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2.5주년] 환상!: Blue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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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환상! : BlueRose (7)

― Unnatural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하는 소녀는
이미 숨이 멎어버린, 유일한 가족 앞으로 간신히 기어 와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일어나...
이제... 나는... 언니밖에 없단 말이야... 

그 목소리를 들은 귀족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슬픈 눈으로 동정하고, 조용히 소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마우스 우클릭 > 연속재생)









입학 후 처음으로 와본 학교 실내수영장.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물론 워터파크라 불릴만한 규모가 아닌 정규 교육인 체육시간을 위해 만들어진 수영장이었지만,
보통 일반적인 학교엔 수영장이 없는 경우가 더 많으니, 교육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환상 아카데미의 위엄을 알 수 있었다.



카린의 수영복은 휴가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날 샬롯과 대화하며 언급했던 대로 무난한 수영복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언급했었던 경영 수영복이란 말도 맞아떨어지는 디자인이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똑같이 학교에서 내려준 지상낙원을 즐기러 온 학생들의 수영복을 빠르게 훑어본 결과 카린이 입고 온 수영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중고등학교 수영장에서 비키니 같은 노출이 높은 수영복을 허용해 줄 리가 없었지만.
 
같은 부원들을 찾으러 눈을 돌리자 저 멀리 벤치 앞에 서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샬롯의 뒷모습이 보였다.






"샬롯!"
"아, 안녕."






혹시나 미끄러운 수영장 타일에 미끄러질까, 카린은 천천히 샬롯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샬롯이 반기는 소리에 바로 옆 선베드에 누워있는 클라레스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학교 실내 수영장에 웬 선베드가...?






"안녕하세요...?"
"왔군."
"원래 하, 학교 실내수영장에 선베드가 있던가요?"
"학생회장님의 개인 물건이야."
"아..."






그럼 그렇지.


교육을 목적으로 한 학교 수영장에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문득 부원들의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회장은 평범한 남자 수영복이었으나, 샬롯은 원피스형의 순백색 수영복이었다.
청량하면서도 청순해 보이는 디자인이 샬롯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기에 카린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 샬롯! 엄청 잘 어울려요!"
"그, 그래?"
"네! 어디서 샀어요? 원래 갖고 있던 거예요?"
"으응, 원래 갖고 있었어. 네 수영복도 심플하고 잘 어울려."






자신의 외모가 한참 신경 쓰일 여고생들.
두 소녀가 한창 서로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먼저 풀에 들어가 수영하고 있던 제이크가 어느새 두 소녀 뒤로 조용히 다가왔다.
선베드에 앉아서 샬롯과 카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라레스가 제이크가 하려는 게 뭔지 눈치채고 조용히 말했다.






"실내 수영장은 매우 미끄러우니 다칠 수 있는 장난은 하지 않는 게 좋겠군. 예를 들어 사람을 놀래킨다던지 하는 것 말이다."
"네? 아! 제이크 선배!"
"아까워라."
"내가 네놈 꿍꿍이를 모를 것 같으냐. 아무리 카운터라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해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클라레스는 옆 미니 테이블에 올려둔 선글라스를 끼더니 아이스커피가 든 텀블러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선글라스 내 거라며 클라레스를 향해 투덜거리는 제이크의 뒤로 카린은 눈 앞에 있는 선배의 패션을 보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옆에서 멍을 타고 있는 카린과 클라레스와 티격태격하는 제이크를 번갈아보던 샬롯은 튜브를 챙겨 들고 팔을 굽혀 팔꿈치로 카린의 팔을 쿡쿡 찔렀다.






"뭐해?"
"......"
"저 수영복이 충격적이야?"





살짝 찌르거나 부르는 걸로는 별 반응이 없었다.
저 강렬한 하와이안 수영복이 웃겨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카린의 표정은 '웃기다'라는 표정보단...




"......반했어?"
"ㄴ, 네? 뭐라고 하셨..."
"카린은 튜브 안 가져왔어?"






더 캐묻는 것 대신 자신의 분홍색 튜브를 들어 카린의 머리 위로 씌워주자, 카린은 자신은 딱히 튜브는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샬롯이 씌워준 튜브를 빼고 그대로 돌려주었다.
샬롯이 말을 바꾼 탓일까? 자신이 제이크 선배의 등판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튜브를 받고 어깨를 으쓱이는 샬롯의 뒤로, 중등부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지나갔다.
샬롯이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고, 카린도 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두 여중생이 소심하게 살금살금 걸어가더니 이미 수영장에 한번 들어갔던 제이크의 뒤에 섰다.
한참의 티격태격 끝에 선글라스의 소유권(?)을 포기한 클라레스가 미니 테이블에 선글라스를 내려놓을 때까지도 아이들은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의아하게 지켜보던 카린이 먼저 두 아이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앞장서서 서있던 아이가 몸을 돌리자 뒤에 있던 아이도 반대로 돌아 숨었다. 학교 수영복을 입었는지 앞에는 '양하림', '한소림'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카린의 물음에 뒤늦게 제이크와 클라레스가 중등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음? 중등부 화이트래빗이군."
"아... 안녕하세요..."
"응? 뭐야?"






