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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13)

 

 

 

 

 

너무나도 비참한 소망이었습니다.

 

그건 정말 초라하고,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과연 그걸 욕망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마키나

 

 

 

 

 

41.

 

“저, 언니…….”


“바닐라……혹시 에너지 음료 남는 거 있으면 더 가져오렴.”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더미 너머로 바닐라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컴퓨터 타자는 하도 쳐서 손톱이 갈라지려고 했고, 자꾸 눈이 감겨서

 

억지로 뺨을 때려가며 정신을 차려야했습니다. 몸의 감각이 둔해져서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쓰러져 자고 싶었습니다.
 
“단기간에 카페인을 그렇게 많이 섭취하면 훅 갈 수도 있는 거 아시죠?”

 

“그래도 어쩌겠어. 일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하아……주인님이 사라지고 5일이나 지났습니다.

 

정찰을 나간 분들도 결국 주인님을 찾지 못하셨고, 아마 찾으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듯 했습니다.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요?

 

설마 포드가 잘못 날아가서 암초에 처박혔거나……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이게 다 주인님이 하시던 일이라는 거죠?”
 
바닐라가 복사기에서 줄줄이 나오는 서류를 보며 말했습니다.

 

“맞아. 심지어 지금 다른 애들한테도 일을 맡겼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


“이걸 혼자 다 할 수 있다니, 진짜 무슨 일하는 기계도 아니고.”


“혹시 몰라. 미래에서 온 살인 로봇……하하하, 내가 미쳤나 봐. 우윽.”


하도 에너지 음료를 마셨더니 입에서 단내가 진동했습니다, 게다가

 

자꾸 구역질이 올라와서 당장에라도 위에 구멍이 날 것 같았습니다.

 

“주인님……대체 어디 가신 걸까. 왜 갑자기 우릴 떠나신 거야?”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이라도 했겠죠. 아시잖아요, 주인님은 남들이랑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거. 남들이 A를 말하면 B를 생각한다고

 

하면, 그 분은 E나 Z쯤 생각하고 있다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 이유가 뭔지 아니, 바닐라?”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주인님 머릿속은 아무도 이해 못해요.”


“주인님이 그러시는 건……아마 우리보다 월등히 똑똑하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많은 일을 단시간에 해내고, 그 복잡한 전술 지휘를 하실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지. 하지만 그 대가로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지시게 된 거야. 종종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

 

“머리가 너무 좋아서 바보처럼 보이다니, 무슨 코미디 같네요.”


바닐라가 서류더미 너머로 에너지 음료를 제게 건네줬습니다.

 

사실 이젠 맛도 잘 모르겠지만……이거라도 안 먹으면 30초 정도 있다가

 

기절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치익, 꿀꺽꿀꺽. 차가운 것만은 느껴졌습니다.

 

“2년이나 보좌해드리니 알 것 같더라고. 주인님은 우리가 보는 것과 많이 다르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24시간 내내 연기하는 배우 같다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도 일하러 가볼게요.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이미 무리했으니까 괜찮아.”

 

바닐라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휴……이걸 언제 다 끝내지. 주인님이 얼른 돌아오시면 좋을 텐데…….”


밥은 잘 먹고 다니실지, 어디 다치거나 아픈 건 아닐까 하루 종일 그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리리스 씨가 따라갔으니 아마 무사하실 테지만…….

 

부디 주인님이 무사히 지내시길 바라며, 저는 다시 타자를 두드렸습니다.

 

 

 



 

 

42.

 

무인도 생활 5일째.

 

주인님께선 열심히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집도 구덩이는 너무 불편한 것 같아서 나무와 나뭇잎으로 오두막을

 

만들고, 식수를 모으기 위한 장치도 생겼습니다. 생활이 편해지는 건

 

좋지만……과연 주인님께선 언제쯤 돌아가실까요?

 

저는 정글을 지나 주인님이 계실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어머, 귀여운 토끼가 있네. 안녕?”


그러는 도중에, 저는 갈색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제게

 

다가와 흥미를 보였습니다. 손을 뻗어 품에 안아도 얌전히 있었습니다.

 

“그렇지, 주인님이랑 같이 이 아이를 키워볼까? 후후……주인님과 나의

 

아이……우후후……아, 이름은 바니라고 하자. 얼른 소개해드려야지!”

