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2.5주년] 환상!: BlueRose




[2.5주년]

환상! : BlueRose (12)

―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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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아이들의 동화는 소녀가 신비로운 장미를 찾고 소원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지만.

어른들의 잔혹동화는 그렇지 않다.


동화라고 생각한 모든 것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독수리... 인가?








무슨 물건인지 알아보지 못했으면서도, 카린은 화면과 문양, 떨어진 물건들을 계속 훑어보았다.




[ 작전 코드 입력_ ]




여전히 뜻 모를 문구만 깜빡거리며 띄위는 액정화면.

누군가의 분실물? 점심시간에 누가 두고간걸 데스크에 둔 건가? 하지만 분실물이면 지금쯤 찾으러 오거나 점심시간에 사서일 본 사람이 적어놨을 텐데.















―――――――――――――――――!!!!!




"뭐, 뭐야?"




갑자기 교내 방송용 스피커에서 귀를 찢어버릴 듯한 사이렌 소리가 도서실 안을 가득 매웠다. 귀가 찢어질 듯한 엄청난 데시벨에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화재? 아니면, 뭐지?




"설마?"




' 현재 본교가 있는 지역에 긴급 침식 재난 경보가 발령되었음을 알립니다. '


'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각 반마다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하여 주시고, '


' 카운터 지도 교사와 카운터즈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재난 본부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





침식재난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사이렌. 그리고 예전에 부원들과 선생님들이 다 같이 개편한 침식재난 대응 프로세스에 따른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카린이 정체불명의 물건을 내팽개치고 도서실 안을 뛰어다니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도서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대피시키기 위함이었다.




"없으니까... 빨리...!"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카린이 재빠르게 도서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재난 본부는 카운터즈의 동아리실. 무장을 챙기고 빠르게 후문으로 나가 대기하기 위함이었다.


어제 도시 외곽에서 본 3종은 그저 시작이었구나― 어제보다 더 긴장이 되어, 달리는 동안에 손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뛰어가면서 패닉으로 낙오된 동급생들을 챙겨 선생님에게 인솔하고, 대피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며 계속 달렸다.


본관에서 별관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운동장 옆으로 난 길을 달리며, 운동장에 모여든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어리둥절해하고, 패닉에 빠지거나, 울거나, 아직 현실을 부정하는 듯 웃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가득했다.




수많은 감정들을 지나 별관의 정문으로, 복도를 질주하고.

마침내 재난 본부가 되어버린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헉...! 허억...! 제이크 선배?"

"왔어? 빨리 챙기자. 벌써 학교에서 가까운 개체가 있다고 해서 방어선 만들어야 해."

"네?!"




구체적인 상황 보고와 브리핑 후 이동이라는 과정이 존재했지만, 제이크가 그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일단 그렇다고 하니, 황급히 자신의 사물함에 들어있던 소총을 챙겨들고 각종 부수적인 장비를 챙긴 제이크를 따라 같이 달렸다.


제이크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방어선을 구성하기 위해 떠났고, 모두 외벽이 튼튼하게 지어진 체육관 혹은 은폐할 수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대피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며 간단한 브리핑을 해줬다. 카린은 익숙하게 짧은 설명만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했다.




"다른 지원한 카운터 학생은 없을까요?"

"그건 현장 가봐야 해. 현수쌤이 지원자는 찾아본다고 했어. 후방 배치겠지만."

"네, 저희가 앞장서야죠."




제이크를 따라 달려서 도착한 곳은 아예 학교의 밖으로 나와 흰색 장미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담벼락을 등진 곳이었다.

특이한 바이저를 쓰고 있는 캐시가 학교 주변의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지평선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주변에는 침식재난에 대응 하기위한 병력이 깔려 있었다.


어제처럼 정말 위험한 개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니, 차분하게 대응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괜찮아.


소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긴장되는 진정시키려 해도, 어제와는 다른 조건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싸우는 것이 아닌, 소수가 다수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가까웠기에 모두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 카린!"

"에이미?! 지원한 거에요? 아키랑 민서는요?"




