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2.5주년] 환상!: Blue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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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환상! : BlueRose (4)

― Without knowing why



 1편 2편 3편











소녀는 푸른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무릎을 꿇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남자 앞에서 이 결말을 바꿀 수 있게 해달라며 눈물로 간청했다.

그러나 소녀의 애달픈 간청은 남자에게 닿지 않았다.
그저 푸르게 빛나는 장미꽃만이 소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받아줄 뿐이었다.















(마우스 우클릭 > 연속재생)



















"대애박..." "진짜 멋있다..."






요즘 여학생들은 그냥 말이 많은 건가, 아니면 도서실이라는 자각이 없는 건가.


카린은 데스크에서 일어나 웅성거리는 학생들이 있는 책상들 사이를 돌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책상들을 돌면서 이야기 좀 들어보니... 이번엔 또 누가 왔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궁금해진 카린은 정숙 주의도 줄 겸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도서실 내부를 도는 틈에 여학생 대여섯 명이 입구 앞에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둘러싸인 사람이... 카린에겐 이미 낯이 많이 익은 사람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인가 싶었지만, 일단 도서실 입구를 너무 소란스럽게 하니 주의를 주기 위해 도서실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선배! 농구부 시합 잘 봤어요!" "도서실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책 한 권 추천해 드릴까요?"







정말 인기인은 맞나 보구나.

여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웃고 있는 제이크의 모습에 카린은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인기인'
평범한 카린에게는 동떨어진 세계의 단어.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 번쯤 학교의 인기인들을 언급하긴 해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호들갑을 떨면서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묘한 거리감과 함께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멀게 느껴졌다. 


...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얼굴도 익힌 같은 동아리원을 어색해 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다.
도서라던가, 책이라던가 하는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이는 제이크 선배가 굳이 도서실에 온 거라면...


혹시 나 때문인가?




온갖 잡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순간,
카린을 발견한 제이크가 도서실이라는 장소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큰 목소리로 카린을 불렀다.








"오! 카린! 잠깐만 나와봐!"
"까, 깜짝이야! 도서실 앞입니다! 정숙 부탁드려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큰 목소리에 카린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조용히 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제이크를 둘러싼 여학생 무리는 눈앞 남학생의 관심이 자신이 아니란 것을 알고, 실망한 눈빛으로 카린이 있는 쪽을 흘긋 쳐다보곤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거의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았던 여학생들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고, 
어쨌든 날 불렀으니 일단 가야지라는 생각에 카린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근데 정말 나 때문에 온 거였구나.



도서실 밖으로 나온 카린이 제이크의 앞에 서서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 근데 왜 이렇게 어색하게 오는 거야?"



편하게 대해도 된다, 선배라는 호칭이 어색하면 오빠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등등 제이크는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있던 남자가 갑자기 걔들한텐 관심 없고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하면 누구나 당황하지 않을까요?
...카린의 목구멍까지 쭉- 올라왔다가 꿀꺽 삼킨 말이었다. 






"어색한 게 아니에요! 그보다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오늘 부 활동 때문에?"
"아아, 그건 아니고. 어제는 내가 못 챙겨와서 못 줬고, 오늘 저번에 못 준 거 주려고."






제이크는 자신의 교복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미 선물 같은 건 새까맣게 있고 있었던 카린은 제이크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그 일은 이제 괜찮아요! 이런 선물 안 주셔도..."
"너 원래 머리핀하고 다녔지? 그때는 나도 정신없어서 몰랐었어.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내 친구가 그거 부서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급한 대로 매점에서 여자애들이 자주 쓴다고 하는 거 골라서 산 거야."
"네...?"






축구공에 맞고 쓰러진 이후로 줄곧 긴 생머리로 다니면서 잊고 있었던 다른 물건.
노란 리본이 달린 머리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넘어지면서 충격을 받아 부서져 머리카락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대로 자리를 뜬 탓이었다.
아프고 정신없으니 그런 걸 깨달을 수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매점에서 이런 걸 팔았던가?


분명 머리카락을 묶을 때 쓸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흔한 머리끈이나 리본 같은 거라고 하기엔 상당히 독특한 외형이었다.
리본이라고 하기엔 튼튼하게 엮인, 노란색을 의식해서 가져온 듯했지만 노란색이라고 하기엔 금색에 가까운...
이게 무엇인지, 뭐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시원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튼 외형이 어떻건 정말 리본이 아니건, 직접 미안하다며 가져온 선물을 카린은 단호하게 거절하기가 난감했다.
굳이 두 번이나 직접 찾아와서 건네주려고 한 진심 어린 성의였으니까.






"괜찮아요. 선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래도 나 때문에 망가진 거잖아? 내가 찬 풀파워 슛에 가녀린 소녀가 쓰러졌는데 말이야. 어떻게 그냥..."
"이상한 장난 좀 그만 치세요!"






부끄러운 마음에 자신이 도서실 앞에 서 있는 도서부원인 것도 잊어버리고 빼액 소리를 지르자, 제이크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카린의 손목을 잡아 올려 재빠르게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앗..!"
"하하, 그냥 받아. 이제 쓸지 말지는 네 자유인 거고!"







순식간에 리본을 받은 카린이 얼빠진 표정으로 손에 들린 리본을 멀뚱멀뚱 보는 동안, 제이크는―






"그럼, 이따 보자!"






간단한 손인사와 함께 자신의 할 말만을 남기고 유유히 옆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 사라져버렸다.


수상한 광경을 본 주위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카린을 부러움과 뜨거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카린은 두 눈은 크게, 금색 리본을 쥔 손은 가슴 위에 올린 채로 제이크가 걸어간 복도를 한참 응시했다. 


































