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6년 5월 1일(세조 13년), 함길도 함흥평야 성천강

성천강을 마주하고 수천에서 수만의 군사들이 진을치고 있었다. 성천강 서쪽의 비탈 위에선 1만 5천여명의 군사들이 포진해있었고, 그 중앙엔 빛나는 붉은 갑옷을 입고 호랑이 가죽을 걸친, 젊고 키가 큰 장수가 말을 탄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나이에 비해 수려했지만 두 눈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주변인들을 흠칫 놀라게 만들고도 남을만한 살기였다.

멀리서 파발이 달려오는것도 모른체 그는 적군의 진영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장군, 영탐이 끝났습니디. 적 병력은 1만 이상, 1만 2천 이하! 기병은 3천 이하!

''그러한가.''

짧게 대답한 장수는 말을 몰아 부하장수들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근처에 도열한 병사들은 조선식 두정갑, 경번갑과 야인여진의 가죽갑옷, 동해여진의 판금갑옷등을 걸치고있었다. 그가 진영 한가운데로 도착했을때, 그의 머리 위에는 검은색 봉황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위대하신 만주의 대칸 이징옥님께서 왕림하셨다! 이제 강 너머의 무도한 역적들과 간사한 무뢰뵈들을 토벌할 일만 남았다! 모두 알겠나!''

금색 두정갑을 입은 장수가 소리치자 1만이 넘는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말을 맺은 남이는 붉은 갑옷을 입은 장수를 돌아보았다. 십여년 전,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1만의 북방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행방불명되었던 조선의 장수, 이징옥은 큰소리로 외쳤다.

''이 한번의 싸움에서 승부가 날것이다! 천명이 우리와 함께할것이다!''

1만의 여진족 기병과 5천의 조선인 보병들이 다시한번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땅이 울리고 강물이 요동쳤다.

''이번엔 지난날과는 다르다! 상왕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셨다!''

이징옥의 옆에는 두정갑을 입은 호리호리한 20대 청년이 잔뜩 긴장해있었다. 그는 수양대군에 의해 왕의 자리를 내주고 죽임까지 당할뻔했던 조선의 정당한 국왕, 노산군(단종) 이홍위였다.

''전하, 아직도 떨리시옵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아직도 전 제 앞에서 칼을 드리밀던 수양 숙부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긴장하지 마시옵소서. 분명 이번싸움에서도 저희가 이깁니다. 늘 그래왔잖습니까?''

이홍위 옆에선 마찬가지로 철갑옷을 입은 장수, 구성군 이준이 홍위를 달래고 있었다. 그 역시 왕족이었슴으로, 이홍위에겐 친척 형이었다.

''현재 군세를 보면 우리가 저들을 내려다보는 모양세로, 저들이 올라오려거든 우리 군사들의 활에 맞아 절명할것이며, 수천의 여진 기병들에게 으스러질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전하께옵선 앞으로 다시한번 용상의 주인이 되실 분이십니다. 얼른 찬탈자 수양을 내쫓아야 할테니, 옥체에 무리가 가셔서는 아니됩니다.''

''전 장군들만 믿겠습니다.''

말을 마친 구성군 이준은 이징옥의 옆으로 달려갔다.

''칸이시여, 적군은 우리보다 수는 적지만 수많은 화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저희 군이 가진 화포는 소수이니, 적이 화포를 끌고 강을 넘는다면 우리 군사들의 피해는 커질것입니다.''

승려의 옷을 입은김시습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징옥에게 말했다.

''매월당(김시습의 호)께서는 걱정도 많으십니다. 화포의 측면에 화살비를 퍼붇고, 기병들이 때려부수면 될일 아닙니까? 안그렇습니까, 형님?''

''박 형 말이 맞습네다. 고조, 그까이 관군 종간나새끼들 돌격으로 죽탕쳐버리면 될일 아닙네까?''

이징옥의 최측근이자 부하장수인 박항서와 북방출신 정제룡이 이징옥을 부추겼다.

''그래, 어차피 더이상 지체해봐야 시간낭비일 뿐이다. 모두 전진하라!''

이징옥의 호령에 맞춰 1만5천여명의 대군이 일제히 전진했다. 조선군과 이징옥군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나의 나라, 아름다운 이나라 조선이여! 내가, 드디어 돌아왔노라!''


조선군 진영에서는 곤룡포와 두정갑을 갖춰입은 남자가 진영앞으로 말을타고 걸어나왔다. 그는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여전히 만만치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조선의 국왕, 수양대군 이유의 눈에 이징옥과 그의 장수들이 들어왔다.

''이 역적놈들!!! 감히 폐주 노산군을 앞세워 조선의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가!! 니놈들이 고려조의 덕흥군과 최유 일당과 무엇이 다르랴!! 역도 이준과 남이! 니놈들은 종친의 신분으로 어찌 역당의 패에 가담하는가! 종친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은 니놈들이 감히!! 오랑캐들을 앞세워 용상이라도 차지하려는것이냐!''

구성군과 남이, 노산군은 묵묵부담이었다. 그때, 이징옥이 말을 타고 장수들의 선봉으로 나아갔다.

''천인공노할 패륜을 저지른 역적이며 정변으로 왕위를 차지한 찬탈자 수양대군, 이유는 들으라!''

이징옥의 말에 수양대군은 핏발을 세웠다.

''이몸은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위대한 대족장이며 북원의 공포, 대명국 심양왕, 왜구의 심판자이며 만주의 칸인 대장군 이징옥이니라!! 수양 네이놈! 니놈은 수많은 충신의 목숨을 앗아가고 세종대왕과 문종대왕께옵서 이룩하신 모든것을 무너뜨린 해충이다!''

이징옥은 우렁차게 외쳤다.

''나, 심양왕 이징옥이 명한다. 전군! 찬탈자 이유의 목을 가져와라!!! 그리고 천하의 근본을 원래대로 되돌릴것이다!''

''와!!!!!!''

1만여기의 여진기병이 쇄도했다. 그들이 쏜 화살에 조선 보병들의 진이 녹아내렸다. 곧이어 여진기병들과 보병들이 조선군의 진을 무너뜨렸다.

''대금국 천세!!!! 심왕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