 

머지않아 해변에 도착하니, 반라의 주인님이 바닷가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이거 보세요, 제가 토끼를 찾았어요!”


“오.”


어머, 햇볕에 그을린 주인님의 몸도 훌륭하시네요……저 복근을 혀로

 

핥을 수만 있다면 억만금도 줄 수 있을 텐데. 아니, 그게 아니죠.

 

“잘 하셨습니다. 잠깐 주시겠습니까?”
 
“네!”


주인님이 제게서 바니를 받은 후-

 

그대로 목을 꺾었습니다.

 

“바, 바니이이이이이-!!”


“왜 그러십니까? 먹으려고 가져온 거 아니었습니까?”


“키우려고 데려온 거예요! 아아아아, 저와 주인님의 아이가……!”


“토끼는 가축으로서의 가치가 낮습니다. 막 죽였으니 뇌도 먹을 수 있습니다.

 

마침 암염을 찾아서 소금을 좀 캤는데, 뇌에 소금을 뿌려서 먹도록 하죠.”

 

“싫어요! 먹을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토끼 뇌를 먹어야 하죠!?”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먹어야합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바르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신 후 주인님이 웬 산호에서 즙을 짜내 제 머리에 쏟았습니다.

 

끈적끈적하고 비린내가……주, 주인님이 그런 걸 뿌려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런 걸 기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이건 또 뭔가요.”


“버섯 산호의 즙입니다. 바르면 자외선을 차단해 화상을 막아줍니다.

 

자, 거기서 제가 모은 걸 지켜주십시오.”

 

주인님께서 제게 온갖 해산물들을 맡긴 후, 창을 들고 바다로 나가셨습니다.

 

“대체 왜 이 고생을 자처하시는 건지……그리고 가엾은 바니는 왜……

 

히잉, 미안해. 주인님이 널 먹는대. 나라도 명복을 빌어줄게.”

 

잠시 후, 주인님이 무언가를 창으로 푹 찌르더니 뭘 들고 돌아오셨습니다.

 

“가오리를 잡았습니다.”
 
“어, 그거 독이 있을 텐데요……?”


“가시에 찔리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가시의 독은 요긴하게 써먹읍시다.”


5일 만에 완전히 자연인이 되셨군요. 이거 혹시 축하드려야 하나요?

 

입고 계시던 제복도 다 벗어던지고 나뭇잎이랑 넝쿨로 옷을 만들어 입으시질

 

않나, 나무 위에 올라가서 새알을 훔쳐오고, 이젠 창이랑 그물까지 만들어서

 

온갖 걸 잡아오시고 계십니다. 다음엔 또 뭘 하실지 이쯤 되면 기대됩니다.

 

“돌아갑시다. 오늘도 굶지 않을 수 있겠군요.”

 

“네……그리고 전 바니의 뇌는 안 먹을게요.”


“잡아먹을 것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잡아먹을 거 아니었어요.”


저희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주인님께선 능숙하게 돌칼로 토끼 가죽을 벗기고, 내장과 살을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뇌와 눈알을 뽑아서 잘게 다졌습니다.

 

“동아시아의 소수 민족들이 이런 걸 먹었다고 책에서 읽은 적 있습니다.

 

이런 곳에선 나트륨을 섭취하는 게 중요하니, 조금은 드십시오.”

 

“차라리 나트륨 부족으로 죽을 게요…….”


“안 됩니다.”


주인님 나무 숟가락으로 뇌를 한 숟갈 퍼서 제게 건넸습니다.

 

정말, 정말 죽어도 먹기 싫지만……주인님이 주시는 거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눈을 딱 감고 꿀꺽 삼켰습니다. 맛은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뇌수의 비린 맛은 어쩔 수 없네요. 으윽.

 

“맛있습니까?”

 

“주인님이 제게 뭘 먹여주시는 게 정말 기쁘긴 하지만, 되도록 다음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음, 눈알은 꼭 포도 같군요.”


그리고 주인님은 나머지도 깔끔하게 손질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매번 이렇게 얻어먹는 게 죄송하지만 절대 도우면 안 된다고

 

하셔서 저로선 뭘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역시 불쌍하네요. 먹히기 위해 죽다니.”


“세상에 진리라 부를 수 있는 개념이 있다면 그건 약육강식입니다.