***






























정규 수업이 모든 끝난 오후. 반 아이들이 제각각 동아리실에 가거나 하교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창 자기 외모에 신경 쓸 나이. 교실 벽면에 걸린 거울이나, 자신들이 가지고 다니는 손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돈하거나, 화장을 하기 바쁜 여학생들.
물론 카린도 외모관리에 있어서는 다른 여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일 봐! 카린!"
"아! 잘 가요~"






카린은 하교 시간에 잔뜩 신난 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탁상 거울을 보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어 내렸다.
행여나 엉킨 머리카락에 빗이 걸려 머리카락이 뽑힐까 신중하게, 천천히, 한참 동안 빗질을 한 후, 카린은 점심시간에 제이크에게 받았던 금색 리본을 교복 주머니에서 꺼냈다.


머리끈치고는 너무 긴 것 같은데...


애초에 매점에서 이런 긴 리본을 팔았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매점을 잘 안 가다 보니 그저 못 봤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묶어볼까? 아래로 내린 포니테일? 이건 별로야.
완전히 올려서 묶을까? 아니야, 나한텐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잡아올려도 보고, 내려도 보고, 땋아도 보고. 그래도 받은 선물이니 제일 어울리는 스타일로 하고 싶었지만, 카린의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이 없었다.
남의 도움을 받기에는 부끄럽고, 혼자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기엔 모두 다 이상해 보였다.






"하아...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원래 핀으로 했던 스타일 그대로.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만든 것은 반묶음이었다.
긴 머리카락만큼이나 긴 리본이 조금 거슬리는 것 같다가도, 역시 늘 하던 것을 하는 게 익숙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카린은 만족스러운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았다.






"카린, 같이 가자."
"아, 살롯! 잠시만요, 얼른 갈게요!"






교실 뒷문에서 자신을 부르는 샬롯의 목소리에 빠르게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을 어깨에 멨다.
뒷문에서 빤히 보고 있던 샬롯이 카린의 외형이 조금 달라진 것을 보고, 다가오는 카린의 머리 뒤쪽을 가리키면서 물어왔다.






"여기 뒤에 그거 뭐야?"
"네?"
"잘 어울리네."
"저, 정말요?"






예상하지 못한 칭찬에 카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카린이랑 마찬가지로, 샬롯 역시 평범한 리본 장식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특이한 외형이라 생각했는지 생긴 게 조금 특이하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그 이상 더는 묻지 않았다.




별관으로 향하는 길. 카린은 오늘 처음으로 방위 활동에 나가보는 날이었다.
교실에서 샬롯을 만나기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막상 코앞으로 다가오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클라레스 학생회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동아리 가입 후 이틀도 채 되지 않아서 나가게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샬롯은 그런 카린의 심리를 간파한 듯, 첫날이라 맡기는 거 별로 없을 거라며 카린을 안심시켰다.


지도 선생님은 3명, 부원은 4명...


카린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저희 학교는 동아리 유지 최소 인원수가 5명 아니에요?"
"우리는 예외야. 이름은 동아리인데 조금 다른 집단인 거지."
"으음... 그래도 더 뽑을 예정은 아예 없는 걸까요? 대대적인 모집이라던가..."






샬롯은 팔짱을 끼고 걸으며 뜸을 들이더니, 곧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대대적으로 부원 모집 공고 대신 스카우트를 하고 있어. 우리 학교는 카운터 수가 적으니까."
"음, 그렇네요. 그게 더 효율적이겠어요."
"그리고 걔들은 워치를 가졌다고 다 카운터 노릇을 하려 하진 않아."
"네?"






샬롯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무언가 피곤한 게 생각난 듯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어갔다.






"워치 여부랑 상관없이 다른 걸 더 하고 싶어 하는 거야. 그리고 전에 너도 그랬다며. 워치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침식체랑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틀린 말은 아니야."
"아... 그런 건가요..."
"학생회장님의 말씀을 빌려 말하면, 마치 정식 종목으로 취급되는 운동에 소질이 있어도, 모두가 다 운동선수가 되는 건 아니라고 했어. 카운터라고 해서 전부 침식체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거나, 침식체와 싸우는 재능이 있는 게 아니란 거지."
"네... 네?"






......비유가 그렇게 되나?


대충 그런 셈 치기로 하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동아리실 코앞까지 도착한 두 사람.
샬롯이 문을 열자, 이미 도착한 선배 두 명이 그녀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라."
"여어~"
"오늘은 같이 왔습니다."
"좋은 오후입니다!"






아직 적응이 안 된, 중세풍 인테리어의 동아리실
카린이 90도로 몸을 굽혀 선배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클라레스는 너무 불편해할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홍차가 담긴 찻잔을 들었다.




"어?"
"...네?"






수많은 소리 중 제이크의 들뜬 목소리가 카린의 귀에 제일 크게 들려왔다.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던 제이크가 몸을 일으켜 제대로 다시 앉았다.


뭐지? 나한테 뭐가 있나?
카린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샬롯의 옆자리에 있는 의자를 잡아당겼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고 고개를 드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는 제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제이크는 자신의 머리 뒤를 가리키며 카린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준 거하고 왔네?"
"아, 네! 감사합니다."
"미인은 뭘 해도 잘 어울린다더니, 너한테 딱 맞네~"
"가, 과, 과찬...이세요..."






머릿속에는 번개, 심장에는 천둥이 쳤다.


얼굴 당황해서 괜히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카린의 모습을 보던 샬롯이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검 사파이어 프리즌을 가져와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홍차를 마시며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클라레스는 샬롯에게 조용히 말했다.






"봄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하겠습니다."




샬롯의 대답을 들은 클라레스는 찻잔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3자라서 볼 수 있는 계절이로다.

그렇게 생각하며 부원들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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