카린을 먼저 발견한 에이미가 달려와 카린의 팔을 잡았다. 의외의 인물이 방어선에 나타나니 놀란 카린이 에이미의 손을 잡고 이것저것 물어왔다.

에이미가 카운터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처해서 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아키랑 민서가 잔뜩 겁먹었는데, 그 와중에도 널 걱정하길래. 내가 가본다 했어. 그리고... 겁먹은 친구들을 두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으니까."

"에이미..."




평소의 에이미답지 않은 비장한 표정이 묘하게 카린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샬롯! 어디 있느냐 샬롯!"




클라레스의 다급한 외침에 다시 신경이 곤두섰다.


기억을 더듬어서, 사이렌이 울린 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이곳 방어선에 모였지만. 샬롯만은 본 적이 없었다.

긴장하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더 챙기는데 집중한 탓에 모두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선배님?!"

"카린! 오면서 샬롯을 본 적 없나?"

"저는 동아리실로 가는 동안에 쭉 혼자였어요. 그 이후로는 제이크 선배와 합류해서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여태껏 보지 못한 클라레스의 초조한 표정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항상 밝은 모습이었던 에이미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탓에 카린과 함께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 샬롯이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직 관측되는 건 없습니까?"

"좀 진정해. 아직 대피하는 애들 챙기느라 늦는 걸 수도 있잖아."




평정심을 조금씩 잃어가는 클라레스에게 제이크가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프로세스 원칙상 대피를 주도하는 건 일반교사, 카운터 학생이 주로 맡아야 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이미 경보가 울린 후 10분 내로 재난 본부에 도착해야는 게 원칙이었다.


클라레스가 검 라르고를 땅에 꽂고, 평정심을 되찾으려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끈 리더가 부원 한 명으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 때문에 카린의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곧 카운터 지원자를 모집해온 박현수와 심소미가 캐시의 옆으로 나타나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학교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개체는 제가 보고 있는 방향의 2종 하나에요. 샬롯 학생이 평범한 비카운터도 아니니 침착하게 합류를 기다려보죠. 개편된 프로세스 첫 시행이니까요."

"캐시 선생. 다른 구역에서도 1종은 물론이고 2종도 계속 나오고 있어. 경계 범위를 넓혀야 해."

"알겠어요. 제일 먼저 도착한 이 지역 쪽 담당 군인에게 정보를 받아보죠."

"샬롯은 어떡하죠? 혹시라도 고등급 개체라도 마주치면 대응할 카운터는 최대한 많아야 하는데..."





경계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말은 즉 이 드넓은 학교를 기준으로 사방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것인데, 외부 인력의 도움 없이는 지금의 인원으로 벅찬 일이었다. 정보를 받는다 하더라도 학교의 면적이 너무 넓어 지금 서있는 방어선의 완전 반대쪽에서 3종 급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일단 개편한 프로세스에 이탈자를 다루는 방침은 지도 선생님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요."




캐시가 쓰고 있던 바이저를 벗으며 합류 한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카린도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샬롯을 제외한 핵심 인물, 그리고 몇몇 카운터 지원자들.


선생님들끼리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 끝에. 캐시가 카린에게 다가와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카린 학생 빠르게 찾아올 수 있겠어요?"

"네? 하지만 제가 이탈해도 괜찮을까요?"

"지도 선생님들은 당연하고, 클라레스 학생과 제이크 학생은 화력면에서 꼭 중요한 전력이에요. 후방 지원 지원자 학생들에게 맡기는 것도 이런 재난 상황에 익숙하지 않기때문에 위험하고요. 지금 적격인 사람은 카린 학생뿐이에요."




캐시가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클라레스를 제외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샬롯과 제일 친한 사람은 카린 뿐이었기에 더더욱 옳은 판단이라고 여겼다.


줄곧 불안해하던 카린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말에 당황한 얼굴이 곧 비장한 얼굴로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찾아서 데리고 올게요."

"만약 15분 내로 찾지 못한다면 이 방어선으로 돌아오세요. 전력으로 제외하고 다시 작전을 전개해야 하니까요."