고등부 학생회장이 중등부 동아리까지 꿰고 있는 건가...?
자기들보다 훨씬 키가 큰 언니 오빠들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앞서 있던 양하림이 용기 있게 말을 걸었다.






"호, 혹시!"
"응?"
"여기... 물이 많이 깊은가요...? 소림이가 수영을 못해서 너무 깊으면 안 되거든요..."






간신히 물어본 질문이 수영장 깊이를 물어보는 질문이라니!
카린이 아이들의 질문이 귀여워서 풋-하고 웃어버리자, 뒤에 숨어 있던 한소림이 눈만 빼꼼 내밀어 카린을 쳐다보았다.






"이런, 여기는 고등부 실내수영장이라 꽤 깊을 텐데."
"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건 없어?"






샬롯이 자신의 튜브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지만, 딱 봐도 두 학생에겐 튜브는커녕 구명조끼 하나도 없었다.
이것이 나름 심각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클라레스는 아무리 그래도 중등부는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중얼거렸다.






"얘네는 둘인데 튜브는 내 거 밖에 없어."






빌려주고 싶어도 튜브는 하나, 사람은 둘.
샬롯은 살짝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카린 쪽을 돌아보았다.


아니, 날 그렇게 쳐다봐도 나도 없는데...

곤란한 표정인 카린과 달리 제이크는 골똘히 생각하는지 턱을 매만지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체육 창고를 털자!"
"...터, 털어요?"
"괜찮은 생각이군."






클라레스는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고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의 말대로 체육 창고에는 튜브는 몰라도 수영 수업을 대비한 구명조끼 정도는 구비해뒀을 가능성이 컸다.
'털자'라는 표현이 다소 과격했지만 결국은 안전을 위해 학교 비품을 사용하자는 뜻이었으니...

클라레스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은밀하게 샬롯을 보고 눈짓을 했다.
대충 무슨 뜻인지 감을 잡은 샬롯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 제이크와 함께 체육 창고를 확인해 보도록."
"네... 네?"
"나랑 학생회장님은 여기 중등부 아이들을 챙길게. 다녀와."
"음, 꼬마 아가씨들이 그냥 들어갈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가자, 카린!"






샬롯이 카린의 등을 살짝 밀고, 제이크가 바통을 터치하듯이 카린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어어어―하는 순간 카린은 이미 실내수영장 밖 복도로 거의 끌려나가고 있었다.






"선배! 선배 잠깐만요! 물기는 닦고...! 걸칠 거라도!!"


"제이크!"






카린의 외침을 들은 클라레스가 제이크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나이스 캐치.

받은 물건은 샬롯이 따로 챙겨온 비치탑, 흰색 집업이었다.
제이크는 받은 집업을 빠르게 펼쳐 카린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당황한 나머지 아무렇게나 다급히 외친 말이었음에도, 무시하지 않고 배려해 주다니...
 




"됐지? 자, 이제 같이 확인해 보러 가자고~"
"아... 아! 천천히 같이 가요...!"






멀리서 지켜보던 남아있던 사람들은 저 풍경에 제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콩깍지. 혹은,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

당사자는 설렘도 있었지만...
봄날의 향기보다는 여름 바다 위의 폭풍우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






























"서, 선배! 천천히 가요!"
"아하하, 미안 미안. 저 꼬맹이들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해서. 안 들어줄 수가 없잖아?"






물에 들어가서 놀고는 싶은데, 깊어서 빠지진 않을지 겁먹은 표정.
어떤 누가 와도 그 표정을 보면 절대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빨리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학생회장이 허락했다면 별문제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체육 창고를 '털자'라는 말에 동의한 것이었으니 카린은 이것이 학교 교칙에 위배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렇긴 한데... 좋은 일로 하는 거라고 해도, 체육 선생님이 뭐라 하시는 거 아니에요...?"
"상관없어. 관리하시는 분이 우리 동아리 담당하는 강산쌤이거든. 애들 노는 거 도와주려고 꺼낸 거면 뭐라 안 하실걸?"






실내 수영장 바로 위층에는 실내 체육관이 그리고 그 체육관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
창고 문은 굉장히 작았지만 제이크가 문을 열자 마치 마법처럼, 꽤 넓은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아, 이래서 괜찮다고 한 건가...?


