
한참을 화를 내던 카린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 아직도 화를 내야 마땅한데, 이건 잘못된 건데...
"네가 말하는 대령님이 누군데?"
"...!"
샬롯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카린의 손에서 떨림을 느꼈다.
경직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카린이 무슨 기분인지를 알면서도, 샬롯은 멈추지 않았다.
"그럼 제이크 워커 선배가 아니라."
"제이크 워커 대령인 거야?"
"내 말이 맞아?"
(마우스 우클릭 > 연속재생)
카린이 황급히 잡힌 두 손을 뿌리쳤다. 털어내는 힘을 스스로 이기지 못한 카린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손 주위로 이미 부서진 마른 꽃잎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건 ...... 위험... ... ...'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도서실의 바닥을 굴렀다.
울렁거리고 역겨운 느낌에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카린 양... .... ... 보류... ... 성공 보장이 없.... '
'있... ... 없는... 일...'
다급히 왼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대고 헛구역질을 했다.
샬롯은 거의 발작을 일으키는 카린을 슬픈 눈으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우욱...!"
도와주지 않았다.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방관자의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니가 이러면 ... ... 파인더 는 어떡하라고.... 이미 죽... 사람은 돌... ... 수 없...'
기억이 날 듯 말 듯, 단편적인 것만이 스쳐 지나가고.
여전히 기억과 손에 닿는 감촉과 달라 계속해서 현기증과 구역질을 느끼게 했다.
'필요한 사람입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할 수 있다면...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제가 하겠습니다.'
계속 괴로워하던 카린이 간신히 스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하지만 앉자마자 급격하게 돌아오는 잊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계속 괴롭혔고, 결국 구토를 하기까지 이르렀다.
버티고, 버텨내었다. 간신히 기억이 짜 맞춰진다.
환상에 속았던 정신을 부순다.
'이 멍청이 소령이! 상부에서 허가해 줄리 없으니까 이런 고집을 피우는 거잖아! 그만둬!'
'고집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우욱... 윽..."
'카린 양,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생각하자고요~ 설명서도 훼손되어서 제대로 된 아티팩트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어요. 카린 양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보증서조차도 없잖... 잠깐만요! 카린 양! 카린!!'
'그만둬! 야!! 쟤 잡아!!'
서서히 짜 맞추어지는 기억. 연신 구토를 하며 교차하는 온갖 감정.
역겨운 느낌을 버티고, 버텨내니, 간신히 기억이 짜 맞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환상에 속았던 자신을 부쉈다.
카린은 모든 걸 알면서도 방관한 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카린을 내려다보는 저 시선...
'어째서? 대체 왜?'
왜 진작 알면서 알려주지 않았는지 원망하고,
온 세상의 슬픔을 다 끌어안는 듯한 저 표정에 화가 났다.
샬롯은 카린의 그런 부정적인 눈빛도 익숙하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푸른색 표지의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전에, 네가 백일몽이라는 소설을 읽고 어땠는지 알려 달라고 했지?"
"하아... 농담은 그만둬주세요..."
"블루로즈 건을 쓴 사람들은 다 이 환상 속에서 아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어."
"환상... 이라고요? 그럼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블루로즈건의 환상인가요?"
샬롯은 책의 맨 첫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다.
"여기 와서 등하교 한 기억이 있어? 어두운 밤이 내려앉는 모습을 본 적은?"
"......"
"우리에겐 학교생활의 시작이자 끝에서만 살아.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오전 1교시 수업을 듣지. 환상의 한계야."
다음 페이지로 책장이 넘어가고, 샬롯이 작게 한숨을 쉬며 갑자기 책을 덮었다.
"어째서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왜 일찍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고 싶어? 아니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둘 다 빠짐없이 답하세요!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길 바라요."
카린이 조심스럽게 땅을 짚어가며 자신의 소총을 찾으려 했다. 아까 흥분하면서 샬롯을 붙잡느라 어디에다가 떨어뜨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에이미 퍼스트윙. 아니 스트릭랜드인가 이제? 걔 원래 나랑 같이 다니던 친구였어."
"네...?"
뜻밖의 이야기에 소총을 찾던 카린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카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현실을 깨닫고 나가면, 히로세 아키와 이민서라는 인간은 없어. 환상이 무너지고 유일하게 멀쩡한 나에게 살려내는 방법을 물어봤지. 결국 에이미 퍼스트윙라는 자신은 버리고 이곳에서 에이미 스트릭랜드로 살아가기로 했어. 나랑 가까히 있었고, 모든 걸 말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았던 난... 그다음엔 방관하기로 했어."
"방관이라뇨? 지금 저한테 한 것도 방관―"
"국어선생님이자 사서인 강소영. 원래 직업은 경찰이었던 모양이야. 범인을 체포하는 도중에 존경하는 상사가 죽는 바람에 상사를 찾으러 이곳에 흘러들어왔지. 하지만 결국 현실을 깨닫고 환상이 무너져서, 환상으로 살아가길 선택했어."
"...!"
"중등부 화이트래빗. 얕은 물에서조차도 튜브가 없으면 안 되는 아이, 기억나? 그앤 가족을 다 잃고 제일 친한 언니 마저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런 선택을 했어. 가까에서 지켜봐도, 멀리서 떨어져 봐도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래도 나를 방관자라고 욕할 거야?"