"네!"




카린이 자신의 소총을 꾹 쥐고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클라레스와 제이크가 카린의 이름을 불렀다.




"카린. 너무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되도록이면 꼭 샬롯을 찾아와라."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와!"




험악한 상황에 초조해 하면서도, 건네는 다정한 말들.

카린은 그 감정의 울림에 애써 웃으며 답했다.




"네! 선배님들도 조심해야 해요!"





















담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학교의 정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흰색의 덩굴장미가 피어올라 있는 담벼락.

카린이 스쳐 지나간 흰 장미들에게서 은은한 푸른빛이 일렁였다.



'환상 아카데미'라는 팻말이 붙은 정문을 들어서고, 어느새 대피가 거의 끝나가는 썰렁한 운동장.

카린이 제일 먼저 간 곳은 동아리실이었다. 다들 급하게 나오느라 샬롯에게 방어선 구축 지점을 전달하지 못했을 게 확실하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샬롯! 샬롯?"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동아리실에는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바람 소리와 무의미한 카린의 부름이 정적을 깨어줄 뿐이었다.


카린은 무언가 퍼뜩 생각난 듯 동아리실 안으로 들어가 사물함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샬롯이 쓰는 사물함을 찾아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샬롯의 검이 없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사물함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샬롯은 이미 이곳을 왔다 갔다는 증거였다.


동아리실까지 온 것을 보면 집합장소를 모르진 않을 텐데, 굳이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뜬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카린의 마음이 급해졌다.



다시 소총을 챙겨들고 동아리실을 벗어나, 별관을 돌기 시작했다. 별관의 층수는 많지 않지만, 특수 목적실이 많은 탓에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소리를 질러도,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그럼... 본관!"




만약 샬롯이 착각했다면, 분명 학생 구조를 했을 것이다. 첫 시행된 프로세스니 착오가 있었을 거라는 추론은 타당했다.

선도부원인만큼 주변인들을 챙기는 것도 샬롯의 일이며, 늘 뚱한 표정을 지어도 이따금 짓는 미소에서 다정한 친구니까.



본관 1층부터 빨리―



아무리 카운터라도 이렇게 뛰어다니면 숨이 찰 수밖에 없었다.

만약 본관에도 없으면 후관, 체육관까지 둘러봐야 하는 상황. 주어진 시간은 15분 본관을 돌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제발, 제발!



지나가는 교실을 보며 시간을 체크하고, 사람이 없는 지를 확인했다.

한층 한층 올라가며 샬롯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샬롯은 대답하지 않았다.




"샬롯! 있으면 대답해요! 샬롯! 샬롯 마르티네즈!"




맨 꼭대기 5층, 3학년 이과반 교실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카린은 마지막으로 제일 가까운 곳을 확인하기로 했다.

자신이 학교 밖으로 나오면서 확인한 곳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3학년 이과반 교실을 하나하나 지나며, 카린은 복도의 끝에 있는 유리 문을 응시했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창백해 보이는 도서실의 내부가 또렷하게 보였다.



카린은 조금씩 부정했다. 허탈감도 몰려왔다.

빠르게 걷기 만하던 발이 빨라졌다. 복도를 전력질주한다.

 





강화유리라도 위험하다며, 조심히 열라고 잔소리했던 그 문을 거칠게 열었다.

주어진 시간은 점점 끝나가는데도, 카린은 거친 숨만 내쉬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팔랑거리는 종이 소리가 숨소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곧 아비규환이 될 바깥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 흰색 책장을 응시했다.


의자에는 샬롯 검 사파이어 프리즌이 기대어 푸르게 빛나고,

샬롯이 보고 있는 책의 옆으로 아무렇게나 놓인 독수리 문양을 지닌 정체불명의 그 물건.


샬롯이 책갈피로 쓰던 것으로 보이는 이미 말라 비틀어져 버린 푸른 장미꽃을 들어 책장 사이에 꽂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카린이 들어온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창백해 보이던 도서실의 공기는 정말 시리도록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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