생각보다 깔끔한 창고 내부에는 각종 구기종목에 쓰는 공들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고,
거의 열어보지 않아서 새것처럼 보이는 캐비닛 문을 제이크가 열자, 수영 수업에 쓰이는 정돈된 구명조끼와 튜브 같은 물건들이 드러났다. 






"생각보다... 창고가 엄청 깔끔하네요...?"
"운동부들이 돌아가면서 치우고 있거든. 아, 맨발은 좀 위험하니까 조심하고."
"카운터라서 괜찮아요."
"역시 라이트닝 슛도 막아내는 강철의 여인~"
"언제까지 우려먹으실 거예요!"






제이크는 카린의 큰 목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격한 반응이 재밌다는 듯 크게 웃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체 이건 무슨 기분일까.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분명 눈앞에 있는 저 선배는 짖궂어도 좋은 사람인데―


카린의 속마음 따위 알 리 없는 제이크는 창고 한쪽에 정돈된 빨간색 구명조끼 네 개를 챙겨들었다.






"두 개면 되지 않나요?"
"너는 없어도 돼? 일부러 샬롯 거랑 네거 챙긴 건데."
"샬롯은 따로 튜브가 있고, 저는 수영할 줄 알아서 괜찮아요."
"그래도 말이야, 만약이란 게 있잖아? 예쁜 수영복을 가리는 건 좀 아쉽겠지만."
"아... 괜찮아요..."






일부러 꿀 떨어지는 말만 하는 건가?
이 정도 말솜씨는 있어야 인기인 소리 듣는구나...


카린은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 아무튼 가져가라고 중얼거리는 제이크에게서 구명조끼 두 개를 건네받았다.

그나저나 예쁜 수영복이라니, 샬롯에 비하면 엄청 무난한 수영복인데...
머리 위로 스팀이 나올 기세로 귀까지 빨개진 얼굴. 그 앞으로 불쑥 검은색의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간 튜브가 나타났다.






"자! 이건 네 거야."
"네, 네...?"
"꼬마 아가씨들 건 내가 들고 갈 테니까."






도넛 모양 튜브를 받아드니 제이크는 이미 길쭉한 한 팔에 카린이 들고 있는 것과 다른 노란색 튜브 두 개를 끼고 나가자며 손짓했다.






"저, 저는 튜브까진 필요 없는데요...!"
"놀다가 질리면 내놓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가자, 다들 기다린다."
"아!"






튜브를 들지 않은 큰 손이 다시 한번 카린의 손목을 잡았다.
거의 반쯤 끌려 나오는 사람 마냥, 뛰어나가는 제이크의 속도에 맞추어 카린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여름 수영장의 남녀.
잡힌 손목.

아, 이거 완전...



























***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제이크는 카린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긴 했지만, 돌아와서 생각하니 막상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대답하기 바빴던 것 같은 기분?


아무튼 간에, 카린이 구명조끼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양하림과 한소림에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었다. 착용하는 법까지 알려주는 건 덤.
구명조끼를 완벽하게 다 입은 모습을 확인하고, 제이크가 양손으로 각각 노란색의 튜브를 두 여중생에게 씌웠다.
고등부 언니 오빠들이 직접 제공한, 깊은 수영장도 무섭지 않게 해주는 풀 세팅에 두 여중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언니, 오빠들!"
"가, 감사합니다...!"
"가자, 소림아!"






한껏 들떠서 수영장으로 뛰어가는 양하림과 한소림. 혹시나 빠질세라 튜브를 꽉 잡고 수영장에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에 카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크도 재밌게 놀라며 양하림과 한소림에게 손인사를 하곤 바로 수영장으로 다이브 했다.
상황이 해결된 것을 확인한 클라레스도 그제서야 선베드가 아닌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놀 수 있겠구나!
카린은 물에 들어가기 전 샬롯에게서 빌린 비치웨어를 돌려주기 위해 샬롯을 찾았다.






"샬롯. 샬롯? 어디 있..."
"대충 그냥 벤치에 놓고 들어와."






샬롯은 이미 자신의 튜브 위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한 자세로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사실상 물에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었다.
주위는 물장구치고 노느라 바쁜데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표정과 자세가 웃겨 카린이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웃겨?"
"하하하, 아니에요. 너무 편해 보여서요. 저도 들어갈게요."






샬롯의 튜브 활용이 재밌어 보였는지, 카린은 빌린 집업을 벗어 벤치에 가지런히 개어놓고 창고에서 가져온 튜브를 들고 그대로 물속으로 다이브 했다.
잠깐 꼬르륵- 가라앉았다가 얼굴을 빼꼼히 내민 카린이 둥둥 떠있는 튜브를 가져와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팔까지 완전히 튜브 위로 걸쳤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튜브의 힘을 빌려 편안하게 떠있으니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드넓은 수영장을 둘러보니 대부분 물장구를 치면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자 선배 둘은 자유형으로 수영하며 완벽한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고, 이따금 클라레스와 제이크를 알아본 여학생들이 꺅꺅거리며 들떠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래. 저 선배들 인기 엄청 많지...