"지금 말하는 사람들 다... 설마... 아니, 그보다 샬롯 당신은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죠? 당신의 정체는 뭔가요? 블루로즈 건의 관리자쯤 되는 건가요? 환상의 주인?"
샬롯은 조심스럽게 주저앉아있는 카린을 향해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어 쪼그려 앉았다.
당혹스러우면서도 분노에 찬 카린의 표정을 조용히 쳐다보는 샬롯.
"더 말하지 않았지만 엄청 많았어. 지금의 너처럼... 그걸 사용한 사람들이.
블루로즈건을 사용한 사람들이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면. 천천히, 점점, 조금씩 이렇게 환상이 무너져.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블루로즈 건이 만든 예정된 수순이야."
"이상한 이야기로 피하지 말아요! 제대로 대답해 줘요!"
"난 피한 적 없어. 네가 못 알아듣거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뿐이야. 내가 너에게 이러고 있는 건 네 환상이 무너지는 징조를 어제 확신했기 때문이고."
"어제라면 3종이 나타났던걸 말하는 건가요...?"
"갑자기 발생한 높은 CSE 레벨의 침식 현상. 그리고 이상하리 만큼 네 중심으로 돌아간 현장 상황을 보고 알 수 있었어. 곧 이것도 끝난다는걸."
"그게... 무슨..."
"그야, 내가 만난 모든 사용자는 똑같은 과정을 거쳤으니까. 그게 꼭 침식 현상이 아니더라도, 세계가, 환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카린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잠시나마 친구로 여겼던 눈앞의 사람이 인간 외의 존재로 보였다.
"내가 수없이 봐온 사람들이 환상이 되어버리는 걸 보면서, 내린 결론이야."
샬롯의 말대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용자에서 환상으로 사라지는 걸 봐왔을 터.
사실 마치 달관하는 듯한 표정이지만, 샬롯은 꽤 친절히 답해주고 있었다.
그저,
계속 카린이 아직 깨닫지 못한,
블루로즈건이 안배한 규칙을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말도... 안돼... 대체 무엇을, 얼마나 봐온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하던지, 결국 사용자가 선택하기에 달라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러니, 순수한 내 궁금증을 물어볼 게."
샬롯은 숨을 들이켜고,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넌, 왜 이곳에 왔어?"
"전...! 제 상관을 찾으러...!"
존경하는 상관. 마지막까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그 사람.
20년이라는 시간을 안겨주고 꺼져갔던 불꽃.
그건,
존경이었을까?
"그럼 시간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네 환상은 부서지고 있는 걸."
콰앙――――――――――――――――!!!
부서진다.
부서진다는 말과 동시에 바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도서실까지 느껴지는 흔들림에 카린은 놀란 나머지 바닥을 딛고 창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아, 안돼... 어떻게... 저게..."
바깥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현실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버려져야 하는 이유였던 악몽 그 자체.
네피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돼... 또 죽으면..."
자신의 상관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위협적인 자태의 네피림이 학교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네피림과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정신이 카린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네피림이 뿜어대는 침식파로 하늘이 붉어지고, 창백하고 서늘하게 느껴졌던 도서실에는 위협적인 붉은빛으로 가득 찼다.
도서실 전체가 붉게 물들어가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에도 여전히 창문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카린을 응시하는 샬롯.
목숨을 잃거나, 환상에 속아 넘어가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이곳에 온 이유.
원래 있어야 할 곳을 떠올린 카린은 나지막이 말했다.
아주 중요한 본질을 잊은 채.
"...있어야 해요."
"......"
"제가 살아온 진짜 현실은... 머지않아 지금처럼 모든 게 무너지겠죠. 지금 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저 침식체가 갑자기 타나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끝날지 모르는 그런 곳이니까요."
"그래?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왔구나."
"......제가 살아가는 곳은, 저보다도 훨씬 더 강한 카운터들을 필요로 해요."
그게 대답이었다.
샬롯은 카린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단 하나 만큼은 알았다는 듯,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찾아봐."
"......"
"그게 네 선택이라면 블루로즈건도 찾고, 제이크 워커 대령도 구해. 그러면 되잖아."
샬롯의 충고가 끝나기 무섭게 카린은 황급히 일어나 눈을 여기저기로 굴렸다. 넘어진 테이블 옆으로 쓸쓸히 떨어져 있는 소총을 찾아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탓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마른 장미꽃을 즈려밟고, 도서실을 빠져나갔다.
카린이 주저앉아있던 자리엔 완전히 부서진 푸른 장미꽃만이 남았다.
"......너도 같은 선택을 하는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샬롯이 카린이 나간 도서실의 출구를 바라보았다.
다시 들고 있던 책을 펼쳐서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침울한 표정으로 넘기던 페이지가 빈 여백에 멈췄다.
블루로즈건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샬롯은 뒤쫓지 않았다.
그것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나처럼 되는 거니까. 이것보단 나으니까."
네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됐어...
말하지 않았어도, 말하지 못했어도.
이번만큼은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짓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