 

약하면 먹힌다. 강하면 먹는다. 어느 생물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생물을 오로지 먹기 위해 개량했고, 먹기 위해 키우고,

 

먹기 위해 온갖 잔악한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뭐라 할 사람은 없죠.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게 죄악이 아니듯, 인간이 무언가를 먹는 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먹힌 것에게 감사하는 것뿐이겠죠.”

 

“그렇게 진지한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렇습니까? 아무튼,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이니 말이죠.”

 

주인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후 또 어디론가 떠나셨습니다.

 

하아…….

 

정말 좋아하지만, 역시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분이십니다.

 

 



 

 

 

43.

 

저녁, 이 섬의 하루는 짧습니다. 아직 오후 5시 즈음이지만 벌써 주변이

 

어두컴컴했습니다. 나무가 많은 탓에 해가 짧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은 이곳저곳에 올가미를 설치하시고선 저를 데리고 섬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으로 가셨습니다. 가장 높다고 해도 언덕 정도지만요.

 

“슬슬 해가 지겠군요.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내려갑시다.”


“저기 보세요, 굉장한 노을이네요. March…….”


“흠, 그렇군요.”


왠지 분위기가 좋은 것 같은데……저는 슬쩍 주인님의 곁에 다가갔습니다.

 

“저, 주인님? 리리스가 주인님께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한데……다른 방식으로

 

봉사하면 저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후후……어떠세요?”

 

“그럼 마사지 정도는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하던 일을 하니 근육통이 오는군요.”


“아니, 그런 뜻으로……어휴, 됐어요. 괜한 말을 했네요.”


“그렇습니까.”


차라리 벽에 대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블랙 리리스, 아름답습니다.”
 
“어머, 제가요?”
 
“아뇨. 이 자연 말입니다.”


또 괜한 기대를 했네요. 주인님께서 팔을 펼치며 심호흡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없는 자연이란 이토록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곳입니다.

 

뭐, 사실 평화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겠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죽이고 죽임당하고 있을 테니.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잔혹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것. 그것이 세상이지요.

 

……말이 길어졌군요. 어쨌거나 저는 여기가 마음에 듭니다.”

 

“저도 좋아요. 특히 주인님이랑 함께여서 말이죠.”


“다행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그냥 여기 눌러 살까 합니다.”


……네?

 

제가 뭘 잘못 들었나요? 아니, 농담이시겠죠? 

 

“제가 없어도 저쪽은 괜찮을 겁니다……아마도. 결국 언젠가 적응하겠죠.”

 

“주인님, 그건 안 돼요. 물론 주인님과 함께 있는 건 좋지만 저희는

 

인류를 재건해야 한다고요? 그리 좋아하시는 일도 못 하실 거예요.”

 

“……돌아가고 싶다면 혼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포드에 비상용 신호 발신기가

 

있으니 그걸 작동시키면 데리러 올 겁니다. 하지만 전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주인님, 처음하고 말씀이 다르세요. 잠깐 있다 돌아가신다고 하셨잖아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제가 아는 주인님은 절대 이런 말씀을 할 분이

 

아니신데. 혹시 저도 모르는 이유라도 있거나, 저를 놀리는 거라면…….

 

“…….”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네? 리리스는 주인님이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다고 화내거나 뭐라 안 할게요.”


“먼저 내려가 주십시오. 저는 조금 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주인님.”
 
“부탁드립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대체 왜 저러시는 걸까요, 그냥 다 털어놓아주시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니 제가 뭘 도와드릴 수도

 

없고 조언조차 드릴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제 저희가 싫어진 걸지도, 이제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생각하시는

 

걸지도……저는 걱정스런 마음에 안절부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다다를 즈음.

 

……타앙……!

 

메아리치는 그 소리.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소리.

 

총성. 주인님은 총을 가지지 않으셨고, 제 총은 집에 놓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뿐.

 

철충.

 

“……주……주인……주인님……!”


이 멍청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여기 온 이유조차 잊어버리다니!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철충은 인간의 뇌파를 감지한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어려워도

 

오는 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주인님!!”
 
제발 늦지 않기를.

 

제발,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빨리. 더 빨리!

 

저는 미친 사람처럼 주인님이라고 외치며 언덕으로 달려갔습니다.

 

 

 

 

 

 

 

 

 

원작 사령관한테 매력을 뺏고 지능을 더하면 여기 사령관이 된다

거기에 기행과 효율에 대한 집착과 아싸기질을 잔뜩 넣는 거임

암튼 치타탑 치타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