카린이 초점 없는 흐린 눈으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제이크를 쫓았다.






"그거 끼고 있으니까 더 흐물흐물해 보이네."
"대체 그 흐물흐물이 뭐예요...?"






샬롯의 특이한 단어 선정에 대해서 물었지만, 샬롯은 대답은커녕 갑자기 몸을 비틀어 물속으로 풍덩! 빠졌다.
곧 카린과 똑같이 튜브 구멍에서 머리부터 나와 똑같은 자세로 튜브와 함께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 그래요. 그럼... 샬롯은 수영 잘해요?"
"조금? 학생회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 아무튼 할 줄 안다는 거죠?"






샬롯도 학생회장 선배를 은근... 아니, 많이 따르는 것 같단 말이지...


다소 뜬금없는 발언에 카린이 다시 되묻자,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둥둥 떠다니면서 수다를 떨고,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지만, 이왕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으니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배영이나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튜브 밑으로 빠지려는 순간.






"어어어...?" "으아악―?!"
"아가씨들! 이렇게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어~"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온 제이크가 두 여학생의 튜브를 붙잡아 강하게 밀었다.
기습적인 카운터의 힘은 물에서 받는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빠르게 밀리기 시작했다.


제이크의 압도적인 힘에 무방비하게 당하는 두 사람은, 마치 워터슬라이드를 탄 것 같은 속도감을 느꼈다.
모양새는 시원한 물보라가 그려지는 수상스키 같은 느낌이었지만, 체감은 거의 미끄럼틀과 다름없었다.


평범한 수영장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에 수영을 즐기던 학생들이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도움을 받았던 화이트래빗 아이들도 어마어마한 물꽃놀이가 일어나는 방향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제이크 워커식 워터파크의 마무리는 스핀!

제자리에서 두 바퀴 반이나 둘을 돌리고, 물보라가 사방으로 사정없이 뿌려졌다.
물보라가 모두 꺼지고 나서야 카린과 샬롯의 튜브는 제이크의 손에서 벗어났다.
샬롯은 어지럽다며 튜브에 축 늘어졌고, 카린도 어마어마한 힘에 정신이 없었는지 그대로 튜브 아래로 꼬로록 소리를 내며 잠수했다.






"좋아. 한 번 더 해줄까?"
"으... 아..."






정작 제이크 본인이 제일 재미있었는지 앵콜을 기대했지만, 늘어진 샬롯이 손을 들어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물속으로 들어갔던 카린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카린은 샬롯보단 상대적으로 참을만했는지 금방 정신을 차리곤 한숨을 뱉었다.






"음, 별로였나?"
"아, 아뇨! 나쁘진 않았는데... 엥?"
"그럼 카린은 특별히 또 태워줄게."






다시 머리 위로 튜브가 내려왔다. 제이크가 씌운 것이었다.
황급히 한 번이면 됐다고 말하려는 순간, 열심히 물장구를 치면서 제이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 양하림과 한소림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희도 탈래요! 타고 싶어요!"
"저, 저희도요...!"
"오, 꼬마 아가씨들이 부러웠나 본데? 얘네 먼저 태워주고 올 테니까 있어봐."
"에... 네?"
"어린 친구들은 순한맛으로 해야지! 꽉 잡아라!"






제이크는 어느새 자기들도 타고 싶다며 가까이 다가온 양하림과 한소림의 튜브를 잡고, 샬롯과 카린을 태워주던 아까보다는 조금 천천히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잔뜩 신났는지,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실내 수영장에 울렸고,
계속 이걸 보고 있던 관중(?)들은 다시 시원하게 몰아치는 물보라에 감탄하고 있었다.



곧 간신히 정신을 차린 샬롯이 카린의 옆으로 튜브를 타고 다가왔다.






"안 어지러워?"






샬롯이 불러도 반응이 없는 카린.
샬롯이 좀 더 앞으로가 카린의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깜짝이야!"
"뭐해?"
"아, 아니에요... 그냥..."






카린은 튜브 아래로 점점 내려가더니, 이내 정수리만 조금 남긴 채로 물 위로 나오질 않았다.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샬롯이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으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카린을 꺼내올리는 샬롯의 저 뒤로,
어느새 수영을 멈추고 선베드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클라레스가 물꽃놀이가 일어나는 난장판을 감상하고 있었다.



음, 역시 실내수영장으로 건의하길 잘했어.
클라레스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한 번 짓곤 제이크가 만들어낸 시원하게 튀어대는 물줄기에 감탄하며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정말 평범한 학교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평화롭고, 환상적인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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